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임실의 삼요정三樂亭과 양요정兩樂亭
임실 운암면 선거리仙居里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의 점심 초대를 받았다. 읍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인데도 골짜기가 구절양장이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도 마을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에 비하면, 국도변에 있는 우리 고향은 도회지같다. 아무튼, 친구의 집 바로 위에 무슨 기념비가 흘끗 보여 올라갔다. 비문이 상당히 장황한데, 제목이 <三樂亭(삼요정)의 옛터>이다. 내용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곳이 구한말 전북지역 민족교육의 요람지라는 것이 아닌가.
삼혁당三革堂 김영원金榮遠(1851-1919) 선생이 이곳에서 후학들을 길렀는데, 그중에도 임실 청웅의 박준승朴準承(1866-1927) 선생과 전남 해남의 양한묵梁漢默(1862~1919) 선생이 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한 그분의 제자라는 것이다. 두 분 모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3.1만세운동으로 선생과 제자들이 몽땅 체포, 수감되었는데, 일제는 항일독립운동의 발상지라며 삼요정을 강제철거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삼요정은 인근에 2002년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복원한 것이다. 삼요정三樂亭은 산과 물이 잘 어울려 자연환경이 좋고, 학문을 연마하기 좋으며,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호 삼혁당은 김영원 선생이 1894년 천도교 지도자로서 반외세, 반봉건을 기치로 한 동학혁명에 참여했고, 1904년 삭발을 하여 갑진개혁운동에 동참했으며, 1919년 민족독립을 위해 3.1혁명 전개 등 세 번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뜻으로 지었다한다. 옛터에 기념비를 세우고, 삼요정을 복원한 것은 민족정기의 고양 차원에서도 아주 잘한 일이다.
내친 김에 그곳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박준승 선생 생가를 찾았다. 동네가 배 모양이라 하며 청웅면 주치舟峙마을, 박선생은 1897년 천도교의 전라도 수접주首接主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와 배일사상 전파에 힘쓰다 1919년 손병희 등과 3.1만세운동에 참여, 2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재판과정에서 불요불굴한 항일정신을 보이는 등 투쟁했으며, 이후 민족종교 재건에 노력했다고 한다. 정읍 산외면에 박준승기념관이 있다한다.
또한 김영원 선생을 알게 되면서 박준승 선생과 양한묵 선생도 알게 된 것은 수확이었다. 양선생은 이완용 처단의거사건에도 깊게 연루됐으며, 화순에 양한묵기념관이 있다한다. 3.1운동 후 56세 나이로 33인 대표 중 옥중에서 최초로 순국했다.
한편 전북지역 민족교육의 요람이자 항일독립운동의 발상자인 삼요정을 안 후, 옥정호 출렁다리 주변에 그 이름과 비슷한 양요정 정자가 떠올랐다. 원래 양요정은 임진왜란 때 낙향해 자연을 벗 삼으며 제자들을 길렀던 성균진사 최응숙崔應淑(임란후 호성공신 책봉)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에서 따와 호를 양요정이라 하고, 450여년 전에 지은 정자이다. 섬진강댐 확장으로 수몰돼 현재의 요산공원樂山公園으로 이전했다. 임실군은 최근 요산공원에서 붕어섬과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건립, 개장하여 ‘관광임실’로 발돋움하고 있다. 혹시 내 고향 ‘임실’을 지나다 시간이 있으시거든, 양요정과 출렁다리 그리고 삼요정과 박준승생가를 들어보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