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인 강민 님의 시집 ‘미로(迷路)에서’를 덮으며
산책길에 올랐다.
지하철 충무로역에서 내려
남산골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남산 순환로를 따라 걷다가 길 가 숲 속에 자리 잡은
제갈량 사당에 들려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남산어린이회관뜰에서 남산을 바라보기도 하다가
층층대를 세며 팔각정까지 올랐다.
이만하면 오늘 운동량은 적당한 셈이니
그린버스를 타고 내려와 명동을 거닐었다.
'미로(迷路)에서'와 더불어 몇 해 전 써두었던 글이 생각나
아래에 꺼내본다.
내 파일 속엔 / 김 난 석
내 주머니 속엔 신용카드 하나 들어있으니
그것도 신용은 바닥나지 않아
슈퍼마켓을 휘저어도 가슴 떨릴 게 없다네
이태리식 레스토랑에 들어도 다리 흔들릴 것도 없다네
내 주머니 속엔 아직 쓰다 남은 전철표도 있으니
어디 간들 주저할 게 없다네
순환선을 타고 빙빙 돌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도
걱정할 게 없다네
내 주머니 속엔 친한 친구 몇 명의 명함도 들어있으니
궁금하면 불러낼 수 있어 심심할 게 없다네
아직은 내게도 신용이 있어 주눅 들 일도 없다네
ㄱ
내 숄더백 속엔 만해가, 에픽테토스가 들어있으니
가다가 주저앉아도 두리번거릴 것도 없다네
차가 오지 않아도 기다릴 것도 없다네
내 파일 속엔 마야의 초대장이 들어있으니...
그래, 너는 나를 불러내고 있구나
가마
좋은 날을 택해 가야지
마음은 이미 너의 곁에 가 있으니.
지하철 2호선에 올라탔다.
어디 갈 데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월의 하늘을 오래 쳐다봤더니
눈이 침침해서다.
그래서 지하철이다.
더 가면 옛 직장이 가까워진다.
누가 반기랴.
그러니 예서 내리자.
을지로 입구역이다.
그래도 여기가 한국 패션의 자존심 명동이 아닌가.
초췌한 옛 명동극장 건물.
다시 복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 안엔 말도 많던 어느 금융회사가 아직 들어있다.
무절제한 해외펀드 투자로 IMF를 자초한 장본인들.
잠시 들려보니 달랑 직원이 셋.
책상마다 귀신만 그득하다.
점심을 어디서 먹나?
두리번거리니 바로 맥도널드 앞이로구나.
여기는 명동 문화의 거리
은성주점이 있었던 터이다.
명동백작 이봉구, 박인환, 전혜린..... 등이.
직장에 처음 들어가던 해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퇴근길에 자주 들리던 곳이 주점 ‘은성’이었다.
그 은성이 그 은성이었을까?
이층으로 올라가면
주욱 소주집이 늘어서있었다.
각 코너마다 미소전쟁을 부리던 주모들,
우리는 일여덟 코너를 건너뛰어 그 집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첫 번째 코너의 주모가 혼자 술을 마시며
울고 있었다.
왜 그 집을 건너뛰어 슬픔을 주었던지~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맥도널드다.
물론 거기엔 이봉구도 박인환도 없다.
국적을 버린 배꼽 티 소녀들 뿐
그 옛날 주신(酒神)들은 다 어디 가셨는지~
태백산맥으로 갔는지?
소백산맥으로 갔는지?
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가 소백산맥이라던데(ㅎ)
출장비가 두둑이 나오던 날은 '코인'에 갔었다.
거기 통기타 현이 뜯기고 맥주가 넘쳐흐르고~
이젠 하얗게 단장되어 문이 묵직하니
안으로 들어가면 봉 잡히고 말리라.
'캐빈'은 어디 갔나?
그래, 더운데 몸보신이다.
안동찜닭집에 들어가 보니 주인이 손님상에 앉아있다.
아니야, 퓨전이야.
유네스코 회관 옥상의 레스토랑은 인텔리들의 만찬장이었는데
이젠 어디 가고 도막 도막난 사무실들 뿐이다.
그래, 다리 아픈데 몸보신이다.
원조 삼계탕집은 초만원이다.
요즈음 명동은 나 같이 허약한 사람들만 모이나?
문을 나서니 DVD영화관, 영화 한 편에 삼천 원
와, 싸다.
‘The river runs through it’
흐르는 강물처럼?
아니면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말 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구나.
" 우리는 저마다 마지막에 가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끝내하지 못하고 말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
주인공 노먼과 폴의 아버지인 목사의 설교가 귀에 맴돈다.
결국 우리는 최후의 순간에 절대자에 의탁하고 말지 않는가.
오늘도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2005. 5월의 어느 날)
이해는 쌍방의 소통에서 이루어진다.
그게 막히면 무관심이나 오해로 이어진다.
그러면 강물은 제 홀로 흐르거나
격랑을 일으킨다.
허나, 사랑은 일방통행이기도 하다.
말을 보태 주는 사랑~
말없이 주는 사랑~
오월은 가정의 달이요 사랑의 달이기도 하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라는데
나는 누구에게 사랑의 말을 해야 하나...?
내 파일 속엔 하나가 없다.
강물은 순차적으로만 흐르고~
2025. 5. 7.
첫댓글 남산을 돌고
명동 구석구석을 돌고나니,
나중엔,
오늘도
세월은 강물처럼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옛날은 가고 없으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도...
위도의 아침에 룸메이트가 들려주는 사랑의 기쁨에
마음도 흐릅니다.
좋은곳에 머무시네요.
거긴 강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출렁거리겠지요.ㅎ
콩꽃님 여행중이시군요
즐겁게 잘 다녀오세요^^
백세주 산사춘이 태어나
아장거리던 시기에
어느 산 카페에서
두 주류를 홍보하고
두 주류는 당시 포천에서
태어났었던지고
홍보 사진을 주류 회사에 보냈더니
언제든 찾아오면 감사의 보답 하겠다고
했으나
가지 않았고
즐기던 주류를 지금은 한모금도 못마신다.
어지러움이 가끔 툭툭 치고 있기에
아쉽지만 무던하게 잘 견디고 살고 있으니
그런대로 만족한 삶이다.
건강한 내일을 기원드립니다.
그런 추억이 있었군요.
조윤정 여사라면 어느해
등나무 덩굴 아래서
덩실거리던 모습이 선한데,
잘지내는것도 좋지만
얼굴도 보고싶네요.ㅎ
석촌님 발자국을 따라
명동 탐방을 한 기분 입니다^^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은성주점은
저도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최불암씨 어머님이 운영 하셨다지요.
전혜린에 열광했던 제 젊은날을
돌아보게 하는글..감사히 잘봤습니다 ^^
그랬군요.
거기 가면 은성주점 터란 표지석만 남아있지요.
제가 들랑거리던 은성도 이름만 은성이었고요.
충무로역에 숙소를 정했을때 아침마다 남산 한옥 마을을 갔었지요.
가끔 남산을 오르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잠시
아는 사이가 되어 두 번 커피를 마셨습니다 .
저보다 나이가 서너살 많았던 그 여인의 삶을 듣고
제 삶도 이야기했던 일도 있었네요 .
석촌님의 글을 읽으니 그 일들이 떠 올라
제목에 제 이름을 잘 붙여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옥마을 ~
그랬군요.
거긴 남산으로 접근하는 길목인데
거기서 기억으로 만나는군요.
책들로 빼곡한 책장에서
손때가 진하게 묻은 책 한 권을
꺼내본 느낌입니다.
그 책엔 보통 다른 책에는 꽂혀있는
책갈피가 없었나 봅니다.
만연히 걷다가
만연히 끼적거려봤네요.
이젠 빼곡한 책장도 없고
옅은 기억만 들랑거린다네요.
을지로 그 동네 추억을 끌어다~
그 언젠가
입사동기가 해외현장에서 사고로.
그 형을 만나 유복자를 제가 키우려고.
을지로 2층 모 주점에서 담판.
그 아기도 이젠 사십 이겠습니다...
입사동기에 대한 생각이 눈물겹네요.
아마도 혈기 왕성할 때였겠지요.
석촌님의 잘나가던 젊은시절의 을지로입구 명동추억을 따라 잠시 저도 시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잘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