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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안웃긴게시판 스크랩 [정보] 창간특집/ 1. 체르노빌 원전, 사고원인분석
아다폭격기 추천 0 조회 1,249 14.02.13 13:0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창간특집/ 1. 체르노빌 원전, 사고원인분석

체르노빌 원전사고 20주년 사고상황 재구성

전경중 발행인, uljintimes@empal.com

등록일: 2006-08-23 오후 11:06:00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참사개요
"잦은 인적 실수는 최악의 원전사고를 예견"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비싸다. 또한 원자로는 다루기가 위험하다. 그러나 원자로를 잘 제어하면 원자력 에너지는 지구를 구할수 있다. 스리마일 섬은 1979년 미국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난 곳이다. 이 사고 이후 미국은 원전신축 건설이 전면 중단되었다.

원자력에너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화석연료와 결별을 원하지만 대단위 대체에너지 개발은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 오늘날 세계과학으로는 불가능 하다. 미국의 전력난은 심각하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에너지 확보를 위해 세계를 상대로 전쟁중에 있다. 지난 10년동안 미 국내에는 새로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가 없다.

심각한 원전사고가 원자력 에너지 정책을 억제했다. 미국은 전 세계원자로의 25%에 해당하는 103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으며 원자력에너지를 재평가 해, 오늘날 진화된 원자로 건설에 한국의 원전기술자들이 첨단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미래의 희망은 원자력에너지에 있다. 핵분열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가 전혀 방출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는 이제 국력의 상징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20주년을 맞은 올해, 울진원자력본부에서 가동되고 있는 6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인적사고로 '세계최고의 고장율을 자랑'하고 있다. 잦은 인적 실수는 최악의 원전사고를 예견한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미국의 스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지난달 스웨덴의 포스마크 원전사고 모두가 원자로의 열을 제어하지 못한 운전원의 실수로 빗어진 인재로 확인되었다. 최근 울진원자력본부는 인적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비상발전기 증강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축척된 원자력 기술이 단 한번의 실수로 인류에게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킬수 있다. 본지는 창간 4주년을 맞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재구성해 원인을 분석하였다. 원전사고를 방지하고 안전운행에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편집자 주.
▷1부/ 체르노빌 원전사고 재구성

원자력은 구 소련에게 싸고 무한한 에너지 공급을 약속했다. 당시 소련의 체르노빌은 최신 발전소로 소련과학의 승리였다. 그러나 1시간 24분에 걸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검사가 잘못되면서 결과는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다. 3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수백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사상최대의 원전사고로 독성 구름이 아시아와 미국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생존한 사건관계자들과 함께 당시 체르노빌로 돌아가 예정된 사상최악의 원전참사를 낱낱이 밝힌다. 1986년 4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집권한지 1년째이며, 공산주의와 서방민주주의은 여전히 대치중인 냉전시대였다. 소련이 원한 값싼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대두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대도시 키에프의 200만명의 사람들은 국영발전소인 체르노빌에서 전기를 공급받았다. 시 104km 외곽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는 소련산업 및 기술의 상징이었다. 소련의 원자력과학자들은 이곳을 최고 원자력발전소로 꼽았다.

보리스 스톨이아르추크(체르노빌 4호기 펌프담당)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 펌프관리자로서 체르노빌 원전사고당시 그의 행동이 삶과 죽음을 결정 짓는다. 그는 톡특한 기기를 다루고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27세 청년이었다. 이 운명의 밤에 29세의 유리 카르네프(터빈운전요원)가 함께했다. 그는 졸업 후, 체르노빌에서 일하길 원했으며, 그의 소망대로 체르노빌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큰 터빈을 조종하게 된다.

유리 카르네프는 원자력발전소 근무가 "매우 흥미있는 일이었고 봉급도 괜찮았다"고 한다. 체르노빌은 4개 원자로를 동시에 가동하는데 그중 4호 원자로는 고작 3년된 최근작이었다. 원자로는 증기기관과 똑 같아서 우라늄 연료봉이 물을 데우면 그때 나온 수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력이 생산된다.

이 모든것이 제대로만 돌아가면 인간에게 그 혜택은 엄청나다. 우라늄 1kg은 석탄 3,000톤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우라늄을 안전하게 사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최고의 기술이 요구되는 균형 작업이 필요하다. 4월의 어느날 밤, 보리스와 유리는 자정부터 체르노빌 4호기에 야간근무 교대에 들어갔다. 이 복잡한 곳에서 일하기에 둘은 비교적 어리지만, 그만한 자질이 충분히 있었다.

이들은 30분 일찍 출근했다. 스위치를 점검하고 동료가 남긴 메모를 읽는 한편 발전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날 밤은 달랐다. 모여든 야간 근무자들은 뜻밖의 상황을 접하게 된다. "안전검사"를 시행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세계적인 원전사고 '운전원 오작동으로 축척된 에너지 제어' 실패가 원인

원전에서 원자로 주변에 냉각수를 꼭 공급해야 한다. 체르노빌의 냉각수 펌프는 터빈에서 전력을 받고, 터빈은 다시 원자로에 의해 돌아간다. 에너지 생산은 게속되지만 중간에 뭐라도 틀어지면 핵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날밤 안전검사는 비상시에 예비 발전기 투입 전까지 발전소가 작동할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7월 24일 스웬덴의 포스마크에서 일어난 원전사고와 동일하다. 체르노빌 4호기는 전에 이 검사를 시행했을 땐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 작업은 복잡한 작업이 아니었다. 원자로 냉각수를 끌어오는 체르노빌 발전소 옆 운하는 울진원자력본부주변과 같은 조건으로 원자로에서 배출되는 온수로 인해 고기가 모여드는 지역낚시꾼의 요람이었다.

이 밤에 '표트르 톨스티아코프'가 친구와 낚시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역사적인 핵재앙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다. "잠깐 낚시할 생각이었습니다. 날씨도 좋었고 물고기도 약간 잡았습니다" 표트르는 4호기 원자로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밤 12시, 자정. 야간근무가 시작되었다. 유리는 터빈실로 향했다. 터빈을 살피고 수치를 읽은 뒤 차 한잔을 마신 다음, 검사 개시를 기다렸다. 원자로에서 300m 떨어진 통제실에는 통제를 맡은 27살의 레오니드 토프투노프가 근무하고 있었다. 서로는 모르지만 매우 복잡한 균형작업을 이들은 이날밤 같이하게 된다. 이 시각, 체르노빌 소속 소방서는 평소대로 비상대기 중에 있었다.

12시 5분, 검사를 하기에 앞서, 레오니드는 원자로 출력을 줄여갔다. 그런다음 20분간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3분뒤, 원자로에 이상이 발생했다. 12시 28분,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자로 출력이 감소되었다. 실제상황이었다. 출력을 빨리 올려야 한다. 레오니드의 작동으로 다행히 문제가 해결되었다.

새벽1시, 레오니드는 원자로가 안정됐다고 판단해 검사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3분뒤, 펌프를 관리하는 보리스의 차례가 왔다. 그가 두 보조 펌프를 작동하자 물이 원자로에 너무 빨리 주입되었다. 좋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물이 터빈을 돌릴 만큼 충분한 양의 수증기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균형이 어긋났다.

1시 19분, 네오니드는 이를 해결하려고 원자로 노심의 출력을 늘리는데 다행히 그것이 통했다. 원자로가 뜨거워져 터빈을 돌릴 수증기가 더 생성되었다. 레오니드와 보리스는 "상황을 처리했다"고 판단해 검사준비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들은 노심이 위험할 정도로 과열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한편 터빈실의 유리는 전화를 받았다. "준비가 끝나 검사를 시작한다"고 통제실 사람이 전했다. 새벽 1시 23분, 운전원은 계획대로 스위치를 눌려 자신의 터빈을 껏다. 근무교대 시작후, 준비해온 시험의 시작이었다. 이때, 레오니드는 원자로의 노심 온도가 치솟는 계기판을 보았다. 노심헤드의 압력이 위헙수위로 올라가고 통제실에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레오니드와 보리스는 문제가 생긴 줄은 알았지만, 최대 원자력 사고를 막기까지 몇 초밖에 없다는 것은 몰랐다.

최신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들은 안전 검사를 시작했으나, 체르노빌 원자로가 애초부터 문제가 생기더니 이제,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야간에 일하는 젊은 청년들은 대형 핵사고를 막으려고 노력했었다. 오전 1시 23분, 원자로를 담당한 레오니드는 비상수단을 사용했다. "원자로 비상중지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러나 원자로는 중지되는 대신 상황만 더 나빠지고 있었다. 원자로 열 출력이 보통 수치의 100배 이상 올라가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엄청난 고열이 노심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스와 레오니드는 상황이 통제 밖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1분 뒤, 새벽 1시 24분, 체르노빌의 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그 폭발력에 원자로 2,000톤짜리 강철지붕이 날아갔다. 고 방사성연료 8톤이 밤하늘에 솟구쳤다.

터빈실의 유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치솟은 지붕조각들이 떨어졌다. 300m 떨어진 통제실에서 엔지니어 보리스는 이 광경을 보고 꿈속에 있는 듯 착각에 빠졌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상한 일이 생긴것 같아요. 큰 폭발 소리를 듣자 몸이 굳어 뭘 어떡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시각, 원전 밖의 낚시꾼 표트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그는 당시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폭발이란 말은 부정확 해요. 꼭 화산폭발과 같았습니다" 원전소방서에 사이렌 경고음이 울리고 폭발 4분안에 소방관 14명이 현장에 처음 도착했다. 4호 원자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소방관이 더 필요했다. 지원요청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100명의 소방관 중엔 폐트르 그멜 소방서장도 있었다. 그는 "조각난 전선들이 널려있고 부품들이 조각나 있었다"며 "그게 원자로 인줄 몰랐으며, 아무도 말을 안해줬다"고 당시 현장상황을 증언했다.

핵 재앙 한가운데 있다는 걸 어느 소방관도 몰랐다. 그들은 1시간 30분 동안 화재와 씨름하다가 하나 둘 씩 쓰러지며 토하고 의식을 잃어갔다. 크멜서장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새벽 5시, 불길이 진화되었다. 폐트로는 모스크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방사능에 오염되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69명의 소방관중 31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 시달렸다. 화상과 화학화상, 심장병, 폐와 면역계 손상.. 하지만 이건 다만 위기의 시작일 뿐이다.

▶소련당국 체르노빌 원전사고 침묵으로 일관

박살난 원자로는 계속 치명적 방사선을 발산했다. 그러나 소련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소련과 서방이 대치중인 시대라 코르바초프 서기장은 이 핵재난을 숨기려 했다. 이시간, 대부분의 발전소 직원 가족들은 3km 떨어진 프리치야트에 사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삶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옥사나 사브첸코는 당시에 13살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날 밤 4호 원자로에서 일했는데 아침이 되어도 집에 오지 않았다. 소련정부는 5만명인 프리피야트 사람들을 비밀리에 긴급 대피시키려 했다. 대피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군대가 소집되었다. 또한 1,200대의 버스수송대가 구성되었다.

폭발 36시간 후, 프리피야트 주민들에게 첫 공식 정보가 전달되었다. 주민들은 신분증과 돈만 챙기고 도착할 버스를 기다렸다. 옥사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다. 아무도 어디로 갈지 모르고 있었다. 오후 2시, 대피가 시작되고 3시간 후, 프리피야트는 텅빈 도시가 되었다. 버스와 트럭 행렬이 15km나 이어졌다.

▶사고직후, 6일간, 헬기 1,800대가 5,000톤의 납과 약품 뿌려 방사선 흡수작업

체르노빌에선 원자로가 위험한 방사선을 계속 뿜어 댔다. 소련당국은 방사능 낙진의 확산을 막으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사고난 다음 6일간, 헬기 1,800대가 5,000톤의 약품을 뿌려 방사선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계획이 곧 제기되었다.

소련정부는 관련자만 원전사고 사실을 추정하지만, 당시 미국위성이 소련을 감시중에 있었다. 폭발 28초 후, 마침, 미국위성이 체르노빌 위를 지나갔다. 위성에 찍힌 사진을 검토한 미 정보부는 소련이 핵미사일을 쐈다고 판단했다가 체르노빌 원전에서 강한 열이 나온다는 것을 간파하고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이 사건을 미국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작 취임 1년째 인데다 미국이 이 정보로 소련 핵기술의 약점을 노출시킬 수 있었으며, 이 재난 덕에 국제적 망신을 당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체르노빌에서 1,600km 떨어진 스웨덴 원자력과학자들 사고 2일후, 방사능 오염원 추적

4월 28일 새벽 6시 30분, 사고 2일 후, 원자력 공학자 클리프 로빈슨은 출근하려고 스웨덴 포스마크 원전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이곳은 체르노빌에서 1,600km 떨어져 있었다. 원전에 들어가기위해 클리프는 방사능 모니터를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통제구역에 발도안 디뎠는데 정말 이상했습니다" 클리프는 의아해하며 방사능 모니터를 또 통과하였으나 경고음은 게속울렸다. 그는 기기고장이라 여기는데, 다른 직원들도 기계에 의해 출입을 통제받게 되었다.

이날 경고음이 계속울려서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발에서 경고음이 울린다고 클리프는 추정할 수 있었다. 그는 신발을 방사선 검출기에 넣고 측정하자 "심한 방사능 수치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 근원이 이곳 포스마크 원전이 아님을 클리프는 알아냈다. 그는 "근처에서 누가 원자폭탄을 터뜨렸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스웨덴 원자력과학자들은 방사능 오염원을 찾기위한 추적을 시작했다. 그날 늦게 스웨덴 과학자들이 오염원을 짚어냈는데 그곳을 소련이라고 밝혀냈다. 과학자들이 강력히 해명을 요구하자 소련은 압력에 굴복해 체르노빌의 원자력 사고를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 재난은 각국 신문 1면에 폭발적으로 다루어 졌다. 그와 반대로 소련 내부에선 다른 TV뉴스에 묻혀 사건이 축소보도 되었다. 뉴스 행간에 숨은 더 큰 진실은 바로 소련의 원자력 꿈이 무너지려 한다는 것이다. 유럽전역에 방사능 낙진이 출현하기 시작해 10일 뒤에는 독성구름이 미국과 한국, 일본에 미쳤다.

▶체르노빌 원자로, 운전원 오작동으로 84분 만에 파괴

체르노빌 원자로가 84분 만에 파괴되었다. 이제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4월 24일의 사건들을 되돌려서 안전검사를 실시하라는 상관들의 지시를 받은 통제실 엔지니어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공식보고서의 자료를 참조해 체르노빌 유독한 재난 현장을 재구성 하였다.

소련당국은 폭발직후 자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을 소집했다. 과학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보통감식 조사가 아니었다. 조사의 시작은 탐문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려면 녹고 있는 원자로 노심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방사능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 당시 서방의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체르노빌 같은 소련 원자로의 안전성에 회의를 품어왔다.

영국의 물리학자 짐 알 칼릴리(핵물리학자)는 체르노빌 설계의 결점을 살폈다. 짐 알 칼릴리는 "체르노빌 4호기는 설계의 불안정한 면 때문에 매우빨리 가열된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상급자들은 설계상의 결함을 알고 있었는데, 왜 이 재난이 발생한 것인가? 현장에 모인 조사관들은 힘들게 그날 밤의 사건들을 재구성해 조사했다. 그들은 안전검사에 곧장 주의를 기울이며 주목했다.

안전검사는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상주하고 있는 낮에 실시해야 했지만, 원자로 가동이 중지되면 카에프로시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발전소 전력공급량이 최소인 밤까지 검사가 연기되었다. 그때는 주임 과학자들이 모두 퇴근했기 때문에 이날, 하급팀이 4호 원자로를 맡아 검사실행을 맡게 된 것이다.

이로인해 조사관들이 기본적인 의문을 느꼈다. "운전자 실수와 원자로 설계의 결함 중 무엇이 사고 원인이며 어떻게 안전검사가 최악의 핵재앙을 불렀을까" 하는 의혹 등이다.

▶원자로 작동원리

운전자와 원자로의 결함 중 어느 쪽이 사고 원인일까? 원자로의 작동원리를 알아보자. 긴 우라늄 봉을 이용해 원자로 노심에서 열을 일으키면 노심에 삽입된 제어봉이 우라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양을 제어한다. 물은 원자로 노심위를 지나며 수증기로 바뀌는데, 보통발전소에서 처럼 이 수증기가 터빈을 돌리면 터빈이 전기를 만든다.

체르노빌은 이 터빈이 만든 전기로 돌아가므로, 이 전력 순환이 끊기더라도 발전소가 돌아가는지 확인하려고 안전검사를 실시했다. 발전소가 충분한 전력을 갖춰 터빈정지시, 우라늄 연료봉을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거나 냉각수 펌프로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점검하는 것이다.

평소 때는 노심 속의 제어봉을 올리거나 내려서 원자로의 출력속도를 증가 혹은 감소시킨다. 노심위로 공급되는 물은 노심의 과열을 막는 한편, 전력생산에 쓰는 수증기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터빈이 전력을 못 만들어 중요한 냉각수 펌프를 못 돌리면 매우 빠르고 위험하게 원자로가 과열된다.

▷ 2부/소련 과학자들 체르노빌 원전사고 원인분석, 당시상황 재구성

체르노빌 사고이후 소련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조사관들은 사고원인파악에 나서 당시 야간 근무자들의 행동에 관심이 모아졌다. 원자로의 안전은 터빈을 돌릴 수증기가 충분하거나 원자로의 노심이 과열되어 폭발한 끔찍한 세계적인 원전사고가 왜 터진 것일까.

폭발 1시간 19분전, 원자력기술자 레오니드가 원자로 노심의 출력을 감소시켰다. 처음에는 모두 잘 운행되는 듯 하였다. 원자로 제어봉은 우라늄 연료봉이 만드는 에너지 양을 조절한다. 수증기나 원자로 노심의 에너지 출력은 제어봉으로 조절한다. 제어봉을 노심속에 낮출수록 발생하는 에너지양이 줄어들어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의 양도 감소한다.

또 제어봉을 올리면 노심의 에너지는 다시 증가한다. 체르노빌 4호 원자로에 있는 211개의 제어봉이 폭발을 막았어야 했는데 왜 그렇지 못했을까? 당시 레오니드는 검사하기에 앞서 제어봉으로 출력을 줄이는데 출력이 갑자기 너무 많이 떨어졌다. 폭발 52분 전, 출력을 증가시키려고 레오니드는 제어봉을 올리는데 그게 효력을 발휘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출력이 다시 증가 했다.

폭발 21분 전, 중앙제어실에 있던 보리스는 검사 사전작업을 계속하여 원자로 노심 주변의 물 흐름을 바꾼다. 냉각수를 공급하는 주 펌프를 고의 정전 중, 멈출 것을 예상해 보리스는 대체 물 공급원을 확보를 위해 작동스위치를 눌렸다. 그는 두 보조 펌프를 이용해 발전소 내 다른 곳의 물을 4호 원자로로 돌리려다, 보조 펌프를 켜면서 냉각수가 원자로 노심으로 너무 빨리 들어가게 했다.

연료봉 위로 흐르는 물 흐름 속도는 중요하다. 연료봉 위의 물 흐름이 빨라지면 생성되는 수증기량은 줄어든다. 로이스는 물을 더 공급한 뒤 15분이 경과 했다. 그러나 터빈을 돌릴 만큼 수증기가 충분히 생성되지 않았다. 폭발 5분전, 작업팀이 원자로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였다. 터빈으로 수증기 흐름을 늘려야 함을 아는 보리스는 증기드럼에 물을 다시 공급했다.

증기드럼은 물과 수증기량을 조절하는 중앙 격실로 증기드럼의 물 부피를 늘리면 증기압은 정상치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보리스가 증기드럼에 찬물을 너무 많이 주입해, 초과된 물이 원자로 노심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또 증기가 거의 안 생겼다. 아직 검사는 시작조차 못했다. 조사관들은 사고당시 통제실 사람들이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아냈다.

▶원자로 운전수칙 제어봉 수를 최소 26개로 규정, 운전원 제어봉을 6개만 남긴 상황

폭발4분전, 중앙통제실에 있던 레오니드는 터빈으로 가는 수증기량을 늘리기 위해 노심속의 제어봉 숫자를 줄이고 있었다. 원자로 운전수칙은 제어봉 수를 최소 26개로 규정하나, 레오니드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린다. 제어봉을 6개만 남긴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 위기 상태에서 야간팀은 검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검사를 실시한 기술자들은 정말 안이했다. 노심에 제어봉 6개만 놔두고도 검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자로 안 노심속에 제어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원자로의 과열을 막을 건 노심주변의 냉각수 뿐이다.

이 상태는 "물 수량이 조금만 줄어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하필 안 그래야 할 때, 레오니드와 보리스간의 의사소통에 금이가고 말았다. 폭발 3분전, 보리스는 이제야 과다한 물이 증기드럼에 들어간 걸 깨닫고 즉시 물흐름을 끊는데, 이는 과열된 노심에 들어가는 물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것이다. 레오니드가 제어봉을 6개만 남겨놓은 것을 보리스는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보리스는 이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규정보다 적은 제어봉이 남겨졌는가도 확실치 않았다고 한다. 폭발 1분 30초전, 열 생성량을 제어할 제어봉이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서 원자로 노심이 엄청나게 과열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야간팀은 발전소 통제력을 잃게된다. 고열속에서 체르노빌의 4번 원자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은 "열과 에너지가 위험할 정도로 축적"되는 것

핵발전소에서 일어남직한 최악의 상황은 "열과 에너지가 위험할 정도로 축적"되는 것이다. 어떻게 과열된 노심이 폭발을 유발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폭발 56초전, 안전검사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은 터빈 운전원은 터빈정지 스위치를 눌려 터빈을 정지시켰다. 원자로 에너지 수치가 갑자기 치솟는 계기판을 보았다. 체르노빌의 안전검사가 치명적으로 잘못된 바람에 체르노빌 4호기 원자로가 13초후에 폭발한 것이다.

이제 통제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고열로 인해 연료봉이 터지며 2,000톤짜리 원자로 덮개에 엄청난 폭발압이 작용했다. 고 방사능 물질 파편 8톤이 하늘로 폭발했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보리스 스톨리아르추크(냉각수 펌프관리인)는 "그런 일이 생길거라고 예상조차 못했다"고 했다. 방사성 연료조각들이 곧장 대기로 폭발했다. 조사관들은 그 물질들이 1km정도 솟았다고 파악했다.

방사성 물질일부는 매우 가벼워서 바람을 타고 수천km를 이동했다. 그 물질들은 10일만에 북미와 일본에 도달했다. 매우 불안정한 방사성 원자는 안정되기 위해 방사선을 발산한다. 방사선 조사량이 클 경우, 인간의 신체조직이 손상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조사관들은 무엇이 폭발을 유발했는지 알지만 이제 닥치는 더 큰 재앙에 경악했다.

방사능이 공기중으로만 퍼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노심이 지하수면에 녹아들까봐 두려워 했다. 일단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면에 닿으면 빠르게 수많은 가정과 식수원들에 퍼지게 된다.

▶명령에 의해 원자로의 노심손상 확인 작업수행

체르노빌 원자력 재난 통제자들은 이를 매우 걱정해 노심이 녹았는지 궁금했다. 베냐민 프리아니슈니코프(원자력 엔지니어)가 그 임무를 맡아 손상된 노심을 조사하기 위해 폭 80cm 터널을 기어 통과했다. 그는 "왜 위험한 일을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동의했다니 무슨소리냐? 동의하지 않았지만 명령에 따랐다"고 답변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베냐민은 알고 있었다. 그는 노심이 안 녹아 들었다고 확인해 주었지만 당국은 그리 될까 봐, 빠른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원자로 밑에 거대한 콘크리트 판을 깔기로 결정했다. 판 제작에 앞서 원자로 아래로 접속터널을 지어야 하는데 그건 어마어마한 공사였다. 400명의 광부가 낮밤으로 땅을 파서 불과 15일만에 168m 길이의 터널을 완성했다.

마침내 콘크리트 판이 노심아래로 놓였다. 그런데 방사성 용암 200톤이 콘크리트판 위, 원자로 잔해 내에 남아있어서 그곳에서 나온 방사선이 수년간 심각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었다. 당국은 이를 막기위해 원자로 전체를 콘크리트로 둘러싸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폭발 때 나온 방사능 파편이 치사량의 방사선을 발산해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작업에 소련 현역군인 투입

우선 파편부터 치워야 하는데 이 작업은 군대에게 맡겨졌다. 소련전역에서 차출된 수천 명의 '청산인'들을 타라카노프 장군이 통솔했다. 니콜라이 타라카노프(구 소련장군)는 "정치국 회의에서 절 소집해 제가 가장 능력있고 용기있는 장군이니 병사들의 핵 연료 제거작업을 지휘하라고 했다" 면서 "미쳤냐고, 병사들이 로봇이냐고 되물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병사들은 방사능 파편을 파괴된 노심에 퍼 넣었다. 40~50kg 짜리 덩어리들을 운반해 구덩이에 던지는데 다들 잘 해냈다. 30kg짜리 특수 납옷을 입고 병사들은 삽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한 사람당 각각 3분씩만 일하게 했다고는 하나 평생 쐴 방사선을 맞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중 다수가 이로 인해 몇 년 후에 사망했다.

체르노빌 참사후, 병사들이 청소작업을 하는 동안 콘크리트 엄호를 건설하는데 시간에 맞서 투쟁한 결과 206일 만에 완공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우라늄 200톤과 그보다 더한 플루토늄 1톤이 엄호안에 남아 있었다. 엄호가 노심이 내뿜는 방사선을 막아줄지 아무도 확신 못했다. 과학자들은 재난조사 작업 끝에 의문의 답을 찾았다.

체르노빌 4호기의 설계상 결함과 운전자 실수 중 무엇이 원인인가는 당시 상관들로부터 안전검사를 실시하도록 지시받은 야간근무자들의 행동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었다. 레오니드는 원자로에서 제어봉을 너무 많이 제거하고 보리스는 원자로를 통과하는 냉각수 양을 줄이는 바람에 원자로가 매우 불안정해 졌으나 이 둘은 그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수를 만회하려 할 때 이미 늦어 거대한 폭발로의 도화선에 불이 붙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조사팀은 '야간팀'은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리스와 레오니드는 지시대로 안전검사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계적이고 빈약한 관리 체계에 책임이 돌려져 주임엔지니어과학자 3명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소련당국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발생 후, 15년간 계속 가동

체르노빌 직원들이 살았던 작은마을 프리피야트는 방사능 수치가 높아 20년이 지난 현재, 일반인은 출입을 하지 못한다. 또한 핵발전소 주변의 무인지대 30km내에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 마을 주민들의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다. 사고당시 13살이었던 소녀 '옥사나 사브첸코'는 짧은 방문을 허락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추억이 생각나서, "고통스럽고 슬프서 처음에 왔을때 울었으며, 너무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그날 밤 발전소에 있던 '옥사나'의 아버지는 치사량의 방사선에 노출돼 몇 달 후 모스크바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이없게도 체르노빌 발전소는 사고발생 후에도 거의 15년간 계속 가동 되었다. 살기에 위험한 지역인데도 직원들은 매일 제한지역에 출근했다. 결국 2000년 12월 체르노빌은 영원히 문을 닫았다. 우크라이나 정부 집계에 따르면 이 재앙으로 인해 최소 8,0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UN은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다고 믿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가장 피해가 큰 곳에서 아동 및 청소년 갑상선암 환자의 비율이 100배 이상 늘은 것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난으로 인해 소련은 그런 공포의 재발을 막고자 비슷한 설계의 원자로들을 개량하고 있다. 오늘날 체르노빌 4호기 원자로 노심에는 우라늄 200톤과 플루토늄 1톤이 파괴된 원자로 내에 잔존하고 있다.

1997년 미국을 포함한 28개 국가그룹이 체르노빌의 영구처리를 위해 10년간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강철 아치 2만톤으로 4호 원자로를 완전히 막는데 약 7억 6,800만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다. 이 공사의 핵심은 새 외곽 천정에 달린 4대의 거대한 크레인으로 잔해를 부수고 방사능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공사가 끝나고 나면 체르노빌의 방사능 위협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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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2.13 13:27

    첫댓글 그래서 저 잔해를 부수는걸 언제 한다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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