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피낭10 - 호텔 팜스(궁전) 를 나와 걸어서 마요르카 왕궁을 구경하다!
2026년 5월 14일 프랑스 페르피낭시에서 걸어서 페르피낭 대성당을 보고는 호텔 팜스
와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가 되돌아와서는....... 구시가지 Vieille Ville
입구 카스티예문 (페랄저택) (Castillet) 에 도착해 전망대와 민속 박물관을 구경합니다.
페르피낭 시내 유적지들은 한결 같이 11시(6월 1일 부터는 10시 30분) 에 문을 여는지라
다시 구시가지 골목길을 걸어서 궁전이라고 불리는 Hotel Pams 을 찾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구글 지도를 보고 A4 용지 종이에 볼펜으로 직접 그려온 수제 지도와 또 휴대폰에 구글 맵
지도를 켜서는 들고 마요르카 왕궁을 찾아가는데......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한참 남쪽으로 걸어서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으로 택해서 걷는데 10여분 이상을
걸어도 성벽은 보이지만 왕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좀체 나타날줄 모릅니다.
조금 전에 저 3거리에서 차라리 우회전을 해서 가는게 더 빠를뻔 했는데.... 가다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누구 하나 들어가는 입구를 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래토록 걸어 왔기에 다시 되돌아 갈수는 없고... 성벽 아래는 공원이지만 오른쪽에 거대한 성벽을 따라
한참 욌으니 이 성벽을 계속 따라 간다면 언젠가는 정문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걷습니다.
정말 오래토록 걸어서 성벽을 240도 정도는 돌아서 정문에 도착해서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높은 언덕에 성을 짓고는 왕궁으로 썼나 봅니다?
드디어 마조르크 (마요르크) 왕궁으로 들어서서는 9유로를 내고 들어가서는 유적들을 보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여긴 이슬람 흔적은 없고 그냥 유럽식 성채인가 합니다.
마요르카 왕궁 Palais des Rois de Majorque 은 복잡한 별 모양 2개를 합친듯한 요새 중앙에 있는
마조르크왕의 거소로 마요르카 왕국이 건국된 1276년 건축이 시작되어 1309년 완공됐다고 합니다.
1309년 부터 마요르카 왕국의 궁전이었으며, 2층에 있는 생트 크루아 예배당 Chapelle
Ste Croix 은 입구에 분홍색과 흰색 대리석으로 된 가로줄 무늬 벽이 볼만합니다.
왕궁의 옥상 테라스에서 맑은 날에는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고 하며.... 무료로 진행되는 3일간의 기타 음악
축제인 기타 오 팔레 (Guitaires au Palais) 는 8월 마지막 주말에 궁전과 정원에서 개최된다고 합니다.
페르피낭은 카탈루냐어권인데도 프랑스 영토로 원래 루시용 백작이 다스리던 도시였으나, 1172년 후손이 없던
지라르 2세 백작은 자신의 땅을 바르셀로나 백작에게 물려줌으로서 페르피냥은 카탈루냐에 속하게 됩니다.
1276년 아라곤의 국왕이자 바르셀로나 백작이었던 정복왕 하메스 (차이메) 1세가
"마요르카 왕국" 을 건국했을 때, 페르피냥은 새로운 국가 (페르피낭 + 바르셀로나
+ 마요르카섬)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수십년은 이 도시의 역사적 황금기로 여겨집니다.
스페인을 지배하던 서로마가 게르만족들에게 망한후 이 땅은 게르만족 서고트왕국이 건국되었는데 그후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가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를
지배했으며 이후 후 우마이야 왕조가 섰고 피레네산맥으로 달아난 기독교도들이 몇개 소왕국을 세웁니다.
하지만 저 후 우마이야 왕조가 분열되어 수십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분열되니 피레네산맥의
기독교도들이 레콩키스타 라는 국토 회복운동에 나서는데 722년 부터 서북쪽에
카스티야와 동북쪽에 아라곤이 두각을 나타내 사라고사와 바르셀로나를 손에 넣습니다.
이 아라곤 연합 왕국의 수도는 알안달루스의 이슬람 소왕국을 몰아내고 차지한 사라고사인데... 영토는
아라곤 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발렌시아 왕국, 마요르카 왕국, 시칠리아 왕국, 몰타, 나폴리
왕국, 사르데냐 왕국을 포함하게 되며 몽펠리에, 프로방스, 코르시카 및 아테네 공국을 잠시 지배합니다.
반면에 마요르카 왕국 (카탈루냐어 : Regne de Mallorca, 스페인어 : Reino de Mallorca; 프랑스어:
Royaume de Majorque) 은 지중해의 섬 발레아레스제도를 포함하는 스페인 동부 해안의 왕국입니다.
마요르카 왕국은 본토에 발레아레스 제도를 포함했으니 마요르카, 메노르카, 이비자, 포르멘테라인데
국왕은 또한 루시용과 세르다냐의 본토 백작령과 야고보 1세가 유지한 오시타니아의 영토인
몽펠리에의 영주, 오베르뉴의 칼라트 자작령, 몽펠리에와 인접한 오멜라스의 남작령의 영주였습니다.
아라곤왕 겸 마요르카왕 차이메 1세(하우메 1세) 의 업적은 두 강국인 프랑스의 카페 왕조와 아라곤 왕국
사이에 있었던 당시에 잦은 분쟁 지역인 이곳을 포함한 지중해의 전략적 고립 영토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요르카 왕국의 허약함을 인지한 하이메 1세는 새로운 왕국을 통합시키기 위해 사르다냐
정복에 착수했으며, 그는 또한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의 딸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아들 하이메를 혼인시키려 협상했는데..... 두 계획 어느 것도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차이메 (하이메) 1세가 사망하고 나서, 새로운 마요르카의 왕인 하우메 2세는 아라곤왕 페로
3세에게 공물을 받치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1279년까지 왕국내 여러 문제에
봉착할때 까지 마요르카의 군주는 그의 나라가 아라곤 군주의 신하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라곤왕 차이메 2세는 마요르카 왕위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1325년 펠립은 사르데냐
를 침공하면서 산스가 만든 엄청난 빚을 상환한후 아라곤 왕에 의한 마요르카 왕위 계승권
주장에서 벗어났지만 계승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마요르카 왕국은 급격한 경제 위기에 빠집니다.
1343년 5월, 아라곤왕 페로 4세는 마요르카등 발레아레스 제도를 공격했고 1344년에는
루시용과 세르다냐 백작령들을 공격했으니..... 이후
하우메 3세는 마요르카섬 등을 뺏기고는 프랑스 지역의 영토만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1349년에 이 영토들을 프랑스의 국왕에게 매각하고, 하우메 3세는 마요르카로 떠났으며 1349년
10월 25일 류크마조르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으니, 그리하여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연합왕국에 합병되어 페로 4세는 마요르카의 페란 1세로 불리게 됩니다.
프랑스 연합왕국 (몽펠리에를 통해) 과 아라곤과 종속 관계를 맺고 있던 마요르카 왕국은
분쟁 기간 동안 중립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그러다가 중립 기간
동안 왕국의 경제에 자금을 대기 위해 늘어난 세금은 왕국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 전인 1344년에 아라곤의 페드로 (페로) 4세가 마요르카 왕국을 합병했고.....
마요르카 왕국에 속했던 페르피냥은 다시 카탈루냐 공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구 절반이 사망하는등 페르피냥이 혼란에 빠지자, 이 틈을 노리고 프랑스가 페르피냥
을 공격해 점령하였지만 그러나 1493년, 이탈리아를 침략할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카스티야를 회유하고자 했던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페르피냥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반환합니다.
30년 전쟁 기간인 1642년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659년 피레네 조약에 따라 프랑스에 정식 할양되어
지금에 이르는데.... 이른바 북카탈루냐라 불리던 3,600㎢ 면적의 구 루시용 (Roussillon)
지방의 중심지로, 루시용 지방은 프랑스혁명 후에 피레네조리앙탈 데파르트망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마요르카 왕궁에서 그림들을 보다가 미술평론가 이은화씨가 동아일보 ‘이은화의
미술시간’ 칼럼에 쓴 “진실은 지금 어디에 ”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인이 우물에서 나오고 있다. 손에는 채찍을 들었다.
여자는 화가 난 건지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누구한테
화가 난 걸까. 무엇 때문에 우물에서 나오는 걸까. 대체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 인상적인 그림은 프랑스 화가 장레옹 제롬이 그린 ‘우물에서 나오는 진실’
(1896년·사진) 이다. ‘진실은 우물 속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격언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제롬은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의 대가로, 신화나 역사 속 장면을 매혹적으로 그려내 큰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은 고전주의 형식을 띠지만 내용은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을 담고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휘감았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논평으로 화가는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된 채 우물 깊숙이 감춰져 있다고 느꼈다.
국가 권력에 의해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드레퓌스 대위 사건에 화가 났을 테고 진실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 속 ‘진실’이 화가 난 표정인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진실은 왜 알몸으로 묘사됐을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하고 외면받기 쉽다. 반면
거짓은 번지르르한 옷과 말로 유혹한다. 우리가 거짓에 속기 쉬운 이유다. 제롬은 진실에게 채찍을 들게
했다. 진실이 사실을 드러내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무기이자 힘을 갖길 바랐을 테니까.
19세기 프랑스 그림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의 진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여전히 우물
속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오는 중인가. 감춰진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진실이 거짓을 완전히 제압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정의로운 세상에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조르크(마요르크) 왕궁을 나오면서 오늘 계획한 곳 중에 보지 못한 곳을 체크해 보는데..... 1540년에 완성된
증권거래소는 고딕양식으로 불꽃 형태의 아름다운 건물인데 1층은 햄버거 가게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레 알 드 보방 (Les Halles de Vauban) 은 2017년 11월에 개장한 실내 시장으로.
스페인의 타파스, 버거, 오믈렛, 그리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로나 Girona 로 가는 기차 시간이 애매한지라 선뜻 저 곳을 찾아가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는데, 이 근처에서 페르피낭역 (Gare de Perpignan,
Perpignan Rail Station ) 으로 가는 버스는 1, 4, 5, 6, 25, 26, BC 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뜻 버스 정류소가 보이지는 않는지라...... 어느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페르피낭역으로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는지라 휴대폰에 구글맵을 켭니다.
30분 가까이 걸어 페르피낭역에 도착하긴 했는데.... 좀 요상한 것이 풍경이 다른지라 다시 살펴보니 여긴
페르피낭역 서문인데 저 구글맵이 동문쪽으로 안내해 주었다면 더 가까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페르피낭역으로 들어가서는 지하로 내려가 여러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지하 통로를 끝까지
가서는 다시 역사 1층으로 올라가 다시 동문을 나와 고로 건너편에 우리 호텔 Hôtel
Aragon 에 들러 맡긴 배낭을 찾아 역으로 가서 지로나로 가는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