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22절. 조창훈목사강해(칼빈주석에 근거)
출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하나님의 산- 율법 선포할 산
‘하나님의 산’이라는 이름은 그곳이 율법의 선포로 인해 신성하게 된 그 미래의 일을 말하고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 동쪽은 시내산이라 불리워지고 서쪽은 호렙산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맞추심
그가 보이는 형체를 취하여 모세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즉 그가 본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 그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옛날에 거룩한 족장들에게 그의 위엄을 버리시고 필요한 방법으로,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아들
그러나 이 사자는 누구였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후에 그 자신을 여호와라고 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천사들을 지휘하는 한 우두머리 천사가 있다는 사실이 여러 구절에서, 특히 스가랴 1장에서 뚜렷이 밝혀져 있기는 하지만, 옛날의 교회 선생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임무에 관해서 중보자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은 이런 이름을 태초부터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었고 그가 성육신 하실 때 실질적으로 떠맡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는 그의 백성들의 지도자였음을 분명히 단언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이 비밀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전10:4).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그는 그 당시 아직 그의 하늘 아버지의 전령자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그때, 그 직무에 대해 미리 예정되어 임명된 사실이 그 때에 효과를 나타내었고 이런 특성으로 그 자신을 족장들에게 알리셨던 것이다. 사실상 성도들은 그 약속된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어떤 교제도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이신 그 영원하신 말씀에서 미래의 임무를 근거로 해서 ‘그 사자’의 이름을 취하였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출 3: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신을 벗으라- 기도할 때 무릎 꿇고, 모자를 벗는 것과 같다
참된 의미의 단순한 해설이 그들의 시시한 이야기들을 묵살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을 벗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맨발이 됨으로써 그의 마음이 더욱 경건한 감정에 젖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그 땅의 거룩함을 명심하게 되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모자를 벗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더해주고 또 촉진시켜 준다.
모든 사람에게, 모세에게 내려진 것과 똑 같은 명령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모든 의식의 목적이라는 것을, 즉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 마음에 올바르게 그리고 진지하게 깨달아져서 그 합당한 경의를 얻고, 그가 그의 권위와 더불어 존경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배우도록 하자.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
모세가 하나님을 보다 더 경외하면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하나의 준비로써, 그의 신발을 벗도록 명령받았다는 자연스러운 의미가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만일 그 장소의 거룩함에 관해서 의문이 생긴다면 그것은 환상으로 인해 이런 존귀한 명칭을 얻게 되었다는 쉬운 대답을 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시내산은 본래 어떤 특유한 신성을 소유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의 표시를 거기에 주셨기 때문이다. 그의 광대하심이 그가 어떤 장소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용납지 않으시는 것이다.
만일 야곱의 후손들이 이런 사실을 생각했다면, 그들은 아마 시온 반대편에 있는 벧엘을 결코 거룩한 곳으로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그 족장에게 한번 나타나시긴 했지만 결코 그 장소를 택하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특별한 사례에서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아브라함 언약- 성실하심
그는 자신을 단지 어떤 하늘의 능력으로써 선포하거나 일반적인 하나님의 이름만을 주장하시지 않고 이전에 그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을 회상시키시면서, 모세로 하여금 모든 우상과 거짓된 신들을 던져 버리고 참된 믿음을 갖도록 굳게 해 주시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아브라함과 다른 족장들이 섬긴 그 하나님, 그리고 양자 삼으시는 특권으로 인해 그들 민족을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그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심으로써 그의 성실하심을 분명히 단언하고 있다.
출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값없는 언약와 값없는 은혜에 근거한 구속
하나님께서는 무상의 언약 위에, 따라서 그가 무료로 주시는 은혜 위에 그의 백성의 구속을 세우셨다. 그의 특별한 도우심은 신자들이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도우심 체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가까이 있는 것을 분명하게 체험했을 것이다.
출 3: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약속에 근거한 부르심
명령과 소명은 의심할 것도 없이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에 만족하고 하나님에 확신하기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에 만족해 하고서, 그를 떠나서는 확신의 근거를 찾으려 하지 않는 그런 마음 자세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합당한 태도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은 새로운 긍휼을 차곡차곡 쌓아두심으로써 그의 긍휼을 높이신다.
출 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 영원하심
히브리어에서 이 동사는 미래 시제로서 “나는 스스로 있을 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의 영원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 이외에는 현재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광을 오직 자신에게만 돌리고 있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존재하므로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모든 피조물에게 그 존재를 부여하고 계시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속성을 평벙한 것이나 다른 것들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단언하지 않고, 그의 위엄을 따라 영광 받으실, 유일하신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바로 후에 그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게, 1인칭 동사를 명사로 사용하면서 그것을 3인칭 동사에 덧붙였다.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출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출 3: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출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섭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대로 사람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능력이 당신께 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시고 있다. 이 구절은 풍요롭고도 광대한 교리를 포함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밀한 영감에 의해 지배되고 인도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그들이 미워하는 것이나 위협하는 것, 그리고 공포를 주는 것을 크게 두려워 해서는 안되며 두려움으로 인해 의무의 길에서 쉽사리 떠나서도 안된다. 이 경종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 불신앙에 대한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출 3: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들에게 주시고 빼앗으심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의 뜻대로 각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는 조건에서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셨든지 간에, 어느 순간에 그것을 자유롭게 취해 가실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은 모든 법에서 자유하시고 심하나님의 법은 선하시다
하나님의 권세가 모든 법위에 있기는 하지만 그의 법은 가장 완전한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가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완전히 옳을 것임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과 모두에게 하나의 법이시기 때문에 모든 법에서 자유로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