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꽃
김영석
아야진항 비린내 나는 횟집이 좋다
복어꽃 먹기에는
소주가 좋지
아니 맑은 청주가 좋지
복사꽃 꽃잎 같은 복어꽃
하늘하늘하여 손대기 싫지만
꽃잎 하나 입에 넣으면
향기가 칼날이 되어
조각조각 혀를 자른다
아름다운 꽃에는 칼날이 있다는데
복어꽃에는 독이 있단다
혀도 마비시키고 뇌도 마비시키는
복어꽃이란다
향기도 독이 되는
복어꽃잎 한 마리
독에 취하는지 술에 취하는지
온 가슴 속에서 헤엄친다
바다 내음 가득도 하다
---김영석 시집 {안녕, 잘 지내지?}에서
모든 좋음은 나쁨에 기초해 있고, 모든 아름다움은 추함에 기초해 있다. 모든 도덕은 부도덕에 기초해 있고, 모든 약은 그 독에 기초해 있다. 선악을 알고 선악을 넘어서서 이 선과 악을 전면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시인이자 철학적 의사라고 할 수가 있다.
복어는 복어목 복과에 속하는 물고기이며, 맛과 육질이 뛰어나 하천----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 지역----에 사는 하돈河豚이라고 불렀는데, 이 복어가 가진 독은 청산가리의 1,000배가 되는 맹독성이라고 한다. 물고기로서의 복어는 맹독성 어종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 옛날부터 복어를 먹어 왔다고 한다. 복어국은 봄날에 잠깐 먹는 제철 음식이지만, 복어회는 최고급의 음식이며, 그 맛과 식감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복어회는 가격대비 그 양이 아주 적지만, 그러나 한 번 복어회에 중독되면 그 가격 따위는 따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김영석 시인의 [복어꽃]은 그의 미식취향의 산물이자 ‘복어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아야진항 비린내 나는 횟집이 좋다/ 복어꽃 먹기에는/ 소주가 좋지/ 아니 맑은 청주가 좋지”라고 복어를 생각하기만 해도 벌써 취하고, 그 취한 기분에 복어살을 “복사꽃 꽃잎 같은 복어꽃”이라고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와 과장법을 동원하게 된다. 복어맛에 술이 빠질 리가 없고, 술을 마시자니 도화살 만발한 미녀를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복어를 좋아하면 술을 좋아하게 되고, 술을 좋아하면 재색을 겸비한 미녀를 좋아하게 된다. 미식취향과 음주가무는 복어꽃과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의 특권이자 대동단결의 축제일 수도 있다. “복사꽃 꽃잎 같은 복어꽃/ 하늘하늘하여 손대기 싫지만” 절세의 미녀와 키스를 하듯이, “꽃잎 하나 입에 넣으면/ 향기가 칼날이 되어/ 조각조각 혀를” 자르게 된다. 요컨대 내가 복어를 먹는 것인지, 복어의 향기(맛)가 나를 먹는지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장미에도 가시가 있고, 양귀비에도 독이 있다. 옻나무에도 독이 있고, 권력에도 칼이 있다. 미녀에게도 독이 있고, 귀족에게도 칼이 있다. 아름다움에도 독이 있고, 시의 향기는 천리, 만리 퍼져나가지만, 이 언어의 꽃에 중독되면 ‘저주받은 시인의 운명’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복어꽃과 복사꽃도 혀와 뇌를 마바시키고, 술의 꽃과 시의 꽃도 혀와 뇌를 마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들의 사지와 이 세상의 삶도 마바시킨다.
복어꽃이란다
향기도 독이 되는
복어꽃잎 한 마리
독에 취하는지 술에 취하는지
온 가슴 속에서 헤엄친다
바다 내음 가득도 하다
김영석 시인은 복어꽃을 부르고, 복어꽃은 복사꽃을 부른다. 클레오파트라는 돈주앙을 부르고, 돈주앙은 시인을 부른다. 이 세상은 가장 크고 거대한 ‘복어꽃의 바다’이며, 우리는 복어꽃에 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복어꽃 중독, 복사꽃 중독, 알콜 중독, 시의 중독----.
김영석 시인은 영원한 아름다움에 중독된 [복어꽃]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김영석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