『작별하지 않는다』 저자 한 강
눈의 육각형을 그려놓은 표지 1을 보며,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눈은 내리고, 쌓이고, 바람에 날려가며 나뭇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겨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나는 묻게 된다. 언제까지 이 겨울의 이야기가 계속될까? 제주 4·3 사건의 실마리는 언제쯤 드러날까? 이런 궁금증 속에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밤늦도록 읽어 내려갔다. 작가는 이렇게 독자를 끌어갔다.
325페이지 가운데 절반이 넘어서야 제주 4·3 사건이 드디어 조심스럽게 드러났다.
작가는 말미에서 이 책을 2014년 6월에 첫 두 페이지를 쓰고, 2018년 연말에야 다시 이어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왜 4년이나 미뤄졌을까 궁금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필설로 다 쓰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었으리라. 나 또한 믿기지 않는 극악무도한 현실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씨를 말릴 빨갱이 새끼들, 깨끗이 청소하갔어. 죽여서 박멸하갔어. 한 방울이라도 빨간 물든 쥐새끼들.”
누가 진정한 적일까? 국민을 희생시키며 권력에 눈이 먼 무리들, 바로 그들이 새빨간 것이 아니겠는가?
책의 317페이지에서 작가는 당시의 참혹한 역사를 묵직하게 풀어낸다.
“그 겨울 삼만 명이 살해되었고, 이듬해 이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청년단원들이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으며, 해안이 봉쇄되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으며 오히려 포상되었다.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다.”
코헬서의 말씀처럼,
“이미 죽은 고인들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아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이라고 말하였다.”
이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고도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음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잊지 못한 아픔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것은 진실을 알리는 길뿐일 것이다. 미해결된 아픔은 완결을 향한 욕구로 남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런 미해결의 상태일 것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국가가 의도적으로 자행한 폭력과 학살의 기록이다. 숨겨졌던 진실은 겨자씨처럼 자라나 역사를 증언한다. 소설 속 정심이라는 엄마는 제주 4·3 사건 당시 눈으로 보고 겪은 일을 딸 인선에게 말한다. 이야기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전개된다.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강의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설명할 수 없는 숙연함 속에 멍하니 앉아 기도하게되었다. 이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댓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 강 작가의 책을 원본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현대사에서 일어나 일인데 저는 어설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각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