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기어와 길조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 마침 이야기에 오른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이르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공교롭게도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말에는 마력성이 있다는 의미를 그 밑바탕에 넌지시 깔고 있다. 말이 씨앗이 된다는 말도 있다. 이 역시 말이 어떤 일을 일으키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뜻을 은연중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말이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음성 기호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이상한 마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 땅에 생겨나면서부터 항상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생활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존방식을 찾아 왔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염원을 말로 표현한 것이 금기어(禁忌語)다.
한편 인간은 바깥의 세계와 항상 갈등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좀 더 행복하고 평안한 삶이 되기를 늘 기원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꿈을 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한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싶은 나머지, 주위의 대상 속의 어떤 일이 그 꿈을 실현시킬 길한 징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상황을 말로 지어 자기편에 갖다 붙였다. 이것이 바로 길조어(吉兆語)다. 그래서 금기어와 길조어는 단순한 말의 유희가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방식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우리의 금기어는 타부(taboo)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해서는 안 될 일, 다시 말하면 위험이 따를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말로 나타낸 것이 금기어(禁忌語)다. 그러므로 금기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유형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래서 금기어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많은 충고와 금지의 효과를 제공한다.
금기어는 그 속에 과학성을 품고 있는 것도 있다. 건강과 관련 있는 금기어의 몇 가지 예를 들면, ‘문 앞에서 귀를 후비지 말라’라든가 ‘밤에 손톱을 깎지 말라’, ‘생쌀을 먹으면 엄마가 죽는다’, ‘겨울에 길 가다가 양지쪽에 앉아 쉬면 죽는다’, ‘다듬잇돌을 베고 누누면 입이 비뚤어진다’와 같은 것들이다.
만약에 ‘문 앞에서 귀를 후비다가’ 이를 모르고 밖에서 갑자기 여닫이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오면, 안에서 귀를 후비고 있던 사람은 그 도구에 귀를 찔릴 위험성이 있다. 또 조명시설과 손톱 깎는 기구가 좋지 않았던 시절에 ‘밤에 손톱을 깎으면’ 손톱을 다칠 위험성이 매우 크다. 또 양식이 모자랐을 뿐만 아니라, 치아 관리도 어렵던 시절에, 어린 아이가 ‘여문 생쌀을 씹는’ 군것질은 부족한 먹거리를 낭비하고, 게다가 이를 상하게 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겨울에 길 가다가 양지쪽에 앉아 쉬면 죽는다’나 ‘다듬잇돌을 베고 누누면 입 비뚤어진다’는 사실 그대로다. 겨울에 양지쪽에 앉아 쉬면 몸이 노곤하여 자기도 모르게 졸기 쉬운데, 이렇게 졸면 실제로 동사하기 쉽다. 또 다듬잇돌은 차가워서 거기에 볼을 대고 오래 있으면 와사증이 오기 쉽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 나온다’, ‘아이 머리 위로 밥상을 넘기면 키가 안 큰다’ 등도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밤에 휘파람을 부는 것은 남에게 부정한 신호를 보낼 때 주로 사용되는 행위였으므로 이를 경계한 것이다. 아이의 머리 위로 밥상을 넘기는 행위는 그렇게 밥상을 옮기다가 잘못하여 상 위의 음식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뜨거운 음식 따위가 아이에게 떨어져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한 것이다.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금기어도 많다.
‘갓을 비뚤게 쓰면 상처한다’는 금기어는 남자들의 의관정제를 강조한 것이며, ‘해 진 뒤에 세수하면 남편 죽는다’는 말은 여자가 밤에 얼굴을 다듬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경계한 것이라 보인다. ‘남에게 주었다가 다시 뺏으면 궁둥이에 솔(종기) 난다’는 도로 빼앗으면 인간관계가 멀어지게 되므로 그런 행위를 삼가라는 뜻이다. ‘남에게 침 뱉으면 버짐난다’, ‘누워서 공부하면 공부가 발끝으로 새어 나간다’, ‘누운 사람을 넘어 다니면 그 사람의 키가 안 큰다’, ‘어린 아이가 담배 피우면 뼈 녹는다’ 등도 다 그런 범주에 속한다.
또 실제의 상황과 유사하거나 연상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도 있는데, ‘신랑 될 사람이 닭 날개를 먹으면 달아난다’거나 ‘신랑에게 구두를 선물하면 헤어진다’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대부분의 금기어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과학성이 떨어지거나, 미신적인 요소가 많다. 그런데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래는 하나의 삶의 방식에서 나온 필수적이고 생동하는 법칙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본래의 기능이 사라졌을 뿐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 기능은 비록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특정 사회의 저변에 살아 숨 쉬는,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기어는, 금하거나 꺼리는 내용이 문장(Sentence)으로 표현되어 구전되어 온 말이다. 그래서 금기어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즉 꺼리는 것과 금해야 할 것을 담은 내용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유형 : 아침에 여자를 보면 재수 없다.
둘째 유형 :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
첫째 유형은 어떤 상황이 꺼려지는 내용이므로, 그래서 그런 경우가 생기면 행동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이 그 속에 들어 있다. 현재의 눈으로 보면, 남존여비 사상이 배어 있는 표현이지만, 당시 사회의 관념으로는 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 없이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런 상황은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에 더욱 강하게 기능하였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출근할 때 길에서 여자를 만나면, 그날은 출근하지 않고 그 여인의 집까지 따라가 심한 욕설을 퍼붓는 사례를 직접 본 일이 있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여자는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심부름을 가거나 그 외 용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둘째 유형은 어떤 상황에 접근하지 말라는 금지의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거나 부엌일에 참견하는 행동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도 겉으로 보면 남존여비에 지나지 않을 것 같지만, 전통사회에서 남녀 간의 엄격한 업무 분담을 함으로써 가정의 화평을 가져 오겠다는 의미가 그 밑에 깔려 있다.
그러면 우리의 금기어를 찾아보자..
• 아이를 안을 때는 무겁다고 하지 않는다.
• 앉아서 다리를 흔들면 복 나간다.
• 제사가 든 날은 초상집에 가지 않는다.
•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 나온다
• 어린애가 말을 배울 때 아버지를 먼저 부르면 안 좋다.
• 업구렁이를 잡으면 집안이 망한다.
• 까마귀나 여우가 울면 사람 죽는다
• 문지방을 베고 자면 입이 삐뚤어진다.
• 꿈에 음식을 먹으면 감기 걸린다.
• 꿈에 이가 빠지면 부모가 죽는다.
• 눈 밑에 사마귀는 눈물 받아먹고 산다.
• 발이 크면 도둑놈 된다.
• 꿈에 소를 보면 근심이 생긴다.
• 바가지로 물 먹으면 수염 안 난다.
• 귀문이 넓으면 복이 샌다.
• 둘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길면 아버지가 먼저 죽는다.
• 두 손을 목에 베고 자면 어머니가 죽는다
• 등잔 앞에서 불장난 하면 밤에 오줌 싼다.
• 그 해에 흰나비를 처음 보면 상제 된다.
길조어(吉兆語)는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의 원초적 기원이 담긴 말이다. 길조어는 많은 부와 명예 나아가 장수의 염원 등 삶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사람은 항상 생활이 평안하고, 복이 오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길조어는 그 제재가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 물, 불, 등 인간의 삶과 관련된 전반적 사물에 걸쳐 있다.
길조어는 일어나는 현상을 그와 유사한 좋은 징조와 관련지은 것과 앞에 벌어진 좋지 않은 현상을 역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크게 대별할 수 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거나 ‘귀가 길면 오래 산다’는 것은 대표적인 전자의 예다. 까치 소리를 전해 주는 소식과 관련짓고, 귀 긴 것과 명이 긴 것을 관련짓고 있다. 서로 유사한 것끼리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또 ‘꿈에 돼지를 보면 재수 있다’거나 ‘똥을 밟으면 재수 있다’는 것들도 이와 유사한 종류에 속한다. 돼지를 나타내는 한자 돈(豚) 자가 화폐의 돈과 음이 유사하고, 똥은 그 색이 누래서 금과 관련지은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현상을 역으로 해석하는 경우로는, ‘문둥이를 보면 재수 있다’거나 ‘상여를 만나면 재수가 좋다’ 등이 이에 속한다. 보통 문둥이나 상여는 꺼리는 대상에 속하는 것인데, 이를 거꾸로 해석하여 좋은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꿈은 실제와 반대다’란 말을 쓰는데, 이것처럼 당사자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 생각된다.
길조어 역시 그 지방의 관습이나 민간신앙 등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그러므로 길조어는 금기어와 더불어 기록으로 남겨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길조어를 간략히 열거해 본다.
• 아침에 천장에서 거미가 떨어지면 재수가 좋다.
•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손님)이 온다.
• 귀가 길면 오래 산다.
• 귓밥이 크면 부자가 된다.
• 밥숟갈을 크게 떠야[밥을 많이 떠야] 부자가 된다.
• 보이지 않는 곳에 난 사마귀는 복사마귀다.
• 새로 이사 가서 거꾸로 자면 부자가 된다.
• 손끝이 뾰족하면 재주가 있다.
• 손이 두툼하면 잘 산다.
• 아침 일찍 상제를 보면 좋다.
• 아침에 일찍 남자를 보면 재수가 좋다.
• 어린애가 이마를 긁으면 집에서 나갔던 사람이 되돌아온다.
• 이마가 넓으면 소견이 넓다.
• 정월 보름날 다리를 밟으면 다릿병을 안 앓는다.
• 코가 오목하면 식복이 많다.
• 돌날 어린애가 연필을 집으면 공부를 잘 한다.
•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
• 부엌 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 하면 부자로 산다.
• 생일날 국수를 먹으면 명이 길다.
• 설날에 널을 뛰면 발에 부스럼이 안 난다.
• 식사 후 물 먹지 않으면 오래 산다.
• 이사 가는 날 시루떡 해 먹으면 좋다.
• 정월 보름날 복조리를 사두면 복이 온다.
• 집 안에서 제비가 집을 지으면 좋다.
• 윤달 든 해에 수의를 해 놓으면 좋다.
• 꿈에 높은 데서 떨어지면 키가 큰다.
• 꿈에 돼지를 보면 복이 온다.
• 꿈에 똥을 밟거나 똥이 옷에 묻으면 술이 생긴다.
• 꿈에 문둥이를 보면 재수가 있다.
• 길 가다가 상여를 만나면 재수 좋다
이러한 전래의 금기어와 길조어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한갓 미신적인 말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존재하고 기능해 왔던 것이다. 여러 가지 위험이나 고난과 싸우면서 불안하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약한 인간에게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금기어나 길조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금기어와 길조어는 생겨나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이와 같은 금기어나 길조어는 지난날 우리 선인들의 사고체계와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보존․기록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