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붙는 중국의 달러 체제 도전…브라질 가세
[ 시민언론민들레 |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 2023.04.01 16:12
사우디‧러시아 뒤이어…'페트로 달러 체제' 흔들
사우디 첫 위안화 대출, UAE 가스 위안화 거래
시진핑 중동 방문 계기로 '위안화 결제' 본격화
푸틴 "위안-루블 결제 확대"…제재 상쇄 효과도
대통령궁에서 연설하는 룰라 브라질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도전하는 중국의 행보에 탄력이 붙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 양국은 무역 결제와 금융 거래 시 달러 대신 자국 통화를 쓰기로 합의했다. 브라질 수출투자진흥공사(Apex-Brasil)는 베이징 보아오포럼 기간 중인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당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 포럼 참석을 겸해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폐렴 증세로 연기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양국은 대규모 무역 결제와 금융 거래를 할 때 위안화와 헤알화로 결제하게 되며, 달러 시스템을 거쳐 결제할 때보다 관련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브라질 기업들은 글로벌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를 대신해 중국의 위안화 결제망인 시프스(CIPS‧중국 은행간 결제시스템)를 이용하게 된다. 중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이 위안화를 선택함에 따라 중국의 달러 패권 도전에 속도가 붙게 됐다.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이다. 작년 교역 규모는 1505억 달러(195조 원)로 사상 최대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2022년 12월 8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2.12.09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동방문 계기로 위안화 결제 본격화
위안화의 '달러 대체' 작업은 지난해 12월 시 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과 뒤이은 중국-아랍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당시 시 주석은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 확대를 약속하고, 석유·가스 대금 위안화 결제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의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려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1975년 출범한 이 체제는 중동지역의 에너지 대금 결제는 달러로만 하도록 강제해왔다.
그 첫 성과가 나왔다. 중국은 지난달 14일 사우디 국영은행과의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중국이 원하는 원유 대금 지급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중국 수출입은행과 사우디 금융회사 간 첫 번째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당시 중국 수출입은행은 "사우디 국영은행과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대출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위안화 대출은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 때 체결한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을 이행한 것이라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우디, 중국 주도 안보협의체 SCO 합류
사우디는 또한 29일 중국 주도의 안보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합류하기로 했다.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전날 시 주석은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전화 통화에서 "현재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있다"라고 했고,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지원에 "중국의 책임있는 대국 역할을 잘 보여준다"고 사의를 표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SCO 회의에서도 회원국 간의 독자적 결제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고 제안했다. SCO의 정회원은 중국·인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파키스탄·러시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이다. 옵서버였던 이란은 가입 절차를 끝냈다. 대화 파트너는 사우디·이집트‧카타르·튀르키예 등 9개국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산 LNG(액화천연가스) 거래가 위안화로 결제된 첫 사례도 나왔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28일 상하이석유가스거래소에서 중국해양석유(CNOOC)가 프랑스 토탈에너지로부터 UAE산 LNG 6만 5000 톤을 수입하면서 그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상화가 들어간 마트료시카(러시아 전통 목각인형)가 21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의 한 기념품 가게에 전시돼 있다. 시 주석은 전날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이날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2023.03.22. 연합뉴스
푸틴 "위안화-루블 결제 확대"…제재 상쇄 효과도
모스크바에서 지난달 21일 진행된 중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도 달러 대체 논의가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경제협력 공동성명에서 "루블화와 위안화 결제의 확대는 교역·투자 협력 촉진의 중요한 인센티브"라고 강조했다. 작년 3분기 말부터 양국 상업적 교역에서 루블·위안화 결제 비중이 65%에 도달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러 전체 교역 규모는 작년도에 30% 가까이 늘어난 1천850억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달러 대체 행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의 제재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대가로 서방의 제재를 받자 외환보유고의 달러 비중 축소를 비롯해 '제재 효과 차단' 방안을 준비해왔다. 총 631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했던 러시아는 2021년까지 달러 비중을 16%로 대폭 축소했다. 900억 달러는 금으로, 그리고 중국 위안화 비중을 늘렸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에서 위안화-루블 직접 결제에 합의했다고 해서 러시아가 달러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제재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은 27일 베이징 중국발전포럼 오찬 연설에서 "현재 중·미 관계는 양국 수교(1979년) 이래 역사상 최저점에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피 캡처] 2023 03 28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장, 미국의 달러 무기화 비판
앞서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달러 결제 시스템이 미국의 대러시아 독자 제재에 활용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중러 무역에서 달러화와 유로화의 배제 가능성을 묻자 "사용하기 쉽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화폐"로 거래하면 된다고 답변했다. 중국은 브라질과 러시아에 이어 인도와 남아공 등 다른 브릭스(BRICS) 국가들과도 위안화 결제 확대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제재를 계기로 달러 대체 흐름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달러 기축통화 체제는 그만큼 지배력을 상실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