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제 정착단계에 접어들어 별 어려운게 없지만(짜증나는 건 있어도..)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 약 2주간은 참 힘들었따. 물론 힘들다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므로 내게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복에 겨운 놀음일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여간...
학교 기숙사에 배정이 안돼서 부득이 학교 밖에 집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estate agent라고 씌여진 곳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bank account가 없으면 안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학생은 취급안한단다. 그래서 은행계좌를 우선 열어야 했기에 은행에 가서 열어달라고 하니까 또 명확한 거주지가 없으면 안해준단다. 아니 장난하나!! 부동산에선 은행계좌를 열어야 해준다고 하고, 은행은 또 집을 구해와야 한다니..뭐하자는 건지 정말 황당했다.
닷새를 돌아다닌 끝에 가장 허름한 부동산에를 들어갔는데 일단 내가 현찰을 좀 많이 가지고 다니는 걸 보고 복비 몇푼을 챙길 요량으로 집을 구해준다고 큰 인심을 쓰는 척 했다. 단 1달 내에 은행계좌를 여는 조건으로. 어쨌든 이렇게 해서 집을 구해 들어왔다. 가격에 비해 집이 좀 맘에 안들긴 했지만 당장 내게 집을 구해준다는 부동산은 이 곳 한군데 였으므로 여기 아니면 길바닥에서 하루에 수십파운드씩 뿌려야 하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계약을 해서 입주했다.
계약하는 날 주인과 함께 집 이곳저곳을 같이 보면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변기뚜껑(보통 남자들이 소변볼 때 들어 올리는..)이 덜렁덜렁 하길래 이것좀 고쳐 달라고 하니까 쥔 아줌마 하는 말 " 우리 남편도 집에서 한 손으로 들고 소변 봐요" 흐억~ 집주인이 할이야기인가?
그외 손 볼 곳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고쳐 달라니까 계약하기 싫으면 관두란다. 으이 씨!! 당장 길거리에서 학교를 다닐 수도 없는 터라 계약을 하긴 했는데 어쨋든 영국인에 대한 첫인상이 확실히 구겨지는 영국생활 첫주였다.
이제 집을 구했으니 은행계좌를 열어야 했다. 우리나라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곳은 은행계좌가 없는 인간은 거의 부랑자 취급을 하는 거 같았다. 뭘 하든지 bank account를 들먹이니 말이다. 처음에 거주지가 명확하면 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계약서 사본을 들고 은행을 갔다. 근데 이번에는 계약서를 못믿겠단다. 사설 부동산과의 계약은 믿을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이 집주소에 사는 놈인지 불분명하다는 거다. 아니 영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정당하게 영업하는 부동산과의 계약을 못믿는다니!! 은행에선 내 이름으로 된 각종 bill(공과금 고지서)을 가져와야 내가 그 집에 산다는 걸 믿어준단다. 쓰벌룸들 속고만 살았나!! 근데 알아보니까 여기는 bill이 세달에 한번 나온다네..허허..세달에 한번이라..결국 수도회사에 전화걸어 돈을 미리 낼 테니 고지서좀 미리 보내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쇼를 했다.
며칠 뒤에 interim bill이 왔길래 재깍 우체국가서 납부하고 영수증가지고 은행을 갔다. 이번엔 당근 해주겠지 하면서..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해준단다. 어떤 놈하고 구석에 가서 각종 서식을 작성하고 별의별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다 하고 나니까 열흘 뒤에 account가 나온단다. 휴~ 열흘뒤면 이제 나도 은행계좌가 열린다네..이건 아주 큰 벼슬이라네~ 하며 기분좋게 열흘을 기둘렸는데............
열흘 뒤에 가니까 내 서류가 누락되었단다..허걱!!
또 다시 똑같은 개지랄을 하고나니 이젠 일주일 뒤에 오란다(미안해서 3일 깍아줬나?). 일주일의 부랑자 생활이 끝난 뒤 은행 가니까 그 쓰벌로무 시키들 입에 달고 있는 말 "I'm so sorry. you must come tomorrow"아예 다른 말은 필요없었다. 내가 화가나서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계속 따졌는데 내가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계속 "You must come tomorrow"만 반복했다. 요노무 "You must come tomorrow"는 나흘이나 반복됐고 난 갈수록 anti-Britain이 되어가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계좌는 오픈 됐는데 그 동안 내가 느낀 건 이 친구들이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았다. 내 서류가 누락되었다고 한 말과 달리 그 다음번에 가니까 내 서류는 서랍안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말로 빙빙 둘러대며 어떻게든 해주지 않으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또 영국인들의 거짓말과 관련해서..처음 집 구할 때 갔던 부동산의 경우 계약서를 달라고 하니까 legal advisor에게 자문을 구해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double check을 해야 한다고 3주 뒤에 준다고 했다. 글쎄..내가 영국 사정을 몰라서 그런건지..double check하는데 3주씩이나???
내가 힘있나..기다리라니까 기다려야지. 근데 3주뒤에 가니까 또 1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네..또 알아봐야 할 게 있다면서..결국 계약서를 부동산에서 받지 못하고 집주인으로부터 받았다.
또 은행계좌를 오픈하기 위해 bill이 필요했기에 수도회사, 전기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아니 그 곳에서는 우리가 입주한 사실마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부동산에서 통보해주기로 했는데...
부동산에 전화해서 따지니까 자기들은 편지로 보냈기 때문에 가는데 보름이 걸린다나? 그래서 아직 우리가 새로운 입주자라는 걸 모를 거라나?? Royal Mail로 보내면 이틀이면 들어가는 걸 아는데 빤한 거짓말을!!
하여간 은행, 부동산, 집주인..내가 영국에와서 처음 접한 영국인들은 좋게 말하면 외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위선덩어리요 거짓말장이인 거 같다.
처음부터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 우리 규정은 이러이러한데 당신은 이런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된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해줄 거 같이 말하면서 결국에는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안해주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는 거 같다.
내가 초창기에 경험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영국인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건 위험하지만 내가 처음 부딪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에 대한 감정과 나의 평가가 그 이후에 만나는 영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