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코린토 1서 12,3ㄷ-7.12-13 요한 20,19-23
영적으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오십 일째 되는 날, 약속대로 협조자이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고
선교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 ‘위로부터의 평화를’ 주십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행동은 마치 흙으로 빚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는 창조주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창세 2,7 참조) 그래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숨으로 표현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것이고 그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평화를 주시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자 제자들은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극적인 변화의 모습은 오늘 1독서인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이야기에서
더욱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이 적대적인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해 증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그 생명이 다한 것 같았던 제자들의 공동체가 성령을 받은 후에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제자들은 복음 선포의 길고 험한 여정에도 끝까지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성령 강림 사건은 초대 교회의 탄생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교회 성장과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영은 늘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을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다가가셨듯이 당신의 영을 통하여 굳게 닫힌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깊이 좌절하고 힘들어할 때에도 그분께서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다가와 함께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으나 지금 좌절해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 현존을 깨닫게 해주고,
위로의 은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넘어 진리를 증언할 수 있거나,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들을 용서하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구체적인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의 의미는 이상한 언어를 말하거나 기적적인 치유의 능력을 얻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얼마나 깊이 우리 삶에 개입하고 계시는지
깨닫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2독서에서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이미 성령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보다 더 민감하게 응답하기 위해서는
복음적인 시선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찾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우리를 항상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성령께 감사드리며 필요한 은총을 구합시다.
서울대교구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2024년 5월 19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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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원 미카엘 신부
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코린토 1서 12,3ㄷ-7.12-13 요한 20,19-23
성령을 받아라!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다. 우리가 받은 성령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이며,(창세 1,2)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불어넣어 생명을 주신 생명의 숨이시다.(창세 2,7)
그렇게 한처음에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이 되시어
제자들에게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다. 창조 때의 숨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주는
입김이었지만, 오늘 예수님의 숨은 주님의 부활로 죄를 용서받은 우리가
천국의 새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 입김이다.
어떤 교우 이야기이다. 그는 한 형제가 자기에게 한일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괴로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지 않겠는가?
그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도 못자고 소화도 안되고 늘 짜증만 났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결국 주님께 빌었다. “주님, 제가 괴로우니 제발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중에 말씀이 들려왔다. “십자가를 끌어안아라.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십자가를 끌어안고 보라.” 그 말씀을 듣고
그는 집에 있는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문득 주님의 고통과 함께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한다. 주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용서 못 할 일이 무엇이랴? 그는 십자가의 도움으로 용서할 수 있었다.
오늘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특별히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이 말씀은 성령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 용서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오늘 독서에서도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표현의 능력을 주셨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데, 언어가 다르지만 서로 말이 통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서로 말이 통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고, 화해하게 되었고, 결국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 의미도 어떻게 생각하면 서로 다른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성령을 받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천국으로 가려는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용서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이 아름다운 성령 강림 대축일에 주님의 성령을 다시금 묵상하며
나도 혹시 용서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하자.
부산교구 윤준원 미카엘 신부
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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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코린토 1서 12,3ㄷ-7.12-13 요한 20,19-23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십시오! 뜬금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라고요?라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자유로움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만나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잉태할 때,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마리아에게 내려오신 성령과 마리아를 덮을 것이라고 말한 성령님께서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성령님과 다른 성령님이십니까? 아닙니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합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곧 하느님 자녀로
다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삶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면,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비추어 주시는 삶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 번째 성령 강림 대축일 주보 강론을 쓰고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새얼센터라는 곳에서
많은 놀라운 일들을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 여러분에게는 이 말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랑! 이라고 다가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자녀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돌보시는지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
성령과 함께 평화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평화를 지니고 있고, 우리는 이미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성령께서는 깨닫게 해주십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평화를 빼앗아 가고, 무엇이 여러분의 자유를
빼앗아 갑니까? 그것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보다 더 큰 것입니까?
오늘 전례 안에 부속가로 성령 송가를 바칩니다. 그 성령 송가를 자주 바치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께 청하십시오.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평화로워지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큰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성령님! 저를 온전히 차지하소서!
대전교구 김기범 시몬 신부
2024년 5월 19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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