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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⑭ :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92 16.07.29 06: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 - 19()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여섯째 날 : 천년의 고도 톨레도(Toledo)

 

특징 :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67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톨레도는 2000년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이슬람정복시대와 가톨릭군주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남겼다.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각자의 종교와 언어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2의 이스라엘로 생각했던 곳이다. 도시 전체가 가톨릭의 관용과 미덕, 순명의 정신을 발산하고 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이 도시를 가리켜 '우르브스 파르바, 세드 로코 무니타'(작지만 천연의 요새로 이루어진 도시)라고 기록했다. BC 193년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에게 정복된 후 톨레툼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주요 식민지이자 카르펜티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6세기에는 서고트 왕국의 왕궁 소재 도시였다. 이곳에서 유명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는데, 특히 제3차 공의회(589)는 레카레드 왕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선언한 중요한 공의회였다. 무어인들의 점령기간(712~1085)에는 중요한 모자라브 공동체(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의 집단)’의 본거지로서 툴라이툴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1085년 알폰소 6세에게 점령당한 후 카스티야 왕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아랍·유대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도시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13세기에 현명왕 알폰소 10세에 의해 설립된 통역사학교인 에스쿠엘라데트라둑토레스를 들 수 있다. 1560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수도로 선택한 이후 시의 중요성이 쇠퇴했다. 참고로 톨레도는 스페인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곳으로 간주되어 시 전역이 국립기념지로 선포되어 있으며, 198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파티마에서 톨레도로 오는 길,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은 광활함 그 자체이다. 무슨 국립공원지역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지만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산악지대 인데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지형은 아니고 그저 구릉으로 이루어진 고원(高原)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톨레도(스페인어: Toledo, 라틴어: Toletum) 시가지로 들어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멋들어진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타호(Rio Tajo) 강에 놓인 2개의 다리 중 하나인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antara)’이다. 이 다리는 산세르반도성() 기슭의 타호강 위에 놓여 있는데, 이 성의 일부는 로마 시대와 무어 왕국시대에 건축되었다. 다른 하나는 13세기에 세워진 산마르틴 다리인데, 이 역시 차창 밖으로 볼 수가 있다. 참고로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이다. 알칸타라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만큼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톨레도가 수많은 분쟁을 겪은 도시인만큼 알칸타라도 부침이 많았다. 또한 협곡에 위치해 있는 터라 홍수가 나서 교각이 떠내려가기도 했다. 톨레도만큼이나 알칸타라의 역사도 파란만장했던 셈이다.

 


톨레도로 들어가기 전 버스가 멈춘다. 그리고 톨레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니 눈에 넣고 가란다. 전망대에 서면 성곽(城郭)에 둘러싸인 거대한 성채 도시인 톨레도를 한눈에 잘 들어온다. 타호강()변의 벼랑 위에 쌓아올린 성벽은 견고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저 성곽 안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가 서로 반목하고 또 공존하면서 압축해 놓은 역사의 산물들이 2000년 이라는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발아래에는 타호강이 흐르고 있다. 톨레도가 오래전부터 전략적 요충지가 된 건 타호강 덕분이라고 한다. 톨레도의 구도심(舊都心)은 말발굽처럼 생겼는데 그 주위 3면을 타호강이 휘돌아 나간다. 3면은 협곡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톨레도는 천혜의 방어요충지가 되는 셈이다. 그런 타호강에 로마시대에 축조된 다리들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까 보았던 알칸타라다리이다.

 


앙증맞은 꼬마기차가 멈추더니 사람들 몇이 내린다. 아마 관광객들이지 싶다. 듣던 대로 톨레도가 관광도시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주차장에 내리면 옛 성벽(城壁)이 나타난다. 허물어진 곳도 보이나 대체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성벽은 대부분 무어인이나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서고트족이 축조한 곳도 있다고 한다. 1085년에 알폰소 6세가 관례적으로 사용했던 푸에르타비에하데비사그라(10세기)를 비롯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건축된 출입구들이 잘 보존되어 있단다.

 


구시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꽤 높이 말이다. 도시가 암석으로 이루어진 구릉의 위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리는 대체로 좁은 편이다. 하지만 듣던 바와는 달리 반반한 편이다. 톨레도가 암석지대에 만들어진 탓에 좁고 구불구불한데다, 경사까지 가파르고 지면은 울퉁불퉁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이다.

 


얼마큼 걸었을까 저만큼에 톨레도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a de Toledo)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스파냐 가톨릭의 수석성당 답게 그 규모가 대단하다. 동서로 길게 뻗은 십자가 형태를 취하고 있는 대성당은 톨레도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기도 하다.

 

 


톨레도대성당 맞은편에는 주교궁이 있다. 그리고 그 옆의 건물은 톨레도 시청이다. 그 사이에 있는 광장을 사람들은 시청사 광장(Plaza del Ayuntamiento)이라 부른단다.

 


톨레도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a de Toledo)은 프랑스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페르난도 3세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오랜 기간(266)에 걸쳐 지어진 탓에 여러 가지 건축양식이 혼합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1225년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난도 3세의 명에 따라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493년에 완성되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현재의 엄청난 규모(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현재는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본당 보물실에는 16세기 초 엔리케 아르페가 만든 성체 현시대(Custodia)가 보관되어 있는데, 5,000개의 금 · · 보석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무려 180kg, 높이가 3m가량 된다. 또한 본당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성가대석에는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전쟁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이 있으며, 성물실에는 엘 그레코의 종교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작은 미술관에 온 것처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의 남서쪽에 있는 평탄한 문을 통해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발길은 대개 성모발현 예배당으로 향하게 된다. 성모발현 예배당은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제단(大祭壇)이다. 하지만 가이드는 우리를 보물실(예배실을 겸한)로 안내한다. 엄숙함보다는 화려함에 더 매력을 느끼는 여성의 취향이 아닐까 싶다. 하여튼 안으로 들면 보이는 것마다 모두 화려함의 극치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보석들이 박혀 있는 똘레도 수호성인의 황제관이다. 원래는 이사벨 여왕이 쓰던 왕관이었는데, 1586년 개조한 것이란다. 하지만 더 귀한 보물은 중앙 진열장에 전시된 꾸스또디아(Custodia), 성체현시대이다. (아쉽게도 사진이 잘 못 나와서 게시는 하지 못했다) 1517~1524년 사이 독일 작가가 제작한 이 성체현시대는 원래 180kg의 은으로 만들어졌는데 16세기 말 18kg의 순금으로 도금했다고 한다. 6각형 기단의 이 성체현시대는 수많은 성인들과 꽃무늬 장식들로 꾸며진 여섯 개의 기둥들이 화려하게 장식된 지붕을 떠받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톨레도 대성당 안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그것은 크고 웅장한 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문이 작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처리해 빛이 들어올 여지가 더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내가 어두움으로 해서, 마음은 상대적으로 차분해지고 종교적인 경건함은 증대되는 것 같기도 하다.

 

  


중앙예배당(Main Chapel)으로 간다. 이곳은 제단(祭壇) 뒤에 있는 병풍 형태의 조각이 유명하다. 제단병풍 조각은 시스네로 추기경이 프티 쟝이라는 조각가에게 의뢰해 1498년부터 1504년까지 만든 작품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7폭의 병풍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예수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죽음이 표현되어 있다. 참고로 병풍의 한 가운데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5개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성모자상, 성체현시대, 예수 탄생, 성모 승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고 병풍의 왼쪽 편에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묘사되어 있단다. 이에 비해 오른쪽 편에는 부활과 영광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양쪽 가장자리에는 이곳 출신의 대주교들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예배당 앞의 예배공간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공간이 있다. 바로 합창대석이다. 합창대석에서는 삼면 벽을 장식한 조각과 대리석 성모상이 유명하다. 참고로 합창대석은 1489-1495년 로드리고 알레만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 합창대석 아랫부분에는 카스티야-아라곤이 결합한 에스파냐 왕국의 그라나다 정복모습이 조각되었다. 그리고 윗부분은 1535년 타베라 추기경의 명으로 펠리페 데 비가르니와 알론소 데 베르게테가 만들었다. 이들 부조는 르네상스 양식에 속한다고 한다.


 



합창대석 위 벽면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좌우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의 양식은 서로 다르다. 왼쪽의 것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고, 오른쪽의 것은 절제된 신고전주의 양식이라고 한다.

 

 


합창대석 앞 왼쪽에는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상 부조가 서 있다. ‘백색의 성모(Virgen Blanca)’라고도 하고,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교해서 에스파냐의 모나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이곳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 성모상은 좀 특이한 편이다. 다른 성모상들은 대부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성모상은 의외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특징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성물실(Sacristia)로 간다. 대제단의 왼편에 있다. 실내는 커다랗고 둥근 하나의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물실의 안쪽 정면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대리석 제단(祭壇)이 있다. 제단은 엘 그레코(El Greco)’가 그린 엘 엑스폴리오(El ExpoIio)’ 성의의 박탈이라는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1579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 와서 그린 그림 중 초기의 대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주변의 사악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평온과 엄숙함을 간직한 예수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참고로 엘 그레코(El Greco)’는 그리스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 별명이 본명인 도메니코스 테오토코룰로스를 밀어내고 공식 이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1577년에 죽을 때까지 톨레도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한 인연으로 톨레도를 상징하는 화가가 되었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인물들을 기형적으로 길게 묘사하는 그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후원한 톨레도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그는 역사 속에 묻혔을 지도 모른다는 평들이 있다.

 

 


성물실로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위로 치켜든다. 그리고 천장에다 시선을 고정시킨다. 250의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형 프레스코화를 보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제단화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한 마디로 밝고 화려하다. 황금색의 밝은 색조를 바탕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하늘나라에서 일데폰소 성인(San Ildefonso)’에게 제의(祭衣)를 내려주는 광경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이는 이태리(나폴리)출신의 화가 루카 지오르다노(Luca Giordano, 1632~1705)’이다. 그는 1692년부터 1702년까지 마드리드에서 에스파냐 궁정화가로 활동했는데, 그때 이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성물실(Sacristy)은 원래 미사를 올리는데 필요한 제기나 제복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성물실에는 주로 성화 또는 종교화가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성당 내의 예배공간과는 달리 조명이 잘 되어 있어 그림이 보기 좋게 되어있다. 이곳에서 눈여겨 봐야할 작품으로 사람들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성화와 지오르다노(Luca Giordano)의 천정화를 꼽는다. 하지만 그 외에도 고야(Goya)와 루벤스(Rubens), 벨라스케스(Vel?zqez), 반 다이크(Van Dyck), 모랄리스(Morales)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으니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참고로 고야와 벨라스케스는 엘 그레코와 함께 에스파냐를 대표하는 근대화가다. 이들이 추구한 에스파냐 회화의 주지주의와 실험정신은 피카소, 미로, 달리 같은 현대화가에게로 이어진다.

 


중앙예배당은 생각보다 어둡다. 빛이 별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성당 천정에 낸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라는 채광창이다. 이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중앙예배당 제단과 병풍을 밝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채광창은 디에고 데 아스토르가 추기경의 주문으로 건축가 나르시소 토메(Narciso Tome)’가 만들었다.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톨레도대성당의 채광창은 그동안 내가 봐온 것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다. 대제단의 뒤, 성물(聖物)들을 보관하고 있던 작은 예배당의 조명(照明)을 위해 만든 것인데, 창을 통해 들어온 빛살들이 창틀 주위의 조각 또는 그림들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채광창으로부터 들어온 빛살을 받아 더욱 빛을 발하는 나르시소 토메(Narciso Tome)의 작품들은 추리게라(Churrigueresque) 양식이다. 추리게라양식은 스페인의 추리게라가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당시에 추리게라 집안의 삼형제는 모두 이름 있는 건축가였다고 한다. 추리게라 일가가 만들어낸 이 건축양식은 아주 세세한 곳까지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축기법이었다. 또한 이 양식은 후기 바로크양식인 로코코양식의 한 갈래로 플라테레스크양식처럼 화려하고 촘촘한 장식을 특징으로 한다. 갈라진 박공벽, 물결치는 듯한 처마와 난간, 회반죽 피막, 꽃 장식 도안으로 가득 찬 실내장식 등이 모두 추리게라 양식의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나르시소 토메가 디자인한 톨레도대성당의 트란스파렌트는 추리게라양식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나르시소 토메는 금박으로 처리한 햇살과 수많은 천사조각,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건축구성을 통해 신비하고 신성한 조화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또 하나의 볼거리인 주교실이다. 역대 똘레도 대성당 주교들의 초상화가 한데 모여 있다. 처음 주교에서부터 최근의 주교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초상화만으로도 똘레도 대성당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성당에서 자랑하는 아름다움 중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스테인드글라스일 것이다. 이곳 톨레도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답기 짝이 없다. 성당에는 4개의 측랑과 22개의 부속예배당에 총 750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중앙제단 옆에 커다란 그림 하나가 보인다. 한쪽 벽면을 온통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란 그림이다. 성 크리스토포루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림인데, 그는 여행자와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신으로 동·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가장 사랑받는 수호성인들 중 하나라고 한다. 참고로 성 크리스토포루스그리스도를 어깨에 업고 간다.’의 그리스어이다. 성 크리스토포루스는 시리아 출생으로 소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던 중 순교(殉敎)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는 사람들을 업어 강을 건네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던 거인이었는데, 자기보다 더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섬기겠다고 했다 한다. 어느 날 조그만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는데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에게 아이는 너는 지금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나는 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톨레도 대성당을 빠져나와 산토 토메 성당으로 향한다. 비좁은 골목의 양편에는 성벽을 연상케 하는 벽들이 계속된다. 우아함이란 길을 걸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톨레도의 골목길이다. 아름다움보다 더 깊이 있고 진한 감동을 주는 우아한 색으로 장식된 담장과 골목길이 이채롭다.

 


길을 가다보면 아라베스크(arabesque) 문양의 수공예품(手工藝品)을 팔고 있는 선물 가게들이 가끔 눈에 띈다. 똘레도 지역은 세계적인 고대 무기 생산지로서 칼, 방패, 갑옷 등의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많은 장식용 무기 애호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10분쯤 걸었을까 산토 토메 성당이 나타난다. 작고 아늑한 이 성당은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을 소장하고 있는 성당으로 유명하다.

 

 


산토 토메 성당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성당 안에 전시되고 있는 명화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모양이다. 덕분에 작품들을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다. 그래봤자 오래지 않아 잊혀 질 게 뻔하지만 말이다. 조금 이라도 오래가게 하기 위해 글로나마 옮겨본다. 엘 그레코의 걸작이라는 '성 오르가쓰 백작의 매장(Burial of the Conde de Orgaz)'이다. 480×360크기의 대작인 이 그림은 15783월 산토 토메 성당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9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톨레도 지방의 귀족으로 카스티야 왕국의 수석공증인을 지내고 1323년에 죽은 오르가쓰 백작의 장례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오르가쓰 백작은 신앙이 돈독하고 동정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토 토메 성당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성직자와 신도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후대 사람들이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250년쯤 지나서 오르가쓰 백작의 장례식에 관한 전설을 그림으로 그려 성당에 걸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오르가쓰 백작의 장례식날 하늘나라에서 두 성인 아우구스틴(Augustin)과 에스테반(Esteban)이 내려와 시신을 직접 매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느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이처럼 보상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엘 그레코는 이런 전설을 토대로 천상과 지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드라마를 그림으로 완성도 높게 표현했다.

 


산토 토메 성당을 둘러봤다면 이젠 호텔로 돌아갈 차례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동상(銅像) 하나가 보인다. ‘La Ciudad De Toledo a Juan De Padilla’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성공하지 못한 혁명군의 지도자 파딜라(Juan De Padilla, 1490~1521)의 동상인 모양이다. 파딜라는 톨레도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출신이다. 1516년 스페인의 왕위에 오른 카를 5세는 외국인들을 고위직에 임명했는데, 이들은 독단적이고 횡포가 심한 행동으로 스페인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오래지 않아 스페인에서는 카스티야의 전통적인 왕권 견제 방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민중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때 총사령관에 선출된 사람이 파딜라이다. 하지만 그는 우여곡절 끝에 황제군에게 사로잡혔고 곧바로 처형되었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는 도시 전체가 모두 볼거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톨레도에서는 꼭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갈 필요는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길이 나타나고, 골목이 사라지면 성벽이 보이면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한참을 걷다보면 다시 한 번 구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천루가 없는, 톨레도의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럴 때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에 노래 몇 곡을 즐기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그러면 여행을 다니느라 피곤해졌던 몸과 마음이 한결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의 뒤꽁무니를 ?기에 바쁜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에필로그(epilogue), 누군가가 현지인에게 물었단다. ‘스페인 여행에서 단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이라고. 이때 들었던 대답은 톨레도로 가라.’였단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등 볼거리가 넘치는 곳들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중세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였을까? 중세 요새의 모습을 간직한 수려한 경관과 스페인 가톨릭의 총 본산인 톨레도 대성당’, 거기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으로 유명한 화가 엘 그레코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기다 농담 삼아 하나 더 추가한다면, 영화배우 이보영과 지성이 웨딩화보를 찍었던 곳으로 입소문을 탔었기 때문일 테고 말이다. 하여간 톨레도는 오래된 도시이다. 그래서 볼거리들도 많은 편이다. 위에서 말한 톨레도대성당이나 산토 토메 성당외에도, 시내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알카사르(요새)나 아윤타미엔토(18세기초)와 바로크 양식의 많은 교회들, 그리고 신고전주의 양식의 오스피탈델눈시오와 톨레도 중학교, 엘 그레코 저택 박물관과 타예르델모로 박물관, 현대적 양식의 아카데미아밀리타르데인판테리아 등 볼거리들로 넘친다. 하지만 우린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의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패키지여행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는데 반해,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지 못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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