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火葬
공원 묘지 곳곳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비록 작년 대홍수로 곳곳이 파여지고 무너져 내려 벌건 황토가 속살을 내비치고 있지만 대지의 에너지는 막을 수 없었다.
겨우내 숨어 있던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아쉬운 봄빛을 재촉하고 있다. 아직 삼월이라 바람은 귓불 아리도록 차갑게 느껴졌다.
아마 그 바람은 태백산맥에 아직 남아 있는 차가운 잔설들의 체온을 실어서 온 때문이리라. 하늘에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해가 막 져서 분홍빛으로 벌개진 하늘로 철새들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바람에 몇 번씩 라이타 불이 꺼져 겨우 한 모금 연기를 내 뿜었다. 담배 연기는 입으로 불어 내자마자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멀리 산 너머로 도시가 보였다. 도시 중간으로 강이 흐르고 그 강은 바다로 이어졌다. 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수평선을 지키고 있었다.
몇 년 만이었던가. 이 도시에 다시 돌아 온 것이. 다시는 찾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이곳을 드디어 오고 말았다. 도시를 떠날 때 아무도 잡지 않았었고, 오늘 아침 다시 이 도시를 방문 했을 때에도 아무도 나를 반겨 주지 않았다.
몇 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에서 나는 흔한 감상에 조차 빠질 수가 없었다.
태백산맥에서 불어오는 아린 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이 나지 않았다면, 나는 눈물조차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눈물이 전부 말라 버렸단 말인가. 고향을 떠난 삼년 동안 눈물로 지세웠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텅 빈 머리와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 온 무심한 삼년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떤 고통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삼년의 세월을 나는 그렇게 흐느적거리며 살아 온 것이었다.
어제 동생으로부터 몇 년 만에 전화를 받았었다.
"형...형수 무덤이 없어졌어."
동생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여전히 동생의 말에는 원망이 숨어 있었다. 그 전화로 동생과의 어릴 때 추억 보다 아내를 바라보았던 동생의 연민의 시선이 먼저 떠 오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 동생은 우리의 신혼 방을 예쁘게 꾸며 놓았었다. 아기자기한 도배지로 다시 신혼 방을 도배를 했었고, 탁자에는 유리로 만든 원앙 한 쌍이 놓여져 있었다.
아내는 몹시도 감동을 했었다. 원앙 옆에 놓여 있었던 메모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형과 형수님, 영원히 행복하게 사세요."
동생은 어릴 때 부터 나를 몹시도 따라 다녔다. 결혼 전 같이 술을 마시며 동생은 형수에게 나를 빼앗기는 것 같다고도 말했었다.
그 후 동생은 아내를 나처럼 따랐다. 바쁘게 움직였던 회사 일로 집에 있었던 아내와 동생은 마치 오누이처럼 가까워졌다. 나긋나긋한 아내의 역활이 무미건조 했던 집안 분위기를 바뀌어 놓았던 것과 동시에, 동생으로서도 무툭툭한 형보다 누나 같았던 아내가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때는 모든 것이 괜찮게 진행이 되었다.
형제간의 오랜만의 대화였지만 덤덤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올바른 안부 인사도 없이 서둘러 전화를 끊은 것은 내가 먼저였다.
동생과의 추억들이 아련하게 가슴 아팠지만 그건 나 같은 놈이 넘보아서는 안 될 것들이어서 애써 가슴을 쓸어 내렸다.
작년 여름의 대 홍수로 공원묘지의 무덤들이 수백기가 유실되었다. 그런데 겨울이 다 지나 이제서야 연락했었을까?
이 의문조차도 나 같은 인간은 가질 자격이 없었다. 난 삼 년 동안 아내의 죽음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이 아내를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을 지도 몰랐다.
비가 억수로 내리고 천둥이 치던 날 먼 여행에서 돌아 온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 주고 내가 잠든 사이에 아내는 집을 나갔다.
몇 일 후 아내는 남대천 하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내가 그녀와 다시 만나서 연락도 없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아내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왔다.
맏며느리로서 친척들에게 인정을 받아 왔었고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엄마였다. 나의 바람이 가끔씩 아내를 정신 나간 여자처럼 멍한 표정을 하게 만들었고 난 그 무표정한 멍한 눈빛에서 섬뜩함을 느끼곤 했었다.
동생의 전화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내 가슴을 열어 흔들어 놓았다. 애써 잊어 왔던 기억들이 망령들처럼 내 온몸을 감싸 안으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장마차에 가서 혼자 마신 소주 두 병의 취기도 나를 쉽게 잠들게 하지 못했다. 밤새도록 악몽에 떨다가 마치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벌떡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생의 전화로 내가 다시 이 도시에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아마 동생도 내가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어떤 의무감만으로 단순히 전화를 했으리라.
내가 이 도시를 마치 혼들린 사람처럼 홀연히 떠났던 것처럼 다시 이 도시에 그렇게 온 것이었다.
도시는 삼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생리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터미날 동네를 빠져 나오자 소도시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나태함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시내버스 창가로 비치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 낮은 건물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 머리에 무거운 보퉁이를 이고 가는 할머니 그리고 뒤에 보이는 파란 하늘........ 내가 태어난 고향의 모든 풍경들이 날 편안하게 해주기는커녕, 내 자신을 이단자로 몰아 붙히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돌아와 가슴을 마구 찔러 대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이 도시에 온 것은 진정 아내 때문이었을까. 아내의 무덤이 없어졌다는 동생의 전화만으로 이 도시를 찾았을까.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나는 미자와의 만남을 겨우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공원묘지까지는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공원묘지로 가는 좁은 도로 곳곳 음지에는 겨울 내내 내렸던 눈이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시체처럼 내 팽개쳐져 있었고 양지에는 뽀얀 솜털을 뒤집어 쓴 약쑥의 새순이 머리를 살짝 내밀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태백산맥에서 내려오는 바람 때문에 외투 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바람에 맞서는 발걸음이 휘청 거렸지만 마치 고행을 떠나는 수행자처럼 걸어갔다.
얼굴이 시려 얼얼했지만 외투에 파묻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라도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죄를 용서 받기 위한 고행을 가장한 얄팍한 행동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았다. 물론 그것으로 내 죄를 용서 받는 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라도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관리 사무소 직원이 유실 된 망자들의 명단을 보여주었다. 난 유심히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아내의 이름을 확인 하고도 난 읽어 내려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또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죽던 날 밤 그녀도 죽었다. 그녀의 눈물에서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눈물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보리밭 옆에 업었던 동생을 잠시 내려놓고 쉬었었다.
멀리 밭이랑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었다.
아버지는 몇 달에 한번씩 집에 돌아 오셨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은 온 집안이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휩싸였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도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문득 문득 본 기억이 있었다. 집안에 돈을 쓸어 간 다음 날도 어머니의 입가에서는 아련한 미소가 있었다. 몇 일이 지나 그 미소가 사라질 때쯤 어머니의 눈에는 다시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었다.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볼 수가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다가 구타당한 다음날 어머니의 눈두덩은 시커먼 멍 자욱이 있었다.
그날은 학교에 가서도 하루 종일 어머니만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어디론가 데리고 도망가야 한다고 어린 마음에도 결심하곤 했었다. 남편과 다시 합쳤다가 끝내 집을 다시나오고 만 그녀와 무작정 남쪽으로 떠났던 것은 어머니가 생각나서였을까. 아이가 보고 싶다고 우는 그녀를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표정한 그녀의 눈에서 아내의 섬뜩함을 발견하고서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이 될 거라고 직감했었다.
두 여자가 죽던 날 어머니 꿈을 꾸었다. 꿈결에 천둥이 치는 사이사이에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녀도 명단에 있었다. 아내와 같은 줄에 묻혀져 있었으니 필히 같이 유실 되었을 거라고 서울에서부터 짐작은 했었다.
"이 분은 가족이 찾아 왔나요?"
관리 사무소 직원에게 그녀의 이름을 가르치며 물었다.
"아니요....몇 번씩 통보했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답니다."
"그럼..."
"아마 ......무연고 처리가 될 거 같습니다."
"유골 있는 곳으로 가보시죠."
유골들은 관리소 뒤쪽 응달진 곳에 천막으로 덥혀져 있었다. 아내의 유골은 동생과 처가에서 확인을 해 놓은 상태였다.
아내의 까맣게 변해 버린 해골위에 아내의 묘지 번호가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다.
"아까 그 여자의 유골은 확인이 되었나요?"
"아니.....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서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난 천천히 유골들을 살펴보았다. 그녀를 금방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유골 머리맡에 묘지 번호가 아니라도 유골 중에서 유일하게 긴 머리털로 그녀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난히 숱이 많았던 그녀의 머리털. 그녀의 머리에서는 기분 좋은 샴푸 냄새가 났었다.
아내는 단발 머리였다. 분명 아내도 그녀처럼 샴푸로 머리를 감았을 터인데, 아내에게서는 그 냄새를 느껴 보지 못했었다.
두 여자의 육신은 전부 썩어 없어지고 까만 잔해만 남은 것이었다. 덧없는 인생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유골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죠?"
"알아서 하세요. 보통 화장을 많이 하죠."
"저 여자는 어떻게 되는가요?"
난 의아해 하는 직원을 향해 중얼거리듯 물었다.
“무연고 처리가 되면 우리가 태워서 없앨겁니다."
"그게 언제죠?"
직원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일 전부 태워 버릴 겁니다."
사무실에 돌아가 서류를 뒤적이던 직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음 날 화장터에서, 두 여자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에 나란히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다. ‘불이야’ 화장터 직원은 혼이 도망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두 여자의 혼은 나란히 육신을 떠나 허공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같은 날에 죽어 같은 날에 태워 졌던 두 여자, 그리고 어머니. 나를 에워 싼 세 여자의 생각에 나는 몸서리 쳐야 했다.
어머니의 반짓고리에서 아버지 사진이 없어진 것은, 아버지가 경상도 어디에서 술집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있은 다음이었다.
내 기억에 몇 년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기다렸었다. 저녁 무렵이면 동구 밖을 서성이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여러 번이었고, 아랫목에는 항상 아버지의 밥그릇이 묻혀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 후, 어머니는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다. 가끔씩 돌아 와 아버지는 어머니가 어렵게 벌어 놓았던 궁색한 돈 마저 쓸어 가 버렸지만,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길이었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내조라고 생각 했던 것일까.
아버지가 살림을 차렸던 안 차렸던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었지만, 어머니에게는 그것으로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여자로서 지킬 수 있었던 마지막 보루마저도 사라지게 만든 것이었다. 어머니가 지켰던 마지막 배수진,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딴 살림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어머니는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 눈물 자욱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는 어머니의 치켜 뜬 눈을 나는 감겨 드려야 했다.
나는 몹시도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나서 나는, 동생에게서 아버지를 원망했었던 나를 보았다.
"형은 인간도 아니야"
나에게 퍼부었던 동생의 원망 섞인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랬다. 나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냈던 내가, 아내를 어머니처럼 보냈던 것이다.
아버지의 난행을 물려받았던 아들. 그것이 내가 고향을 떠났던 이유였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 온 것이었다.
유골이 태워 지는 동안 밖에서 직원과 담배를 같이 피워 물었다.
삼십대 중반의 깡마른 공무원. 시청 공무원으로서는 한직인 공원묘지에 근무하는 인간답게 나태함이 곳곳에서 풍겨져 나왔다. 심드렁한 눈빛과 궁시렁거리는 말투, 그리고 게다가 직원은 나를 이상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듯 여겨졌다.
물론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게의치는 않았다.
"저 여자와 잘 아시는 사입니까?"
"네....조금..."
나는 직원의 물음에 그렇게나마 대답 할 수 밖에 없었다.
"유골이 태워지면 어떻게 처리하죠?"
"갈아서 날려 버려야죠. 뾰족한 수가 없잖아요."
직원은 귀찮다는 듯 대답을 했다.
"그렇죠......"
나는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았다. 날아가는 것이었다. 인간은 죽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혼은 구천에 떠돌고 육신은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었다. 마치 태워진 담배 연기가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제가 대신 저 여자 날려 버리면 안될까요?"
나의 돌발스런 질문에 직원은 한참을 이상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넌 이상한 인간이 맞어."
직원의 얼굴에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렇게 하슈, 대신 항아리에 넣어 저 여자 묘지 번호를 쓰고 사진이나 하나 찍어서 나를 주슈."
직원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나를 주며 괴이하게 웃었다.
"무슨 사연이 있긴 있죠?"
"................"
직원의 물음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원묘지에 다시 돌아 와, 두 여자가 섞여 있는 뼛가루를 바람에 날려 버렸다.
손에는 뼛가루에서 묻은 기름들로 번들 거렸다. 두 여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손에 남아 있었다.
나는 가만히 손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두 여자와는 마지막이었다.
화장장에서 두 여자의 뼈를 분쇄기에 차례로 갈아서 같은 유골함에 넣어 달라는 나의 요구에, 깜짝 놀라는 화장장 직원의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다.
공원묘지는 태백산맥 뒤로 해가 완전히 넘어 가 어둠이 감싸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