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고개는 ‘실제로는 오르막이나 내리막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고개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자봉산·좌봉산·장원봉은 황학지맥(黃鶴枝脈)으로 황학산을 모산으로 하고 있다.
황학지맥은 팔공지맥 가산에서 분기하여 황학산, 소학산, 요술고개를 지나 금호강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강정유원지까지의 41.1km의 산줄기.
자봉산(406.2m)은 요술고개에서 올라선 첫 봉우리이고, 좌봉산(坐鳳山 427.3m)은 “봉황이 앉아있는(坐) 형상”이라고 이름지어졌으니, 아래 마을 '좌봉동'은 좌봉산이 있는 자리이니 자리 좌(座)자를 써서 '座鳳洞'이 된 것이리라.
이웃한 자봉산은 자료에 '紫峰山'이라고 하니 봉황과 관련한 지역 특성상 기록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듯하다.
장원봉(壯元峰 372.3m)은 예로부터 인물을 배출하는 명당으로,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
달성군 하빈면 하빈천(河濱川)의 발원지로, 골짜기 곳곳마다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정상에 서면 대구광역시가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경부고속철도가 지난다.
용소봉(龍沼峰 318.8)은 연화리 도암지쪽에서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다.
도암마을은 북쪽 용소봉 정상이 바위로 되어있어 암동(岩洞)이라 하였고,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가 이곳으로 피해 와 도자기를 굽고 살았다고 해서 도암(陶岩)이라고 불렀다.
도암지에 연꽃이 많아 연화리(蓮花)가 되었다는데, 도암지의 용이 산꼭대기에 오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마지막 도당골산(130m)은 출처를 알 수 없어 선답자들의 자료를 따랐고, 동쪽 지천저수지의 낙화담(落花潭 139)은 임란 때 왜군의 침공을 피해 부녀자들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으로 공원화되어 있지만 우리는 중간에서 끊었다.
코스: 요술의 고개-442돌탑봉-자봉산-좌봉산-조양공원묘원-장원봉-용소봉-솔치고개-도당골산-(주)소울푸드-신나무골 성지(10km,4.5h)
궤적.
약 10km에 4시간 20분.
고도표.
미리 준비한 표지기.
네비엔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산15-9'를 입력하여 '요술의 고개'에 버스를 댔다.
요술의 고개는 '마환지로(魔幻之路)'이자 'Hill of magic'.
안내판. 무심코 바라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저 호사가들의 능청이 아니겠는가.
산길은 안내판 뒷편으로 숨어드는 숲길.
그늘진 숲길이 워밍업을 시킨다.
30여분 만에 442.1돌탑봉. 실질적인 오늘의 최고봉이다.
마루금을 걷는 길은 고도차가 거의 없어...
자연스레 어울려 걷게 된다. 이는 능력(?)의 차가 크게 나지 않기 때문.
오롯한 산길에서...
철탑을 지나자...
자봉산에 닿는다.
삼각점도 확인하고...
고개를 빼고 조망도 누린다.
10여분을 넘기자 좌봉산. '봉황이 앉아 있는 산'이다.
임도를 만나면 '조양공원묘원'.
잠깐 볕에 노출이 되지만...
<파노라마> 시원한 전망을 제공한다.
공원묘지는 어느곳이나 조망이 펼쳐지는 명당자리.
마루금을 따를 것이나 뚜렷한 길이 나지 않아 공원묘원을 통해 능선으로 붙기로 했다.
다소간 오름을 할 수밖에 없을 것.
묘지 상단부 그늘막에 있는 성모상. 그렇다면 조양공원묘원은 천주교 공원묘원.
능선에 올라 뒤돌아보니 마루금은 묵어있고, 공원묘지 앞뜰이 마루금을 대신하고 있다.
황학지맥 364.9m.
다시 임도를 따르다...
7~8분 만에 우측 숲속으로 수풀을 헤친다. 아무런 시그널이 없으나 나무숲을 헤치면 그런대로 뚜렷한 길을 만나고, 금세 능선에 붙는다.
그렇게 올라선 장원봉.
삼각점.
준비해간 장원봉 시그널을 걸었다.
장원봉에서 걷다보면 황학지맥을 벗어나 우측으로 꺾으며 35분을 걸어 용소봉에 닿는다.
'한덤'님은 지천저수지의 낙화담을 거친 뒤 역으로 올라와 합류하였다.
용소봉은 아래 도암지에서 원점회귀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만인 만갈래 취향으로 선택하는 산행이지만 나중에는 정해진 한 곳에 모이기 마련으로, 소학산을 찍고 온 '망개'님과 또 합류한다.
뚫린 공간으로 건너보는 산하.
평상쉼터에서 잠시 쉼을 하는 장수 부회장.
이 지점의 이정표.
평삼쉼터에서 3~4분 만에 좌측으로 꺾어지는 갈림길.
그 길은 좌측 사면을 비스듬히 돌아 능선을 갈아타는 길이다.
좌측 작은 봉우리를 외면하고 뚜렷한 사면길을 따르다...
도담골산을 가기 위하여 장수 부회장과 떨어져 좌측 작은 봉우리로 올라 능선을 갈아탄다.
그 길은 솔숲으로 뚜렷한 등로가 나지 않았다.
훼손된 무덤을 지나고...
가족묘를 지나면...
묘지로 통하는 길이지만...
작은 개울 건너에 민가가 막아선다.
작은 다리를 건너...
비스듬히 민가를 피해가지만...
좌측 언덕배기에 솔치고개 도로 접근이 용이하지가 않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다리를 건너며 민가 앞뜰로 내려와...
개망초 허드러지게 핀 길을 걷다...
10m 좌측으로 보이는 도로난간으로 개울을 건넜다.
우측에서 올라와 돌아본 모습.
포장도로를 따라 도당골산으로 향하다 도로폭이 넓어지는 지점에서...
숲속으로 바로 들어 갔더니...
의외로 길이 반듯하지만 묵은 묘지를 지나면서 적당히 치고 오를 수밖에 없었다.
좌측 울타리 안엔 상수도 시설.
도당골산은 두 번째 봉우리로 조금 낮은 봉(약 130m).
울타리를 좌측 겨드랑이에 끼고 내려서다...
정문을 만난다. 상수도 시설이다.
더 내려와 돌아본 모습. 나는 화살표 방향으로 빠져 나왔다.
솔치고개의 건너편으론 사유지. 저곳으로 내려올려고 했는데, 길이 없었을까?
'한티가는 길' 이정목.
'한티성지 가는 길'은 칠곡군 왜관읍 가실성당(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신나무골성지, 창평지, 동명성당, 진남문, 한티순교성지까지 45.6km의 길을 종주하는 한국판 산티아고 성지순례길이다.
한티가는길과 조양공원...
칠곡군 산악자전거길 안내도.
계획했던 하산지점인 '(주)소울푸드'앞을 지나...
200여m 아래 '신나무골 성지'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있다.
신나무골 성지.
'한티가는길45.6km' 안내판.
'신나무골 성지'는 천주교 박해시대의 교우촌이자 경상도 지방 천주교 선교의 요람지이다.
신나무골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청송, 진보, 영양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대구로 압송되자 그 가족 및 일부 신자들이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였던 신나무골로 숨어들었다.
1815년 성 김종한(안드레아)의 옥바라지를 위해 그 부인과 아들이 가장 먼저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1827년 정해박해 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다.<자료>
화장실 옆 그늘막에 파킹된 우리 버스.
성지답사를 하게 된다.
김보록 신부(Achille Paul Robert·1853~1922)상.
샤스땅 신부가 나무 밑에 움막을 짓고 전교 활동을 하였는데, ‘신부님이 나무 밑에서 움막을 짓고 피난을 했다’고 하여 신나무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전한다.
대구천주교요람지기념비.
잘 가꿔진 성지 안으로 들어와 불교 문화재를 답사하듯 신나무골 성지를 둘러본다.
한옥기와집은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 십자가 형상으로 지었다고 한다.
안내판.
절집에 신령각이 있듯 성모상을 모신 누각이 있다.
안내판.
전국성지순례 '한티가는 길'에 '신나무골 성지' 스탬프를 찍어 인증을 한다. 1코스가 끝나고 2코스의 시작점이다.
명동성당과 같은 해인 1898년 십자가형 한옥성당을 지었으나 화재로 전소되고, 사진 한 장을 고증으로 2018년 지금의 십자가형 한옥성당을 재현했다고 한다.
산그늘 드리운 오후나절, 산행을 마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냥 옹기종기 둘러 앉아 조촐한 음식으로 산행 허기를 메우며 후담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겼다.
이럴 줄 알았다는 성지 관계자가 테이블 앞의 막걸리를 보고 "빨리 나가달라"고 한다.
먹는둥마는둥 주섬주섬 챙겨 버스에 오르며 화장실 물청소도 깨끗이 마쳤다.
화장실을 이용하며 세수라도 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는 없었다.
돌아 나오며 뒤돌아 보니 우리가 쉬었던 자리는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 像'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