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정성껏 키워온 꽃들이 새 주인을 찾아 길을 떠난다.
2011년 춘천으로 이사 온 해부터 지금까지,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녀석들이다.
그 긴 세월만큼이나 부침도 많았다. 가장 큰 시련은 다름 아닌 아내의 손길이었다. 15년을 곁에서 보았으면서도 아내는 여전히 잡초와 화초를 구분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다툴 일이 별로 없는 우리 부부지만, 이상하게 꽃 앞에만 서면 작은 분란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잡초든 화초든 저마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면 그만이라고 믿는다. 만물이 저마다의 이유로 태어나 존재하듯, 식물들도 그저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아내는 '있어야 할 자리'라는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다. 아무리 예쁘고 고운 꽃이라도 사람이 정해 놓은 구획을 벗어나면 제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뽑혀 나가기 일쑤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 하나가 돌틈 사이에 채송화로 피어난 적이 있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길목이었다. 밟힐까 싶어 발걸음까지 조심하며 아꼈건만, 어느 날 아침 채송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위틈에 심어둔 돌나물도 마찬가지였다. 소박하고 예쁜 노란 꽃을 보는 재미에 가꾸던 녀석이다. 생명력이 워낙 강해 아무렇게나 놓아두어도 뿌리를 내리고 번져 나갔다.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 역시 어느 날 아침 아내의 손에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갔다.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바라는 나와 질서와 정돈을 중시하는 아내의 생각이 부딪힐 때마다 집안에는 소리 없는 냉전이 흘렀다. 꽃 때문에 아내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은 적도 여러 번이다. 아내는 "내가 당신한테 꽃보다 못한 존재냐"라며 서운한 투정을 부리곤 했다.
요즘도 아내는 아침마다 전지가위를 들고 마당을 서성인다. 돌이켜보면 아내만 탓할 일도 아니다. 내가 글쓰기에 몰두하느라 정원 관리에 소홀했던 탓에 마당은 방치와 정돈을 오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쥐어서 채우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다(持而盈之,不如其已)"라고 했다. 그릇에 물을 끝까지 채우려다 보면 넘치기 마련이다. 지나친 욕심과 고집은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 나의 무관심과 어설픈 열정 사이에서 정작 화초들만 애꿎은 피해를 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시내에 있는 지인의 일터를 찾았다가 썰렁하게 비어 있는 화단을 보았다. 꽃을 채우고 싶어도 구할 길이 없다는 말에 지인을 우리 집 정원으로 데리고 왔다. 우리 집 화초들을 본 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꽃들 가져가서 잘 키워주실 수 있나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인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꽃을 아끼는 이에게 화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마음을 나누는 반려이자 자식 같은 존재다. 내 것으로 간직한다는 것은 그 생명을 돌보고 책임지겠다는 뜻이기에 선뜻 남에게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손을 떠나 다른 이의 품에서
더 잘 자랄 수 있다면, 보내주는 것 또한 사랑의 한 방법일 것이다. 마침 전날 촉촉하게 내린 비 덕분에 뿌리를 다치지 않게 옮겨 심기도 수월했다.
무엇이든 이별은 슬프다. 하지만 내 곁에 두는 것만이 아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손에서 놓아주어야 더 잘 자라는 것도 있다. 꽃을 보내고 나니 아쉬움 한편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15년을 함께한 꽃들아, 새 주인의 손길 아래서 오래오래 피어나렴. 너희가 떠난 자리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겠지.
첫댓글 농사도 그렇듯 꽃도 키워 분양 칠 때 자식농사와 같군요
더 애타지요 ㅎ
새로운 곳에서도 예쁜 꽃이 피겠지요.
사람이 임의대로 옮겨 키우기보다는 제 자리에 두는 것이 꽃을 아끼는 거죠
맞아요. 저도 제 식물들을 누군가에게 분양한다면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그리고 요즘은 당근마켓에서도 식물을 파는데, 식물이 통통하게 잘 큰 거 보면 주인분도 인상이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