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보급 이후 서점이나 공연장, 백화점, 시장 등에서 물건을 살 때, 즉석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도서·공연 리뷰, 제품 평가 등을 보고 구입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다양해져서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속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경우도 많다. PC 시절 유명했던 파워 블로그들은 협찬이 주업(主業)이 된 지 오래고, 곳곳에 광고성 글만 넘쳐난다. 최근 인터넷에 널린 정보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재(再)가공하는 정보성 앱(응용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 수산물 가게. 유원명(34·여행업)씨가 횟감을 구입하고 있었다. 이 가게, 저 가게 돌며 싼 곳을 찾던 평소와 달리, 그는 '인어교주해적단'이란 스마트폰 앱을 들고 가게를 찾았다. 그는 "생선이 얼마나 좋은지 볼 줄 몰라 흥정도 못 하고, 목소리 큰 상인들한테 바가지 쓰는 건 아닌지 늘 찜찜했는데 이제 달라졌다"고 말했다.
생선 구별법, 활어 시세·품질 등 수산물 정보 제공하는 앱부터 화장품 3만4천개 평가 앱까지
기존에 널려있는 정보·지식, 새롭게 기획하는 능력이 팔려
핵심은 수산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진짜 알고 싶었던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 예를 들어 참돔으로 속여 파는 점성어와 틸라피아의 외양(外樣), 썰었을 때 사진, 헷갈리기 쉬운 방어와 부시리(히라스) 비교 정보 등이 인기다. 직원이 5명인 이 신생 기업의 윤기홍 '선장'은 정보 디자이너다. 그는 "매일 같이 오전이면 가게 100여 곳에 전화를 걸어 시세를 업데이트하고, 시장을 방문하고,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제공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자연산 횟감이 최근 수도권 30%, 강원도 50% 올랐다' 등 유통업자만 알던 수준의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정보의 비(非)대칭성'을 해소해 주는 셈이어서 손님들이 바가지를 쓸 위험도 줄었다. 업계 비밀(?)이 공개됐지만, 시장 상인들은 오히려 "젊은 손님이 늘어나 좋다"는 반응이다.
'인어교주해적단' 사례는 오프라인 서점의 혁신을 가져온 일본 쓰타야 서점의 사례를 집중 소개한 '지적 자본론'(민음사)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저자인 마스다 무네아키 사장은 "상품과 유통 플랫폼이 넘쳐나는 지금은 고객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을 기획하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능력이 팔리는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쓰타야 서점 역시 디지털 시대를 맞아 단순히 '책'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목표에 따라 기존의 서적 분류법을 무시하고 독자가 필요로 할 만한 내용을 담은 책끼리 모아 놓는 정보의 '재(再)배열'을 통해 혁신을 이뤄냈다.
'글로우픽'이란 화장품 평가 전문 앱은 파워 블로거나 여성지에서 주로 소개하는 대기업 제품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화장품 정보가 많다. 11일 오후 이 앱에는 클렌징·베이스메이크업·마스크팩 등 제품 3만4000여 개가 등록되어 있었고, 60만 개 이상의 리뷰를 바탕으로 순위가 매겨지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많을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구조. 일반 이용자들의 지식이 모여 전문가와 파워 블로거가 가졌던 '권위'를 무너뜨린 셈이다. 공준식 대표는 "이제 역으로 우리가 화장품 회사들에 분석 리포트를 팔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장(市場)의 정보는 투명하지 않았다. 정보를 많이 알거나, 남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갑(甲)의 위치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 모델이 무너지기도 한다. 직장인 필수 앱으로 통하는 '잡플래닛'엔 웬만한 대기업 연봉에서 회사 분위기, 면접 기법까지 시시콜콜한 정보가 다 올라온다. 단 조건이 있다. 정보를 보려면 자신의 연봉 정보도 '까야' 한다. 이를 통해 각 회사 인사 담당자들만 알던 정보를 누구나 알게 됐다. 현재 약 3만6000개 기업에 대해 약 76만 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누군가 허위로 정보를 올려도 이용자가 많으면 실제 수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제 누구든 아이디어가 있으면 정보(지식)를 새롭게 디자인해 팔 수 있는 '지적(知的) 자본'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