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사랑하기 / 이정화
어떤 물체든 세 개의 지지대가 있으면 평온히 서 있을 수 있대
우리가 새로 산 의자는 삐걱거리고 너는 얼룩진 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 대수롭지 않게
다리가 여러 개인 생물들을 떠올렸다 사랑한 뒤에 상대방을 할퀴는 사마귀나 미래를 위해 그물을 맺는 거미
그런 생물들의 균형을 만드는 저지대의 행방을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고 컵의 얼룩을 문지른다
너는 자기 위해 안경과 슬리퍼를 벗고
지지대의 튼튼함이 변수겠다
엄밀히 말해 서 있다기보다는 우연히 멈춘 상태가 유지되는 거지
사랑해
너는 침대에 누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얕은 숨을 반복한다
사랑해라는 글자는 세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누구나 견고하다 믿었는데
삐걱이는 의자에 앉은 나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쪽이 제대로 서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의자를 타고 개미 한 마리가 유연히 올라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개미의 다리는 여섯 개로 위태롭게 짝이 맞았다
두 다리를 쭉 뻗으면 발끝에 닿는 너
너는 나를 두고 딴짓하는 것처럼 대화중에 들킨 지루한 눈빛처럼 아무 때나 사랑해 말하기 위해 나를 멈춰둔 것처럼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 계간 <문학동네> 2023년 가을호 (116호) / 2023 문학동네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 이정화 시인 1998년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2023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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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벌로 온몸이 잡초에 뒤덮이는 꿈을 꾼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자라던 확신을 만지면 물러가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다. 생각대로 되는 일이라는 건 없구나. 모든 게 견디기 싫었던 어제와 모든 게 아름다워서 웃음이 새어나오는 오늘. 그러나 어제와 오늘이 같은 세상이라는 게 나를 기쁘고, 또 슬프게 만들었다. 끝과 끝은 닿아 있다는 말을 자주 생각하며 시를 적었다.
나의 시는 유리병에 단긴 흙탕물. 내 글자들이 갖고 있는 흐린 본질. 멈춰 서면 가라앉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마음. 몸속을 부유하는 낯선 이미지를 선명하고 명확하게 떠올리고 싶다.
(…친구, 지인 30여 명 이름 생략…)
시로 숨 쉬는 방법을 일러주신 배정원 선생님, 제 안의 작은 빛을 짚어주신 박상수, 김유진, 편혜영, 김경후, 신수정, 남진우 교수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를 호명해주신 박연준, 이병률, 이영광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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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抄)
「백白의 트릴」 외 4편은 읽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은 응모작이었다. 시 곳곳에서 활달한 상상력과 자연스러운 리듬이 돋보였다. 문장이 파편적으로 길게 이어지지만 그것이 억지스럽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다만 호흡이 시적 긴장감을 빼앗고, 일부 시의 진행이 산문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시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을 느낄 수 있었지만 기본기를 더 연마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자신만의 언어 감각과 리듬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언어의 경제성’을 고려한다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사랑의 역사」 외 5편은 비유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언술이 인상적이었다.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작품임에도 끝내 선택할 수 없었던 건 읽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오타가 감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시’는 종이 위에 놓인 언어의 모양 자체로도 오라(aura)를 발산하는 장르인데(그렇지 않은가?), 하물며 한 자, 한 행, 한 연, 한 편을 이루는 글자들은 시에서 필연적으로 제 쓰임을 다해야 한다. 공모전에 제출하는 작품에 이 정도로 많은 오타가 남아 있다는 건 퇴고의 부족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안타깝다. 부디 언어에 대한 감각을 벼르는 만큼 기본기에 충실한 태도로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무의식 온난화」 외 5편은 마지막까지 고민한 작품이었다. 다른 응모자들이 미시적인 주제에 골몰한 것과 달리 이 응모자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지구온난화나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그려내며 상상과 논리를 고루 담아낸 작품이 많았다. 재치와 아이러니를 사용하는 면모는 언뜻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다만 이야기를 꾸리는 재치는 돋보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 가령 ‘시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을 더 느낄 수는 없었다. 이야기 속에 언술의 비약, 혹은 상상, 능수능란한 언어 감각, 시적 개성 등이 담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록 당선작으로 뽑히진 못했지만, 응모자의 기개를 높이 사며 박수를 보내니 계속 써보시길 바란다.
「골조의 미래」 외 4편은 처음부터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었다. 천천히 읽고 있으면 심상한 가운데 유려함이 드러나는 신기한 작품이었다. 시가 특이한 언어로 평범한 사유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평이한 언어로 놀라운 사유를 드러내는 장르라면 이 작품들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탁보 접기」나 「미워도 사랑하기」는 일상에 드러난 미세한 균열을 발견하고, 그 가느다란 틈에서 거대한 분열의 조짐을 눈치채는 화자의 침착한 언술이 흥미로웠다. 멈춤 속 움직임을, 정적 속 태풍을 찾아내 발화하는 솜씨가 빼어났다. “다른 이유로 공원에 들어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나아가고 있지만 멈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완만하기」)”의 먼 미래와 머나먼 과거를 ‘완만하지만 동시에 비탈진 현재’ 곁에 놓아둘 줄 아는 눈! 이 빛나는 눈을 믿고 싶었다. 부디 본인만의 호흡으로, 멀리멀리 가는 시인이 되시길.
본심에 오른 분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당신이 꼭 ‘시로 말하는 자’로 살아야 하겠다면, 멈추지 마시라.
-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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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 중에 지어낸 말 하나는 산시散詩였다. 산문을 쓰려는 것인지, 산문시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는 모호한 경계. 감정의 오리무중만을 흥건하게 펼쳐놓고는 끝나버리는 시. 이미지를 그러모으지 못하고 문장 한 줄 한 줄을 그대로 허공에 날려버리고 분사하는 듯한 시쓰기가 반복되는 일련의 문학 현상을 나는 그렇게 부르려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 역시 젊은 쪽으로 진화해 왔겠으나 내가 느끼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접한 응모작들에서 산시의 경향은 지독했다. 예심 기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이 우려와 안타까움은 다른 심사위원도 같이 느낀 것이었다.
굳이 ‘산시’리는 말을 붙인 이유는 창작자들이 붙들고 있는, ‘시는 어렵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적하려는 데 있다. 그 어려움이란 대개 쓰는 이의 머릿속에 시를 가둬두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아무 이야기도 꺼내놓지 못하고 시 이전의 상태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당선작인 「골조의 미래」 외 4편은 단단한 습작 과정을 엄숙히 , 치열히 통과한 흔적이 엿보였으며 세련된 구조에 천착하고 자신의 발성에 세심히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의 배치를 한두 편 바꿔 읽으니 연인이 같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 여정으로 읽히기도 해 참 입체적이구나 싶어 덥석 들어올렸다.
한때 애인과 함께 살았던 집을 손본다면 그 집은 나의 것이 될 수 있는가(「골조의 미래」) —공원 건너의 콘크리트 건물도 저렇게 서서히 부서지는데(「완만하기」) —사랑이라는 감정은 세 개의 지지대가 필요한 것이며(「미워도 사랑하기」) —같이 산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빛나는 일이(었)고(「식탁보 접기」) —운전중에 막힌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을 무참히 마주한 두 사람은 감정을 연명할 수 있을지(「커브」)…… 이런 서사의 흐름으로 따라 읽으니 각각의 시가 가진 묘한 담백함들이 하나의 액자 안에 들어가 영상으로 안착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기」 외 4편은 씩씩한 서사가 돋보여 놓기 아쉬웠다. 「백白의 트릴」 외 5편은 나를 새로운 공기에 취하게 하면서 뇌 속까지 금방 따뜻하게 만들었다. 「무의식 온난화」 외 5편은 분명 새로웠으며 모호함조차 호기로워 이 예비 시인이 과연 누구인지 여러 번 궁금하게 했다.
단 한 편의 좋은 시만 고르자면 별 고민 없이 열 편 정도의 시가 손에 들어왔겠지만, 그 한 편의 시만 세상에 내놓고 마는 지면이 아니라는 점, 한 편의 시만 잘 쓰는 신인이 아니라 시집 한 권을 충분히 밀고 나갈 만한 서랍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점 때문에 더욱 욕심을 내야 했다.
-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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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습작에 그친 듯한 시들이 있는가 하면, 상당한 안정감을 지녀 완성품에 가까워 보이거나 활달한 감각과 상상력을 유난히 경주하는 시들 또한 많았다. 흔히 서정시라고 알아온 범위의 작품들은 이제 우세종이 아닌 듯했고 ‘다른 서정’이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더 큰 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중 주목할 만한 응모작들의 취향은 이 둘 바깥이 아니라 둘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응모작들은 어디까지나 이해 가능하고 감식 가능한 범위 안에 놓여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이들이 보여주는 화법상의 친족성―왜 이렇게 닮았지?―이 상당해서 의아한 느낌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작품의 발상과 발성에 모호한 위계를 두거나 선자의 취향을 대입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작품이 자기 개성과 내공으로 정확히 서 있거나 걷고 있는가가 심사 과정에서 자연히 중요해졌다.
「강변 나의 정원」 외 5편에는 문명의 위기를 염려하고 생명의 고유성을 지키자는 주제의식이 배어 있다. 「벽과 추돌」은 이를 다소 길게, 「강변 나의 정원」은 이를 간결하게 적은 작품이다. 후자는 파국에 대한 어두운 예감 속에서도 예외적 가능성에 문득 주의를 빼앗기는, 결구의 방심이 빛나는 가편이다. 하지만 긴 분량의 시들은 전개 과정에서 다소의 흔들림이 보였고 말이 산만할 때가 있었다. 행갈이와 연 구성에 일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는 점도 사족으로 덧붙여둔다.
「무의식 온난화」 외 5편은 ‘인류세’의 파국적 진행과 종말의 도래로 인한 불안을 알레고리를 통해 표현한 작품인데, 몇몇 관념적인 진술들을 빼면 수준 높은 연작시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 「무의식 온난화」는 ‘열대화’를 겪는 지구를 고열에 시달리는 “여자”의 신체에, 「우체국」은 지구를 더는 출구가 없는 “튜브”에 견주어서 되돌릴 길 없는 재난과 우주 난민이 될 인간의 처지를 충격적으로 환기해준다. 다루기 어려운 문제와 씨름해 이만큼의 결과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알레고리의 매듭이 얼마간 헐거운 면이 있지만, 작의는 좀더 가리고 수사를 예리하게 가다듬는다면 화자들의 강박적 내면을 더 세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섯 편의 시를 손에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당선작인 「골조의 미래」 외 4편은, 비근한 발상적 내면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다 할 갈피들을 세심히 만지고 되짚는 조용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허세 없이 오래 같은 자리에서 견디며 시작詩作에 몰두해온 자취가 엿보이는데, 의미 맥락이 다소 불분명해도 시상을 이어나가는 여러 지점들에서 남다른 감각이 묻어난다. “우리가 서로에게 천재라고 생각해”(「식탁보 접기」)라든가 “엄밀히 서 있다기보다는/ 우연히 멈춘 상태가 지속되는 거지”(「미워도 사랑하기」)와 같은 문장들에 읽는 눈을 붙드는 직관이 살아 숨쉰다. 이 시들에는, 관계와 상황에 깃든 긴장과 두려움을 조심히 눌러 안고 가려 힘쓰는, 어떤 유정한 태도와 품이 있다. 이 힘없는 힘이 흐르는 차분한 행간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이영광 (시인)
— 계간 <문학동네>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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