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이다. 후두둑 떨어지는 도토리에 정수리를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이순이후는 앞을 잘 보고 걸아야 하는 이유를 두 번의 사고로 익혔다. 한 번은 징검다리에서 꼬끄라졌다. 또 한 번은 서귀포에서 해 그름에 계단을 헛디뎌서 엎어지는 바람에 보름간이나 입원하는 사태까지 겪었다. 등원하는 아이가 줄어들자 급기야 문을 닫은 동네 유치원운동장은 이제 주민들의 맨발걷기 놀이터가 되었다. 많게는 하루 세 번 적게는 하루 두 번 이용한다.
삼년 전에는 마알간 대낮 그리 늙지도 않고, 상큼발랄한 아름다운 나이도 아닌 내가 맨발로 걷기가 민망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긴 바지를 입고 걸었다. 사는 게 바빠 못 걸으면 온몸에 좀이 쑤셨다. 그야말로 육탁을 치며 살아낸 20여개월동안 ‘체험 삶의 현장’을 다녀온 기분이다. 걷고 나면 반드시 찬물로 먼저 씻고 더운물과 소금물로 헹구어 낸다. 찬물 세족은 근육보호를 위함이요. 소금물은 무좀이나 기타 피부병 방패용이다. 중간 중간 돌이나 나무뿌리를 천천히 밟아 발의 움푹패인 곳도 골고루 건드려 준다. 이젠 방송의 영향력인지 걷는 이가 너무 많아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
절대자께서 후하게 줘 봤지만 만족을 모르는 나에게 호된 매를 때리셨다. 처음에는 아프다고 나만 왜 때리느냐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앙탈을 부렸었다. 그러나 24시간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현장에서 스스로 깨치는 기회를 주셨다. 열심히 살지 않은 인생은 없었다. 억울하지 않는 인생도 별반 없었다. 나름 착했고 나름 고생을 한 인생들이었다.암환자 임종을 지켰으며 목으로 관을 뚫어서 셕션과 피딩(콧줄식사)를 하며 갖은 선을 연결해서 실시간 바이탈 체크를 해야 하는 중환자도 케어 했었다. 진종일 ‘도쿄여 안녕히!’를 부르는 92세 전 약사 치매할머니 케어도 했고, 아직도 전화로 주식을 매매하는 95세 노인도 잠깐이지만 돌봤었다. 누구의 삶이 더 고달프고 더 호사스러웠다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민낯의 현장에서 나는 자신을 찬찬히 돌아봤다. 행복은 내 집에서 내 가족과 내가 만든 음식으로 식사하는 것. 내 침대에서 자는 것. 하루 한 번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등의 사소한 일인 걸 돌아 돌아서 알게 되다니.
대부분의 삶이 도토리 키 재기였다. 20개월 동안 35명의 환자를 케어했다. 가족 만류로 쉬고 있지만 그동안 익히고 깨친 게 아까워서 다시 일을 할 것이다. 손짓으로 내 귀를 부르곤 ‘진짜 죽고 싶다. 왜 이렇게 죽는 것도 어렵노?’하시는 분에게 이젠 당당하게 말해 드릴 수 있다.‘모두 도토리 키재기예요. 그 큰일은 높은 곳에 계시는 그분만이 할 수 있답니다. 우리는 매순간 즐거이 살아줘야 할 의무에 충실하면 되어요! 가고 오는 건 시간 차이일 뿐 종착역은 같답니다!’
크기가 각각 다른 도토리 세개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오늘도 걷는다.
첫댓글 숙온 선생님 홧팅! 입니다.
가슴 따뜻해 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도토리 키재기 삶을 위해서요.
오늘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늘 활기왕성의 심볼 임 선생님
댓글 감사드려요.요즘 우리까페 새 글이
덜 올라와서 오지랖 펼쳤습니다.
세상은 저 아니라도 잘 돌아가니
어설픈 오지랖 접자 해 놓고
이젠 생긴대로 맘 가는대로
살자로 굳혔습니다.
무지해서 용감하지요?
언제 한 번 길안천 같이 가입시더.지금
그 길안천 끼고 농막 지어놓고 부르는 친구네 잔치 왔답니다.송사에 터잡은 친구는 여럿이고요.저의 비킷리스트 중 하나는 꼭 길안에서 한 번 더 살아보는 거랍니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메스컴에 나오고부터 고산골에도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는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드네요.
건강유지 잘 하시고 예전처럼 밝은 모습 자주 뵐 수 있기를 .
네,조 신생님 다시 웃고 떠듭니다.제 친구들이 제가 가만 있으면 아픈거랍디다.ㅎ
늘 새벽등산 하시니 건강하신가
봅니다.일일이 댓글 다 못 달지만
조 선생님 글 다 읽고 있습니다.퐈이팅입니다.
와우, 대단하셔요 환자들 돌보는 일 엄청 어려운데 ~
맨발걷기 건강에 좋다하니 저도 해보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홧팅
해 보셔요 맨발걷기.몸이 웃지요.
간병은 힘들지만 배운 걸 써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요.눈꼽만큼이지만
보람도 있답니다.
숙온선생님 글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착하시고 곧은 성품으로 짐작했었는데 역시 그렇군요. 하기야 글쓰기 하는 분들이 다 착하지요. 소리내어 싸우지 못해서 글쓰기로 대들어 보고 꼬집는거지요.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마음 아닙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안착한이가 착한 척
하는겁니다.
곱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