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 플라시도 도밍고 / 호세 카레라스 / 주빈 메타 지휘
다큐멘터리(메이킹 필름 - The Impossible Dream / 57분) / 콘서트(86분)
세계인의 축제, 1990년 로마 월드컵 쓰리 테너 콘서트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제성)
1990년 7월 7일 저녁, 로마 월드컵의 화려한 막이 내린 다음 날, 꿈같은 일이 실현되었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세 명,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고대 로마의 장엄한 건축물을 무대로 주빈 메타가 이끄는 20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카라칼라 황제(211~217년 재위)가 유권자인 로마 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대한 규모로 건축한 로마의 명소 카라칼라 목욕탕에서 열렸는데, 이 장소는 무려 1600명이 한꺼번에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날 콘서트의 기획의도와 스케일이 얼마나 장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황제가 지어 시민들에게 선물한 로마시대의 목욕탕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대중탕과는 개념이 달랐다. 냉탕.온탕.열탕이 따로 있고, 사우나실이 있으며 도서관과 운동시설까지 있었던, 현대적 개념의 일종의 시민종합휴게시설이라고나 할까. 쓰리 테너 콘서트 당시 주빈 메타가 지휘한 오케스트라는 2개가 연합한 대형이었는데도 무대가 차지한 면적은 목욕탕 면적의 30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앞마당에 6000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서며 이 역사적인 로마의 유적은 1800여년만에 다시금 그 위용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의 위풍당당함은 청중들 숫자라기보다는 세 명의 성악가가 차지하는 그 무게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라칼라 온천지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세 명의 테너로 인해 '쓰리 테너'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이 관용어는 곧 테너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세 명의 테너는 메타의 다이내믹하고도 감각적인 지휘봉을 따라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과 이탈리아 칸초네, 나폴리 민요, 유명한 노래들을 엮어만든 메들리를 부르며 성악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쓸 꿈같은 밤을 만들어 나갔다.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그 어떤 테너들도 이렇게 월드컵과 같은 역사적인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서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카레라스의 '페데리코의 탄식'이나 '그라나다'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백혈병을 앓았던 환자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열정과 기백이 불타오르는 절창을 들려주었고, 도밍고는 '오, 낙원이여'와 '별은 빛나건만'과 같은 아리아를 통해 자신의 최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며, 파바로티는 나폴리 민요들과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통해(비록 하이C는 1998년 월드컵 실황에서만 보여주었지만) 그 청량한 음색과 폭발적인 음량의 조화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날 공연으로 인해 파바로티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대중음악분야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레퍼토리로 인식되었다.
더 나아가 '마리아'와 '투나잇', '메모리', '라 비앙 로즈'와 같은 대중 명곡 메들리를 함께 부르고 '오 솔레 미오'와 '네순 도르마'와 같은 테너 명곡을 함께 부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 더불어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청중들 또한 정장 차림의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클래식과 크로스오버의 절묘한 교집합을 파고든, 사뭇 진지하고도 가슴 떨리는 획기적인 공연이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청중들은 점점 흥분해 나아갔고, 마지막으로 앵콜이 연주되면서부터는 대형 락밴드 공연에 못지않은 광적인 열기가 더해졌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쓰리 테너 콘서트는 이렇게 음악 장르의 벽을 허무는 동시에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대명사로 태어났다.
이후 흥행의 보증수표로 자리잡은 쓰리 테너 공연은 94년 미국 월드컵,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더 기획되어 월드컵을 기념했지만, 그 이후로는 역사 속의 기념비로서 남게 되었다. 98년부터는 오리지널 멤버인 지휘자 메타가 빠지게 되엇을 뿐만 아니라, 2007년 먼저 세상을 떠난 파바로티로 인해 이제는 쓰리 테너라는 단어의 오리지낼러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처음으로 모여 황홀경의 폭죽을 쏘아 올렸던 1990년 로마 월드컵 실황이야말로 이들의 예술성이 가장 찬란하게 펼쳐졌던 자리로서, 그들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이후의 그 어떤 새로운 성악가들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극장을 위한 성악 예술이 발전해 온 근 500여년의 역사 가운데 최초로 벌어진 1990년 이날의 감동은 비단 그날 카라칼라 목욕탕 유적에 모인 관객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 날의 공연은, 그 공연을 지켜 본, 월드컵을 사랑하고 쓰리 테너를 사랑하는 수십억이 넘는 모든 지구촌 사람들을 위한 연주회였기에 더욱 그 의미가 깊다. 이 날의 공연실황은 DECCA 레이블을 통해 CD로 발매되어 최고의 판매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오리지널 쓰리 테너'의 영광을 이제 영상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공연 프로그램 ===
01. 칠레아 : 페데리코의 탄식 (아를르의 여인 중)
02. 마이어베어 : 오, 낙원이여! (아프리카의 여인 중)
03. 푸치니 : 오묘한 조화 (토스카 중)
04. 레하르 : 내 마음은 모두 그대의 것 (미소의 나라 중)
05. 데 크레센쪼 : 제비는 돌아오건만
06. 카르딜로 : 무정한 마음
07. 베르디 :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
08. 데 쿠르티스 : 돌아오라 소렌토로
09. 라라 : 그라나다
10. 소로자발 : 그럴 리가 없어요 (항구의 선술집 여주인 중)
11. 죠르다노 : 즉흥시 (안드레아 셰니에 중)
12. 푸치니 : 별은 빛나건만 (토스카 중)
13. 푸치니 : 공주는 잠못이루고 (투란도트 중)
14. 메들리
번스타인 : 마리아, Tonight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태양의 나라, 아름다운 하늘(민요),
로이드 웨버 : Memory (Cats 중)
이곳은 태양의 땅(민요), 오솔길, 장미빛 인생, 아침의 노래, 빈 내 꿈의 도시, 아마폴라 등
15. 앵콜 : 오 나의 태양
16. 앵콜 :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보너스 : 메이킹 콘서트 필름 - The Impossible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