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왔다 가는 길이 쓸쓸하다고 경망스럽게 움직이지 말고,
사람들의 무리에 외면을 당한다고 자신의 가치를 팔지 말라.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 없을지라도 부처의 수도와 태공망(강태공)의 기다림을 배워야 한다.
부처의 깨달음, 태공망과 같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들판의 이름없는 잡초에도 뜻이 있으니
이들의 존재를 소중히 하여 따르는 것이 순리다."
필자는 이글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다만 힘든 일이 있을 때, 지나치게 행복을 누리게 되어 오만한 마음이 생길 때는 항상 되새기는 경구다.
혼자 그 뜻을 새기기에 아까울 때는 지인들에게 이글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한다.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 문명을 만든다고 해도 자연이 주는 것보다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사람사는 사회가 아무리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졌다고 해도 자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보다 효율적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자연의 효율성을 배우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준다.
하지만 인간은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
개발을 명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은 많은 재물을 획득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파괴된 자연으로 고통받고 또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자연이 주는 신선한 공기를 오염시킨 특정인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은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야 하고,
물을 오염시킨 특정 소수들 때문에 많은 사람은 먹을 수 있는 물을 구입하는 비용을 조달키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숲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가지고 있다.
이 숲과 나무들을 가꾸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 관료, 그리고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이들이 무능하고 부패하면 숲에 있는 나무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나무만 가꾸기 위해 숲 전체를 끝없이 파괴하고,
관료들은 숲 전체를 가꾸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자기들의 나무에만 사용한다.
숲에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이들만의 나무로 새가 날아다니고 맑은 공기가 숨쉬는 숲을 만들 수 없다.
문제는 모두 자기 나무만을 가꾸려 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나무들에 필요한 영양분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숲 전체를 보는 안목을 키우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더니,
이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나무 외에는 다 베어 버리려고 한다.
이들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다.
다른 나무를 다 베어 버리면 살기 좋은 숲이 된다는 착각이다.
숲을 알지 못하면서 숲을 가꾸려고 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에 의해 대한민국이라는 숲이 병들어가고 있다.
경제력의 독점이나 권력의 독점이 주는 폐해는 숲을 파멸시킨다.
숲에 특정한 나무만을 심는 것도 숲을 독점하는 것이니, 숲을 파괴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들이 독점하면 행복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이는 자연스러운 숲의 혜택을 모르는 어리석음의 소치다.
숲은 스스로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한다.
이에 반하는, 다시 말해 자기들의 나무만을 가꾸려는 행위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게 되고
결국 과다한 비용 부담으로 자멸한다.
우리는 숲에서 풍요로움을 누리고 숲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무식함에서 나오는 독수(毒樹)와 독과(毒果)를 막을 수 있다.
독이 든 나무는 결국 독이 든 과일을 만든다.
숲에 맑은 물이 흐르고 신선한 공기가 있어야 우리가 행복해진다.
성보경 / Economist 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