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하는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해외순방을 나가는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를 태우지 말도록 한 사태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기자가 그 당시 슬리퍼를 신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특정 방송사 기자를 탑승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는 차치해두고, 나는 그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해서다. 그 자리는 다름 아니라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의 말을 듣는 자리 아닌가. 그 대통령을 지지하든 아니든 관계없이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접촉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본다.
슬리퍼란 것 때문에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수업을 맡은 교수로서 나는 대학원생이 슬리퍼를 신고 교실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 호되게 질타한 적이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고자 교실에 들어갔는데, 어느 남학생이 슬리퍼를 신고 앉아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질색을 하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당황하며 자기가 방심했다고 얼른 사과했다. 학생 조교로 근무하는데 사무실에서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일하다 그만 갈아신는 것을 깜빡 잊고 수업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과 발언을 들었어도 나는 그의 정신이 해이하다며 쓴소리를 하였다. 슬리퍼란 사적 공간에서나 신는 것인데, 어떻게 수업을 들으러 오면서 그렇게 방심할 수 있느냐며 꼬집었다. 그러자 내 말이 너무 집요하다고 여겼는지 어느 용감한 여학생이 사무실과 교실이 같은 건물에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내가 너무 꼬장꼬장한 거 같다고 항의하였다.
이러한 말에 열을 받은 나는 슬리퍼란 실내에서나 신는 것으로 교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수업에 임하는 자의 태도로도 형편없다고 못 박았다. 그렇게 강경하게 말했던 취지는 그들이 혹시 다른 데 가서도 그러한 격 떨어지는 태도를 보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호했던 태도를 보였던 나는 실내 밖으로 나갈 때 꼬박꼬박 신으로 갈아신는다. 그 당시 내 수업을 들었던 대학원생 중 누구라도 내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여 더 철저했다.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럽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오늘날 개개인의 주권이 강화되면서 예의범절이라는 게 많이 사라지고 있다. 어른 앞에서 다리를 있는 대로 꼬고 앉는 것은 예사고,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안 맞으면 거침없이 대든다. 이렇게 대드는 데에는 부모나 스승의 위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이가 제법 들어서인지, 아니면 워낙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마모된 덕분인지 나는 비교적 비난에 유연하다. 마찰이 생겼을 때 그러려니 하고 물러서야 편하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러지 않고 요목조목 진위를 따졌다가는 문제를 키울 뿐이다. 정 거슬릴 때는 ‘너도 나이 들어봐라. 그렇게 빽빽거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읊조린다.
이번에 대통령에게 항의한 기자가 슬리퍼를 신었다는 보도에 놀랐던 이유는 그가 세상을 잘 모르는 젊은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기자라면 어느 정도 직급도 있을 텐데 슬리퍼 차림이라니! 본인의 처세도 문제이지만 그런 사람을 기자로 내보낸 MBC는 뭐가 되냐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아무렇지도 않아 하시니까, 옆에 있던 제자가 괜찮으시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집에서 엉망진창인 음식을 내놓았을 때 이쪽에서 그것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느냐고 반문하셨단다. 이러한 반문에 제자가 그 집주인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것이라며 어떤 욕설이든 이쪽에서 접수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상대의 것이 된다고 하였단다.
이참에 다시금 새기는 것은 일거수일투족 모든 게 자신의 품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상대에 따라 응대하는 수준을 달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누구든 상관치 말고 정성스럽게 처신하였으면 한다. 자신의 족적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첫댓글 MBC기자가 요즘 기자로서 직분을 망각한 처신을 하고 있어 언론계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시의에 적절한 옥고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저도 지의에 적절하다고 말씀하시니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MBC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대통령에게 항의 ???
소름끼치고 공포스럽네요.^^^
예,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ㅠㅠㅠ
그 기자는 데모대 앞에서 마이크 잡는 좌파기자 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인권 존중 시대라고 해도 일국의 대통령에게 대드는 간 큰 짓을 한다는 것은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장면입니다. 게다가 슬리퍼 차림이라니! 예의나 양심도 마비된 저급한 인물이네요.
아, 한국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신가 봅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바람에 대통령의 도어스텝핑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가 MBC 기자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교회에서 목사들이 솔선해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회피합니다. 그 이유는 유행에 맞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경배찬양이라는 이상한 순서가 하나 생겼는데 그 경배찬양에 쓰이는 복음 성가란 게 좋은 것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마치 가짜 방언처럼 아무렇게나 지어낸 완전 쓰레기 같은 것들이나 아니면 친송가의 곡조를 바꾼 것들이란 것인데 그것에대해 전혀 비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그랬다가는 "현대음악을 이해 못하는 구시대적인 인간"으로 매도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 아들에게 물었더니 "저건 찬송은 커녕 노래도 아니다" 였습니다. 하지만 어거지를 부리며 덤벼드는데 어찌 할 수 없이 방관을 할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전체가 병들어 가고 있고 그것도 불치의 병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슬리퍼 이야기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사안 아닌가 합니다. 정 동문님의 생각은 옳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중요하지 꼭 구두를 신었다고 예의 바르다고 할 수 있냐?"고 대드는 위선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니 정동문님의 진정어린 충고가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성별도 본인이 결정하는 세상이니 뭐라고 할말이 있겠습니까?
예전에 현대음악 공연회에 갔다가 낭패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제 소감을 묻는 미국인 친구에게 시끄러웠다고 말하자, 자기는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겁니다. 제가 의아해 도대체 무엇이 아름답느냐고 묻자, 그 친구는 'something different' 라고 대꾸하였지요. 그래서 제가 반사적으로 뭔가 다르면 아름답냐고 반박하듯 물었던 적이 있지요. ㅎ ㅎ ㅎ
@장성숙 그냥 척 하는 것이지요.
지금 세상은 좌파들이 점령해 가고 있고 그들이 내 세우는 사상적인 무기는 무례하고 무식한 짓을 하는 것을 무슨 순수하고 떼묻지 않은 순진한 행동으로 포장하고 선동하는 "반 지성 주의"인데 이것은 대단히 전염력이 강하고 낫기 어려운 "벌거벗은 임금님 병"이라는 병균으로 무장이 된 아주 나쁜 사상입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 이런 양아치, 똥치수준의 개돼지들이 깨인 시민을 자처하고 나타나 벼라별 지저분한 추태를 다 부리면서 무슨 멋있는 짓이라도 하는 양 징그러움을 떨고들 있고 이것에 동조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으로 취급을 당하니까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벌거벗은 임금님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체면문화가 아얘 유전자 속에 각인이 되어있어 이것에 유난히 취약합니다. 그래서 나타난 폐해가 바로 민주화 바람으로서 그 후과로 광주사태,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고, 박근혜 대통령 사기탄핵에 이어 최근의 이태원 참사등을 맞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사건 사고는 끝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반 지성 주의" 라는 사회파괴적인 사상의 영향은 세계적으로 이미 통제를 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났고 그래서 세상은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보입니다.
반지성주의가 판을 친다는 말에 동감입니다. 거칠고 소란스러워 정말 곤란하다고 여깁니다.
좌경사상이 만연하는 것은 말세지말의 현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사탄이 만든 작품이니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닌가 합니다. 짝퉁 찬송가를 부르는 신자들은 이미 점유된 것이죠. ㅠㅠ
자본주의가 극으로 치달아가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니까 그것도 탈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정말 곤란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