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편의 주말 드라마 '무자식상팔자'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지난 주 시청률이 11%로 지상파 방송 드라마를 추월하고 있다.
종편은 케이블로만 볼 수 있는 방송이니 대단한 수치이다.
집 사람이 하두 재미있게 보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주말이 기다려진다.
이 방송은 많은 부부와 커플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큰 아들 유동근과
큰 며느리 김해숙이라 할 수 있다.
나는 7남매의 장남으로 아내는 나와 결혼해서 40년 간 집안 일에 파묻혀 살아온
반세기를, 자나 깨나 부엌에서 일만하는 김해숙을 통하여 반추해 볼 것이고,
나는 나이가 먹으며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을 은퇴한 후 돈과 권력을 잃은 유동근의
처지에서 대리위안을 얻으며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이리라.
국민 작가 김수현은 '언어의 마술사' 답게 화려하고 기교에 찬 대사로 시청자를 사로 잡는다.
수준 이하로 떨어진 요즈음의 막장드라마의 단골 장면인 복수, 불륜, 출생 비밀,
역전에 대역전을 하는 스토리는 없다.
그러나 시대적 모순 투성이이고 과거와 현재의 혼존(混存)이다.
몇 가지 꺼집어 낸다면, 요즘 세상에 이순재같은 독재적이고 가부장적 가장이 어디에 있는가?
이제는 3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정도 없겠지만 이런 대식구를 통솔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가장의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이 카리스마는 돈에서 나온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순재는 필요할 때 유효적절하게
돈을 베풀어 위신을 유지한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가위 제왕으로 모두들 설설 긴다.
그리고 부잣집 딸로 가난한 이순재에게 시집 온 80 넘은 서우림은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며
살아 오다가 사소한 일로 느닷없이 황혼이혼을 하려고 한다. 황혼이혼이 21년 사이에 5배나
늘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황혼이혼도 소재로 집어 넣는다.
과거와 현대가 넘나 들고 있다.
60넘은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쩔쩔 매고 아내에게도 설설 기는 것은 오늘 날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미혼모, 독신주의, 연상의 여인 사귀기 등 21세기에 들어와 생성되어
활성화되고 있는 온갖 사회현상이 백화점 처럼 나열되어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이 장면에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대목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인생 100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느 노인 전문의사에 의하면 현재 50세 이상의 사람은
100세까지 살 확률이 50%라고 한다. 은퇴 후 30~4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어느 사람에게는 축복이고 어느 사람에게는 재앙이다.
여자들은 친구와 모임이 많다. 동창들하고 어울리는 것은 기본이고 성당이나 교회 모임,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기, 문화센터에서 하는 요가, 스포츠 댄스, 노래교실 등등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친구가 많고 식당 등 어딜가나 가히 여인천국이다.
이에 반하여 남자들은 동창이나 직장 OB들과만 만난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과거의 직업이나 지위에 억매어 위신때문에 아무하고나 어울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기원과 등산 등에서나 어울리고 그마져도 여의치 못한 노인들은
파고다 공원이나 종묘 앞에 모인다.
이래서 남자를 희화화하는 얘기가 있다. 유모어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심각하다.
1. 매일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거실남'
2. 온종일 잠옷 차림에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나
엿듣는 '파자마 맨'
3. 어딜 가나 따라오는 '젖은 가랑 잎' 또는 '정년 미아'
4. 하루세끼 밥 차려 줘야하는 '三食이'
5. 하루 종일 TV만 보는 'TV 맨'
시골에서는 그런대로 남편만이 해야하는 일거리가 있어서 노인일 망정
남편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대도시의 아파트 생활은 남편의 역할범위를 제거해 버린 공간이다.
남자들이 남자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보여줘야 할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 생활은 그렇지가 못하다.
예를들면 벽에 못을 밖는다거나, 집수리를 한다거나,
마당 청소를 한다거나, 뭐 이런 남자들이 꼭 해야만하는
일들이 있어서 남편의 능력을 보여줘야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와 일의 균형이 맞춰가는데
그게 안되기 때문에 아내는 늘 밑지는 기분이고
불만이 노출되는 것이다.
여기서 남편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부인이 청소도 시키고, 세탁기도 돌리게 하고,
장보기 심부름도 시키고, 요리도 시키고
이런저런 일들을 가르처 주는게 옳지
구박을 준다거나 왕따를 시키는 것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부부생활 시작부터 같이
일처리를 해 가고 내 일, 네 일이 없다.
은퇴후에 집안에서 남편이 빈둥댄다는 말은 부인도
빈둥댄다는 말이 된다.
두번째는 어딜가나 따라오는 '젖은 가랑 잎'인데 한국에서는 남자는 남자들 끼리만 만나고, 여자는 여자들 끼리만 만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남편은 은퇴후에 더 이상 돈없이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어딘가 갔으면 하는데 갈 데가 없다. 여자는 여자들 끼리 만나 친구하다가 직업상, 체면상 여러가지로 얽혀있는 관계가 아닌지라 계속해서 만나는데 갑자기 심심하고 외로운 남편이 따라 나서겠다니 부담이 되는거다. 여자들 끼리만 만나야 하는데 남편이 끼겠다니 이게 웬 망신살인가. 하지만 남편이 남자들 끼리 만나는 걸 대폭 줄였으니 아내도 여자들 끼리 만나는 걸 줄여서 보조를 맞춰야 되지 않을까?이 역시 미국에서는 결혼 시작부터 부부가
남자친구, 여자친구 부부동반으로 만나 왔기 때문에
늙어서 같이 나가는게 따라나서는 게 아니다.
같이 가는 것이다.
'三食이'라는 말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어느 남자가 밥도 짓지 못하는 남자도 있던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밥이며 반찬, 이런 거는
누가 가르처 줘서 아는게 아니다.
특별한 요리가 아닌 다음에야 군대에 가면
너나없이 밥 다 잘지어 먹는다.
옛날에 등산가면 누구나 밥을 잘 끓여 먹었다.
세탁기 돌리는 것도 가르쳐 줘라? 이것도 말이 안된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것 저것 작동해 보면
터득 못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TV 켜는 거 안 가르처 준다고 TV 못 보는 사람 없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아내가 '보스'다.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아내가 결정해야 성사된다.
직장일이야 남편이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집안일은 아내가 결정한다.
아내가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길고
집안일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친구따로, 아내따로 존재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다다.
아내가 없으면 남편은 심심하고 외로워서 살 수
없듯이,남편이 없으면 아내는 심심하고
외로워서 살 수 없다.
한국에서 결혼해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남편과
늘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친구들과 술마시고 놀다가
밤 늦게 집에 들어 오곤 했었는데 미국에서는
남편이 갈 곳이 없어서 부인과 붙어만 지내기 때문에
살 것 같다고 한다.
어딜가나 부부가 붙어 다닌다.
나이가 들었을 망정 신혼부부 같다고들 한다.
미국인들이나 한국인 교포들은
늙은 남편을 부담스러워 하기 커녕은
먼저 떠나갈까봐 두려워 한다.
배우자를 잃는 게 가장 큰 충격이고,
가장 큰 스트레스이며 우울증에 걸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가 없는 사람보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복중의 복은 인연복이라고 한다.
인연복 중에도 잘 어울리는 인연복 말이다.
서로 인연이 닿아 만난 부부인데 서로 돕고,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니고 살아가는 거다.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다. 그렇게 자부해야한다.
꿈의 시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