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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다
양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그러나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므로 따르지 않고 도망한다. 예를 들어 지금도 세상에는 많은 음성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전쟁중이다. 그래서 수많은 음성이 뉴스를 통해 나온다. 여기에는 하마스의 음성이 있고 이스라엘의 음성이 있다. 누구의 음성을 듣느냐가 누구를 믿느냐이다. 이처럼 예슈아의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듣는 것이다. 또한 예슈아께서 자신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이기 때문에 양들이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원어에서는 '아니하였느니라'가 현재형이다) 예슈아께서 오실 때 반드시 적그리스도가 먼저 올 것이다. 그러나 예슈아의 양들은 결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곧 영생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요10:1-8)
2 가장 춥고 어두운 겨울에 헌신이 필요하다
겨울 어느날이었다. 수전절이 가까운 때였다. 예슈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함이고 이런 나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 누가 나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린다" 이로 인해 분쟁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은 예슈아가 귀신들려 미쳤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겼다. 왜 수전절 즈음에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일까? 한해중 가장 어두운 수전절의 역사는 바로 순교와 헌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때 다시 이러한 어두운 때가 올 것이다. 누구도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더 영화로운 몸을 주시고 다시 생명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전절에 요구되는 믿음이다. (요10:17-23)
3 수전절의 주제는 '메시아가 누구인가'이다.
수전절에 예슈아를 에워싸고 물었다. "그리스도시면 밝히 말씀하소서" 이때 예슈아께서 여러번 말하였지만 믿지 않는다고 책망하면서 바로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예슈아의 양이라면 그분의 말을 듣고 따랐을 것이다. 왜 이들이 수전절에 '당신이 메시아입니까?"라고 물었을까? 바로 수전절의 주제가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다가올 수록 우린 수전절의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성경적인 메시아인지 아닌지 반드시 정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과 똑같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내가 여러번 말을 해도 내말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다"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요10:24-29)
4 메시아를 분별하는 법
예슈아께서 메시아시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은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하나됨'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들은 예슈아께서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말에 신성모독이라며 돌로 치려 하였다. 이때 예슈아께서 '하나됨'의 뜻을 설명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일(명령들)을 행한다면 나를 믿지 못하더라고 내가 행하는 일로 믿으라 그러면 내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않는 자는 믿지 말아라." 이처럼 '하나됨'의 의미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의 일을 한다면 우리는 예슈아 안에 예슈아는 아버지 안에 그렇게 하나가 될 것이다. 즉 육체의 하나됨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예슈아와 가짜 예슈아가 올 것이다. 이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일을 행하느냐 아니냐이다. 이를 통해 그가 아버지와 하나인지, 아버지께서 참으로 보낸 자가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의 계명 즉 모든 명령의 말씀들이다.(요10:30-38)
마지막 때 용과 싸우는 남은 자손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예슈아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하지 않을까! (계명은 명령들로써 율례와 법도를 말한다.)
5 수전절(하누카)은 헌신의 절기이다
하누카는 히브리어 하나크(חנך바치다, 헌신하다dedicate)라는 단어에서 왔으며 “이방인 손에 있던 성전을 다시 되찾아 하나님께 봉헌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빛의 절기 또는 봉헌절이라고 부른다.
유다 마카비는 헬라의 지배를 받던 시대의 사람이다 (주전 161년) 즉 예슈아의 초림 160년 전부터 예슈아의 오실 길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린 마지막 재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다시 수전절의 역사처럼 예슈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마카비의 아버지 마따디아는 셀류커스 제국의 유대인 박해로 저항을 시작했고 이후 아버지 마따디아가 죽은 후 그의 아들들이 유대인들을 이끌고 전쟁했으며 하스몬 왕조의 초석을 놓았다
6 하누카는 정결한 기름에 관한 절기이다
하누키아에 초를 켜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그때 일어난 기적의 전설도 함께 이야기한다.마카비가 안티오코스 4세를 물리치고 성전을 되찾았을 때 모든 기름이 우상에 의해 더럽혀져서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 대제사장의 인장으로 봉인된 ‘정결한 기름’ 하루치가 남아 있었다. 겨우 메노라를 하루밖에 밝힐 수 없는 양이었다. 그럼에도 불을 붙혔고 정결한 기름을 얻기까지 필요한 8일동안 꺼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놀라운 기적의 절기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위험한 때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그 불을 자신들의 집 밖, 메주자의 반대편에 놓고 밝히거나 밖이 보이는 창문에 불을 밝힌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누카의 기적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이다.(Shabbat 21b)
7 하누카에 가장 중요한 의식
오늘날 유대인들은 하누카때 집집마다 도시마다 저녁에 불을 하나씩 늘려가며 키면서 이 절기를 지킨다. 8일째가 되면 모든 초에 불을 붙이게 된다.하누카의 기쁨은 전쟁의 승리와 성전의 회복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의 승리를 위해 가장 어두운 때에 밝게 빛났던 많은 의로운 자들을 기억한다. 또한 8일동안 기름이 지속되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행하셨기 때문에 불을 키는 것은 하누카에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촛불은 일반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30분 안에 초에 불을 붙인다. 초는 불이 붙고 난 후 약 1시간 반 가량을 탈 수 있도록 한다.
8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관습을 버려라
안티오코스 왕은 자신이 정복한 모든 나라 백성이 하나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 정치 경제가 통일되야 한다고 여겼다. 특히 당시 왕들은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절하게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반역과도 같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게 하고 성소에서 제사를 금하고 샤밧과 절기를 금하고 할례를 금하고 율법을 버리고 모든 규례를 바꿀 것을 명령했다. 이러한 왕의 명령을 불순종하면 누구든지 사형에 처했다.(마카비1서41~50)
마지막 때는 안티오코스와 같은 적그리스도와 참그리스도가 올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따를 것인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온 백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는 관습을 따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관습을 따를 수 없는 자는 여호와의 법도를 목숨처럼 지키는 자들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용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9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는 제사를 폐한다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서 제사를 폐하고 가증한 것을 세울 거라고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성전은 반드시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적그리스도가 또다시 더럽힐 것이다.(단12:9-13)
10 거룩한 언약을 더럽히느니 죽음을 택한다
키슬레브월 15일 월망에 가증한 신상을 제단에 세웠다. 그리고 율법책을 산산조각내고 불태웠다. 율법책의 소유자도 죽이고 지키는 자도 죽였다. 할례를 시킨 어머니도 죽이고 가족과 시술자도 죽였다. 어머니의 목에 아기를 매달아 죽였다. 또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아도 죽였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언약이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사형시키는 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여 안티오코스는 더욱 분노하였다.(마카비1서54-63)
도대체 율법이 뭐길래, 할례가 뭐길래, 음식이 뭐길래... 죽음으로까지 지키려 했으며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을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생명보다 귀하단 말인가?
11 하나님의 법은 참으로 어리석은가?
안티오코스가 노인을 향해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고 자신을 구원하라. 유대인의 종교를 보면 철학자가 아닌 거 같다.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훌륭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자연의 선물을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은 철학에서 깨어나 헛된 생각을 버리고 나이에 맞게 진리를 따라 철학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마카비4서5:5-12)
어쩌면 안티오코스의 말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릴 수 있다. 돼지고기 때문에 순교를 하다니 말이 되는가? 더군다나 자연의 선물이라는 말이 그럴듯하지 아니한가? 또한 진리를 따라 철학하라고 한다. 안티오코스의 생각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진리이고 먹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고 행동이다. 그러니 돼지고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유대인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12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무덤사이에 앉아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국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보다 거룩하니 내게 가까이 오지마라" 이런 자들 때문에 여호와의 코에서 연기가 나오고 종일 불이 탈 정도로 화가 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 앞에 기록되어 반드시 보응하실 거라고 경고하셨다. 또한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동산에 들어가 돼지고기와 가증한 것과 쥐를 먹는 자들이 다 함께 망할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부정한 음식을 먹고 우상숭배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신다. 이들의 생각(사상,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가증한 행동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65:3-6)(사66:17,18)
안티오코스의 사상과 행위가 여호와의 율법과 다르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죽일 수 있었던 것과 같다. 결국 안티오코스는 하나님의 보응으로 비참한 축음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13 법은 크든 작든 경멸할 수 없다.
노인은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율법으로 삶을 다스리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왕일 지라도 율법에 순종하는 것보다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증한 음식을 먹는 것이 가증한 죄가 아닙니다. 가증한 음식을 먹는 것이 작은 죄이지만 법을 어기는 것은 똑같이 큰 일입이다. 법은 크든 작든 경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율법을 비이성적인 것처럼 비웃을 수 있지만, 율법은 우리의 쾌락과 욕심을 다스리고 우리를 훈련하고 모든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마카비4서5:15-23)
왕에게 굴복하지 않는 용기는 하나님의 법도에 굴복해온 삶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4 하나님을 경외하여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노인의 가치
노인은 자신의 늙은 나이의 가치를 보이기로 결심했다. 젊은이들에게 경건하고 거룩한 법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좋은 본보기를 남기고자 했다. 그는 죽어가며 "주님은 거룩한 지식(윫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당신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영으로 고난을 기쁘게 받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노인의 생명을 누가 빼앗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놓았다. 이유는 노인이 여호와를 경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진정 경외한다면 우리도 예슈아처럼 그리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기쁨으로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힘이다.(마카비2서6:27-30)
15 예슈아께서 순종을 위해 오셨다
예슈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완전하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율법을 완성해서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천국간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면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모두 지키게 하신다는 뜻일까? 우선 '완전하다'의 뜻은 '가득차게 하다, 꽉 채우다' 즉 '충만함'의 뜻이다. 그러므로 예슈아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온 세상에 가득 채우고 충만하게 하기위해 오신 것이다. 사실 '완전하다'의 자세한 뜻은 다음 구절에 나온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가르치고 지키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이것이 바로 예슈아께서 말씀하시는 완전함, 충만함의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보다 더 나은 의를 갖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즉 예슈아께서 우리가 불순종하도록 오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 (마5:17-20)
16 키슬레브월 25일을 하누카로 정하다
마카비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전과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2년만에 희생제물을 바쳤다. 이방인들이 성전을 더럽힌 바로 그날, 키슬레브월 25일에 성전을 정화했다. 또한 초막절과 같은 방식으로 지내며 즐거워했다. 왜냐하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막절에 산과 동굴로 들짐승처럼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마다 이 날을 지키도록 정하였고 예슈아께서도 지키셨고 지금까지도 민족 절기로 지키고 있다.(마카비2서10:1-8)
17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다
이처럼 하누카는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왜 율법(토라)의 준행 여부가 메시아를 분별하는데 기준이 되는지, 왜 하나님의 법도가 생명보다 중요한지 그러나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볼수있다. 마지막 때 용과 싸우는 자가 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고 예슈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키슬레브월에 다시 한번 우리의 등불을 정검하고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우리의 불빛이 어두워지지 않았는지 정검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등불은 모든 신부가 들고 있으나 법을 준행하지 않는다면 빛을 내지 못할 것이다.(잠6:23) 우리가 법을 준행하도록 돕는 것은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다. 할렐루야 (롬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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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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