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발간을 알립니다
이번에 저의 저서 ‘길목에서 듣는 바람 소리’를 서울 학연문화사에서 발간했습니다.
지인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하와 깊이 감사드립니다.
장 진 호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계명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와 계명대학교 겸임 교수, 대구교육과학연구원 연구부장을 거쳐 달성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신라 향가의 연구』,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손을 쥐면 아무것도 없고 손을 펴면 천하를 쥔다』, 『국어 선생님도 몰랐던 우리말 이야기』(서울특별시 교육청 선정 권장도서), 『우리 문화 그 가슴에 담긴 말』(2015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신라에 뜬 달 향가』, 『우리 문화 그 은은한 향기』, 『그러니까 우리말 이러니까 우리글』, 『선비와 지식인의 대화』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고려가요 동동고(動動攷)」,「국어교육의 맥과 흐름」 등 다수가 있다.
머리말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싱싱 고향별곡’이란 것이 있다. 이 프로에는 전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흥미 있게 보곤 한다. 어느 날 이 프로에 연세가 많은 한 할머니가 나왔다. 늘그막에 혼자 살면서도 이런저런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농산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진행자가 할머니에게 “이런 걸 자식들에게 주면 자식들도 할머니께 효도를 잘해 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하기를,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효도는 어릴 때 벌써 다해 주지 않았습니까? 어릴 때 그 새끼들을 키울 때 얼마나 귀여웠습니까. 그때 이미 효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무슨 효도란 말입니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한 노인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 체험에서 배우고 얻은 결과를 말한 잠언이었다. 정말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좋은 스승에게 참으로 큰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있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은 다 안다. 키울 때의 그 귀여움을. 그 귀여움에서 효도를 다 받았으니 이제 다른 무슨 효도 받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큰 가르침인가!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 있는 ‘꽃상여’라는 시 한 편을 읽고,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다. ‘벙어리 엄마’의 죽음을 슬퍼한 아들의 애절함을 담은 시다. 지은이의 이름도 모르는 작품이다.
엄마 여기가 선남이라구
엄마가 우리 6남매
낳고 키우신 정든 고향
우리 동네야.
이곳에 잠시 들러
노제도 모시고
정든 집 들렀다가
정들었던 이웃과 헤어지려는데
엄마가 쉴 새 없이 드나든
부엌이랑 안방을 돌아 나올 제
엄마의 살으신 삶이 되살아나
엄마의 한을 되돌아 보았제.
울지 않으려 입을 막았는데도
오열되어 나오는 통곡을
멈출 수 없었어.
자식 낳아 키워 보니
갖은 말 다하여 나무랄 때
엄마는 어쨌을까.
엄마 심정 돌아보았제.
몇 번이나 되새겨 봤제.
아마 그랬을 거야.
학교에 따라온 엄마가 창피하다며
비 맞아도 괜찮으니
우산 안 가져와도 괜찮다고
그랬을 거야.
그래도 엄마는
우리 6남매 고맙게 키워 주셨잖아.
그래도 엄마는
인심 잃잖고 사셨잖아.
그래서 엄마는
좋은 날 맞아 가시잖아.
엄마
되돌아보지 말고 잘 가.
아빠 곁이니까 이제 행복할 거야.
동네 분들이
엄마 덕담하던걸
엄만 좋은 곳에 가실 거라구.
시집올 제보다 더 큰
꽃가마 태워
좋은 곳에 가시라고 기도했잖아.
평생 아무 말 못 하시고
사신 우리 엄마의 말문이 열린 날이
오늘이잖아.
엄마의 말이 전부 들리는걸.
그래서 엄마가 좋은 곳에 가는 거지.
이렇게 큰 꽃상여에 태워
한 많던 그 삶을 풀고 가시라고.
-벙어리 엄마 떠나신 날에 부쳐-
벙어리 엄마를 장사 지내던 날 그 아들이 쓴 시다. 6남매를 다 키워 객지로 다 내보내고, 어머니가 꽃가마 타고 시집와서 평생 살았던 시골집에 들러 노제를 모실 때, 흐느끼는 아들의 마음이 그대로 읽는 이의 가슴에 와닿는다. 철없던 어린 시절 엄마가 벙어리라서 남 보기 부끄러운 마음에, 비가 와도 학교로 우산 가져오지 말라고 했던 회오의 대목에서, 그 누가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집올 때보다 더 큰 꽃가마 타고 마지막 가는 그날, 비로소 어머니의 말문이 열려 아들의 귀에 다 들린다고 읊조리는 아들의 오열을 들으면서, 그 누가 목메지 않으랴! 훌륭한 시인들이 쓴 뛰어난 명작 시도 많다. 그러나 나는 무명인이 쓴 이 시만큼 감동을 받은 작품은 없다.
이처럼 우리는 많이 배우지 못한 어느 할머니의 말이나 유명인이 아닌 보통 사람이 쓴 글에서도 감동을 받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또 몰랐던 것을 깨우치며 살아간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 · 25 때는 학교가 군인 부대의 주둔지가 되어 냇가에서 칠판도 없이 수학(受學)하였고 그 뒤 숱한 정변도 겪었다. 늦게 입대한 군 복무 시절에는 김신조 일당이 넘어와 제대가 보류되어 40개월이나 군 복무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 어렵던 옛 시절의 그런 얘기를 해서 무엇하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80여 성상을 살아온 길을 회고하면 지나온 순간순간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고난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러한 삶을 이어가면서 슬퍼서 울기도 하고 기뻐서 웃기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감동하고 후회하고 깨우치고 배우며 살아간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리고 좀 더 가치로운 삶을 지향하고 그러한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그러한 길에 섰던 나의 생각들이다. 몰랐던 것을 알려고 생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살아오는 길목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담았기에 표제도 ‘길목에서 듣는 바람 소리’라 정했다.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들은 바람 소리처럼, 길섶에 돋은 풀잎들이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그렇게 겪고 배우며 정리한 이야기들이다.
앞에서 말한 시골 노인이나 무명 시인의 글이 그러했듯, 이 정직한 삶의 기록들이 지금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이로움과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어놓는다.
2026년 7월
장 진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