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22,30; 23,6-11 요한 17,20-26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세 차례에 걸친 험난한 전교 여정에 이어서 예루살렘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당당히 전한
바오로에게 주님께서는 이제 땅끝인 로마에 가서 당신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동시에 그에게 “용기를 내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세상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에게 건네시는 주님의 위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힘을 주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 되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계시고 당신 또한 아버지 안에 계시듯,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모두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머물기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영광을
함께 노래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염원은 “제 안에”, “아버지 안에”, “우리 안에”,
“그들 안에”, “저와 함께”와 같은 반복되는 표현들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신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
주님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죽음으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심으로써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고, 오늘도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다 내주심으로써 우리와 하나가 되십니다.
십자가와 죽음, 성체와 사랑의 삶은 우리를 하느님과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사랑과 일치의 하느님 안에 머물며 주님을 깊이 체험한 이는
이 좋으신 분을 세상에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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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22,30; 23,6-11 요한 17,20-26
요한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의 정신을 가다듬는 기도입니다.
본디 구약의 대사제의 기도를 각색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속죄일에 대사제가 하느님과 백성이
화해하는 예식을 거행할 때 드렸던 기도를 요한이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기도입니다.
하나 됨의 기도의 본질은 ‘화해’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하느님을 저버리고
제 잇속과 욕망에 휩쓸려 하느님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본디 모습조차 잃어버린 시간들을
하느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고, 오늘을 다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담아내는
기도가 하나 됨의 기도입니다.
요한 복음은 그 하나 됨의 원천을 ‘사랑’으로 제시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존중합니다(1코린 13장 참조). 규칙과 조건을 내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서 하나이시듯, 믿는 이들이 하나 되는 유일한 조건은
그저 사랑하는 일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 껴안아 주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은 상대를 위한 행동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하느님과 하나 되어 있다는 방증입니다.
사랑으로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오로지 세상의 악을 처단하고 이웃의 부조리를
심판하는 것이 우리 각자의 모습으로 정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세상을 탓하고 이웃을 들먹입니다.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자유로운 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이는 그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사랑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세상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세상과 하느님은 하나가 됩니다.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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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22,30; 23,6-11 요한 17,20-26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최후만찬 후에 아버지께 드린 기도의 마지막 부분으로,
흔히 “교회의 기도”, “대사제의 기도”, “일치기도”라 불리는 부분의 세 번째 부분으로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이는 당시의 믿는 이들이 “하나” 되어 있지 못했음을 반증해줍니다.
곧 분열 되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하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어울려 친하게 지내라는 것을 말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성격 좋고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하나”를 이루기에 좋을 것입니다.
대체, 무엇과 무엇이 “하나”를 이루며, 무엇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을 말할까요?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란 “우리” 곧 ‘아버지 하느님과 당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아들 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를 이루되, 당신과 아버지가 부자관계로 “하나”를 이루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베드로2서 1,4)하게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그것은 곧 ‘사랑 안’에서의 이루는 ‘믿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하나”를 이룬 이에게서는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를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그분 안에서 함께 세워져서 영 안에서 하느님의 거처가 됩니다.”(에페소서 2,22).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곧 우리도 당신 ‘안에서’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광을 받게 됩니다.’(요한 17,22 참조).
그래서 세상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고(요한 17,21),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7,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간절한 바람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
믿는 이들이 당신이 있는 곳에 있기를 바랄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기’를 곧 일치하여
“하나” 되어 있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당신께서는 <마태오 복음>에서,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마태오 12,30)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당신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므로 누구나 당신이 계신 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십니다. 곧 ‘사랑 안’에, 당신의 진리 안에 ‘함께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당신의 사랑과 진리를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하면, 당신의 ‘현존 안’에 머물게 되고
‘우리도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영광을 보게 될 것’(요한 17,24 참조)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들과 ‘하나’를 이룰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그분이 ‘있는 곳’에 있을 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일치하여 있으면,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한편 이 세 번째 기도는 “의로우신 아버지”를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알다’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색을 통해서나 사랑하면서 애정을
통해서 아는 것(25절: γινωσκω)을 넘어서, 미래의 계시의 순간으로 이어지는
‘알다’(26절: γινωριξω)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동성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곧 계시는 믿음 안에서 받아들일 때 사랑으로 인도되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은 인간이 짓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의 참된 일치는 아들 안에서
아버지의 선물 위에 역사적 종말과 더불어 건설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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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과 함께 하나가 되게 하소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한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을 받아들여 하나 되게 하소서.
제 안에 당신을 실현하소서.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을 건네주게 하소서.
똑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채,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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