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에 놓이는 것
전영애
밖에 나가면 늘 빠듯하게 학회에 다녀오거나 잠시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 고작인데 이번에 독일에서는 한 가지 일을 더 했다. 아는 사람이 몹시 아파서 문병을 갔다가 환자가 기뻐하는 바람에 매일 두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서툰 안마를 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날, 파티에라도 가는 듯 분홍빛, 초록빛 옷을 곱게 차려 입은 멋쟁이 할머니 한 분이 병실로 들어섰다. 문병객인가 했더니 곧 간호사가 새 침대를 밀고 뒤따라 들어왔다. 다음 날, 환자복을 입고도 여전히 빛고운 액세서리를 갖추어 곱기 만한 그 할머니와도 이야기를하게 되었다. 이야기도중에 갑자기 내 환자가 자신의 탁자 위 작은 약컵에 소중하게 꽂혀있던 네잎 클로버 하나를 집어서 말없이 옆 병상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할머니 역시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그 내민 손에 네잎 클로버가 가만히 놓여졌다. 고맙다는 나직한 한 마디만 들렸다. 영문을 모른 채로 나는 얼른 일어나 약컵부터 하나 더 구해다 물을 받아오는데 곧 병실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둘이 들어와 침대를 밀고 나갔다. 내가 돌본 환자가 옆 환자의 수술시간을 유념하고 있다가 말없는 응원을 보낸 것이었다.
본인은 중한 병에다 수술이 치명적으로 잘못되어 위험한 고비는 간신히 넘겼지만 벌써 6주일째 거기 누워있는 사람이었다. 할머니 쪽은 곱디고운 차림으로 명랑하게 왔지만 혼자서 수술을 받으러 온 사람이었다. 수술은 잘된 듯 다음날 보니 할머니의 고운 표정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문득 내 환자에게 이것 좀 보라며 손을 내밀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펴보였다. 초록빛 도는 까만 돌멩이 하나가 놓여있었다. 언젠가 남편이 여행에서 가져온 선물인데 늘 주머니안 아니면 손안에 있었다고 했다. 조그만 돌멩이는 반들반들 윤이 났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손안에 있었으면 저리 되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저렇게 반들거렸던 것일까. 내 환자가 가만히 한참 그 돌멩이를 쥐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쥐어 보았다. 조금 따뜻하다. 그 돌멩이 하나를 쥐고 저 고운 할머니가 견뎌온 외로움의 세월이, 마치 내가 살아온 것인양 아프게 눈앞에 그려졌다. 두 환자 사이에 건네진 말 없는 말도 들리는 듯했다. “이것 하나 들고 나도 견디고 살았거든. 지금 잠시 아플 뿐, 행복한 당신도 견뎌.” 나마저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거기 내 빈 손바닥 안에도 남아 있는 따뜻함이 보인다.
아득한 이탈리아 토리노의 포 강변. 힘겨운 강연을 끝내고 몹시 지쳤던 나는 인적 없는 강둑에 위태롭게 앉아 쉬고 있었다. 난데없이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전도를 하려는 것 같았다. 푸른 창공을, 빛나는 태양을, 애초에 좋은 뜻으로 세상을 지으신 하느님 이야기를 자꾸자꾸 했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아서 웬만하면 떨치고 싶었다. 이탈리아어는 배운 적이 없지만, 몇 가지 유럽어가 낯설지 않은 덕에, 또 노인이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했기 때문에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 뜻을 전할 수가 없었다. 어떤 언어로도 안 되었다. 마침내 나는 몹시 화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노인은 자리를 떴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대여섯번이나 오른 손, 왼손을 번갈아 굳게굳게 쥐며 “차오(안녕)”를 되풀이했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기나긴 강둑을 천천히 다 걸어서 그 노인의 모습이 아주 사라진 후에야 나는 문득 화들짝 깨달았다. 내가 그 노인인 한 말은 알아들었지만, 뜻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음을. 자살을 할 참인 듯, 외딴 곳에서 맥을 놓고 앉아 있는 조그만 동양여자를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 노인에게 나는 얼마나 못할 짓을 하였는가. 가끔씩 힘겨울 때면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따뜻함이, “차오”가 서려있다. 이제 몹시 아픈 사람들의 손위에 놓였던 작은 돌멩이의 온기가, 또 작은 네잎 클로버의 초록빛이 조금 더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