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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성령님이 신자에게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1: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GheQJm5PWH4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령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여 망망대해에 주인 없이 떠도는 작은 보트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파도 치는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부르시고 성령님이 저에게 임하셨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처럼 강력한 체험을 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찾고 있던 저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제가 기도를 시작하고 5분 후 쯤 되었을 때, 갑자기 제 혀가 꼬이며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들이 생각나면서 깊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었습니다. 기도 중에 환상을 봤습니다. 설악산보다 더 큰 바위 위에서 무지갯빛 십자가 하나가 제 가슴으로 내리 꽂혔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불붙은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난 후 마음에 천국이 임했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이 들만큼 행복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생활은 변화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그 당시 저하고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이희성이라는 친구를 몇 십 년 만에 만났는데, 그때 자기가 충격을 받았답니다. 제가 토요일 저녁에 은혜를 받았는데요. 그 친구는 제가 토요일까지 자기하고 똑같았는데 월요일에 학교에서 다시 만났는데 완전히 달라졌더랍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희성아! 나 하나님 만났다.”라고 했답니다. 그 친구는 제 말을 믿을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자기가 저를 관찰해보니 제가 확실히 달라졌답니다. 과거와 너무 다르더랍니다. 저는 눈에 띄게 변화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담임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저를 일으키시더니 “마경훈이 마음을 잡은 것 같으니 박수 쳐주자”라고 해서 제가 종례시간에 박수를 받았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는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에 주를 믿고 주의 나라를 위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제 인생의 목적지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제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자이신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이나 목회자나 선교사 안에만 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6:19).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많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신자 개개인에게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고 내가 믿기 싫다고 해서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시 14:2,3).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입니다. “...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니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이신 것이 믿어집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게 하셔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아버지로 믿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갈 4:6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오래 전에 제가 청소년 수련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저를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저를 아빠라고 부르면 만원을 주겠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저를 아빠라고 불렀다면 그 아이는 제가 아빠로 믿어져서 저를 아빠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만원 때문에 아빠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손으로 만져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구주로 하나님이 아버지로 믿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니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이기게 하셔서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는 성령 안에서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한 번도 청소해 본 적이 없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방 안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하인이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로 비질을 시작했는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 다음 한 소녀가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였는데 먼지가 나지 않고 깨끗하게 청소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그리스도인이 인도자에게 묻자 그가 설명합니다. “이 방은 말씀으로 한 번도 씻은 바가 없는 부패하고 악독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먼지는 사람의 원죄와 마음을 더럽히는 썩은 것들입니다. 방을 쓸려고 빗자루를 들었던 하인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이 빗자루로 쓸자 먼지가 방안을 뒤덮고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지요. 율법은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는 커녕 부패한 마음에 자리 잡은 죄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살아나게 만듭니다. 그 후에 나타난 물을 뿌린 소녀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힌 후 방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던 것은 복음에는 거룩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 있어 더러운 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롬 8:2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신 주님을 닮게 하십니다.
갈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은 우리 속에 역사하시며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십니다. 나무에 진액이 가득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갖게 되어 인격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간혹 성질이 아주 못된 사람이 예수 믿고 아주 착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12:7-10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우리에게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능력을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능력을 행하게 됩니다.
저는 신기한 기적을 일으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제게 역사하시면 예수님처럼 저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납니다. 제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권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에게 일어난 기적 중에 특별한 기적 중에 하나는 전도사 때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위암 3기로 죽음을 기다리는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명으로 제가 그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제가 그분을 붙들고 기도하는데, 그분이 저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의 역사였습니다. 귀신은 정체를 드러냈고 저와 약 3분 정도의 씨름 후에 귀신이 떠났습니다. 귀신이 떠나자 권사님은 구토를 시작했고 많은 양의 검은 물을 토하더니 치료되어 3개월 만에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제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분이 치료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저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되게 하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시고, 예수님의 능력을 닮게 하십니다.
3.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 16:13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내가 지금 진리를 따르는지 비진리를 따르는지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꼬마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내놓고 주무세요?”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은 할아버지는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니 하룻밤만 자보고 대답해주마.” 그날 밤 할아버지는 수염을 붙들고 씨름을 했습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면 답답하고, 내 놓으면 썰렁하고... 무려 30년이 넘도록 기르고 다닌 수염이었지만,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은 그 할아버지가 30년 동안이나 내 몸에 달고 다닌 수염이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아니면 밖에 있는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진리 안에 거하고 있는지 진리 밖에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저희 가족은 저만 빼고 다 커피 바리스타입니다. 저희 가족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 향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둘째 하은이에게 놀라운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약 40가지의 향을 맡아서 알아맞히는데, 향에 민감한 제 아내가 3개를 테스트하고 있을 때, 하은이는 40가지를 다 했답니다. 하은이에게는 향을 분별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타고 난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은 영적으로 맹인이며 청각장애자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며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치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다가 이단에 미혹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볼 때는 확실한 비진리인데, 그들은 분별을 못하고 진리를 떠나서 비진리를 따라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에서는 이만희를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고 재림 예수라고 합니다. 확실한 이단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합니다. 그들은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충만하면 선명하게 진리와 비진리가 분별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0:3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자기의 영광, 자기의 건강, 자기의 축복, 자기의 부요함, 자기의 명예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한 때 SNS를 열광시켰던 제레미 린이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졸업한 수재입니다. 그는 농구가 너무 좋아서 농구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1부가 아닌 2부 리그에서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뉴욕 닉스에 입단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심부름이나 하는 벤치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주전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땜빵으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그 결과 팀이 승리하게 되고, 그 후로 주전으로 뛰면서 연패에 빠진 팀을 7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경기를 할 때마다 “In Jesus Name I play!(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는 경기한다”라는 글이 새겨진 띠를 띠고 경기를 했습니다. 경기를 마치면 항상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삶은 더 복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내가 나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살았고 다윗은 주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출발선은 사울은 강했고 다윗은 약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뒤집어졌습니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갔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니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울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다윗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공부를 하든지, 직장을 다니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5.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윤영준 목사님의 [신발 한 켤레의 사랑]이라는 책에 나오는 “전화위복의 기회”라는 글의 내용입니다. 청년 월터(Judd Walter)는 여드름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 과정에서 엑스레이를 과다하게 사용한 결과 얼굴이 볼품없이 나빠졌습니다. 월터는 심한 우울증과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흉한 얼굴을 가진 그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여 살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자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중국에 가서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였고, 미국으로 돌아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열 번이나 재선되었습니다. 그는 일생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의미 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외모로 인한 열등감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긴 것입니다.
롬 8:37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이 모든 일을 넉넉히 이깁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은 무엇일까요? 앞에서 예로 들은 월터라는 청년은 외모의 열등감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겼는데, 여기서 이 모든 것은 그런 것을 포함한 모든 위험을 말합니다. 롬 8:38,39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모든 것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영원한 천국에 입성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수많은 고난을 통과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대적들을 만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천성을 향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부활, 죽었던 우리의 몸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입니다. 롬 8:11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성령님은 죽음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6.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제가 전에 불부항을 받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황기를 불에 잠시 대펴서 뜨겁게 한 후에 몸에 대고 뜯어내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한 번 받는데 두 시간 걸리는데, 머리부터 발까지 그렇게 하니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왜 제가 불부항을 받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친구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한 것은 친구 목사님을 비방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열정에 도전을 받아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약 한 달간 날마다 저에게 전화를 해서 불부항 전도했습니다. 원장님이 어떤 분이고, 부황을 뜨는 방법은 어떻고, 불부항을 받으면 어디 어디가 좋고,,, 심지어 간증까지 했습니다. 자신은 불부항을 받으니 어디가 어떻게 좋더라, 아들이 받았는데 이러이러한 점이 좋더라. 며칠 전에는 보니 전라도에서 암환자가 받으러 왔더라. 어떤 목사님이 받고는 어디가 좋아졌고, 다른 목사님은 어디가 좋아졌고.... 그 친구목사님이 날마다 불부항 전도를 하니 결국 제가 불부항을 받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리를 가자면 십지를 가주라고 말씀하셨는데, 친구가 이렇게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친구 목사님을 보면서 회개했습니다. 내가 저 친구가 불부항을 전하는 것만큼 전도를 했는가를 생각하니 회개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복음 전파에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강권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데 저는 전도에 게을렀습니다.
행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전도에 부담이 생깁니다. 전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꾸 듭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풍성이 부풀어 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면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전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들 돈을 써가면서 전도 용품도 만들면서 전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 청년들이 버스킹으로 전도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 안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남미에서 선교사님들 다섯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왜 그렇게 힘든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실까요? 그분들은 고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분들은 왜 거기까지 가서 힘들게 사역을 할까요? 그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강권하심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괜찮습니다. 이 부분은 제 페이스북에 2019년 6월 25일 포스팅한 글을 나누겠습니다. 제목은 ‘은혜로운 장례식’입니다. “저희 교회 김장로님 아버님께서 지난 주일에 소천하셨습니다. 김장로님은 신실한 장로님입니다. 언제나 담임목사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장로님입니다. 1주일에 4일 새벽기도 차량 운행을 합니다. 4시 20분이면 교회에 도착해서 강단 준비를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차량운행을 하는 아주 부지런한 장로님입니다. 저는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가정도 구원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에서 그 말씀을 선포할 때면 신실한 김장로님 부모님께서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마음에 좀 걸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장로님 부모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80년을 주님 없이 사시던 아버님이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의 우편 강도처럼 주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아버님은 가족들과 함께 장로님이 인도하는 예배를 주기도문으로 마친 후에 평안하게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위패에 ‘성도 김종수’라는 글씨를 보면서 기도를 응답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장례식 후에 장로님은 모든 가족들이 은혜로운 장례식에 감사했다고 저에게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은 조의금의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헌금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인 집사님과 상의해서 중국에 있는 탈북자 한 사람 구출비용 250만원을 헌금하였습니다. 은혜로운 장례식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전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은혜로운 장례식이 많을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장로님과 형제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우리 김기승 장로님 아버님은 마지막에 영혼의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일은 전적인 은혜이며,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왜 장로님의 가족들은 어떤 기도제목보다 아버님의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를 가장 중하게 여겼을까요? 그것은 영혼구원을 위한 성령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영혼에 집중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도에 대한 열정을 주십니다. 만약 여러분 마음에 전도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면, 그것을 성령님이 주시는 부담감인줄로 아시고 전도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환영하고 인정한다는 말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일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리오동양선교교회 집사님의 안내를 따라가던 우리가 4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한 사모님만 직진을 하였습니다. 그 사모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인도자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새롭고도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팀 한셀(Tim Hansel)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정, 성공, 리더십]이란 책에서 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10년 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놀랍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도 성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때와 분명 달랐습니다. 성령충만했고 확신에 넘쳤습니다.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줄래?”, “로마서를 읽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음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변했어”, “그것은 전에도 마찬가지였지 않아?”, “맞아,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러나 전에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잘못을 저지를 때면 며칠 동안 자신을 저주하곤 했지. 그런데 로마서를 읽고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내가 죄인이고, 또 앞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 후 죄를 범해도 숨기거나 좌절하지 않게 되었어. 오래전에 로렌스 형제가 ‘당신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았다고 해. 그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그는 ‘나는 그저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서 계속 살지요’라고 했대. 그게 바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거지. 그러나 두 번째 깨달은 것은 더 놀라운 거야. 그것은 내가 어떤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라는 사실이야. 내게 좋은 변화가 일어날 때 그것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 후 나를 통해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지켜보는 재미로 살고 있어. 나는 그저 성령이 하시는 일에 감사하고 놀라고 기대하는 것뿐이야․ 전에는 나의 죄성을 바라보며 낙심에 빠져 살았어, 그러나 이제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 이제는 항상 내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보고 있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생생한 사실이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이야.” 내 친구는 변화되었습니다. 나쁜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으로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부터 놀라운 사람으로 말입니다. 내 친구는 전에도 성실하고 도덕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하여 깨닫고 난 다음에 친구는 불이 있는 사람, 불을 붙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성령이 우리 마음에도 임하셨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