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이 선명할 때 자유함을 느낀다.’
“여보, 이거 내가 마지막 멘트로 하고 싶었던 말인데.”SNS에 올린 나의 글을 아내가 보았나 보다. ‘나는 북한댁이다’를 쓴 강하나 작가의 북토크에서 느낀 단상을 올린 글이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이라는 단체의 제안으로 진행한 프로그램, 우리 단체의 운영위원인 아내가 사회를 본 프로그램이다. 마지막에 이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나보다.
“목사님, 저희 단체에서 다른 NPO단체들과 공동주최로 북토크를 하고 싶은데, 같이 하시겠어요?”연구원의 이** 사무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전화. 이국장은 보조금사업의 귀재이다. 이 또한 서울시 사업으로 지금 그의 제안은 공신력있는 사업에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연구원과 협업하는 8개 단체들이 북에서 온 작가들 중 각 1인씩 8인을 선정하여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니까 서울시의 8개 지역에서 각 단체들이 선정한 북에서 온 작가들,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는 것이다. 단체 활동과 가장 잘 맞는 주제의 책을 선정하고 그 작가를 모시는 것, 우리는 ‘나는 북한댁이다’라는 도서를 선정하였다.
지금 이곳은 옆집이 누가사는지도 모르는 마을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한 골목길을 마주하여 쌍문댁이니, 포항댁이니 하며 아주머니들을 호칭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도 그런 자신의 고향에 대한 호명을 받으면 자신의 정체성과 그리움으로 안정감을 누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북한댁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가 70~80년대이니, 북한이탈주민이 거의 없었던 그때는 북한댁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아니다. 그때도 있었다. 다만 개성댁, 의주댁, 이렇게 불렸겠지! 그 때는 분단 전 하나의 한반도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 조금 다를 순 있어도, 지금처럼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색안경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일상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댁이라니! 어떤 이들은 자신의 다른 말투로 인해 지목받을때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그만의 삶의 방식일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와 시선을 없애기 위해 거짓으로라도 자신을 위장해야만 하는 현실인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김성경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의 상태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로 표현하고 있다. 호모 사케르, 신께 바쳐지는 제물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영역의 밖에 있으나 아직 신에게 속하지 않은 상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제도 밖의 사람들을 가르키는 정치적 용어이다.
북한이탈주민은 일반 난민과는 다르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국정원에서의 조사가 필요하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그 사회를 부정하여야 하고, 얼마나 철저하게 전향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도, 아름다운 추억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도마위에 올려진 생선 한 마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북한댁, 그녀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위장된 신분으로 살았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북한의 경제난속에서 그녀는 중국으로 넘어와 가짜 주민증을 만들어 살았고, 심지어는 자신을 조선족으로 속이고 한국남자와 연애, 가짜 여권까지 만들어 한국에 들어와 결혼까지 하였다. 그 동안 귀인들을 만나 인생의 요소요소에서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 마음의 양심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나 보다.
“작가님, 그 동안 조선족 출신의 한국인으로 살았는데, 이제 북한이탈주민인 한국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인생에 무엇이 달라졌나요?”, “전에는 남편에게 내가 북한에서 온 것을 들키게 될까봐 무서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편하고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숨기려 했고, 그것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막혔던 것이 뚫리는 것 같은 해방감을 맛봅니다.”
그녀는 ‘나는 북한댁이다’라는 책을 쓰고 당당하게 사회에 맞섰다. 작가가 되고, 유튜버가 되어 자신을 세상에 알렸고, 많은 북한이탈주민들과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될 북한주민들을 위해 남한 사회를 소개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하루는 아이가 제게 와서 말하더군요. ‘엄마, 학교에서 우리를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라고 해요.’ 내가 아이에게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이라고 안 했는데 아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희망아. 우리는 북한이탈주민 가정이 아니야. 우리는 통일민 가정이야. 엄마는 북한에서 왔고, 아빠는 남한 사람이야. 그리고 너는 한국에서 태어났어. 우리 가정은 통일민가정이지?’”
그 말이 맞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많은 말을 지어준다. 새터민, 북향민, 통일민, 어떤 이들은 자신이 탈북민인것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탈북민이라고 자신을 부각해야 수입이 생기는 사람일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식용어는 북한이탈주민. 그것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가정도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라고 불릴 이유는 무언가?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해서 왜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작가님은 북한댁이라고 커밍아웃을 하고 자유함을 누리고 계시잖아요?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해메고 있는 또 다른 강하나씨와 그들을 맞아야 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한말씀 해 주시겠어요?”, “네, 저는 두려워하지 말고 남북민이 만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힘들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의 행동과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자주 만나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북토크는 성황리에 끝났다. 두 단체가 협업을 하고, 짧은 시간에 준비하다보니 북토크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이 만남의 장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남북민이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강하나씨를 맞이할 준비를, 그 품을 만드는 시간이 되었기에 조금은 완성도가 떨어져도 오케이. 한 발자욱 더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