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소리를 너무도 자주 듣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곧 성경을 이르는 것이고, '성경'이라 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성경과 하느님의 말씀이 등호 관계라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과연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인지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은 없는가? 일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도 성경 66권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각했을까?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신앙 공동체에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 하지 않고 '모세의 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즉 성경의 저자가 하느님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만일 성경이 기록될 당시부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면, 구태여 오랜 시간에 걸쳐 정경화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신약 성경의 여러 기자들은 자기가 글을 쓰면서 스스로 자기의 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글이 정경으로 인정받아 비로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간이 규정하게 된 것이다. 요한 복음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요한은 자기가 쓰고 있는 복음서가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썼다는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규정한 것은 인간의 권위에 의한 것이며, 그 권위가 세운 교회들만이 소위 정통 교회이며 다른 신앙 공동체는 모두 정통에서 벗어난 이단이라 규정하기 위한 규준으로써 정경이 채택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66권이 인정받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당시의 교회들을 이단과 정통으로 구분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가 성경에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성경 구절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해석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교파들이 성경의 기준에서 벗어나느냐가 규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해석이 옳으냐로 쟁점이 바뀌게 된 것이다. 원래 신약의 정경이 채택될 당시, 여러가지 엄밀한 기준에 의하여 정경으로 채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의 기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누가 그러한 기준을 제공했는가? 역시 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66권을 절대적으로 '신의 목소리'라 규정하는 자체부터 오류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글자 하나 그리고 숫자 하나를 무슨 신이 보낸 암호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마치 큰 돋보기로 세밀히 조사하여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까지도 상징성을 부여하려는 듯한 일부 사람들의 태도는 가히 광신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흐름이나 현실 세계에 비추어 판단하고 추리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인 것이다. 이러한 이성의 바른 사용을 위해 성경은 단지 중요한 참고 자료로써만 이용될 뿐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결코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모세의 글'이었으며, 또 다른 선지자의 글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가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 문맥에 맞추어 인용하지 않고 자기의 의도에 따라서 인용한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씀이 성경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성경 가운데 흐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참고하는 것이다. 즉, 성경의 모든 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경의 본질이 진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성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