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만 미카엘 신부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베드로 1서 2,2-5.9-12 마르코 10,46ㄴ-52
주님께 의지하고 맡겨야 할 약점과 장애는 무엇인가?
“나의 장애가 주님을 갈망하고 의지하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축복의 원천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의 행동은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으나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시자,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입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눈먼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분이라면 나의 닫힌 이 눈을 [....]’ 하면서 강한 희망을 갖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의 행동이 이를 증명합니다.
‘나자렛 사람 에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 이내 외치고, 소리를 지르고,
외투를 벗어 던지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눈이 멀었다는 장애는 바르티매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따라서 강한 희망을 갖게 되고, 이 희망은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마침내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눈이 열립니다.
장애는 하느님의 나라를 직접 체험하는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작고 큰 나름대로의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장애가 주님을 더 깊이 갈망하고 희망하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대단한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나의 약점이, 나의 장애가, 주님께 의지하고 희망하는 근거가 될 때,
그 약점과 장애는 축복의 원천이 됩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맡겨야 할,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과 장애는 무엇인가?
나의 약점과 장애가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서울대교구 홍성만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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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베드로 1서 2,2-5.9-12 마르코 10,46ㄴ-52
오늘 복음의 눈먼 거지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친 그는,
많은 이가 그를 꾸짖어도 듣지 않고 예수님께 소리 높여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윗 왕의 자손이라는 고백은 독특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술하며
예수님께서 다윗 가문에서 나온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태 1장 참조).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구세주이심을 확신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치유된 소경과 군중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고 전합니다(루카 18,43 참조).
루카는 사람들이 기뻐하며 찬미하는 광경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소경의 믿음으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치유도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구원받고 치유받은 사람의 특징은 감사와 찬미와 기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를 체험하였습니까?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기뻐한 적이 있습니까?
기쁨의 성인 필립보 네리는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 사랑의 실천을 보여 준 분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하신 분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됩시다.
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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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웅 토마스 신부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베드로 1서 2,2-5.9-12 마르코 10,46ㄴ-52
벌떡 일어나
작년에 1년 동안 시골에 살면서 제일 자주 보았던 사람은 동네 거지였습니다.
그는 시골의 근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지냈는데 늘 두꺼운 옷을 입었고 배낭 하나에
온갖 살림살이를 다 담고 또 옆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습니다.
우리 집에는 한번도 오지 않았지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얻어먹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분들, 그리고 거리의 노숙자들에게는 두꺼운 겉옷이 단순히 옷이 아니라 밤의 차가움에서
지켜주는 이불이고 또 집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르티매오는 벌떡 일어나 그동안의 자신의 삶, 목숨을
지켜주었던 겉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광야의 추위와 흙먼지 바람을 막아주었던 안락한 겉옷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면
그는 결코 눈을 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를 부르던 소리처럼 저를 부르는 소리들 또한 시시각각으로 들려옵니다.
얼마 전에는 새벽 두 시 반에 고해성사를 달라고 벨을 누르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시간이면 잠잘 시간일 것이라고 짐작도 못하나’ 하는 생각으로 야속해하며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찾고 기다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방에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그마한 안락함의 겉옷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그분을 따라나설 수는 없겠지요.
춘천교구 김귀웅 토마스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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