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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라져가는 세상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6-05-04
친구라는 말은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벗이라고 할 때는 ‘벗 우(友)’나 ‘벗 붕(朋)’ 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논어』 같은 고경에는 ‘우’나 ‘붕’을 사용하고 두 글자를 합해서 ‘붕우(朋友)’를 벗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맹자』의 오륜(五倫)에도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벗 사이의 윤리를 오륜의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로 보면 벗 사이의 윤리가 그렇게 큰 무게를 지닌 인간의 윤리인가라고 의심할 정도로 붕우 간의 의리는 너무나 희박해진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자(朱子)는 ‘붕(朋)’을 ‘동류(同類)’라고 설명했지만, 다산은 ‘동도자(同道者)’, 즉 도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보충해서 설명했습니다.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논어』 첫 장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인데, 자기가 호걸의 인물임을 알아보고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현철(賢哲)의 인물일 것이기 때문에 친구를 맞는 본인으로서는 무척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다산의 해석으로 보면 벗이란 도(道)를 함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벗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도(道)를 알고 도를 얻은 인간이라야 벗으로 사귀고 함께 지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이라고 말하여 글을 논하면서 벗이 모이고 벗들끼리 상호 간에 인(仁)을 행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고 하여, 참다운 우도(友道)가 이룩되기 위해서는 도를 알고 학문이 익혀진 군자(君子)들 사이에서라야 우도를 논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문(文)으로 벗들이 모인다고 했을 때, 군자들이 학문을 논하면서 모인 벗들이 참다운 벗들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학문이 천대받는 세상에서는 우도를 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의미 깊은 내용입니다. “강학으로 벗들이 모이면 도가 더욱 밝혀지고, 벗의 착함을 취해서 인을 돕는다면 덕이 날로 진전된다”라는 내용으로 보면, 벗을 통해 도를 더욱 밝히고 벗과 함께 덕을 더욱 진전시키는 이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산의 해석은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풀이하여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문(文)이란 시서예악(詩書禮樂)을 말하고 인(仁)이란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이른다. 문이 아니고는 벗들이 모이지 못하고 벗들이 모였다면 인에 도움을 받아야 하니 글을 논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인에 도움을 받자함이 주된 목적이다”라는 해석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서예악의 글만 논하자고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해야 할 기본 도리인 효제충신의 실행을 위해서 벗의 모임은 의미가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끼리 우애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벗들끼리 신의를 지키는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 그런 것이 멀어진 오늘의 세상, 어떻게 우도를 논할 의미가 있는가요. 정치는 권력 다툼만 일삼고, 사람들은 재산 다툼만 일삼는 오늘, 벗도 사라지고 우도도 자취를 감추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해야 효제충신의 인간의 기본적 도리를 회복하여 벗들을 만나면 즐거움과 기쁨에 흠뻑 젖는 세상으로 돌아갈까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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