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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주님을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부활절이 되면 교회마다 예수의 부활 외칩니다. 주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으니 믿으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말이야 나무랄데 없이 지당하고 참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 주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싫어서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지 않는데 어찌 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나도 죽고 주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천당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뿐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주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이라고 믿으라고 하여도 믿어지지 않는 것을 어찌하리오...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나, 주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을 하셨고, 승천을 하고 다시 오신다고 하여도 믿어지지 않는데 어찌 하겠습니까?
마음으로는 목사가 믿으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진짜 진짜 믿고 싶은데! 그러나 믿어지지 않으니 미치고 팔짝뛰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아마도 인간이 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면 다 믿을 것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믿으면 되니까? 그까짓거 예수 믿어주면 되니까?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안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믿고 싶어도 안 믿어지는 데야 어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릅니다. 하늘과 땅 만큼 다르다는 말은 서로 이해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본질이 다르니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인간과 바퀴벌레처럼 종(種)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면 믿는다는 것은 내가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은 주 예수님을 믿습니까? 라고 하면 서슴없이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분명히 주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으니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믿음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육이라고 하고 주 예수님은 영이라고 합니다. 영과 육은 다른 세상입니다.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성경이 믿으라고 하는 것은 영입니다. 이는 육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만이 믿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믿으라고 하여도 영의 영역에 속한 자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육의 영역에 속한 자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는 그림의 떡입니다.
믿으라는 말은 같으나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이는 마치 바퀴벌레가 믿는다는 것과 인간이 믿는다는 것과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육인 인간이 믿는다고 하는 것과, 영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다르니다. 육은 영을 알 수가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분이고 인간은 땅에 속하였습니다. 땅은 하늘에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의 지혜와 피조물의 지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인간이 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도 거짓이 됩니다. 육이 비록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건 육으로서 믿는 것이지 영으로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믿는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지게 해주는 믿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 믿게 해 주어야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믿는 것은 내 지혜이지만,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지만 믿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이 믿게 해 주십니다.
믿는 것은 땅에 속한 것이고 믿어지게 하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자기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고백은 자기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한 고백인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가 주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알게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가 주 예수님을 믿는 것도 자랑 일 수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을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반대로 누가 주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무시하고 깔봐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내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주여 내가 주를 믿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고, 주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셔서 믿습니다! 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을 자랑 할 수가 없어집니다.
주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믿는 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감사가 사라진 것은 믿음을 자기가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주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자기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감사는 없고 열심만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사는 신앙생활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해 주셔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난 예수를 잘 믿을 수 있어! 라고 하는 것은 난 예수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믿을 수 있다면 내가 버릴 수도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다는 것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관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주 예수님을 믿는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주 예수님을 믿어지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머리털 하나라도 검게나 희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구경이나 하고 박수만 치면 됩니다. 하나님께 박수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박수를 칠 수 있어야 비로서 산다는 것이 감사가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요란을 떨고 치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어지게 해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본디 사람이란 안 믿어질 수록 믿는다고 요란을 떨고 허장성세를 하는 족속입니다. 믿음이 없을 수 믿습니다를 크게하고, 사랑하지 아니할 수록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요란피우지 않습니다.
진짜 믿어지는 사람은 부활절이라고 요란 떨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은 주둥이로 믿는 것이 아니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2천년전 그 주 예수님이 바로 나여야 합니다. 내가 그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죽었고, 내가 그 예수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 증거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증거는 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 것을 말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묻습니다.
너 예수를 보았느냐?
하나님이 너 어느 학교 나왔느냐?
너 돈 얼마나 있느냐?
너 어디 사느냐?
너 몸무게 몇키로 나가느냐?
너 이쁘냐?
너 충성 얼마나 했고,
헌금 얼마나 했고,
전도 몇명했고,
봉사 얼마나 했고,
너 부활절 지켰느냐? 라고 묻지 않습니다.
너 예수 아느냐 라고만 묻습니다.
네가 본 예수를 말해보라고 합니다.
네가 본 그 예수가 인간들 손에서 죽은 그 예수가 맞느냐고 묻습니다.
교인들 손에 죽임당한 그 예수가 맞느냐고 묻습니다.
교인들 손에 죽임 당하지 않는 예수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인 예수가 아니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예수를 본 자인 것입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주여! 내가 바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본인입니다 라고 하는 자가 예수를 바로 만난 증인인 것입니다.
무슨 이런 망발을 하십니까?
난 절대로 예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난 예수를 죽이지 않았다니까요?
그래 맞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단언코 한국교회 교인들 같이 착한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지 않습니다.
아니 말은 바로 합시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절대로 주 예수님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는 악당이나 죽이지!
어찌 착하디 착한 교인들이 죽이겠습니까?
그러니 주 예수님의 부활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상관 없으면서도 부활절은 지켜야 하겠기에 부활절을 요란을 떨고 지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죽인 것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고, 주 예수의 부활엔 동참하고 싶습니다.
백화점 세일하듯 하여야 손님들이 몰려 들것이 아닙니까? 싸게 팝니다.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골라 보세요.
자! 삶은 계란입니다.
삶은 계란이 여기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삶은 계란을 팔고 사는 한국교회 교인들은 주 예수님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가짜들인 것입니다. 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니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믿는 사람으로 간주 되지요.
주 예수님은 마귀나 죽이지 어찌 한국교회 교인들 같이 착하신 성자들 손에서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 예수님은 조폭이나 절간에 스님들이나 죽이지 교인들은 절대로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주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에 천사들도 압니다.
그런데 어찌하나!
베드로가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보고 주 예수님을 죽였다고 하는데 우리는 안 죽였다고 하니 이를 어쩌나! 이런 낭패가 어디 있나!
그래서 베드로가 당황해서 주 예수님을 죽인 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럼! 누가 에수를 죽였지!
누구 예수를 죽인 사람 없소!
주 예수님을 죽인 사람 있으면 냉큼 나와 보시오!
지금도 베드로와 같은 자들이 주 예수님을 죽인 자들을 찾아야겠다고 골목 골목을 누비며 외칩니다.
누구요!
주 예수님을 죽인 자가!
제발 좀 나와 보시오!
주 예수님의 부활은 내가 주 예수님을 죽인 자라는 것이 믿어질 때 믿어집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는 것이 믿어질 때 비로서 부활의 주 예수님도 믿어집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장본인이 아니고서는 주 예수님의 부활은 남의 야기이입니다.
아니 주 예수님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왜? 주 예수의 부활을 좋아합니까?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왜? 설쳐대는 것입니까?
정녕 주 예수님을 내가 죽였다고 믿어진다면 부활절을 이리 지내지는 않습니다. 제발 부활절을 위한 부활절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장통에서 바겐세일 한다고 고래 고래 소리치는 장사꾼들처럼 요란을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란을 떤다고 없는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믿어지지 않는 부활이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를 만난 사람은 놀랍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어지는 사람은 믿는 것을 이벤트화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를 위해서 주 예수님이 죽다니!
내가 주 예수님을 죽인 장본일 줄이야!
세상에 내가 주 예수님을 죽였다니!
그런데 어떻게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주 예수님이 대신 죽고 살아난단 말인가!
이건 반칙이야!
세상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놀라고 또 놀라고 또 놀라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묻습니다.
너 예수 죽였어!
예!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자기가 주 예수님을 죽인 자라는 것을 깨닫고 놀라 기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일평생 어떤 환경에 처하여도 찍소리 못하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자신이 주 예수님을 죽인 자라는 것을 아는 자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풍부에 처하든지, 비천에 처하든지, 주면 주는대로 먹고, 살아지게 해 주는대로 감사하며 삽니다.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난 왜? 이런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내가 왜? 주 예수님 때문에 욕먹어야 합니까?
내가 왜?????
당신은 주 예수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믿어지십니까?
만약 당신이 주 예수님을 믿는다면 조만간 당신은 주 예수님을 버릴 것입니다.
당신이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은 당신의 마음처럼 조석지변으로 카멜레온처럼 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셨다면 그 어떤 환경 에서도 믿음은 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이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부디 이 믿음이 주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첫댓글 당신은 주 예수님을 아세요? 믿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