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가장 재미가 쏠쏠한 직업이 있으니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트 혹은 대리인이다. 어떤 산업이든지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시켜 주는 비즈니스가 있게 마련이고 축구에도 크게 두 종류의 에이전트가 있다. 하나는 축구단을 비롯한 축구 주체에 광고를 연결해 주는 스포츠마케팅 에이전트(개인 혹은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선수와 계약하여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선수 에이전트다. 그 중 선수 에이전트는 비공식적으로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에이전트, 브로커, 사기꾼이다.
에이전트는 선수의 계약이나 이적은 물론 선수의 생활이나 사적인 비즈니스, 재산관리 등에도 관여하는 것이 보통으로 말 그대로 그 선수의 완전한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에이전트로 인정될 수 있는 조건은 선수의 입장에서 그 선수가 온전한 축구 선수로, 그리고 온전한 사회인으로 현재는 물론이고 먼 미래에도 가장 적합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직업적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축구 산업이 조금씩 발달하고 좋은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에이전트 기업의 규모도 커지고 있고 초기와 달리 에이전트의 직업 의식과 활동 영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브로커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 안 해도 어떤 경우를 브로커라고 부를 수 있는지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에이전트 자격도 없고 선수의 공식적인 대리인도 아니면서 그 선수의 대리인인양 행세하며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경우 브로커의 수준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브로커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사기꾼이다. 축구 에이전트에 있어서 사기꾼은 에이전트에서 나올 수도 있고 브로커에서 나올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브로커가 사기꾼이 되는 경우는 그 피해가 그리 크지 않지만 공식적인 에이전트가 사기꾼인 경우는 그 피해가 심각하다. 비공식적인 위치에 있다면 서로 알고 경계하겠지만 공식적인 경우라면 더 많은 이득이 걸리면서 알면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사기꾼의 경우는 에이전트의 탈을 쓰고 에이전트의 업무를 그대로 하긴 하지만 선수의 입장에서 선수를 보호하고 그 선수가 온전한 축구 선수, 온전한 사회인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직업적 사명의식이 없다. 그저 선수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축구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는 목적뿐이다.
올시즌 K리그에서 사라진 영웅들
2006 시즌 K리그에는 그라운드에서 사라진 얼굴이 몇 있다. 이들은 2005년에 각 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팀의 성적을 좌지우지했던 선수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진 것다. 대구의 중원을 책임지며 돌풍을 일으키는 주역이었고 시즌 후 다른 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었던 홍순학, 인천유나이티드의 중원의 핵으로 자리잡으며 전성기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서동원, 빠르고 재치 있는 플레이로 전남드래곤즈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며 역시 각 팀의 러브콜을 받아 왔던 노병준과 이정운, 부산아이파크의 전반기 깜짝 우승을 이끌며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 주었던 박성배 등이 그들이다.
홍순학은 FA로서 FA등록 마감 시한을 넘겨 올 시즌 K리그에서 뛰기 어렵게 되었고, 서동원은 연봉 줄다리기 끝에 결국 계약을 했지만 동계훈련에 참가하지 못해 시즌 초반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게 되었다. 노병준과 이정운은 아예 어줍지 않은 유럽 팀에서 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려 오지만 그 후에 어찌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고 박성배는 부산으로의 완전 이적이 무산되고 포워드진이 넘쳐나는 FC서울로 복귀, 현재 팀에서 존재감 없는 2006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 에이전트와 계약한 선수들이다. 이들의 에이전트는 선수의 현재 실력이나 위상 등과 관계없이 각 구단측에 현재 연봉의 2~3배를 뛰어 넘는 터무니 없는 연봉을 요구하는 한편, 선수들을 "너희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꼬드겨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은 채 억지를 쓰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이 선수들은 축구 선수 인생에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 에이전트는 '구단에서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조금 더 버텨보자. 안되면 해외에 보내주겠다'고 하며 구단에 무리하게 대항하도록 선수들을 부추겨왔다.
사실 축구 선수들 중에 협상이 어떤 역학 관계로 이루어 지는지, 어떤 경로로 돈이 움직이는지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면에 경험이 없고 축구만 전문으로 해왔기 때문에 다른 방면에 있어서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더 높다. 고소득에 축구만 아는 선수들은 협상의 역학관계나 축구 비즈니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순진한 선수들 농락하는 사기꾼 에이전트
앞서 얘기한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이 에이전트에게 속아 탄탄대로를 달릴 수도 있었던 자신들의 선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대부분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 버렸다. 사실 이 에이전트가 망친 선수들은 이런 K리그 선수들뿐이 아니다. 이호진 같은 적지 않은 유망주들이 해외 진출이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속아 이 구단 저 구단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인생을 망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보도는 많았지만 번듯한 구단에 좋은 조건으로 입단하여 꿈꾸던 좋은 환경에서 유럽무대를 누비며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선수를 보호하고 선수의 입장에서 그 인생을 잘 경영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잘 깨닫지 못하는 선수와 맺은 계약서를 볼모로 한 건 올리려는 의도로 도박을 감행하는 행태. 게다가 선수의 장래는 아랑곳 없이 책임지지 못할 해외진출을 장담하다 선수의 인생을 망치는 이 에이전트는 축구판에서 몰아내야 함이 마땅하다.
누구나 박지성이 될 수는 없다. 한 프로팀의 주축이라 해서 누구나 똑같이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돈을 벌고 해외진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기 스스로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 내며 열심히 땀을 흘려 차근차근 위를 향해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오는 것이 명예와 돈일진대, 이 에이전트는 돈을 많이 받거나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선수를 부추겨 결국 선수들의 정신을 좀 먹고 해당 선수는 물론 그 팀과 K리그, 나아가 한국축구에 적잖은 누를 끼치고 있다. 이런 에이전트는 다시는 선수의 미래와 희망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업계에서 추방해야 함이 마땅하며 연맹과 구단들은 이런 에이전트가 선수의 미래와 한국축구를 좀먹지 못하도록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덧붙이면, 홍순학과 서동원, 이정운, 노병준은 모두 FA 선수였고 규정상 이들은 모두 이적을 하거나 원 구단과 2월 말까지 계약을 하여 연맹에 등록하지 않으면 1년간 선수로 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에이전트는 스스로도 그런 규정을 잘 몰라 선수들에게 3월 10일까지 버티도록 꼬드겼다. 결국, 막판에 구단과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한 서동원만이 올 시즌을 뛸 수 있게 되었을 뿐 에이전트 말만 믿고 버텼던 나머지 세 선수들은 결국 올 시즌을 뛰지 못한 채 선수 생활, 아니 인생 전체에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그 선수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에이전트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는 후문이다. 자, 이쯤 되면 이 에이전트는 에이전트인가 사기꾼인가? 적어도 선수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평생 성실하게 축구만 하던 선수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첫댓글 나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