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먹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내려놓는다. 하루 세 번의 식사는 습관이 되고, 익숙함이 된다.
그 익숙함은 때로 편안하지만, 동시에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무엇을 먹는지보다, ‘그냥 배를 채웠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익숙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는 뜻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기에 더 이상 설렘이 없다. 그렇게 반복되는 식사 속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되어버렸을까?”
분명 같은 메뉴, 같은 장소, 같은 사람과 함께 먹는데도 그날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그 음식이 유난히 짜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큼 밋밋하다.
혀는 똑같이 작동하는데, 맛은 다르게 느껴진다.그 이유는 음식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그 음식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과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맛이란 결국 물리적인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짠맛, 단맛, 매운맛’으로 맛을 구분하지만, 그건 음식의 표면을 기술하는 단어일 뿐, 진짜 맛의 본질은 아니다.
음식의 맛은 그날의 공기, 주변의 소음, 함께 앉은 사람의 표정, 그리고 내 마음의 온도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혼자 먹는 밥은 늘 같은 맛인데도 왠지 모르게 심심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밥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밥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음식의 물리적인 특성에만 집중한다.
그 음식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혹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한다.
하지만 음식이란 단순한 재료의 조합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간, 관계, 기억, 그리고 감정이 함께 끓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식은 밥 한 공기가 그리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싼 컵라면이 젊은 날의 추억이 된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것을 먹는 사람의 기억과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변한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된장찌개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냄새는 단순히 된장의 향이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하던 집의 공기와 안도감의 냄새였다.
그땐 몰랐다. 그 평범한 식탁 위의 냄새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하지만 지금 혼자 사는 방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데워 먹을 때면, 가끔 그때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익숙했던 냄새가 사라졌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깨닫는다.
아마 ‘낯섦’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다’라는 감정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맛이란 오로지 나의 경험 속에서만 존재하는 감정의 언어다. 같은 음식도 다른 날, 다른 마음으로 먹으면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그 변화의 원인은 음식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익숙한 맛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건 내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내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우리는 흔히 ‘익숙하다’는 말을 안정의 상징처럼 여긴다. 하지만 때로 익숙함은 감각의 마비이기도 하다. 익숙한 음식이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할 때, 그건 음식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내가 그 음식을 더 이상 새롭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이 주는 낯섦은, 결국 나의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는 증거다. 그러니 익숙한 맛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건 나에게 나직하게 다가오는 질문 같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을 정말 느끼고 있니?”음식을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쌀밥 한 공기면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음식은 언제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건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추억을 불러오는 신호이고,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먹는 밥 한 끼 속에도
사실은 어제와 다른 마음, 다른 공기, 다른 생각이 깃들어 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익숙함 속의 낯섦’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안다.
익숙함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길들여진 상태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낯섦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익숙함의 틈새에서 잠시 고개를 드는 ‘감각의 회복’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음식을 먹지만, 그 맛은 결코 같지 않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내가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음식이란 단순한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그릇 위의 밥 한 공기 속에,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함께 앉아 있다.
익숙했던 맛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건 내 안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여전히 내가 느끼고, 변화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먹는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감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첫댓글 밥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서 서술한 글이 앞에도 한 건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인데요, 좀 더 자세히 썼네요.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생물학이나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유기체인 우리가 계속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기물 또는 무기물을 섭취하고, 그것을 소화하여 영양소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의 영역 외에도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단순히 영양소만 섭취한다면, 본문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맛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감정, 정서적인 의미 부여도 불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다만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여러 감정, 정서를 통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 먹는지, 무엇을, 언제 먹는지에 따라서 음식은 우리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