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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천왕봉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
그저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는 거야
――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 1902~1967), 「75센트의 블루스」에서
▶ 산행일시 : 2019년 1월 12일(토), 비, 안개
▶ 산행인원 : 15명(영희언니, 모닥불, 솔잎, 악수, 대간거사, 사계, 신가이버, 해피라이프,
해피, 아산, 오모, 승연, 무불, 메콩,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22.5km
▶ 산행시간 : 11시간 13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3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45 - 죽암휴게소
04 : 17 ~ 04 : 45 - 사천시 사남면 신복리 약수암 입구,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09 - 봉대산(烽臺山, 281.4m)
05 : 53 - 봉두산(烽頭山, 465.1m)
06 : 06 - 456.6m봉, 선바위
06 : 42 - 하늘먼당(566m)
07 : 07 ~ 07 : 25 - 명지재(明芝-, 444.2m), 아침요기
08 : 10 - 550.8m봉
08 : 32 - 백천재(白川-), ┣자 갈림길
09 : 20 - 민재봉(旻岾峰, 797.8m)
09 : 46 - 673.9m봉
09 : 57 - 기차바위, 595.7m봉
10 : 23 - ┣자 갈림길 안부
10 : 50 - 덕룡사
11 : 10 ~ 11 : 50 - 와룡골 와룡저수지, 1부 산행종료, 점심, 2부 산행시작
12 : 28 - 임도
12 : 47 - 도암재, ╋자 갈림길 안부
13 : 50 - 새섬봉(801.4m)
14 : 20 - 733m봉, 헬기장
14 : 30 - 민재봉(旻岾峰, 797.8m)
15 : 00 - 백천재
15 : 43 - 백천사(白泉寺)
15 : 58 - 백천사 주차장, 산행종료
16 : 18 ~ 18 : 38 - 삼천포항, 목욕, 저녁
21 : 15 - 죽암휴게소
22 : 57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1/25,000)
2. 산행고도표
▶ 하늘먼당(566m)
“메콩, 비가 몇 도?”
“비가 5도다!”
마치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간거사 님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대답한다. 캄캄한
밤 겨울비 오는 이곳 사천의 기온도 그쯤이다. 따뜻한 남쪽나라답게 사뭇 포근하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두메 님은 한밤중에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와룡산 들머리인 경수암 근
처에 도착했다. 버스가 더 들어갈 수 없어 내린다. 밤비는 비옷을 입기도 입지 않기도 어중간
하게 내린다. 얼마 가지 않아 비둔하고 더워서 벗어버렸다. 대로인 농로 따라 검은 산을 향한
다. 왼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기슭의 약수암 연등의 불빛이 요란하다. ┣자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사면을 돌아가는 소로는 하늘먼당(3.8km)으로 가는 길이다.
하늘먼당이라는 지명이 생소하거니와-미리 자세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리 알아
서는 재미가 덜하다-와룡산 주릉과 떨어진 데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당연히 직진 직등한다.
눈이 점점 침침해지는 것이 노안 탓만이 아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헤드램프도 헤
치기 버거워하는 자욱한 안개다. 앞서가는 일행이 금방 안개 속에 묻힌다.
긴 한 피치 올랐을까, 일행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그들이 후미를 기다린다
기보다는 뭔가 사정이 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것이다. 정자가 나오고 그 뒤로 옹성 같은
석축이 정교하게 둘렀기에 내쳐 다가가니 봉대산 봉수대다. 예전에는 안점산(鞍岾山)으로
불렀는데, 안점봉수(鞍岾烽燧)가 있었다고 한다. 이 봉수는 남쪽으로 진주 각산(角山)에 응
하고 북쪽으로 같은 주 망진산(望晉山)에 응한다고 한다.
봉대산 넘고 내가 맨 후미는 아니지만 다시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헤드램프 심지를 최
대한 돋우어 안개 속 흐릿한 인적을 더듬으며 간다. 거대한 암벽과 맞닥뜨리고 오른쪽 사면
을 길게 돌아 오른다. 이제야 산을 가는 것처럼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로 주변의 갈잎 낙엽
이 더욱 부산하기에 비가 싸락눈으로 변했는가 하고 얼굴 들어 맞아보면 차디찬 빗물이다.
한편으로는 임화(林和, 1908~1953)의 「무엇찾니」를 똑 닮았다.
죽은듯한 밤은 땅과 하늘에 가만히 멈췄고
음울한 대기는 갈사락 컴컴한
저문 날 끝에서 땅우를 헤매는데
소리없이 자최를 감추고 나리는 가는 비는
고요히 졸고 있는 나뭇잎에
구슬같은 눈물을 지워
어둔밤을 헤매면서 우는
두견의 슬픈 눈물같이 울며 내려진다.
남모르게 홀로 뛰는 영혼아
이 어둔 비오는 밤에도 쉬지 않고 날뛰며
무엇을 너는 찾느냐?
엉뚱한 잡목 숲을 헤매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봉두산을 오른다. 그 정점은 등로에서 약간
벗어났다. 처음에는 봉두산인 줄을 모르고 왼쪽으로 내리는 길이 더 뚜렷하기에 마냥 내렸다
가 혹시 하산 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뒤돌아 올랐다. 미심쩍었던 오른쪽 길로 가보니
평평한 터 한 가운데 키 큰 나뭇가지에 여러 산행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달렸고 봉두산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방황은 계속된다. 또 왼쪽 길로 내렸다가-아까보다 조금 더 내렸다-다시 봉두산에 올라 봉
두산 정상 주변의 잡목 숲을 샅샅이 살펴 아무 인적이 없음을 재차 확인하고서 왼쪽의 사면
내리는 길을 간다. 대간거사 님의 연호가 들리자 잰걸음하여 함께 기다리고 있는 신가이버
님과도 반갑게 상봉한다. 이제 여러 헤드램프로 길 밝혀 아는 길처럼 간다.
암릉 같은 너덜지대를 지난다. 지도의 선바위다. 아직 캄캄하여 대체 선바위가 어떻게 생겼
는지 알아볼 수 없다. 몇 개 돌탑을 지난다. 빗물에 젖은 너덜은 꽤 미끄럽다. 낮은 자세하여
살금살금 내린다. 안부를 지나서야 너덜지대를 벗어난다.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선두는 연
호가 들리지 않게 멀리 갔다. ‘하늘먼당, 566m’이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하늘먼당이 산봉우리 이름이다. ‘먼당’은 꼭대기 또는 마루를 서부 경남에서 일컫는 말이라
고 한다. 이정표에 여기서 민재봉까지 4.6km이다. 민재봉은 와룡산의 주봉일 것. 영진지도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민재봉’이라는 표시는 없다. 봉마다 내리막에는 미끄러운 너덜지
대가 나온다. 쭈욱 내린 안부는 명지재이고 큰 바위 잠깐 돌아 오르면 444.2m봉이다. 휴식.
일행이 모두 모였다.
3. 민재봉 가는 길
4. 민재봉 가는 길, 빙화가 피었다
5. 민재봉 0.3km 전방에서, 무불 님
▶ 민재봉(旻岾峰, 797.8m)
안개 속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에 둘러앉아 넙죽이 어묵탕과 라면 끓여 아침 요기한다. 특
히 해피라이프 님이 끓인 라면은 여러 입맛을 동하게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그의 산행이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 하였다. 입산주 탁주 거푸 들이켜 한속을 달랜다. 이제는 민재봉 품에
안길 만도 하건만 그게 쉽지 않다. 임도 지나는 안부가 아직 바닥이 아니다.
날이 과연 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어둠이 마침내 물러가자 여태
분투한 헤드램프는 지쳐 힘을 잃었다. 불과 몇 미터 앞의 등로만 열린다. 사면 누벼 해찰할
일이 없으니 막 간다. 550.8m봉. 맨발 님의 표지판이 고도를 알린다. 왼쪽으로 방향 꺾어 내
린다. 한 피치 내린 안부가 ┣자 갈림길인 백천재다. 이정표에 민재봉 1.2km. 힘차게 그 품에
든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여기는 비가 내리자마자 얼었다. 일목일초마다 빙화가 피었다. 그 꽃길
을 간다. ┫자 진분계 갈림길에 올라 가쁜 숨을 돌린다. 안개 속 아득하던 민재봉이 0.3km 남
았다.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 등로는 야자매트를 깔아놓아 걷기에 좋다. 줄달음한다. 9시가
넘자 일기예보대로 비는 멎었다. 공제선이 더 물러날 데가 없는 민재봉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삼천포 21, 1991 재설.
너른 공터인 민재봉 정상 역시 자욱한 안개 속이라 지척의 주변 경치조차 흐릿하다. 이도 우
리의 적덕이 부족한 탓이려니 자책하며 서성이는데 기적이라고 할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
이 벌어진다. 홀연히 안개가 걷히고 원근 봉봉의 기경이 드러난다. 우리는 느닷없이 발아래
펼쳐지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우아! 하는 탄성만 연발할 뿐이다. 장막처럼 가렸다가 다시 드
러내 보이기를 반복하는 운무의 유희를 한참동안 즐긴다.
민재봉에서 보는 경치는 총론이다. 앞으로 우리는 민재봉 남동릉 기차바위에서, 새섬봉에서
그 각론을 볼 것이다. 지도에 따라 와룡산의 주봉을 민재봉 또는 새섬봉으로 표시하고 있다.
정상 표지석에 ‘민재봉’을 한자로 ‘旻岾峰’이라 병기하고 있다. ‘旻’자는 하늘을 뜻하는 ‘민’자
이지만, ‘岾’자는 고개나 재 또는 땅 이름, 절 이름을 뜻하는 ‘점’자이다. 우리가 지나온 봉대
산의 옛 이름인 안점산 또한 ‘鞍岾山’이다. ‘岾’이 ‘재’라는 뜻이 있어 그 뜻을 차용하였다고
본다. 어쨌든 민재봉이 ‘하늘재’라는 의미다.
와룡산의 이름은 이 산의 형상이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
하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편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 욱(郁)이 유배당한
이곳 사수현(사천의 고려 때 이름이다)에서 죽었는데 와룡산 승화봉(陵華峯) 밑에 묻었다.
욱의 아들인 현종이 아버지인 욱을 추존하여 효목대왕(孝穆大王)이라 하고, 묘호를 안종(安
宗)이라 하였다(물론 그 뒤에 건능(乾陵)에 이장하였다). 왕은 흔히 용으로 비유되거니와
안종이 이 산에 누워 있으니 ‘와룡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일행 모두 득의양양하여 민재봉을 내린다. 잘 난 길을 따라 그 남동릉을 간다. 나뭇가지 사이
로 순식만변하는 천왕봉과 새섬봉을 연신 기웃거리며 내리는 발걸음이 사뿐하다. 야트막한
안부를 지나고 673.9m봉을 오르며 뒤돌아보는 민재봉이 푸짐하고 중후하고 원만한 모습이
다. 사천시가 사천팔경의 하나로 들고 있는 ‘와룡산 철쭉’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한다.
6. 민재봉 남동릉
7. 앞은 새섬봉
8. 천왕봉
9. 민재봉 정상에서(영희언니 찍음)
10. 왼쪽 멀리는 수태산(?)
673.9m봉 넘고 암릉이 나온다. 오늘처럼 비에 젖은 암벽을 직등하기는 어렵다. 왼쪽으로 약
간 돌면 오르막 슬랩에 고정 밧줄이 달려 있다. 기차바위다. 발바닥으로 미끄러운 정도를 가
늠하며 암릉을 간다. 노송이 차일한 낭떠러지 위에 너른 암반이 나온다. 경점이다. 천왕봉과
새섬봉이 운해 속에 불끈 솟아올랐다. 운해는 파고를 잔뜩 높여 그 두 봉우리를 삼킬 듯이 덤
벼들지만 미동하지 않는다.
암릉 지나면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줄달음하여 내린 여세로 595.7m봉을 대깍 넘고 한차례
더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장의자 놓인 쉼터이기도 하다. 휴식. 신가이버 님이
봄동 배추전을 내놓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가져오는 배추전이다. 요기도 될뿐더러 탁주
안주로도 아주 그만인 겨울 산중의 일미다.
우리는 오른쪽 사면으로 내린다. 대단한 깔딱고개다. 갈지자 어지럽게 그리면서도 수직으로
내리 쏟는다. 우리는 여기로 오르지 않기를 참 잘했다며 여기 오를 이들을 걱정해준다. 비가
온 뒤라 곳곳이 진창이다. 등산화가 묵직해진다. 깔딱고개 가파름이 숙어지고 울창한 측백나
무 숲을 지난다. 이 장대한 열주를 사열하자니 풀어진 발걸음을 고쳐 잡는다.
임도에 내리고 오른쪽의 청룡사 절집으로 가는 길 반대쪽으로 간다. 와룡골 건너편으로 전망
이 트이지만 와룡산 연릉 연봉은 안개에 가렸다. 대로 옆 덕룡사 텃밭에서다. 가지 끝에서 피
기 시작하는 매화를 본다. 춘신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선두가 소리쳐 일러준 매
화다. 가시나무 울타리 넘어 가까이 다가가자 빗물에 젖은 암향이 훈훈하다.
와룡골 개천 따라 동네 길을 내린다. 집집의 울타리는 상록수이고, 곳곳 농원에는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소나무, 남천 등의 상록 조경수가 생생하여 이국인양 봄기운을 느낀다. 와룡
저수지 위쪽 노상공터에 다다르고 때마침 도시락 실은 두메 님 버스도 도착한다. 점심자리
편다. 대기가 온화하여 비닐 쉘터는 치지 않는다. 이 즐거운 점심시간에 탁주는 물론이고 아
무 술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산정무한 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신가이버 님의 역
작인 낙지라면(낙지를 다수 넣고 컵라면을 끓인)을 맛보게 되어 무주의 아쉬움을 충분히 상
쇄한다.
11. 천왕봉
12. 민재봉
13. 천왕봉
14. 기차바위 탑승
15. 천왕봉과 새섬봉
16. 천왕봉과 새섬봉
17. 매화, 덕룡사 텃밭에서
▶ 새섬봉(801.4m), 민재봉(旻岾峰, 797.8m)
2부 산행. 이번에는 민재봉을 그 남서릉에서 오르기로 한다. 하산완료를 16시로 예정하니 천
왕봉을 경유하지 않고 도암재 쪽으로의 직행이 불가피하다. 선답의 산행표지기가 안내하여
와룡마을 고샅길과 농로에 이은 임도를 따라 천왕봉 동쪽 자락을 크게 돌아간다. 얼마 안 가
임도를 버리고 인적이 흐릿한 산속으로 든다. 농원이 아닌데도 노랗게 익은 모과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숲속이다.
선답의 산행표지기를 놓치고 생사면을 치고 올라 산허리 도는 임도에 올라선다. 어디를 뚫고
오를까 만만한 능선을 살피며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 종점인 산모롱이에 이르자 여러 산행
표지기들이 안내하는 도암재행 주등로가 보인다. 주등로는 잡석 깔린 완만한 골짜기를 느긋
이 오르다 가파른 오른쪽 사면을 촘촘한 나선 그리며 오른다. 오전에 남을 걱정해주며 와룡
골로 내리던 깔딱고개 짝이다.
고개 드니 나뭇가지 사이로 천왕봉 동벽이 보인다. 상사바위이리라. 장관이다. 첫눈에 아이
거 북벽의 미니어처로 보인다. 안개가 갑자기 몰려들어 그 전모를 일순에 가려버리는 변화무
쌍한 일기도 거기와 닮았다. 더 잘 보일 데를 찾느라고 발걸음 재촉한다. 도암재. 널찍한 평
원인 ╋자 갈림길 안부다. 상사바위 0.5km. 대간거사 님은 해피라이프 님과 오모 님이 다니
러 갔다며 나더러도 어서 갔다 오시라고 부추긴다.
모르긴 해도 거기 가보았자 상사바위가 제대로 보일 리 없고 거기에서의 조망이 앞으로 우리
가 오를 새섬바위의 전망보다 나을 것 같지 않다. 괜한 노가다 산행(선바위 님의 버전이다)
일 것. 그런 줄을 뻔히 알면서도 짐짓 나를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골려먹자는 수작이다. 근래
오지산행 중 나더러 잘한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오늘의 이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꼽
겠다.
새섬바위 1.0km 가는 길.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르다가 너덜지대 돌탑을 지나고 잠깐 고정
밧줄 잡고 가파른 슬랩을 오른다. 뒤돌아보면 상아바위, 천왕봉이 오롯하다. 등로 옆의 왕관
바위를 지나 새섬바위 암릉에 다가간다. 직등은 아무래도 어렵겠다. 왼쪽 사면의 대슬랩을
비스듬히 오르도록 잔도를 대역사로 설치해 놓았다. 잔도 또한 경점이다. 삼천포 시내와 그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잔도가 끝나고 너덜지대를 곧추 오른다. 새섬봉 능선마루에 올라서고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라고 할 만한 경치가 펼쳐진다. 전후좌우 상하고저가 가경이다. 당장 발아래는 천 길 낭떠
러지이고, 와룡골 건너 기차바위능선이 장성이다. 그 너머는 운해가 넘실거리고 산 첩첩이
조금 열린다. 저간에 지리산 삼신봉에서 제석봉에서 천왕봉에서 여기 와룡산이 대해 끄트머
리에 아스라이 떠있는 피안의 고도로 보였다. 여기서 보는 지리산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
슴 설레며 이 와룡산을 올랐다. 그런데 지나친 욕심이었다. 안개는 여기까지 덮칠 기세다.
18. 천왕봉 상사바위, 아이거 북벽 미니어처 같다
19. 천왕봉
20. 천왕봉
21. 새섬봉 새섬바위 동벽
22. 새섬봉
23. 민재봉 남동릉, 가운데가 기차바위
24. 앞은 새섬봉, 오른쪽 뒤가 민재봉
25. 새섬봉 남릉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멈춰 서서 사방에 열린 경치를 보고 또 본다. 철계단 내리고 암사면을
돌고 가파른 슬랩을 올라 새섬봉이다. 비로소 알지 못했던 ‘새섬’의 뜻이 풀린다. “먼 옛날 와
룡산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이곳에 새 한 마리만 앉을 수 있었다 하여 새섬봉이라 한다.” 새
섬봉 정상 표지석 옆면에 새긴 설명이다. 굳이 한자로 쓴다면 ‘조도봉(鳥島峰)’이다.
민재봉 가는 길. 사납던 돌길과 슬랩은 끝나고 부드러운 흙길이다. 봄이면 철쭉꽃이 볼만했
을 산길이다. 너른 헬기장 지나고 우거진 풀숲 같은 철쭉 숲 소로를 뒷짐 지고 이슥 오르면
민재봉이다. 주변 풍경이 새롭다. 아침에 내 넋을 잃게 하던 미모는 간데없고 미처 화장하지
않은 생얼을 본다. 기차바위능선 너머는 여전히 안개에 가렸다.
백천재로 내린다. 야자매트 깔린 등로를 단숨에 내달아 ┣자 진분계 갈림길에 이르고 이어
가파른 진창길을 내린다. 아침에 오를 때는 등로가 얼어서 이렇게 진창으로 변할 줄을 몰랐
다. 비가 내리기에 먼지가 일지 않는 게 큰 다행이라고 극구 자위했건만 이리 진창길이니 섣
부른 자위였다. 백천재. 와룡산에는 하늘을 뜻하는 지명이 유난히 눈에 띄기에-하늘먼당, 하
늘재인 민재봉, 천왕봉 등-백천재의 ‘천’도 하늘을 뜻하는 ‘天’이 아닐까 여겼는데 내 ‘川’이다.
백천골로 내린다. 내려다보는 까마득히 깊은 골짜기 계류는 빙하이니 이름 그대로 백천(白
川)이다. 등로는 너덜지대 지나고 부드러운 사면을 질러간다. 임도와 만나고 그 대로 따라 쭉
쭉 내린다. 백천동이 산골마을이다. 산자락 돌고 돌아 백천사를 들른다. 백천사는 신라 문무
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구국도량으로 존중받는다.
백천사에 세계 최대의 와불이 있다기에 보러간다. 백천사가 대찰이다. 절집 뜰에 세운 실물
크기의 불상 재질이 중국에서 들어온 옥이라고 하니 부유한 절임에 틀림없다. 목조와불. 절
집 맨 위쪽에 있다. 거대하다. 와불이 큰 건물 한 채를 다 차지하였다. 와불을 모신 약사전 주
련은 自性佛道誓願成(마음의 불도부터 다 이룬다) 등 사홍서원(四弘誓願)을 걸었다.
백천사 아래 백천사 주차장에서 두메 님이 버스를 뜨뜻하게 덥혀놓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
고 있다. 당초 예정한 산행종료 16시보다 2분이 이르다. 삼천포항으로 달려간다. 오지산행의
마지막 과정이다. 삼천포항에서 제일 큰 사우나에 들러 목욕하고 아산 님의 지인이 주선한
횟집으로 간다.
26. 오른쪽 멀리가 민재봉
27. 새섬봉 남릉, 메콩 님
28. 민재봉 남동릉, 가운데가 기차바위, 아래 절은 청룡사
29. 민재봉 남동릉, 가운데가 기차바위
30. 새섬봉 정상에서
31. 가운데 멀리는 수태산(?), 앞 능선 가운데는 기차바위
32. 다시 민재봉에서
33. 백천재
첫댓글 ㅋㅋ 해피라이프 사진 못보셨나요. 거기 정상석이 우리나라 정상석 중에 최고로 멋있던데유. 금년에는 복수초보다 매화를 먼저 봤네요. 좋아요.
보일듯 말듯한 조망,,,비온 뒤의 풍경은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함이 더해져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주었습니다...^^
민재봉 평생에 잊지 못할 이름입니다. 이번에만 2번 올랐네요. 회사일로 매달 가는 지역이라 호감있는 곳은 아니었는데 오지팀과 같이하니 좋은 지역일 수도 있다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는 5도!
그래서 비 맞으면 추운거구나~~~^^
와룡산을 갔어야 했는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