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루카11,47-54) 반영억 라파엘 신부 |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트집을 잡는 사람」
“소경 개천 나무래 무엇하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소경이 개천에 빠진 것은 자기 눈이 먼 탓인데 개천을 나무란들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기 잘못이나 한탄하지, 남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남의 허물을 보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요, 모범을 보면 한 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앙심을 품고 몰아붙이며 트집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잘못을 지적당함으로써 마음이 상했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자기들만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혜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으니, 예수님은 욕을 먹을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하실 말씀을 분명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말씀이 진리이니 거침이 없으십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루카11,47).
요즘 정치 현실을 보면,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속이고, 감추고, 덮어씌우고, 발뺌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자기만 살면 되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우리가 뽑았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그 불행을 발판 삼아 행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내년 총선에는 꼭 기도하고,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전기는 진실을 가지고 허구를 말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진실을 포장하려고 하다가 진실을 잃고 맙니다. 진실은 그저 진실로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새 삶이 시작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주님의 지적을 받아들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들이 순종하여 그분을 섬기면 자기의 나날을 행복 속에서, 자기의 해들을 즐거움 속에서 마칩니다”(그들의 나날은 행복으로 뿌듯하고 즐거움이 해마다 철철 넘칠 것이오)(욥기36,11). 그러나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제가 잘못하고 도리어 예수님께 트집을 잡고 성을 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모든 것의 중심에 내세우며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였고,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면서도 자신들은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의 참뜻을 알아듣지 못하였고 성경을 알려고 하는 이들까지도 가로막았습니다. 스스로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조상들을 스승삼아 전철을 밟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혼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재난을 접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그러실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연을 훼손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고 그것이 결국 지구 온난화,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이변, 생명존중의 가치관 결여 등등으로 인간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전쟁물자를 얼마나 많이 만들고 있는지요? 세상은 전쟁 중입니다.
트집을 잡기에 앞서 주님의 견책에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고 말합니다.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히브12,6-7).
묵시록 3장 19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이웃에게 트집을 잡기 전 그 트집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트집인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