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대서사시와 성경Ⅲ
-일리아스
그리스의 지리적 지형적 위치는 발칸 반도의 남쪽에 위치하며 지중해와 에게해, 흑해로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교차로이다. 또 유럽과 아시아 쪽을 구별 짓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끼고 있다. 그래서 해협을 통과하는 관세나 통행세를 과다하게 징수하여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또 식량을 얻기 위해 흑해로 진출하다 보니 트로이아와 충돌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그리스 아카이아 연합군과 트로이아와 전쟁의 발발 원인은 무엇일까? 트로이아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유혹해서 트로이아로 도망치자 그리스의 아카이아 연합군이 트로이아를 공격하게 된다. 파리스에게 아내를 뺏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형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함께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여 트로이아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헬레나와 파리스의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에서 시작된다.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제우스)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기에 신이 아닌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아킬레우스이다.
결혼식 피로연에 에리스(불화의 여신)라는 여신은 초대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황금사과’를 보냈는데 거기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로 쓰여 있었다. 그러면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가? 에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3명의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경쟁하게 된다. 그 심판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로 결정되었다. 그가 가장 잘생긴 남자였기 때문이다.
세 여신이 내 건 공약은 이렇다. 헤라는 최고의 부와 권력을 제시했고, 아테나는 위대한 지혜와 경쟁에서의 승리를 약속했다.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줄 것이라 했다. 세 여신 중 파리스의 마음을 움직였던 여인은 아프로디테였다. 아프로디테 여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판정하였다. 고대 신화는 바빌론, 그리스, 로마 등으로 연결되었다. 바빌론 우르크의 이슈타르 여신이 아프로디테(그리스)이며 또한 비너스(로마)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최고의 여신으로 판정하여 약속대로 최고의 미인인 헬레나를 얻어 트로이아로 돌아갔으나 헬레나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레우스의 아내였다. 그래서 아내를 찾기 위해 형 아가멤논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불화로 시작된다.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가 전리품으로 잡혀간 딸 크리세이스를 되찾기 위해 아가멤논을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 그래서 아폴론에게 그리스인들에게 복수해 주기를 간청했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도록 간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겼다. 이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킬레우스는 자기의 명예가 실추되자 아가멤논에게 분노하게 된다. 어머니 테티스에게 하소연하여 그녀의 아버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그리스인들이 어려움에 처하도록 했다. 그 결과 트로이아 연합군에 의해 그리스 연합군은 패배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의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창과 칼을 들고 전쟁에 가담했으나 헥토로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으로 아가멤논에게 분노가 헥토르에게로 분노가 넘어갔다. 여기에서 두 친구의 우정은 길가메쉬와 엔키두 사이의 우정에서 모티브를 만날 수 있다. 일리아스의 절정은 아킬레우스와 헥트로 사이의 전투이다. 그 전투에서 헥토르는 전사하고 아킬레우스가 승리하게 된다.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태워 트로이아 성을 세 바퀴나 돌았다. 제우스는 시신을 돌려주라고 명령한다. 당시는 망자의 예우 차원에서 장례를 잘 치르는 것이 미덕이었다.
헥토르의 아버지 트로이아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무릎을 꿇었다.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의 죽음 앞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시신을 돌려주었다. 헥토르의 장례식이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이다.
해서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의 시작에서 끝까지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다. 10년에 걸친 전쟁에서 마지막 50일의 기록이다. 오디세우스의 지략에 따라 목마 작전으로 트로이아 도성을 함락시킨 전쟁의 마지막 이야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 일리아스는 분노에서 시작하여 장례식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2024. 3. 18. 송창현 신부 세 번째 강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