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10]‘살인마’ 전두환 손자의 폭로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은데도 눈만 뜨면 TV 뉴스를 본다. 우리가 잘못 뽑은 이 나라의 ‘친일파’ 대통령 얼굴(쌍판때기)을 보고 싶지 않아서이다. 채널을 빨리 다른 곳으로 틀기도 하는데, 내 친구 몇몇은 대선 후 여지껏 뉴스 자체를 보지 않는다고도 한다. 비극이다. 큰 비극이다. 큰 관심은 없건만 ‘정치’에서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정치가 결코 ‘계륵鷄肋’이 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흘러갈 줄 짐작조차 못하겠다. 이러다가 혹시 ‘제2의 전쟁’이 터지지 않을까 불안불안하다. 그 비극만은 없어야 할텐데, 자못 걱정이다. 그저 ‘그까짓’ 5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기만을 빌 뿐이다.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린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혹시 ‘그 여자’가 입으로 담기 힘든 짓을 벌인다면 또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 아침 7시 15분쯤 뉴스를 보다가 “와우-” 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근간에 들은 최고의 ‘그뤠잇 뉴스’라고나 할까? <전두환 손자의 ‘가족비리’ 폭로>가 그것이다. 전우원(27),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의 둘째아들이라고 한다. 전두환-이순자 사이에는 전재국, 전재용, 전재만 아들만 셋이다. 뉴욕대를 나와 회계법인에 다니고 있다는데, 폭로 내용이 가관이다. 연희동집에 스크린 골프장이 있는가하면, 자기 아버지는 출처 모르는 검은 돈으로 사치스럽게 산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백은 할아버지가 (광주항쟁의) 살인자라는 것이다. 본인도 마약을 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쯤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 가족의 ‘폭망’이다. 죽을 때까지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역사적 잘못을, 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은 손자가 만천하에 터트린 것이다.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나 업보業報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지 않은가.
‘무모하고 용감한’ 20대 후반의 손자는 “정의는 승리합니다”라고 썼다. '금수저'인 그가 정의正義라는 단어를 할까, 의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씁쓸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비극으로 얼룩지게 한 박정희의 '양자'인 할아버지. 그리고 잘 나가는 애비 만나 호의호식하고 있는 그의 아들들, 29만원밖에 없다고 한 전두환 가족들의 검은돈 출처는 밝혀질까? 회고록에서도 광주항쟁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한 그, 유골함조차 묻힐 곳을 찾지 못하고 자택에 안치되어 있다는 그, 뻔뻔하기로 치면 그를 따라갈 자가 어디 흔할까? 그는 조폭 대장으로 확신범이었다. 그로 인한 가족의 번창 속에 아들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동안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생각했을까? 여기 이제야 그들 가족의 ‘진면목眞面目’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손자에 의해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살인자 남편’을 ‘한국 현대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하던 그 부인이 집안에서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그것도 손자에 의해. 으흐흐, 쓴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은가.
그렇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또는 부자富者 3대 못간다는 등의 옛말이 어디 틀린 적이 있었던가? 어떤 면에서는 ‘참 안됐다’ ‘측은하다’는 연민의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야말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터키 관광 중 에르도안 대통령을 ‘에르두환’이라고 부른다해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우리의 전직대통령 이름이 외국에까지 수출될 줄이야. 어느 시인(서정주)은 ‘부처님보다 더 인자한 미소’라고 아부를 했다. 어느 칼럼니스트(조선일보 김대중)는 ‘단군이래 최고의 구국영웅’이라고 썼다. 그 언론인은 2021년에는 검찰총장을 하던 윤머시기를 '단군 이래 최고의 정치인'이라고 써놓고, 이제 와서는 속 들여다보이는 '알량한 충고'를 하고 있다. 노추老醜 김동길도 갔지만, 그 역시 자취가 없어져야 할 천한 글쟁이이다. 그런 전두환이 그의 손자에 의해 역사적 범죄 등 온갖 부정과 비리가 까발려지고 있다. 한때 유행한 전두환과 노태우 3행시가 생각난다. 전: 전두환입니다. 두: 두환이라고 하죠. 환: 환장하겠어요. 노: 노태우라고 합니다. 태: 태우라고도 하죠. 우: 우습죠? 정말 환장할 일이고 우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게 업보가 아니면 무엇이 업보일 것인가?
이 경우와 성격은 다르지만 ‘방랑 삼천리’ 김삿갓(김병연)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홍경래란 때 선천부사로 반란군에 항복해 비열한 짓을 꾀하다 모반대역죄로 참살당한 김익순의 손자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성장한 병연은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嘆金益淳罪通于天>는 향시鄕試 시제에 “한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이 일을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라”라고 써내 장원급제를 했다. 친할아버지의 죄를 매도한 그 사실이 부끄러워 평생 삿갓을 쓰고 전국을 누비며 해학과 풍자의 시를 쓰며 살다 길 위에서 죽었다던가.
“죄를 달게 받겠다”는 27살 전우원, 그는 왜 누릴 것 다 누리며 살다 끝내 ‘양심의 가책苛責’에 못이겨, 자기 집안을 일거에 쑥대밭으로 만들 게 불보듯 뻔한 폭로를 했을까? 그를 생각해도 마음이 짜안하다. 그가 지속적인 심리치료를 한 후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문제)로 나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걸까? 이것도 나의 업보일진저! 전우원이 고백하며 끝부분에 쓴 대로, 할렐루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