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어린아이라고 모두 순하고 착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때부터인가 부모의 말에 대꾸한다든가 지시에 거부하는 의사를 나타냅니다. 하기야 젖먹이 때부터 말은 하지 못해도 거부 의사는 표현합니다. 아이라고 싫고 좋고를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려서는 부모의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알 것입니다. 대체로 시키는 일에는 고분고분 따릅니다. 모르니까 계속 알아가야 하는 단계이기에 따라가는 것이지요. 조금씩 알아가며 시야가 넓어지고 지각이 생기고 자신의 지식도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자기 생각도 나오고 의견도 표합니다. 조금씩 달라짐을 알게 됩니다.
수 년 동안 가정에서 자라다가 학교라는 새로운 사회 공동체로 들어갑니다. 부모와 다르게 새로운 지도자가 생깁니다. 부모와는 또 다른 권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함께 생활합니다. 혼자만이 자기 생각대로 사는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서 지내야 합니다.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생각들이 많아지고 의견들이 다양해집니다. 지식을 배워감에는 공통의 요소가 있어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데는 서로 다른 길들이 많습니다. 이제 서로 다른 것을 알고 인정하고 조정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 다소 거친 아이가 껴있다면 아무래도 힘들어집니다.
어리다 해도 좋고 싫은 감정을 가집니다. 그것 또한 서로 다릅니다. 내가 좋다고 다른 아이들도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아이들 속에도 못된 버릇을 가진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내에서 자그마한 도난사고가 발생하면 작은 일이지만 지혜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당사자를 찾아내서 벌을 주기보다는 훈계를 통하여 바른 길로 나가게 해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를 수 있고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학교는 벌주는 곳이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언어가 어떤 영향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고 그것을 도덕적인 지식으로 갖추게 해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많은 학교나 학급에도 다문화 환경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 인종과 서로 다른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런 문화 차이도 이해해야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맡은 학생들의 개인 환경도 가능한 대로 알아두어야 합니다. 학생의 언행이 뭔가 다르다면 이해해야 하고 학생들 서로에게 이해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종으로 지역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로 인하여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하면 해결하기 매우 까다롭게 됩니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조심하고 예방하는 것이 낫습니다.
확실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일대일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억측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사자는 개인적인 모욕을 받은 것으로 거칠게 반항했습니다. 문제는 교장선생님이 처음 제기한 ‘카를라’ 선생님의 생각에 동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릅니다. 그리고 추궁하지요. 완강히 부인하자 학교 사무실 근무를 정지시킵니다. 그 아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카를르 선생님 반에 있습니다. 자연히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게 됩니다.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아들도 부인합니다. 선생님과의 사이가 갑자기 서먹해지고 불편해집니다. 한 반의 아이들까지 알게 됩니다.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더구나 교무실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납니다. 누가 선생님들의 언행을 감시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것입니다. 사건이 이상한 데로까지 번져가는 것입니다. 카를르 선생님은 아이에게 최대한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방어하려 해도 이야기는 겉잡기 힘들게 돌아갑니다. 학부모회에서도 문제로 드러나고 교사들 속에서조차 서로 감시하느냐고 말들을 하고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갑니다. 당황스럽고 도망가고 싶을 지경입니다. 학교를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답니다. 가뜩이나 교사가 부족한 상황에 대체 인력도 없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학교는 시끄러워집니다. 게다가 학교신문에까지 기사화됩니다.
학교 내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든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방어합니다. 대외 이미지 때문입니다. 학교의 명예이고 학생들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지켜야지요. 한편으로는 깨끗하고 정직한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흔히 정의를 지키려다 애정을 다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의롭고 깨끗함에서보다는 사람들 속에 연결된 공동체 의식으로 다져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정한 일을 덮으려는 것도 잘못이지요. 균형을 이루기 힘들지만 그래서 지도자의 지혜로운 대처능력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 ‘티처스 라운지’(Teacher's Lounge)를 보았습니다. 독일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