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 주일)
신명기 4,32-34.39-40 로마 8,14-17 마태오 28,16-20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신비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세 위격을 지니신 한 분 하느님, 즉 하느님께서는
위격으로는 세 분이지만 본체로는 한 분이십니다. 세 위격으로는 온전히 다르면서 동시에 똑같은
하느님을 진술하기 위해 교회는 삼위일체라는 신학용어를 사용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여타의 신앙 진리가 그렇듯 먼저 체험이 있었고 그것을 이후에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셋이면서 하나라는
논리적 모순을 설명하기보다 그 교리가 정식화될 수 있었던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 체험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출발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느님을 체험하였던 양상에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자신들의
전통 안에서 살았던 그들은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체험을 이미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생활을 통해 예수님께서 바로 육화하신 하느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아들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그분께서 약속하셨던
협조자이신 성령을 체험하였고, 그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일에 자신들의 목숨조차 내놓을 만큼 충실하였습니다.
그러한 세 가지 모습으로 하느님을 체험했던 제자들의 고백과 믿음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전달되었고, 몇백 년 후에 신학자들에 의해 성부이신 하느님, 성자이신 하느님, 성령이신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정식화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였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신비, 곧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피조물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의 사랑, 온전히 성부께 의탁하시며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느님의 아들인 성자의 사랑, 아버지와 아들을 일치시키시며
교회와 세상을 신비로운 섭리와 은총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사랑, 이 모든 사랑이
하나이고 끊임없이 세상과 인간을 향해 흘러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태 28,19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하느님 자녀로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위격이 서로 다른 성부와 성자·성령께서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시듯 사랑은 모든 것을
화해시키고 일치시키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귀하게
바라보게 하고 상대를 진정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것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성호경,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영광송 등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우리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때
성삼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 함께하십니다. 삼위일체 신비를 통해 드러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울대교구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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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환 바오로 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신명기 4,32-34.39-40 로마 8,14-17 마태오 28,16-20
우리 잠깐 이야기 나눠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20).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며 주신 사명입니다.
그 역할은 특정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보여주신 삶을 내 삶으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삶으로 전달됩니다.
청소년국에서 오랜 시간 소임을 하면서 많은 경우 각자의 하느님 체험을 나눌 때 서로에게
큰 울림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 체험을 나누는 자리가 꼭 피정이나 연수 등의 특정한
프로그램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주일학교에서, 단체에서, 어디에서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둘 이상이 모인 자리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체험을 나누자고 하면
무엇을 나눠야 하는지, 이것이 맞는지, 틀리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앞서게 됩니다.
예수님 곁에서 함께 지냈던 제자들마저도 더러는 의심하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도 한편으로는 필요합니다. 단순히 의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고, 더 묵상하고, 더 고민해 본다면 세상 끝까지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하는
예수님과 조금 더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체험을 나누는 데 맞고 틀린 것은 없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인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매일 기도하고 성경도 읽으며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만남이 없다면 나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디에서든 자연스럽게
하느님 체험을 나누며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걷는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먼저 가까운 가족들과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께 감사함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 이번 한 주간 동안 꼭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나요?
대전교구 조수환 바오로 신부
2024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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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현 암브로시오 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 주일)
신명기 4,32-34.39-40 로마 8,14-17 마태오 28,16-20
“보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나시어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시며 약속해
주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여러분들과 함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해주셨던
하느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그렇게 또 함께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요셉의 꿈을 통해 천사가 알려준 이름이 ‘임마누엘’ 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그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위한, 특별히 가난한 우리를 위해 병든 이를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해 주시며 새로움의 희망을 주셨고, 그리고 때가 되자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그렇게 죽으셨다가 말씀대로 부활하시어 다시 또 오늘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버렸지만, 하느님은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도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과 함께면 세상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다 한 것 같기도 하며, 누가 하든 그냥 다 좋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그 믿음 안에 실은 삼위일체 사랑이신 하느님이 그 안에 계셔서
하시는 일이라고 믿는 우리 신앙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이신 하느님 사랑이
따로따로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이시라는 사랑의 신비를 고백하는 축일입니다.
늘 하나이기를 원하지만 다시 또 늘 그렇지 못한 인간의 사랑과 달리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은
언제나 하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하느님의 그 사랑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그렇게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사랑이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 안에 있게 될 때, 삼위일체 하느님은 이제 더 이상 신비로서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만 있어도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하느님 당신도 친히 함께 계셔 주신다 하니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정 이 땅에서
이미 하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5월 성모 성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하느님 사랑 안에 사셨던 성모님이시기에
하늘에서도 그 사랑 안에 계심을 믿으며, 성모 성월의 남은 며칠을 마저 행복하게 보내야겠습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성부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산교구 차성현 암브로시오 신부
2024년 5월 26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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