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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를 소개합니다
김 병 우
내 나이 50대 중반을 넘겼다. 가는 세월 막았더니 세월이 먼저 알고 앞질러 와 있더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결혼 26년 차에 딸만 하나다. 당시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덕이다. 그때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등의 표어들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넘쳐났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50대지만 아내는 나보다 5살이 적다. 하지만 살다 보면 부부 사이에 나이가 뭐 대수인가, 나이 차이를 전혀 못 느낄 때가 더 많은 법이다.
부부라는 게 참 신통방통하다. 수틀리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나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하는 경우가 예전에 비하여 많아졌다. 집안 살림은 부부 공동의 일이라 여기며 신세대답게 분담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각자 제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하여 부부간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집을 사도 공동명의로, 재산관리도 따로따로. 그전 같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지만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어떠한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체통을 잃는다고 아예 부엌 출입을 못 하게 했었다.
그 당시는 결혼한 여자들 대부분이 전업주부들이었고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들의 몫이었으니 이런 일들이 논쟁거리가 될 수 없었다.
격세지감이랄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부가 같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살기가 힘이 든다고 한다. 예전보다 살림살이는 훨씬 나아졌건만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게 아닌가 보다. 혼자 벌어서는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질뿐더러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논리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그렇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상대적 피해의식이 한몫한 것 같다. 남들보다 못산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죽기보다 싫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런데 어디 인생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우리 부부는 맞벌이 공무원이다. 내 아내는 결혼 10년 차에 직장생활을 했는데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내가 내년에 공직생활 30년을 맞으니까 나와 비교하면 딱 반을 한 셈이다.
우린 비록 사내 결혼은 아니었지만, 교사, 은행원 등 성향이 비슷한 직종끼리 결혼하는 풍습은 예나 지금이나 유리한 점이 많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서로서로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해는 직장 인사이동으로 인하여 대전에서 살다가 이사를 왔는데 벌써 5년째 접어들었다. 노후생활은 이곳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교통이 불편한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주위에서 우리 부부를 보고 친구들이 “너거는 둘이 벌어 그 돈 다 어디 쓰노?”라고 말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쓸 데가 많다. 장남에, 부모님 두 분 부양하랴, 1년에 제삿밥 그릇이 몇 개인가. 나름대로 이유를 갖다 붙이면 솔솔이 쓸 데가 많은 게 사실이다.
돈이라는 것은 벌리는 만큼 쓰게 마련인가 보다. 부자들에게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월급이지만, 혼자보다 둘이 벌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 씀씀이가 커져 모자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작은 여유나마 가질 수 있음이 행복하다.
요즘 젊은 맞벌이 부부들 못지않게 우리 부부도 집안일을 나름대로 분담한다. 아침밥은 내가 주로 한다. 쥐눈이콩을 포함하여 10여 가지 잡곡을 섞어서 밥을 하는데 아내가 싫어해도 10년째 밀어붙이고 있다. 퇴근 후 저녁은 아내가 평소 솜씨를 발휘하여 항상 잘 차려서 먹는다. 식사 뒤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집 안 청소 등은 몽땅 내 몫이다.
한 번은 직장 일로 나흘인가 출장을 다녀왔더니 음식물 찌꺼기가 쓰레기통에 빼곡히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쓰레기통까지 가지고 가서 버릴 사람이 출장 중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순간 깜빡 잊었나 보다. ‘허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는 아내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겨울철이라 다행이지 여름철이었으면 어찌했겠는가?
우리 아파트에서 ‘나’라는 존재는 항상 음식물 쓰레기통과 쓰레기봉투가 양손에 들려져 있고, 재활용 박스나 헌 신문 뭉치를 들고 다니는 중년 남자라고 각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4년간이나 봐 왔었고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성격이 낙천적이다. 매사에 바쁠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느긋하다. 그런 아내가 나는 무지 부럽다. 휴일이면 해가 중천에 떠야만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그게 영 안 된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설쳐대는 새벽형 인간인 나와는 반대로 아내는 TV 연속극이 끝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나보다 자는 것도 늦고, 일어나는 것 또한 늦다. 더구나 집안 빨래며 설거지 등을 곧바로 하는 법이 없다. 한꺼번에 몰아서 후다닥 해치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혈액형이 ‘O형’이라서 그런가 보다. 음식 먹는 습관도 나와는 정반대다. 하루 세끼 밥만 먹으면 되었지 웬 군것질이 필요하냐는 것이 아내가 나한테 하는 잔소리다. 틈만 나면 주전부리를 달고 사는 나는 ‘A형’이다.
신혼 때는 식성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많이 다퉜다. 아내는 1주일이 멀다 하고 생선 등 고기반찬이 없으면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며 식탁에 고기반찬을 줄기차게 올렸고, 나는 생선 비린내 맡기가 싫다며 된장찌개 등 나물 반찬 위주로 제발 좀 먹으면 안 되겠느냐며 징징거렸다. 그러면 아내는 “남자가 무슨 놈의 비위가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생겨가지고 고기도 못 묵어요.” 하고 경상도 톤으로 핀잔을 주었다. 아내와 나는 고향이 같은 대구다. 그 일로 티격태격 많이도 싸웠다.
그런데 평소에 먹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살이 찌고 아내는 날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아내는 나보다 몸무게가 무려 10kg이나 많이 나간다. 결혼 당시에는 내가 더 무거웠던 거로 기억하는데 나하고 살다 보니 스트레스로 찐 살이란다. 이는 아내의 평소 불만 사항 중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게 모두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믿고 있다.
아내의 몸무게 늘어난 게 남편 탓? 아내의 주장은 살 빼기에 서방이라는 사람이 협조를,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살찌우는 데 일조를 했다는 주장인데 이유인즉슨, 주말이나 평일 퇴근 후 자기를 데리고 같이 다니지 아니하고 서방이라는 사람이 ‘절’에 미쳐서 혼자서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집안에서 하는 일 없이 TV나 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활동량이 적어져서 살이 불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처럼 들리지만 이는 아내의 억지 주장이며 사실과 다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들은 내 아내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퇴근 시간이 서로 일정하다 보니 저녁 식사 후 아파트 주변 해안도로를 매일 1시간씩 걷는 것이 수년째 계속되는 일과가 되었다. 비가 온다든지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면 어림잡아 빠지는 날은 월중 며칠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걷기 운동은 무려 4년 이상이나 동일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계속 해왔으니 주변의 웬만한 사람들은 익히 우리를 잘 안다. 매일 하는 이 걷기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한때는 아내와 같이 베드민트를 쳤었는데 어깨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과격한 운동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고부터 다시 걷기 운동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이 운동만 열심히 하고 있다.
걷기 운동은 다른 운동에 비해서 운동 효과는 큰데도 불구하고 돈이 거의 안 드는 매력이 있지 않은가.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게 문제(?)가 되지만. 금요일 오후는 운동 중 목이 컬컬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동으로 발길을 주점으로 돌린다. 토, 일요일 이틀간 쉰다는 안도감이 의기투합하게 만드나 보다.
운동복 차림으로 감자전을 마주하고 앉아서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다만, 걷기운동으로 어렵게 뺀 살이 일순간 한잔의 유혹에 무너져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내가 그저 웃길 뿐이다. ‘살과의 전쟁’으로 식탐을 맘껏 발산하지 못하는 내 아내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 운동은 평소 집에서 입는 운동복에 튼튼한 신발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부부가 서로 얘기를 나누며 1시간을 같이 걸어보아라! 집안에서 미처 하지 못한 얘기들이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옴에 놀랄 것이다. 시부모님, 장모님, 시누이, 올케, 조카, 딸 등등 등장인물의 다양한 얘기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노후 설계도 빠지지 않는 논쟁거리다. 퇴직 후에는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의견과 장시간 집을 비워둘 수도 있으니 역시 아파트가 낫다는 아내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아직 급할 것 없는 5년 뒤의 일이지만 서로가 옳다고 목청을 높인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우리 부부의 최대 관심사로서 걷는 동안 연일 논쟁을 벌이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다.
걸으면서 해안가 솔밭 길 사이로 불어오는 간들거리는 바람을 갯내음과 함께 온몸으로 느껴보자! 사계절 변하는 자연의 풍광을 마음껏 즐겨보자! 자연은 느끼는 자의 것이다. 내 곁에 든든한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무척 고맙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이 정작 이런 것이리라!!!
※ 2011년도 여성가족부 주최 ‘남편수기공모전’ 동해, 삼척, 태백시 지역 최우수상 수상
첫댓글 글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꾸미지 않은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웃음이 베어납니다. 내외분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상을 받으신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잘 읽었읍니다. 늧게나마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부가 함께 운동도 하시며 감자전 막걸리 잔에 마주하여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오손도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가정사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비슷합니다. 정부시책에 호응하여 따님 한 명두었어, 우리때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와 좀 구호가 다름니다만 저는 아들만 두명입니다. 글속에 부부애가 좋아서 흐뭇하게 잘 읽었습니다. 수상할만한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재미있게 쓰신 부부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글쓰기도 최우수.. 자상하신 남편으로서도 최우수이십니다. 알콩달콩 동반자로 살아오신 생활이 눈에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꾸밈없는 부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홀죽한 남편에 뚱뚱한 마누라의 얘기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집니다. 부지런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가정 잘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좋은 가정의 모습을 진솔하게 잘 나타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사랑의 말다툼에서 부부애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부간 걷기 운동은 사랑의 묘약 역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늘 함께 하심이 부럽습니다. 우리는 따로따로 잘 놉니다. 운동도 제각기 놀러도 제각기 따로 잘 갑니다.농사짓는 들에도 혼자 갑니다. 절대로 나오지 마라고 하기에 하고싶지 않는일 자꾸 따라가자고 하면 어쩌겠습니까? 대신 집에만 오면 손도 대지 않지요. 그생활이 익어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