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왕건 <제 130회>
줄거리
견훤은 군사를 일으키긴 했지만 아버지를 공격할 수는 없음에 깊이 갈등하며 괴로워하고, 최승우에 대한 능환의 불만은 깊어만 간다. 아자개는 아들 용개에게 사불성을 맡기고 고려로 떠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주만이 냉담하다. 한편, 반란을 준비한 이흔암 일당은 환선길의 잔당과 합류하여 아자개 일행과 그들을 맞이하러 오는 왕건 일행을 처단하기 위해 잠복하고, 그 소식은 복지겸에게 한 발 앞서 전달되는데......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한결같이 숙연하고 긴장된 표정들이다. 견훤이 분노의 표정으로 그
렇게 옥좌에 앉아있다.
견훤 경들은 들으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짐은 오늘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더이
상의 망신을 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나는 군대를 출병시키기로 하였어. 상주로 가기로 하
였어.
최승우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지금 군대를 보내는 것은 무리옵니다. 이미 고려도 그에 관
한 방비책이 서 있을 것이옵니다.
능환 고려의 방비책이 무서워서 가지 못한단 말인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파진
찬!
최승우 전쟁이란 분명한 승산이 없이는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이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
오나 이 전쟁은 그 승부를 장담할 수 없사옵니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큰 일을 그르칠 수 있
사옵니다. 헤아리시오소서 페하.
능애 그렇지 않소이다 파진찬. 대백제국의 폐하께오서 더이상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서
는 아니되오이다.
신덕 폐하, 한번 더 살펴주시오소서. 파진찬의 이야기가 일리있사옵니다. 틀림없이 고려
는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우리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만한 군사적 조치가
끝나있을 것이라는 말이옵니다. 노여움을 참으시고 한번 더 헤아려 주시오소서 폐하.
능환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들이 되었는가. 우리 군대가 설혹 다소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일세. 이는 우리 백제의 체면에 관계
된 일이야. (견훤에게) 폐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싸울 때 싸우지 못하고 옳지 않은 일을
그저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다면 어떻게 이 시대를 주도하고 선도하는 제국이라 할 수 있겠
사옵니까. 군대를 보내시오소서. 폐하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사옵니다.
애술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미 성심을 굳히시어 군대를 파병키로 하신줄로 아옵니다. 선
봉은 신이 맏겠사옵니다.
김총 신 김총 아뢰옵니다. 이미 고려와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된 것으로 아옵니다. 아자개
어르신께서 고려로 가신다는 것은 이 백제국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옵니다. 기필코
막아야 하옵니다.
견훤 그래, 그래서 짐도 이렇게 그대들을 부른 것이야. 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어. 어쩄든
이대로는 안돼. 도저히 부끄러워서 안돼. 애술장군.
애술 예, 폐하
견훤 황도에 있는 군대를 이끌고 상주로 가라. 가서 짐의 영을 대기하라.
최승우 폐하 한번 더 생각하시오소서. 실리가 적은 싸움이옵니다.
견훤 그만하게 파진찬. 이미 군대를 보내기로 정하였어. 김총 장군도 함께 가라.
김총 예, 폐하
견훤 신덕 장군과 지훤 장군은 후속군을 준비하고 장군 박영규는 제 3군을 준비하여 장
기적인 전투에 임하도록 하라. 그리고 본떄를 보여주도록 하라. 대백제국의 자존심을 살리도
록 해! 알겠는가!
신료들 예, 폐하.
견훤 당장 떠나라. 당장들 전선으로 가라!
신료들 예, 폐하
견훤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그의 표정에서
씬 길
애술과 김총이 백제군을 이끌고 가고 있다. 끝없는 황톳길이 백제국의 깃발과 군사들로 가
득차있다. 그들이 카메라 앞을 지나쳐 그렇게 멀어져 가면......... 그 어느쯤에서 길가에 숨어
있던 첩자가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와 사라진다.
씬 길
그 첩자가 급히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씬 낙동강 전선
배현경과 홍유, 유긍달과 금식이 강변 긴 전장터를 돌아보고 있다.
금식 아직까지 이 낙동강 상류지역은 우리 고려군의 영역이옵니다. 이 곳에서 조금만 지
나면 고사갈이성(문경), 근품성(산양), 하지현(풍산), 길창(의성)같은 주요 지역들이 나오는데
하나 같이 서라벌로 가는 길목들이올시다. 이 곳을 내어주면 그 진로가 막히는 것이지요.
유긍달 그렇소이다. 백제군이 이 곳을 장악하면 사실상 우리 고려가 신라로 가는 길은 요
원 합니다. 상주가 문제가 아니지요. 절대로 내어 줄 수 없는 곳이올시다.
배현경 금식장군께서 그동안 아주 잘 지탱해 주셨소이다.
금식 허허허, 여기 유대부님은 소장이 평생을 모시는 분이올시다. 더군다나 그 따님께서
폐하의 부인이 되시었는데 어찌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소이까?
홍유 사실 그렇소이다. 열명의 군사가 한 도적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 있소이다. 아무리
우리 장수 박술희 장군이 충주에 진을 치고 와 있다하나 이곳의 사정과 지리에 밝은 토착인
들의 도움이 없으면 오래 지키기 어려운 것이외다. 금식장군의 공이 큽니다.
금식 허허허허, 이거 듣고보니 민망합니다. 이 전선은 이미 오래 전에 폐하께서 대장군으
로 계실 때 확보해 놓은 영토올시다. 당시 견훤왕의 아비 아자개란 노인이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지요.
배현경 허허허, 압니다. 이제 그 노인장을 아주 영원히 고려로 뫼셔 가려고 이렇게 온 것이
아닙니까?
금식 압니다, 잘 압니다. 허허허허........
그 때 저만큼 한 필의 파발이 달려온다. 그는 견훤군의 이동을 보 았던
첩자이다. 금식의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말한다.
첩자 장군, 백제군이 이동을 시작했사옵니다.
금식 뭐라, 드디어 백제군이 움직여?
첩자 예, 장군
금식은 비로소 긴장한다. 배현경과 다른 장수들도 긴장한다.
금식 어느쪽으로 오고 있는가?
첩자 영동과 관성군쪽에서 이동을 시작했사옵니다. 대군이옵니다.
배현경 당연하겠지요. 백제로써 가만히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요.
홍유 사실이지요. 자, 준비들 하십시다. 군을 강쪽으로 졍면 배치시키십시다.
유긍달 자, 금식장군, 우리도 준비를 하세.
금식 예, 대부어른, 부장들은 들으라! 군대를 강쪽으로 이동시켜라! 백제군이 온다! 전투
준비를 갖추라! 대열을 갖추라 하라!
부장들 예 장군! 대열을 갖추라! 전투 준비를 갖추라!
갑자기 강주변으로 가득히 소란이 인다. 긴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들려오는 아자개의 웃음
소리.
씬 사불성 외경.
씬 동성 안
아자개가 기분 좋게 웃고 있다. 몹시 유쾌하다. 그는 새옷을 갈아입었고, 떠날 차림이 완연
해 보인다. 계모도 그렇고, 용개도 그렇다. 유금필과 능산, 김락이 막 예를 끝낸다. 박술희와
최응, 의원1이 보고 있다.
아자개 그래, 그래, 그래...... 그 먼 길을 여기까지 와 주었구만 그래. 이렇게 수고들을 끼치
다니 미안들 허우.
유금필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상부 어른. 저희 폐하께오서 수십번을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
사옵니다. 상부어른을 편안히 뫼셔오라고 말이옵니다.
아자개 아, 편해. 지금도 편해요. 거 참, 오래된 산삼이 좋기는 좋구먼. 아주 몸이 날아갈
것 같애요. 거 참, 신기하단 말씀이야.
계모 그래서 그런지 십년은 더 젊어보이십니다, 나으리.
아자개 젊어보여요? 암, 그럴게야. 내가 이렇게 힘이 나는데 젊어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용
개야,
용개 예, 아버님.
아자개 이제는 네가 이 성의 주인이다. 성을 잘 지켜야 한다.
용개 염려 놓으시오소서, 아버님
아자개 이 성은 또한 이제부터는 고려의 성이다. 고려의 장수답게 품위도 지켜야 한다.
능산 상부어른의 그 말씀이 참으로 듣자옵기 든든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이 사불성은
이제부터 고려의 성이옵니다.
아자개 암, 암 내가 고려로 가는데 고려의 성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그 때 밖에서 보개가 급히 들어온다.
보개 아버님, 급보이옵니다. 견훤형님께서 군대를 일으켰사옵니다.
박술희 무엇이오? 백제에서 군대가?
최응 ...?
김락 너무 염려하실 것 없사옵니다. 이미 그것을 예견하여 저희 장수들이 낙동강 전선에
나가있사옵니다.
계모 허, 기가막혀서. 견훤이가 온다구? 아니, 와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래, 군대가 얼
마나 오고 있다는게야?
보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옵니다. 대군이라 하옵니다.
유금필 만반의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염려놓으시오소서.
계모 이제 아주 제멋대로 나오는구먼. 본색이 드러나는게야. 군대를 앞세워 오다니. 제
부모를 치겠다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 아주 막나오고 있어. 아니 그렇사옵니까 나으리.
아자개 아, 부인, 견훤이로서는 그럴만도 하지요. 아, 을마나 열이 나겠소. 그래도 저는 한
다고 했는데 내가 고려로 가니 말이요.(계속 크게 웃으며)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아마 펄펄
뛰고 있을게야. 하하하하......
계모 그렇겠지요, 그건 그렇사옵니다. 왜 아니겠사옵니까. 하지만 제 소행을 생각해야지
요.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나 말이옵니다.
아자개 암, 암. 견훤이 놈도 언젠간 알게 될 것이오. 아, 재미있다. 그 놈의 화난 표정을 생
각하니까 아주 재미가 있어요. 고연 놈 같으니. 나는 그래도 이번에 아파 누웠을 떄 제 놈이
직접 찾아와 안부를 물을 줄 알았어. 헌데 그게 아니더라구. 역시 그 놈은 더 이상 안되는
놈이야. 암, 헌데 대주는 어디갔나?
보개 오다보니 밖에 서있는 것 같사옵니다.
계모 어이구, 나는 그 애가 계속 걱정입니다. 도대체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 정말 걱정이
예요.
박술희 소장이 나가보겠사옵니다.
아자개 그래, 그래. 술희가 좀 나가봐요. 어서 나가봐.
박술희가 나간다. 아자개는 계속 옷을 매만지며 그렇게 갈 준비를 하고 있고.
아자개 자 부인, 어서 준비하십시다. 기왕에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자꾸 뜸들이지 말고,
계모 예, 나으리. 용개야, 차비는 다 되었느냐?
용개 예, 어머니. 이미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아자개 그래, 그래. 가야지. 이제 가야지.
최응 .......
씬 동 밖 마당
대주가 서있다. 먼 산을 보며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다. 박술희가 다가온다. 그들 저편으로
아자개의 떠날 준비들이 부산하다. 아자개 부부가 탈 황금마차도 보인다.
박술희 대주낭자, 여기 계셨소이까.
대주 ...(보다가 외면한다)
박술희 아직도 소장이 원망스럽습니까, 낭자.
대주 이제 다 끝난 일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소이까. 기분들이 참 좋으시겠구려. 모든 일
이 뜻대로 잘 되어서 말입니다.
박술희 제가 진심으로 기쁜 것은 낭자를 모시고 고려로 가는 것이올시다. 얼마나 많은 세
월을 소장이 낭자를 위해 안타까워 한 줄 아십니까?
대주 그래서요? 이젠 다 끝났다, 그런 말이십니까? 내가 고려로 간다니까 계산이 다 들
어맞았다 그런 이야기입니까?
박술희 그럴리가 있사옵니까, 낭자. (애원처럼) 낭자, 이제 그만 이 박술희의 마음을 좀 헤
아려 주시오. 그럴 때도 되지 않았소이까?
대주 (보다가 냉소) 호호호호...... 이미 아버님과 우리 가족이 모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
었는데 나마저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이야기입니까?
박술희 낭자?
대주 물론 일단 가기는 갑니다. 어른들이 가시니 할 수 없이 뫼시고 가야겠지요. 그러나
잘 기억해 두십시오. 세상 일은 그렇게 장군의 뜻대로 다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술희 낭자!
대주 저기 사람들이 나오고 있군요. 떠날 때가 된 모양입니다, 장군.
대주가 그렇게 한쪽으로 간다. 이미 말들과 수행원들, 그리고 짐바리들이 준비되어 있다. 유
금필과 능산, 최응, 김락들이 아자개 일행을 모셔나오고 있다. 대주와 마주치자 그들은 예를
올린다. 대주는 냉랭하게 예를 받는다.
계모 대주야, 이제 떠난단다. 마음 좀 풀어라, 대주야.
대주 ......(대답없이 말 위에 오른다)
사람들도 모두 말 위에 오르고, 세 장수와 보개도 행렬의 앞에 선다. 박술희가 착찹하게 대
주를 본다. 유금필이 아자개 부부에게 마차에 오르길 권한다.
유금필 폐하께오서 두 분을 황제의 예로 모시라 하였사옵니다. 하옵기에 이곳에서 특별히
어차를 제작하였사옵니다. 오르시오소서.
아자개 허허, 뭐 이렇게까지.... 하여튼 고맙소. 자, 부인, 타십시다.
계모 예, 나으리.
박술희 자, 상부어른께서 떠나신다! 향도는 길을 잡아라.
부장들 예, 장군.
이들이 성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열에 서있는 군사들이 환송을 한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마지막 예를 보이고 있다. 아자개가 친절하게 손을 흔들어 주며 그렇게 성문을 빠져
나간다. 용개가 예를 올리며 성 위에서 웃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길
아자개 일행이 그렇게 계속해 가고 있다.
씬 낙동강 전선.
강 건너 이쪽으로 백제군 진영이 보인다. 애술과 김총이 긴장한 표정으로 먼 강건너를 보고
있다. 그곳 아득히 고려의 진영이 보이고 있다.
김총 고려군이 강건너에 와있소이다. 공격을 언제쯤 하시겠소이까?
애술 지금 그게 문제올시다. 생각같아서는 오늘 밤 안으로도 당장 강을 건너고 싶지만,
영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폐하의 영 말이올시다. 군대를 몰아서 가라고 하셨지, 가서 공
격하라는 말씀은 아니하셨어요.
김총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 뻔히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애술 일단 우리를 여기까지 가라 하셨으니 곧 공격령도 내리시겠지요. 기다려 보십시다.
예상외로 고려군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대규모의 병력이예요.
김총 그런것 같습니다.
긴장하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씬 백제 황국 외경.
씬 동 대전
견훤이 방 안을 서성거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다. 그 앞에 능환과 최승우가 함께
있다.
능환 두 장군이 지금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폐하.
최승우 군대를 보내신 것으로 우리 백제국의 의사가 다 전달되었사옵니다. 더는 아니되옵
니다.
견훤 .......
능환 공격해야 하옵니다. 이미 아자개 어르신께서 고려로 출발을 하셨을 것이옵니다. 막
아야 하옵니다.
최승우 아무리 노여움이 크고 속이 상하신다 하더라도 어버이를 치는 자식은 없사옵니다.
능환 어버이가 아니라, 고려를 치는 것이야. 그리고 이제 아자개 어르신은 어버이 자격을
잃으신 분일세. 오로지 우리의 적, 국적이 되신 분일세.
최승우 그래도 부모 자식간은 변할 수 없는 것이옵니다. 폐하, 참으시오소서. 차라리 이번
일은 이대로 잊으시고, 고려군이 모두 상주 일대에 와있는 이 기회에 우리가 필요한 다른
지역을 노리시오소서. 냉정하셔야 하옵니다. 흥분하시면 아니되옵니다.
견훤 (절규) 어우............ 어우.......... 어우.........
견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탁자를 친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
견훤 아, 아. 아버님, 우리가 정말 부자간이 맞사옵니까? 이 자식의 가슴에 이렇게 상처
를 줄 수 있사옵니까? 너무하시옵니다. 정말로........(울컥 피를 토하며) 너무하시옵니다!
그러면서 견훤은 비틀거린다. 피가 입가로 흘러내린다. 놀라서 두 신하가 부축한다.
두 사람 폐하, 폐하...?
능환 무엇들 하느냐, 밖에 내관 있느냐? 폐하를 모시어라! 전의를 불러라! 어서!
견훤 (계속 절규) 오오...... 아버님! 아버님.......!
내관들이 달려들어온다. 박씨와 고비도 들어왔다. 모두들 당황해서 어쩔줄 모른다.
박씨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폐하.
고비 폐하........
능환 어서 뫼시어라, 어서!
견훤은 그렇게 모셔져 가고, 박씨가 중얼거린다
박씨 이러다가 무슨 사단이 나도 나겠구만. 아주 큰일이 나겠어.......
씬 견훤의 침전.
견훤이 누워있다. 전의가 맥을 보고 나서 조용히 말한다.
전의(의원) 폐하, 더 이상 노여움을 내셔서는 아니되옵니다. 폐와 비가 많이 손상을 입
으신 것 같사옵니다.
견훤 물러가라.
전의(의원) 예, 폐하. 탕재를 달여 올리겠사옵니다.
견훤 탕재는 무슨 탕재! 이것이 약으로 나을 병이란 말이냐! 물러가라!
전의 예, 폐하.
견훤이 생각에 잠긴다. 그 한쪽에 박씨와 고비가 보고 있고, 신검, 양검, 금강도 보고 있다.
신검 아바마마, 괜찮으시옵니끼? 그래도 탕재는 드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약은 필요가 없다.
양검 그래도 아버님, 좀 드시오소서.
금강 드시오소서, 아버님!
견훤 잠시 감정이 좀 격했던 것뿐이다. 물러들 가거라.
모두들 예. 아바마마.
박씨 폐하, 홀로 속을 상하시고 삭히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사옵니다.
고려군을 치시고 망령든 아버님을 강제로라도 뫼시오소서!
견훤 ....
박씨 더 이상 아버님이라 생각하지 마시오소서. 그 분은 그럴 자격이 없으시옵니다.
견훤 물러가오, 황후. 다들 물러가오....... 물러가란 말이야!
박씨 페하?
견훤 물러가라고 하지 않소이까!
박씨 (어찌하는 수 없이) 예. 폐하, 가세.
고비 예, 마마.
그들 모두 물러간다.
씬 황궁 어느 전각 일각.
능환이 박영규, 능애, 최필과 함께 이야기 중이다. 능환도 속이 상해 있다.
능환 갈수록 파진찬이 생각이 흐려지는 것 같아. 하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게 없질 않는
가. 파진찬이 대외적인 전략을 맡고부터 하나같이 일들이 엉망이야.
박영규 그렇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사옵니다. 부자간에 싸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싸움이 시작되면 무조건 폐하께서 욕을 들으시게 되어있사옵니다.
최필 그래도 기왕 군사를 움직였으면 공격을 해야지요. 우물쭈물 하는 것이 더 우습게
되었소이다.
능애 맞는 말이오. 고려가 우리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겠소이까? 나도 공격을 하는 쪽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능환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안늦어요. 공격을 해야 합니다. 공격을 해야 해요!
씬 최승우의 처소
이곳에서도 최승우는 고민중이다. 신덕, 민합 등이 함께 있다.
최승우 폐하께서 참으로 많은 상처를 받으신 것 같소이다.
신덕 그래도 일단 공격하라는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파진찬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계신 것 같사옵니다.
민합 사실이옵니다. 지금 싸워서는 아니됩니다. 그럴 때가 아니예요.
신덕 이거 참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소이다. 아니되지요. 그저 속이 쓰리더라도
참는 것이 그나마 덜 잃는 것이지요.
최승우 그렇소이다. 지금은 참을 때이올시다. 참을때예요. 차라리 다른 곳의 전선을 노리는
것이 그나마 상주 일을 잊을 수 있는 길이 될 겝니다.
신덕 공직 장군이 웅주에 가계시옵니다. 그곳에 고려 장군 이흔암이 지금 우리 백제로
오려 한다 들었사옵니다만은........
최승우 그렇소이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그쪽을 통해서 모종의 일을 만들어 보고는 있으나
글쎼올시다, 허허허.......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아직도 모르는 일이겠고....
신덕 그래도 뭔가 일이 잘 되어서 폐하께 위로되실 일이 생겼으면 좋겠사옵니다.
최승우 그러게 말이오.
씬 웅주성 성루.
공직이 부장들과 함께 멀리 성밖을 보고 있다.
공직 이흔암 장군이 철원으로 떠났어. 어찌되엇든 우리 백제는 피흘리지 않고 고려의 성
하나를 얻게 되었네 그려.
부장1 그러게 말이옵니다.
공직 이흔암 장군은 왕건을 죽이겠다고 하는데.... 허허허 글쎄, 그것이 잘 되겠는가. 좀
무모한 사람이였어.
부장1 그러게 말이옵니다.
공직 그러나 잘 되면은 다행이고 못되어도 우리는 성 하나를 그냥 줍는 것일세. 귀추를
기다려보세나.
부장1 예, 장군. 누구보다도 파진찬 어른의 기대가 아주 크신 것 같사옵니다.
공직 왜 아니 그렇겠는가. 지금 우리 백제의 조정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일 것이야.
아무리 망령이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황제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의 나라를 버리고 적국
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이흔암 장군이 잘 해주면 좋을 것인데...... 잘만 된다면 잃
어버린 체면을 조금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인데 말이야.
그런 공직의 얼굴에서
씬 길.
이흔암과 한패인 무리들이 가고있다. 그들은 모두 변복을 했다. 어느만큼 가고 있는데, 앞에
서 한 떼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역시 변복한 환선길의 잔당들이다. 그들은 다가와
예를 올린다.
이흔암 오, 그대들은 내 매형의 수하들이 아닌가?
잔당1 예, 장군. 이미 기별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이흔암 철원의 사정은 어떠한가?
잔당1 황제와 문무대신들이 연일 아자개라는 노인을 모시는 연습에 여념이 없사옵니다.
이흔암 그 아자개 늙은이는 어찌 되었는가?
잔당1 지금 철원을 향해 오고 있다 하옵니다. 이틀 후면 철원에 당도할 것이옵니다.
이흔암 수하들은 제대로 모아 놓았는가?
잔당1 예, 장군. 칼을 잘 쓰는 무리들을 수십명 준비해 놓았사옵니다.
이흔암 이틀 후에 아자개 늙은이가 도성에 도착하는 때를 맞추어야 할 것일세. 모두들 정
신 없는 그 틈새를 노려서 기습을 해야 할 것이야.
잔당1 예, 장군.
이흔암 우리의 목표는 황제 왕건이야. 어떻게든 왕건을 죽여야 한다.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자개 늙은이를 죽일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고려에
망신살을 안겨주는 것이야. 내 뜻을 알겠는가?
잔당1 예, 장군. 이제서야 돌아가신 환장군님의 원수를 갚게되어 기쁘옵니다. 저희들은 목
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이흔암 고맙네, 나도 그러하이. 가세.
그들은 그렇게 함께 간다. 멀리 사라지면
씬 철원 황국 외경.
왕건(E) 무엇이라? 상부 어른께오서 오고 계신다?
씬 동 대전 안
왕건이 눈을 크게 뜨며 묻고 있다. 태평과 왕유, 복지겸이 함께 있다.
왕건 상주에서 출발을 하셨단 말이지?
태평 그러하옵니다. 전령이 한 발 앞서 떠나 지금에서야 소식을 알려왔사옵니다.
왕건 이곳 철원까진 얼마나 걸릴 것인고?
태평 아마도 앞으로 이틀이면 족할 것이옵?다.
복지겸 참으로 큰 일을 이루셨사옵니다, 폐하. 세상이 다시 한 번 폐하께 큰 신뢰를 보낼
것이옵니다. 이것은 고려의 승리이옵니다 폐하.
왕유 그러하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사옵니다. 송악으로 환도하기 전에 이보다도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옵니다.
왕건 이틀이라..... 이틀 후라.... (하다가) 지금 백제에서는 어찌하고들 있는가? 그냥 있을
리는 없을텐데....
태평 백제군은 낙동강 전선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
질지는 모르는 상황이옵니다.
왕건 그럴테지.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열 개의 성을 얻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일세. 그만
큼 중요한 일이야.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열 개의 성이 아니라 백제의 절반을 얻은 것보다도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사옵니다.
왕건 이미 우리 장수들이 나가서 만약의 사태를 주시하고 있소이다. 백제군의 일은 그렇
게 맡겨놓기로 하고 아자개 어른을 모시는데 최선을 다하십시다. 왕학사,
왕유 예, 폐하
왕건 유금필 장군과 능산, 김락 장군들이 상주로 갔소이다만은, 도성 가까이에서 다시 또
마중하는 의례가 있어야 할 것이오. 왕학사가 도성 밖에 나가 맞으시구려. 짐이 도성 문에서
다시 또 맞으리라.
왕유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왕건 거리의 경계도 소홀히 말도록 하오, 복장군. 백제에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올시다.
복지겸 예, 폐하. 만전을 기하고 있사옵니다. 염려 놓으시오소서.
왕건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김장을 못감추고 있다.
씬 철원 저자거리
군사들과 말을 탄 내군 기병들이 경계를 보며 오가는 것이 보인다. 장일과 신방 등이 말을
타고 군사들의 경계상황을 감독하며 지나쳐간다.
장일 철저히 경계를 서라!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알겠느냐?
군관 예, 장군.
신방 수상한 자들이 있거든 즉시 검문하고 신원을 확인하라! 긴장을 놓지 마라!
군관 예, 장군
장일들은 그렇게 그곳을 지나쳐간다. 군사들의 경계서는 모습은 이곳저곳에서 그렇게들 보
이고, 그 한쪽으로 백성들이 지나치며 수근거린다.
백성1 거리가 왜 이렇게 어수선한가?
백성2 아, 소문도 못들었는가? 백제에서 귀한 손님이 온다네.
백성1 손님이라니?
백성2 백제국 왕의 아버지가 고려에 귀순을 한다는 것이야. 우리 폐하께 항복을 해온다는
것일세.
백성1 세상에, 그럴 일이 있는가. 아니, 자기 아들 놓아두고 왜 고려로 온다는가?
백성2 그만큼 우리 황제 페하께서 세상의 인심을 얻고 계신 것이 아니겠는가. 아, 어떻게
백제국 왕의 아비가 오는가, 오기를?
백성1 허허, 참으로 기가 막힌 세상이구먼. 요지경 속이야.....
씬 어느 산길 (석양)
아자개들의 행렬이 오고 있다. 아자개와 계모는 마차 안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아주 느긋하
게 주변 경관을 보고 있다.
아자개 좋아요, 주변 풍광이 아주 좋구먼. 이제 벌써 여름인 것 같소이다, 부인.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차를 처음으로 타보옵니다만은, 정말 좋사옵니다. 이렇게 편
안한줄 몰랐사옵니다.
아자개 아, 황제들이나 타는 것인데 오죽하겠소이까? 허허허...(웃다가 대주를 보며 찡그린
다) 대주는 여전히 못마땅한 모양이구려.
계모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나으리.
아자개 어차피 이제 고려로 가고 있소이다. 거기에 가면 박술희하고 혼인을 시켜야지요. 어
떻게 보면 저도 싫은 눈치는 아닌데 말씀이예요.
대주는 말없이 가고 있다. 박술희가 그 옆에 함께 가지만 관심이 전혀 없다. 유금필과 능산
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는다. 김락도 보다가 웃는다. 최응은 그저 담담하다.
김락 (소근거리듯) 능산 장군, 저 두 사람이 이번에 황도로 가면 정말로 혼인을 하겠소이
까, 어찌되겠소이까?
능산 글쎼올시다. 술희 아우는 열 번이라도 그리하고 싶겠지만, 대주낭자가 문제가 아니
겠소이까. 표정이 아주 심상치가 않아요, 허허허...
김락 소장이 보기도 그런 것 같소이다. 이번엔 제발 좀 잘 들 되야 할터인데 말입니다,
허허허... 아무튼 이번에 최시랑의 수고가 아주 컸소이다.
최응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무얼 한 일이 있겠습니까. 다 박술희 장군의 덕이지요. 아
마 지금쯤 우리 소식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능산 암요, 전령을 앞세워 보내지 않았습니까. 대대적으로 준비들 하고 있을 것입니다.
허허허... 이제 곧 날이 저물 것 같소이다. 가다가 여장을 잠시 풀어야 겠소이다.
김락 그래야 겠소이다.
그들은 그렇게 가고...
씬 철원 황궁 어느 전각. (밤)
김행선을 비롯하여 박지윤 부자, 왕유, 태평, 복지겸, 오다련, 원극유, 입전 등이 모여 있다.
왕신도 보인다.
김행선 폐하께오서 아자개 상부가 오는데 대하여 매일처럼 관심을 크게 보이고 계시오이
다. 이제 만 하루가 지나면 그 아자개란 노인이 이곳에 올것입니다.
원극유 쉬지 않고 며칠간을 그 노인을 맞는 준비를 했소이다. 실수가 있을 턱이 없지요.
박지윤 그 노인네도 대단하지만 우리 폐하께서도 참으로 대단한 성의를 보이고 계십니다.
오다련 하지만 폐하께오서 그 노인분을 아직까지 상부라고 하시는 것은 좀 지나치신 것 같
소이다. 그 노인네도 일단 고려로 오면 폐하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헌데 상부라고 하시다
니요.
왕유 허허허..... 지금 어디 체면이나 격식이 소중한 때이겠소이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리올시다. 얼마만큼 사실적인 이익을 얻느냐 하는 것이지요.
태평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폐하께서 조금 더 숙이시고 예의를 보여드림으로써 큰 것을
얻으시는 것이옵니다. 이번에 아자개 노인이 오시면 페하께 불만이 있던 많은 호족들이 아
마도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것이옵니다.
왕신 소인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번 일은 누가 뭐래도 폐하의 그 인내와 크고 넓으신
포옹력이 빛을 보인 예라 하겠사옵니다.
복지겸 경계 태세도 완벽하고 문무 신료분들의 손님맞이 준비도 참으로 많이 연습을 했사
옵니다. 폐하께서도 흡족해 하실 것이옵니다, 시중어른.
김행선 그래야지요. 이번 일이 철원에서의 가장 큰 마지막 행사가 될 터이니까 말입니다.
잘 되어야지요, 암.
씬 백제 황궁 외경
군사들이 긴장되어 오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최필과 지훤, 신덕들이 군의 행렬들을 보고 있
다.
씬 동 황궁 대전
견훤이 술을 폭음하고 있다. 최승우와 능환이 보고 있다.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견훤 아버님이 지금 고려로 들어가고 계시다고 했는가?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고려로 가신다, 고려로....?
능환 우리의 군대도 이미 낙동강 전선에 진을 치고 있다하옵니다. 본격적으로 적과 대치
하고 있다는 전령의 보고가 와 있사옵니다. 폐하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견훤 (계속 마신다).... 지금쯤 삼한 땅 백성들이 모두 이 희한한 사건을 보고들 있을게야.
이 신기한 사건을 말이야.
최승우 폐하, 망령이 드신 노인어른이시옵니다. 그만 한 생각 접으시오소서.
견훤 접어? 어떻게..... 어떻게 접어?
최승우 어르신의 길은 이미 막을 수 없사옵니다. 철통같은 고려군의 진을 넘어 들어가서도
고려의 황도인 철원까지 가야하는 일이옵니다. 어르신을 뫼시기 불가능한 일인줄 알면서도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차칫 폐하께오서 또 한번 웃음을 사실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이번
일은 여기서 그만 멈추시고 노여움을 삭히시오소서.
능환 아니옵니다. 이미 폐하의 군대가 가 있사옵니다. 우리 군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오소서. 어르신께서 망령이 드시어 가신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납치하여 갔노라
고 대외에 알리시오소서. 결코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서 명분도 세우고 실리를 얻을 수 있사
옵니다.
견훤 이 사람아,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낫지 어떻게 그런 옹색한 변명
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 그렇게 어리석지가 않아. 짐에게 쏟아지는 손가락질과 조소는
이미 시작되었어. 아아, 아......이 중요한 때에 아버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자식의 가슴에 비수
를 꼽는단 말씀이신고......어쩌자고.....
견훤은 마시던 술잔을 상에 내려친다. 술잔이 박살나고 상다리가 다 부러져 나간다. 견훤은
괴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씬 동 황군 일각(밤)
최승우가 능환과 함께 대전 쪽에서 한숨을 쉬며 걸어 나온다. 그들은 어느 쯤에 나오자 잠
시 서서 하늘을 본다.
능환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이찬 어른
능환 폐하의 심기를 그만 혼란스럽게 하시게. 더는 방법이 없어. 전쟁뿐일세.
최승우 ......?
능환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몰라, 이 기회에 그 어르신 때문에 멈칫거리면서 어쩌지 못
했던 상주를 되찾고 고려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그 어른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세. 문제는 상주 땅이야. 우리는 거기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단 말일세.
능환은 그렇게 불만을 드러내며 가버린다. 최승우 혼자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한쪽에서 민
합이 들어온다.
최승우 허허, 일길찬이 아니신가, 아직도 퇴청을 아니하셨소이까?
민합 예, 파진찬 어른. 온 조정이 어수선한데 어찌 소인만 퇴청할 수 있겠사옵니까?.....여
기.....
최승우 이게 무엇이오?
민합 고려와 웅주에서 올라온 장계이옵니다. 막 도착하였기로 가져오는 길이옵니다.
최승우 오, 그래요?
최승우가 민합이 전해준 장계들을 횃불 곁에서 펼쳐본다. 한참 있다가 꿈틀하며 놀랜다.
민합 왜 그러시옵니까?
최승우 이것은 고려의 첩자들이 보낸 것인데 이번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 최응이라는 고려
의 어린 관리라는구려.
민합 오오, 그렇사옵니까?
최승우 (계속 읽다가) 허허, 이런..... 이제 나이 스물이라고 하는구려. 그리고....... 뭐라? 이
번에 상주에 의원과 함께 왔었다고? 의원과 함께...?...아니 그렇다면, 아차차..... 바로 그 아이
였구나.
민합 왜 그러시옵니까?
최승우의 생각으로 상주에서 보았던 최응의 모습이 스쳐간다. 최승우는 한동안 입을 다물
지 못한다.
최승우 그랬어, 그 아이였어.
민합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최승우 아니오.(신음처럼) 아니오........ 고려에 나이 어린 천재가 있다는구려. 내가 그 아이
를 상주에서 본 것 같소이다. 무서운 일이구려...... 그런 신동이 고려에 있었다니. (오기처럼)
하지만, 우리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오. 절대로 그렇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야.
입을 꽉 다문 최승우의 표정에서
씬 철원 황도 (밤)
이흔암 일행들이 저자거리로 들어오고 있다. 얼마쯤 오자, 두 명의 사내가 그들을 맞는다.
사내1 이흔암 장군이 아니시옵니까?
이흔암 누구신가?
사내1 이미 영을 받고 대기중이옵니다. 제가 무리들의 수장이옵니다.
이흔암 오... 그렇구먼....
사내1 이르신대로 무리들을 요소에 배치해 놓았사옵니다. 오늘 밤 저희가 마련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쪽에 외진 주막이 한 곳 있사옵니다.
이흔암 가세.
그들은 그렇게 간다.
씬 어느 주막 외경
마당엔 말들이 메어져 있다. 주막집 부부가 방 안쪽을 기웃거린다. 고개를 묘하게 외로 꼰
다.
씬 그곳 방안
이흔암과 부장들 그리고 사내1이 함께 모여있다.
사내1 검술이 뛰어난 무리들이 목숨을 걸고 장군을 돕기로 하였사옵니다.
이흔암 고맙네.
사내1 저희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환장군님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흔암 암, 모름지기 사내들은 의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야. 우리가 할 일을 알고 있는가?
사내1 예, 장군. 내일 아자개 늙은이가 올 떄에 도성 쪽에 숨어 있다가 황제가 나타나면
기습을 하여 암살할 것이옵니다.
이흔암 우리의 목표는 첫번째가 황제이고, 두번째는 그 늙은이야. 그 늙은이가 죽는 것만으
로도 고려에 치명적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
사내1 그렇사옵니다. 독화살도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이흔암 그렇지. 어쩌면 그런것이 필요할 지도 몰라. 내일일세. 비밀은 잘 유지되었겠지?
사내1 예, 장군. 이 주막집 사내는 옛날에 환장군 밑에서 병졸을 산 일이 있사옵니다.
이흔암 잘 해야해. 오늘은 일단 눈들 좀 붙이세.
사내1 예, 장군
씬 동집 마당
주막집 사내가 방안 동정을 엿보다가 슬며시 한쪽으로 간다. 그 아낙이 놀라서 사내를 부른
다.
아낙 임자, 이흔암 장군이 아닙니까?
사내 ....(끄덕인다)
아낙 아니, 어쩌자고 저런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까? 역적들 아닙니까?
사내 옛날엔 다 내가 모시던 분들이였어.
아낙 세상이 변했는데 당신 죽을라고 작정을 하셨수? 고변을 하십시다.
사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아낙 이미 천지가 새 황제의 세상인데 임자 어쩔려고 그러슈?
사내 우리는 그저 오늘 밤 이 집만 빌려주는 것 뿐이야. 닥치고 있어!
사내가 으름장을 놓고 가버리고 아낙은 혼자 중얼거린다.
아낙 아주 절단이 날려고 작정을 하였구먼, 작정을 하였어... 아이구, 이일을 어쩐대!
아낙은 뭔가 계산을 굴린다. 그리고 모질게 입을 다무는데......
씬 아침의 철원. 저자거리
엄청난 행렬이 가고 있다. 황제 왕건과 더불어 두 부인, 그리고 태자 무와 더불어 김행선을
비롯한 문무신료들이 총동원되어 가득히 가고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내군들과 거리를 뒤
덮은 깃발들과 기병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장관이다. 연도에 백성들이 엎드려 있다.
백성1 아이고, 행렬이 아주 엄청나구먼!
백성2 아, 백제 황제의 아비가 온다는거여!
백성1 볼만하겠구먼, 볼만하겠어!
행렬은 그렇게 카메라 앞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이흔암의 첩자들도 백성들 속에 섞여 보다
가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씬 길
이흔암의 첩자들이 말을 달려 사라져간다.
씬 도성 어느 일각, 숲
숲속 곳곳에 이흔암의 무리들이 숨어 있다. 이흔암이 그들 중심부에 서서 왕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도성쪽에는 내군들의 경계가 보인다.
사내1 장군, 저쪽 성밖까지 황제 일행이 나올 것이옵니다.
이흔암 ....(끄덕인다) 내군들의 병력이 만만치 않구먼 그래. 벌써들 나와서 경계를 서고 있
어.
사내1 역시 독화살이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집중적으로 쏘아 벌집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옵니다.
잔당1 궁예왕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독화살이옵니다. 효과가 있을것이옵니다.
이흔암 효과가 아니야. 끝장을 보아야 하는 것이야! 알겠는가?
그들 예, 장군.
그 때, 한 필의 말이 달려와 첩자 사내가 내려서 다가온다.
첩자 장군, 황제가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이흔암 준비들 하라, 실수가 없어야 한다! 단숨에 일을 끝내야 한다!
그들 예, 장군
씬 도성 근처 길
멀리 도성이 보여 온다. 왕건들이 그렇게 오고 있다. 복지겸과 장
수장이 황제 주변을 호위하며 오고 있다.
왕건 아자개 상부께서 이제 거의 다 오셨다지?
태평 예, 방금전에 그리 연통을 받았사옵니다.
왕건 아, 얼마나 이 역사적인 날인가? 이 일은 두고두고 세인들의 기억
에 남고 전해질 것이요.
왕유 그럴것이옵니다, 폐하.
그들이 도성쪽으로 가까이 그렇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필의
말이 다급하게 다가온다. 내군의 부장이다. 모두들 왜 그런가 보는데,
내군부장 (바로 말에서 급히 내려서며 복지겸에게) 장군! 급보이옵니다! 복지겸
급보라니? 무슨 일인가?
내군부장 폐하를 시해하려는 이흔암의 무리들이 도성 문 주변으로 이동해왔
다는 고변이옵니다.
복지겸 고변? 이흔암이 왔단 말인가?
내군장군 그렇다 하옵니다. 주막집 아낙이 고변을 해왔사옵니다. 어젯밤 그
곳에 무리들이 묵었다 하옵니다.
복지겸이 크게 긴장하며 주변을 본다. 이미 황제들은 도성쪽으로 다가
가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자욱히 숲이다. 잠시 복지겸이 생각 하다가 한쪽을
본다. 내군의 의장병들이 방패를 들고 가는 것들이 보인다.
복지겸 폐하를 뫼시어라! 거기 장부장은 무얼 하는가? 내군들을 전면 배
치하라! 반군들이다! 폐하를 뫼시어라!
갑자기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말들이 이리 저리 뒤엉키고 장수장 이 눈
치채고 내군들에게 호령한다
장수장 반군들이 있다고 한다! 폐하를 뫼시어라! 뫼시어라!
장일 폐하를 뫼시어라!
왕건들 ......(크게 놀라며 긴장)
씬 도성 근처 숲
이흔암이 멀리서 보고 있다가 혀를 찬다. 군사들의 소란이 보인다.
이흔암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다. 저들이 갑자기 움직이고 있어. 아니?
이흔암의 시야로 소란이 일고 있는 왕건쪽과 또한 맞은편으로 나 타나
기 시작한 아자개 일행들이 보여온다.
이흔암 마침 다들 한꺼번에 오는구나.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황제부터 쏴
라! 독화살을 날려라! 독화살을 쏴!
명령일하, 비오듯 화살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내군들이 마구 쓰러
진다. 복지겸이 소리치고 있다.
복지겸 페하를 뫼시어라! 폐하를 뫼시어라! 방패 부대는 무얼 하는가? 화
살을 막아라!
장일 화살을 막아라! 막아라!
그러다 장일은 그중 살 하나를 맞는다. 비틀거리는 장일. 복지겸이 보았
지만 왕건을 보호하기가 더 급하다. 이흔암의 소리가 들려온 다.
이흔암 왕건이 저기 있다! 저쪽으로 쏴라! 왕건이 저기 있다!
왕건 .......
그런 왕건의 충격적이고도 굳어진 표정에서...
<130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