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믿음의 선배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성령님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통찰하며 갈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시편 110편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원수들을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에서 볼 수 있듯이 오실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믿으며 사모하고 있었던 이로 구약에 있어서는 구주 예수님에 대한 처녀 잉태에 대해 성령님을 통해 계시를 받았고 그러한 메시야로 인한 나라에 대한 예언에 여러 모양으로 쓰임 받았던 이사야와 함께, 또한 신약 시대 있어서는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성령님으로 인해 구주 예수님을 잉태케 되었던 마리아나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위해 구주 예수님을 찾았으나 그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 안에 들어오시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며 다만 말씀으로만 해 달라면서 바로 그 구주 예수님과 직결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비유를 들며 믿고 의지하며 간청했던 이방 백부장, 더 나아가 다양한 모양과 방식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신앙적, 복음적, 신학적, 교리적 측면 등에서 잘 설명하고 계시하는데 쓰임 받은 바울 등과 더불어 성경에 있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납득했으며 통찰하고 확신했던 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상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 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서도, 특히 오늘 본문의 다윗의 때에도 그러한 성령님을 위시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되시어 역사하신 것이 아닐 수 없음은 삼위일체라는 존재나 개념 자체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태초의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와 창세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되거나 별개이거나 변개가 될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하게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가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그 역할에 따라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다만 본질적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분이시기에 말씀의 신앙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오늘 본문의 다윗을 위시한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 더 나아가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전제와 기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할 수 있게 하셨는데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신 것이고,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다 이루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분이신 것이며, 게다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 필요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을 대신 다 치르시고 시대와 나라를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심으로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믿음으로 값없이 누릴 수 있게 하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고 말씀을 다 보이시며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시면서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고 더 나아가 죄와 심판과 음부와 사망의 종된 인생들을 하나님의 것,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신 분이신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역할에 따라 하나님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이시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말씀을 이 땅에 기록될 수 있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할 수 있게 하신 분이시자 그 말씀 그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성취되어 질 수 있게 하신 분으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도 통찰하고 유추할 수 있듯이 구원에 참예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면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이 말씀으로 결단하고 몸부림치며 나아간다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갈수록 더 생생하고 강렬해 질 수 있게 되는 것인 반면 죄악과 세속들, 자기 소견과 정욕들 등으로 잠자고 병들며 죽은듯한 신앙이 되게 될 때는 정말 제대로 믿고 제대로 구원에 참예한 것이 맞다면 그러한 죄악과 불신앙들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지지는 않고 그 존재나 개념 상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것이나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속히 돌이키며 하루 바삐 올바른 믿음에 설 수 있도록 일정 시간 은혜와 응답과 복들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같은 징계들을 아까지 않으시는데 직접적, 현실적,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실상 그러한 때에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충만하시고 강력하게 일하시기 보다는 반대이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애통해 하시고 탄식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인데..
만일 누구든 그러한 상태와 상황들 속에 있게 되었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 안에서도 아예 방법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인데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계획과 약속과 준비와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십자가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하면서 자복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이고, 그와 함께 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준비들인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새로워짐과 역전들이, 또한 그 한 가운데 있는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의 일들이, 게다가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이 얼마나 생생하고 놀라운지, 참으로 그러한 회개와 함께 하는 실질적인 약속과 효력이 어느 정도로 실질적이고 강력한 것인지 믿고 기대하며 갈망하고 누리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사실상 정말 그렇게 할 때는 실제로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그렇게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51:11)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2년 7월12일(화)1/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