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인 내가 관공서엘 드나든다.
나의 일로 닥친 어머니의 뙈약대기 밭 이전은 손을 놨다.
면사무소나 군청 등기소 등을 다니며 처리해야 할 일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
조카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바보의 사회적협동조함 설립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에 가 공증도 해 보고
등기소도 가보고, 마지막엔 세무서도 가 본다.
단번에 되는 일이 없고 두번 이상 다녀온다.
그래서 대서소나 법무사가 필요하겠지.
마지막이라며 바보가 벌교세무서에 가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오기를 부탁한다.
차를 끌고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가뭄이 심해 많은 비가 내리길 바라지만 꼴새는 그리 많이 내릴 것 같지 않아
우산도 없이 그냥 나간다.
벌교세무서에서는 이제 얼굴을 아는지 서류를 한참 검토하고 등록증을 발급해 준다.
대서 후배가 소장으로 부임했다는 축하 현수막 핑계로 올라가보려다가 참고 나온다.
나도 날 드러내보기 좋아하는 놈인가 보다.
기쁜 소식을 바보에게 전하고 인호 아버님 장례식장에 갈 시간을 보낼 산행을 찾는다.
비가 어중간하다.
제석산 등을 포기하고 읍사무소 지나 채동선생가로 간다.
문성훈이 관리한다는 채선생의 생가는 자물통이 걸려 있는데 잠겨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밖에서만 보고 안내판을 찍고 부용산으로 오른다.
가는 비는 겨울 점퍼로 가릴 만하다.
작은 아파트와 홍교 뒤로 낙안의 백이산이 보인다.
충혼탑을 돌며 노랗고 빨갛게 남은 단풍을 본다.
탑 안에 많은 이들의 위령을 모셨고 작은 글씨로 이름을 새겨 두었다.
탑 뒤로 작은 밭을 끼고 도니 채선생 부부의 무덤이 나온다.
빨간 동백이 가득 피어 있다.
이은상 작사 채동선 작곡의 가고파를 새긴 비를 보고 잠깐 오르니
부용산 노래비가 서 있다.
안치환의 부용산 노랠 불러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부용산오리길 큰 돌비를 보고 낙엽을 밟으며 계단을 올라 부용정에 간다.
지허스님의 발문이 적힌 붕요정기가 나무 사이에 보인다.
2층 누각인 정자는 넓직하다. 텐트 매고 올라와 잠자고 싶은 곳이다.
내려오며 빨간 산수유를 찍으며 구례 산동을 생각한다.
다 지나간 일이다. 내게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는 지난 일을 어떻게 내 속에 남겨두고 오늘을 맞이하는 것일까?
아랫쪽에 남은 빨간 단풍을 보며 멀리 은행나무를 본다.
부용산으로 오르는 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무덤들이 계단같은 밭사이 낙엽쓰고 누워있다.
태백산맥에서 본 억울한 죽음들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른다.
갈림길에서 전동산성 길은 다음을 기약하고 낙엽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부용산성쪽으로 걷는다.
이 순간을 나의 최전성기라고 하자?
작은 부용산성의 흔적을 보고 용연사쪽으로 내려오니 긴 데크 계단이 있다.
원동마을의 송선생 묘소도 가 보아야 할 곳이다.
용연사에 들러 발소리 죽이고 작은 전각들을 지나간다.
아반떼 승용차가 길가에 서 있는데 절은 고요하다.
조규하 지사의 공덕비를 보고 내려오며 차밭 대나무 뒤로 작은 부도가 보여 올라간다.
영광정씨 부부 유골탑이다.
언젠가 지허스님이 형님이 교직에 잇었던 정병휘라고 한 말이 아슴프레 기억난다.
앞쪽에 사리탑에 그 이름이 보인다.
용연인지 거북이가 물없는 연못에 있는데 거기가 용연인 모양이다.
석지허가 어디만큼 왔니 당당 멀었다 라고 돌에 새긴 글을 본다.
어렸을 적 놀이하며 주고받던 말이 시가 되어 내게 온다.
그래 난 당당 멀었다.
월곡마을에서 올라올 때 본 부용산오리길 돌비를 보고 노란 은행잎 가득한 구빗길을 돈다.
언덕과 편백나무에도 노랑 잎이 걸려있다.
겉옷이 젖어 물방울이 흐른다.
도서관 주차자에 차르르 옮기고 양복을 들고 산수탕에 들어간다
손님이 여럿이다. 빗속에 나와 농협에 가 현금을 찾아 인호네 장례식장에 간다.
의회 친구가 밖에 나와 전화를 하고 있고 안에는
평삼이와 희호가 정옥이와 영덕이가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일하느라 서울 친구들이 많이 오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바쁜 척하며 평삼이 소주 한잔 하자고 음식을 부른다.
평삼이가 내게도 한잔 따뤄준다.
6시가 지나 유식이가 선옥이 영숙이랑 들어오는데 난 일어난다.
바보가 바쁘게 들어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성훈이를 불러
집수리에 대한 설명 들을 준비를 한다.
난 술과 매실원액도 모르고 창고에서 큰병을 들고 나와 따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