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가끔 DHL 트럭들을 만난다.
미국에선 미국에 기반을 둔 UPS가 대세다 보니
UPS 트럭은 흔히 보이지만 네덜란드 기반의 DHL 트럭은 드물다.
그 DHL 마크를 달고 달리는 트럭도 나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길 위의 인연 중 하나다.
길을 걸으며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을 곁눈질로 보니 역시나 멋지게 보였다. 청바지에 티 하나 걸치고 다니던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세련되었는가... 어깨를 치켜세우며 스스로 감탄하며 걸었다.
졸업을 하고 늦게 간 군대라, 제대를 하니 취직이 시급한 발등의 불이 되었다.
내 마음만 급한 것이 아니라 군대 제대만 하면 뭔가 결혼의 실마리가 보일까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지금의 아내도 슬슬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제대 후 한 달이 지날 때쯤, 대구매일신문에 기사 하나가 실려있었다.
<DHL>
세계 초특급 우편물 배송회사에 관한 소개기사였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겐 굉장히 매력 있어 보이는 회사였다.
사원모집 광고도 없었고 내 전공인 기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회사였지만,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젊은 시절의 끌림에 이끌려, 그 회사에서 내 젊은 포부를 펼쳐보고 싶다는 내용을 절절하게 써서 DHL 대구지사로 부쳤다.
당연히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 후 거의 1년여의 세월 동안 나의 취업노력은 눈물겨웠다.
150통에 가까운 취업 서류를 준비해서 여기저기 백방으로 부쳐보았지만 무응답. 학교 총무부와 우체국을 오가는 얼굴 두꺼운 단골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언제쯤 취직할 거냐고 눈물 찍어대는 애인(지금의 아내)도 달래야지, 점점 더 강해지는 부모님의 박해도 꿋꿋하게 이겨내야지... 그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DHL>이 다시 떠올랐다.
1년여의 눈물겨운 세월을 보낸 뒤라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취직만 시켜주면 죽기살기로 일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며 고치고 또 고치고... 소개서를 썼다.
물론 그 회사에선 어떠한 신입사원 모집 계획도 없었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양식을 제대로 갖춘 서류를 만들어 그 회사로 부쳤다.
며칠 후.
거짓말처럼 그 회사 대구지사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그날 오후에 시간이 되면 회사로 들리라고...
야호~!!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던가!!
드디어 첫 면접이다~!!
나도 면접을 본다~~!!!
쾌재도 잠깐, 그런데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면접을 보러 가야 되는데 옷이 없었다.
옷이라곤 상의는 몇 벌의 티가 전부요, 바지는 봄가을 면바지 두 벌, 여름용 청바지 하나, 겨울용 골덴바지 한 벌이 전부인데 명색이 면접이니 그걸 입고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바지는 그나마 면바지를 입으면 될 텐데 상의는?
이럴 줄 알았으면 근사한 양복이라도 미리 한벌 맞춰달라고 졸랐어야 하나......
눈치를 채신 어머니가 돈을 조금 마련해 주셨다.
연살색 면바지를 입고 통이 넓은 아버지 와이셔츠에 아버지 넥타이 꽉 매고 일단 집을 나섰다.
그 당시 대구 한일로 한일극장 앞 지하도에 매장들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하 매장의 옷가게를 둘러보니 콤비형 상의들이 많이도 진열되어 있었다.
면접인데 곱게 보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피다 보니 마침 눈에 띄는 콤비 하나가 있었다.
파란색 단색의 콤비. 와이셔츠 위에 걸쳐 입고 거울을 보니, 캬~ 이렇게 멋스러울 수가!!
DHL 대구 지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 걸음은 통통 튀고 어깨는 자꾸 으쓱거려졌다
지사장님 앞에 마주 앉았다.
역시나 큰 회사의 지사답게 소파며 가구들이 첨단의 세련된 모습들로 배치되어 있었다.
여러 질문들 끝에, 신입사원 충원 계획은 없지만 젊은 용기가 가상하여 채용할 뜻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혹 친구 중에 영업직에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영업이 어떤 것인지 들어보고 그래도 자신이 있거든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말씀하시더니... 뜬금없이,
"xx 씨 면접 처음 보죠?"
"네."
"내가 사회선배로써 충고 한마디 하겠는데..."
"......"
"혹 다음에 면접 볼 일이 있거든 콤비를 입지마세요."
"네???"
"콤비 스타일을 좋아해서 꼭 입어야겠거든 아래위가 잘 어울리게 단정하게 입던지..."
"네???"
"지금 입은 스타일은......"
"마음에 안 드시나 보지요??"
"음......"
"???"
"제비족 같아~ 하하하~!!"
"!!!!!!"
면접에 대한 예절과 상식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시고는 그렇지만 그런 어설픈 내 모습이 좋아 보였노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다독여도 주셨다. 지금도 세련하고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인생이란 게 묘해서 그다음 주에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긴 했지만, 그 지사장님의 말씀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지, 길에서 DHL 트럭을 만나면 꼭 되살아나 귀에서 맴맴거린다.
"꼭 제비족 같아~ 하하하~!!"
첫댓글 시애틀에서 석달살기 하면서 자주
UPS라는 차가 보이던데
우편차로군요
콤비가 제비쪽을 연상한다니 좀
생뚱맞군요. 옛날 옛시절 추억을 호출해 봅니다
미국 여행담 잘 보고있습니다
UPS가 아마존의 인터넷 배송까지 합니다. 그래서 동네마다 UPS
작은 배송차도 많이 돌아다닙니다.
파란 상의에 미색 하의.
색 조합이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ㅎㅎ
군대에서 제대 하구 한달?
나는 그 한달 동안 느긋하게 자유를 만끽하며 집에서 푹 쉬면서
펜글씨 학원을 다닌거 같다
그러다가 그 이후에 제대한 동창이자 친구와 영어 학원을 다녔었다
그러면서 신문을 보고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취업이 잘 안되는 거다
그래서 제대한지 아마 7 개월쯤 지나서는 취업이 안되면
건축 시공기사 면허 라도 따겠다고 건설학원을 다녔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한지 딱 10개월 만에 취업이 되었구 시공기사 면허는
직장 다닌지 몇달 지나서 시험을 치고 합격이 되었다
취업이 확정된거는 제대한지 9 개월 만이었다
그 9개월 동안?
초기에는 제대한 자유를 만끽 했지만 역시 취업이 제일 중요했었다
그런데 마음자리님은 기계과 출신 인데도 취업이 잘 안 되었었나 봅니다
기계과가 건축과 보다는 취업문이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보다 더 어렵게 취업이 되었나 봅니다
콤비를 입고 면접? 우하하하 웃깁니다
하긴 정장 안하고 면접을 보는 분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위해서 오래 고생하던
마음자리님은 나와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그런데? 나는 제대한후 소개팅으로 여자친구를 소개 받았지만
저도 5월에 제대해서 한달 정도는
잘 놀며 다녔는데, 그후로 1년동안
힘든 나날들을 보냈네요. ㅎ
지방대 출신에 전공 성적도 별로, 1985년 취업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지요.
취업이라는 같은 이유로 비슷한
마음 고생을 하신 태평성대님이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ㅎㅎ
내가 직장에 못들어 가고 있어서 인지?
바람도 맟치고 만날때 자기 친구도 데리고 와서 부담을 주고
그래서 매너가 나쁘다고 생각이 들어서 내가 짤라 버렸습니당
그래서 한동안 ? 아마 1년 3개월 이상 여자 친구가 없었습니다
이상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군대 복무기간 동안 고무신 안 갈아신어준 그 고마움을 어깨에 짊어지고 지금까지 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ㅎㅎ
그옛날 취직을 하고 싶은 열망을 담은 재밌는 추억담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면접이니 튀지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게 과거의 지나친 강박관념이였지요...요사이는 직징다니는 젊은이들은 출근복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변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인 둘째는 출근복이 아주 자유복이라 가끔 제가 놀라곤 합니다.
내친구가 수년전까지 독일우정청이 운영하는 DHL회사의 유니폼을 전량 제작하여 납품하는 일을 십수년했습니다. 독일어,영어에 능숙하고 가먼트에 전문인 친구는 옷을 검수하기위해 매달한주는 방글라데시로 또한주는 베트남공장을 출장다녔답니다.
독일바이어 잘 만나나서 힘들지만 30년을 열심히 무억업을 하더니 지금은 부자가 되었지요.
아...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말씀 듣고 찾아보니, 미국에서 시작했고 2003년 독일우정청에서 완전히 인수, 브랜드 통합이 되었다는군요.
저는 왜그랬는지 그저 유럽 기반의 네델란드 회사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분의 꾸준함이 성공으로 이어졌나 봅니다.
제비족이 아니라 멋쟁이 였네요..ㅎ
허나 그때 그시절 참 가슴 설레던 시절이었겠지요
애인에게 뭘 보여주기도 해야 하고~
꿈도 펼쳐야 하고~
지금 잘 달리고 있으니
오월도 씽씽~~~
네.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급한데 일은 좌충우돌 헛방이 많았던 그 시절이 설레던 시절 맞습니다. ㅎ
청바지 같이 젊고
푸풋한 시절이야기에
공감을 느끼며,
역시,
맘자리님의 진솔한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오늘은 오월의 첫날이라,
싱그럽고, 화사하고, 반가움입니다.
사랑에 보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달에
글이 싱그러워서 좋습니다.^^
투둘투둘 삐죽삐죽 하던
돌이 맨들맨들 조약돌이
되어가는 공정의 시작점에
있던 시절 이야기네요. ㅎ
길에서는 아주 쉽게 추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하하핫~~
우울하던 날
며칠째 이깟 카페 안들어온닷~!!!
하고 있었는데
뵌 적은 없지만
마음자리님과는 안어울리는
제목에 이끌려서
글을 읽다가
빵 터졌습니다.
성실하고 집 밖에 몰랐던
목수남편을 두고
춤바람이 나서
제비한테
현금다발을 찾아다가 바치던
옆집
인아 엄마가 문득 떠오르네요.
제가 아는 제비족의 모습은
기름 발라 뒤로 넘긴 올 백 머리에
느끼느끼한 말투
건들건들한 걸음걸이
드라마에서 나오던
쿠웨이트박인데
대구 싸나이
마음자리님은 어찌 생기셨을지
문득 궁금합니다^^
ㅎㅎㅎ 시원하게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시라고 올린 글인데
시원하게 웃어주는 분들이 안 계셔서
막 서운하려던 참이었습니다. ㅎ
쿠웨이트 박은 도시 제비족이었고
저는 시골 제비족이었습니다. ㅎㅎ
댓글도 재미있게 써시는
페이지님이시네요.
카페가 재미없을 때는
수필방으로 휑~ 달려 오셔도...
@콩꽃 으아아앗~~
우리 우리
근엄하신
호랭이 콩꽃님이시닷^^~
제가 어릴적 막내둥이 귀염둥이로 자라
까불땐 엄청 까불거리지요.
삶의 더께로
입이 무거운 척
하지만
친해지고 마음을 열게 되면
뭐 이리 웃긴 가시내가 다 있노
하시거든요.
ㅎ.
하늘이 우르릉 쾅쾅
어둑어둑하니
뭔 일이 곧 날것만 같은 날.
우리 콩꽃님.
모임에서
또 뵙고 손 잡아보고 싶네요^^♡
제비족면접 글도 재미있지만 드넓은 택사스주 쭉. 뻗은 일자서 도로와 일몰의 저녁하늘에 더 눈이 갑니다.
어제 집근처 버스정류장의 초승달이 이뻤는데.
이렇게 시선이 막히는 사진입니다.
어머나 푸른비님^
저도 어젯밤에
달이 너무 고와서 사진으로 찍었는데
퍼져보여서
달 사진이 잘 찍히는 핸폰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덕분에 잘 봅니다.
감사해요^~^♡
초승달을 선명하게 잘 잡으셨습니다.
도시의 복잡한 하늘 날다 지쳐
잠시 전깃줄에 앉아 쉬던 달,
그 사연에도 귀 기울이고 싶네요. ㅎ
한국은 시야를 좁혀야 ^^
@고든 당겨서 보니 달 옆에 별도 하나 떴네요. ㅎ
ㅎ 마음자리님
젊은날의 초상화 한편
재미있게 봤어요 .
하얀 티샤쓰에 청바지 차림의
풋풋한 시절의 모습 상상해 봅니다.
그때는 청바지 면바지에 콤비형 쟈켓으로
멋을 부리기도 했지요.
근데..
제 생각엔 그 파란색이 문제였던것 같아요
예전에 했던 서울의달 드라마에 춤선생 제비가
파란색.하얀색. 쟈켓을 주로 입었거든요 ㅎㅎ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좌충우돌하며 고래를 잡으러
다니던 그 시절이 지금의
제 마음을 젊게 만들어 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