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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그날을내등뒤로
김 슬기 ( 26. 백수 )
대학 졸업후 일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수다.
새내기 시절 만난 남자친구와 6년간 연애를 했고 첫 2년은 알콩달콩 cc로 잘 만나다 그는 군대를 갔고
전역후엔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그래도 지고지순하게 참 잘 기다렸다.
고무신 시절엔 한달에 두번씩 면회를 가고
휴가때마다 매일같이 만나며 알바비로 과자랑 화장품 챙겨 소포도 보내주고.
롱디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 할 일 하고 친구도 만나지만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하고 화상채팅도 한다. 6년이나 만났으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믿음이 있달까.
그런 그녀를 주변 친구들은 미련한건지 순정파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본인은 정말 괜찮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남자친구도 볼겸 퇴사후 여행도 할겸 모아놨던 돈으로 미국 여행을 결정했다.
물론 남자친구에겐 서프라이즈로.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미국으로 향했는데, 거기서 마주친건
남자친구와 그의 동거녀였다. 그니까 공부 하느라 바쁘다더니 금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기는 커녕 허탈했다. 그래도 나 6년 동안 정말 사랑했는데.
뺨이라도 한대 때리고 왔어야 하는데 그자리에서 울며 주저 앉을것 같아 그냥 뒤돌아섰다.
6년 연애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이후로 제대로 된 관광도 못하고 서둘러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나쁜놈인거 이제야 알 게 된게 다행이라고, 그래도 추억은 아름다우니까 그걸로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자꾸 난다. 밤비행기에 타서 창밖 야경을 보는데 왜 자꾸 생각이 나는거야.
훌쩍훌쩍 하다 결국 엉엉 울었다. 다들 자고있길래 괜찮겠지 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손수건을 내민다.
" 엉ㅇㅇ엉어어어..어엉...감사합니다..엉ㅇ... "
진정하시고 이거 드시라는 말에 남자가 건넨 물을 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보니 한국어를 쓰네. 나쁜놈 개자식 하면서 울었는데. 창피해지려다 남자가 건넨 물을 받아들었다.
그래...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인데 뭐..
이 제훈 ( 33. 의사 )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꽤 머리가 좋았던 덕분에 성적도 좋았고 덕분에 의대를 나와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로 한국 대학병원에 스카웃 되었고 아무리 그래도 가족들이 있는 한국이 좋을것 같아
좋은 조건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도저히 잠 들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나오느라 비행기에 타면 기절하듯 잘것 같았는데.
이유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 때문이었다.
창가쪽에 앉은 여자는 담요를 머리 끝까지 끌어다 덮고 있었는데 자는줄 알았더니 훌쩍훌쩍 하다가
이내 엉엉 울고있었다. 그니까, 그게 담요로 덮어도 덮어지지 않는 소리였다.
원체 타고난 성격이 착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어줍잖은 생각을 했다가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서러운지 차마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을때 여자가 덮고있던 담요를 끌어내렸다.
힐끗 보니 동양인이었다. 한국인인가? 싶은 생각을 하는데 나쁜놈,개자식. 하면서 운다. 아 한국인이구나.
뭐가그렇게 서러운지 눈끝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우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소맷자락으로 연신 훔치는걸 보다 자켓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 엉ㅇㅇ엉어어어..어엉...감사합니다..엉ㅇ... "
그렇게 서럽게 우는 와중에도 인사 한번 깍듯하네.
괜히 귀엽다는 생각이 드려는데 물 한잔 마시더니 다시 엉엉 운다.
그러니까 이유라도 듣고 싶은건, 괜한 오지랖이겠지?
*
죽겠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일주일을 식음 전폐하고 끙끙 앓았는데 엉뚱하게 맹장염에 걸렸다.
먹은것도 없는데 왜이렇게 배가 아픈거야, 했는데 그게 맹장염일줄이야.
엄마는 아주 미련하게 병을 키운다며 혼구녕을 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119를 불러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갔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가는 지방에 있고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했던터라 응급실에 실려갔을때도 나는 혼자였는데
그게 괜히 더 슬픈거라. 눈물이 막 주륵주륵 흐르는데 배가 너무 아파 닦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운채로 또르르 울고 있었다. 이놈의 눈물은 마르지도 않어.
그때 침대 근처에 빙 둘러져있던 커튼이 열렸다.
눈을 꼭 감고 훌쩍이는데 김슬기씨?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남자의사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김슬기씨 또 우네요? "
*
한국 병원은 미국보다 훨씬 바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바빠 정신이 없던 와중에 그날은 내가 당직이었고
당직실에서 차트를 보던 와중에 응급실 콜을 받고 내려갔다.
26세 여자환잔데 맹장염이 의심되는 상태라고. 레지던트의 보고를 듣는데 증상을 들으니 아무래도
그게 맞는듯 싶었다. 자세한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환자가 누워있단 침대 근처의 커튼을 열고 들어갔는데 왠 조그만 여자가 누워서 훌쩍훌쩍 울고있다.
훌쩍훌쩍. 그러니까, 일주일전쯤 들었던 그 훌쩍훌쩍이랑 같은 사운드였다.
눈을 꼭 감고 눈물방울을 닦지도 않으며 훌쩍거리는데
그때 그 서럽게 울던 여자가 일주일만에 나타나 다시 내 앞에서 울고있었다.
잠깐 멍하게 쳐다보는데 레지던트가 차트를 내밀었다.
김슬기, 26세. 왠지 여자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수술대에 누워 10부터 거꾸로 세다 잠들었는데 깨고나니 병실이었고.
배가 엄청 고픈건 아니었지만 그냥 습관처럼 뭔가가 먹고 싶었는데 맹장 근처에 염증 소견이 보여
당분간 금식이란다. 수술하고 맹장 떼면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당분간은 병원에 있으면서
피검사에 CT촬영에 별거 다 해야 한다는데 그럼 못해도 일주일 정도는 병원에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근데 무심한 우리 엄마는 검사하고 항생제만 투여하면 된다는 말에 비워둔 가게가 걱정된다며
너 혼자 할 수 있지? 하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엄마 아닌거 같아...
" 수술부위 통증은 없으세요? "
" 네..근데요... "
" 네. "
" 저 언제까지 밥 못먹어요..? "
아침마다 회진을 도는데, 그때마다 내 담당의사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때 비행기에서 만났던, 나에게 물과 손수건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
" 음, 일단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는데...배 많이 고프죠? "
남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째 못먹었는데 당연히 배고프죠. 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남자가 푸스스 웃는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가슴에 은색 명찰이 달려있었다.
외과 이 제훈.
그때부터 나는 남자를 이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수술이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되어 수술방을 나오니 벌써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열시간 가까이 수술대 앞에 서있느라 끼니는 커녕 당장 다리가 저릿하게 아파 수술방을 나서자마자
옥상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요새들어 밤공기가 알맞게 선선해져 피곤하거나 답답하면 늦은 시간에 올라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게 유일한 낙이 되었는데 오늘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 어...안녕하세요. "
그중에서도 내가 맨날 앉는 자리가 있었다.
공원 끝 구석진 벤치였는데 가끔씩 밤에 공원을 찾는 사람이 몇명 있어도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다.그런데 그곳을 향해 걸어갈 때 부터 벤치에 인영 하나가 보였다.
자세히보니 김 슬기 환자 그 여자였다.
" 추운데 왜 환자복만 입고 나왔어요? "
" 답답해서요. 선생님은 추운데 왜 가운만 입고 나왔어요? "
" 답답해서요. "
아. 하고 짧게 대답하더니 여자가 이내 허공을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왜 그랬나 싶기도 한데 그냥 그러고 싶어서.
" 병원에 있는거, 답답하죠? "
" 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밥도 잘 못먹고. "
" 이제 금식은 풀렸잖아요. "
" 근데 죽 밖에 못먹으니까..먹고싶은거 많은데. "
아, 초밥 먹고싶다.
중얼거리던 여자가 저 혼자 웃는다. 초밥 먹는 자신을 생각하는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 보일까.
" 지금은 좀 괜찮아요? "
" 네, 수술 직후엔 조금 아팠는데 약 먹고 쉬니까 좀 덜 아파요. "
" 아니요, 몸 말고 마음이요. "
" 네? "
" 마음이 아파서 운거 아니었어요? "
그때, 비행기에서.
물을까 말까 몇번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거,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냥 궁금했다.
요 며칠 지켜본 여자는 몸이 아파도 잘 웃고 제법 씩씩한 사람 같았는데, 그때 비행기에선 그냥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울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그렇게 운 이유가 뭘까.
" 아, 뭐...그냥... "
" 말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요. "
" 에...아, 그때 손수건이랑 물 감사했어요. "
" 아아. 괜찮아요. 그러고보니 세상 참 좁네요. 뉴욕 하늘에서 만난 우리가 서울에서 다시 만날줄 몰랐는데. "
내 말에 여자가 조용히 웃었다.
" 뉴욕에서 좋은 기억 하나도 없었는데, 선생님 만난게 제일 좋은 기억 같네요. "
그래서 나도 여잘 따라서 웃었다.
*
공원에서 느즈막히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냥 잠들긴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을 보며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때 나 혼자 나만의 힐링송이라고 생각했던 노래가 나왔다. 이것도 그애랑 참 많이 들었던 노랜데.
괜히 좋은 추억이 떠올라 코 끝이 시큰해지려다 옥상에서 헤어지기 전 이 선생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사람들은 가끔 정신적인 상처를 육체적인 상처에 비해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
" 네? "
" 몸이 아프고, 피가 나고, 멍이 드는건 눈에 보이니까. 그래서 치료하러 병원에도 오고 약국에도 가지만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다친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이러다 낫겠지 하고 그냥 방치하는데
사실 그러다 낫지 않는 마음의 상처도 많거든요. "
" .... "
" 아프면 그냥 아파해도 돼요. 난 슬기씨를 잘 모르니까, 원래 잘 웃고 씩씩한 사람이긴 한것 같지만
아플땐 억지로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
" 아... "
" 오지랖이죠? "
" 아니요. "
사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프다. 몸도, 마음도.
몸의 상처는 치료를 받고 약도 먹어가며 서서히 낫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그걸 잊으려고 모른척 했다. 6년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을 겨우 3주만에 잊으려고 했다.
병문안을 온 친구들도 너 괜찮아? 한마디 묻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모습에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다. 라고 했지.
내가 괜찮은'척' 하려는걸 유일하게 눈치 챈 사람이 이 선생이라니.
" 명의네 진짜. "
혼자 중얼거리다 그냥 웃음이 났다.
*
" 이거 어디서 샀어요? "
" 아 병원 앞에 초밥집 새로 오픈해서 김선생이 사왔어요. 맛 괜찮죠? "
외래진료를 마치고 외과 의국으로 돌아가니 레지던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 젓가락 하나를 쥐어주며 하나 먹어보라는데 거절하기도 그래서 하날 먹었더니 꽤 맛있는 초밥이었다.
방금 식사를 하고 들어와서 그다지 입맛이 당기는건 아니었지만 맛 자체는 꽤 괜찮은 초밥인게 분명했다.
사온곳을 물으니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초밥집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출근길에 본 적이 있는것 같았다. 외관이 깔끔해보이던 그 초밥집.
" 이게 뭐에요..? "
" 초밥이요. "
오후에 하나 잡혀있던 수술이 끝나고 나오니 저녁 아홉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웃긴게, 복도를 걷다가 창 밖을 봤는데 낮에 떠올렸던 그 초밥집에 아직 불이 켜져있었고
더 웃긴건 내가 당연한듯 그곳에 가서 이것저것 포장해 병원으로 들어왔단 사실이었다.
내가 배가 고파서 그런것도 아니었는데.
꽤 묵직한 쇼핑백을 손에 들고 옥상으로 올라오니 늘 그렇듯 여자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옆에 슬쩍 앉으니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며 인사하길래 고개를 끄덕이고 쇼핑백을 내밀었다.
" 초밥...인건 알겠는데 갑자기 왜요? "
" 저번에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어제 저녁부터 식사도 일반식으로 바꼈다길래. "
내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리며 날 빤히 쳐다봤다.
내가 좀 오버를 한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 이건 진짜 오버였나. 아니 왜 초밥집이 새로 생겼단 말에 초밥이 먹고 싶다던 그 얼굴이 생각났던거야.
" 같이 드실래요? "
" 아니 저는 별로 생각이.. "
" 같이 먹어요! 우와 엄청 맛있겠다! "
여자가 쇼핑백에서 포장된 초밥을 꺼내고 박수까지 짝짝 친다.
젓가락을 예쁘게 뜯어 내 손에 쥐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받아들었다.
잘 먹는게 보기가 좋았다. 저렇게 먹고싶었던걸 어떻게 참았을까.
*
이선생이 건넨 초밥 이후로 나는 그와 제법 친해진 기분이었다.
소심하거나 배타적인 성격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도 몇번 보다보면 금방 친해지곤 했는데
여긴 병원이고 이선생과 나는 환자와 주치의 사이였기 때문에 뭔가 쉽게 친해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내가 비행기에서 추한 꼴을 보여서 그런것도 물론 있고.
근데 이선생이 먼저 건넨 초밥을 함께 먹고 둘다 너무 배가 불러져 1층으로 내려가 같이 산책을 했는데
그러면서 꽤 많은 얘기를 했다. 한국에서 살다 이선생이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라던가.
그곳에서 어쩌다 의사가 됐는지라던가.
나도 내가 했던 공부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정작 우리가 처음 만난 비행기에서
왜 그렇게나 울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이젠 괜찮은척이 아니라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순간
그때의 감정이 되새겨질것 같은 마음에 겁을 먹어서였다.
아프면 아파하고 슬프면 울어야 마음의 상처가 낫는다는 이선생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아직 덜 아파하고 있었던걸까.
" 오늘은 하루종일 뭐 했어요? "
" 음, 아침 먹고 책 읽다가 주사 한대 맞고..아, 근데 그 주사 너무 아파요. 안아픈걸로 처방해주시면 안돼요? "
" 안돼요. "
" 아...너무 아픈데... "
" 아파도 참아야죠. 주사 맞고 약 잘 먹고 그래야 빨리 퇴원하는데. "
유치원생 달래듯 웃으며 말하는 이선생 말에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맞는말이었다. 주사도 맞고 약도 잘 먹어야 나는 얼른 퇴원을 하는건데.
엄마한테 그렇게 퇴원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불러놓고 막상 이선생이 웃으며
'얼른 퇴원해야죠.' 하는 말에 이 사람은 내가 빨리 퇴원하길 바라나 싶어 괜히 기분이 상했다.
" 안그래도 나가라고 하면 당장 나갈거에요. 나 병원 너무 싫어요. "
" 그렇다고 너무 빨리 가진 말고. "
" 왜요. "
" 그러면 괜히 나 섭섭할것 같아서. "
하고 저 혼자 푸스스 웃는데 진심이라기 보다 장난이겠지만 알면서도 마음이 간지럽다.
*
" 저 언제쯤 퇴원해요? "
" 염증 반응이 좀 나아지는것 같더라고요. 피검사 한 번 더 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퇴원 시켜줄게요. "
괜찮은것 같으면 퇴원시켜 주겠다는 말에 여자가 웃었다.
병원이 그렇게 심심한가. 심심하겠지?
회진을 돌때나 볼 일이 있어 병실 쪽으로 내려가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여자가 있는 병실 근처를 기웃거리다
마주치면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병원생활에 잘 적응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벌써 며칠째 저녁이 되면 짬을 내서 하늘공원에 올라왔고 그럼 딱 그시간에 여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게 괜히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다른 업무를 보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여기로 올라왔고 여자랑 그냥 시덥지 않은 얘기들을 하면서
한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는게 어느덧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여자의 상태가 꽤 좋아지고 있어 곧 퇴원할 때가 되어가는데, 나는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병원에 있는게 뭐 좋은거라고, 집으로 돌아가면 좋지. 하는 생각에 미국에 있을때도 한국에 왔을때도
나는 내 환자들의 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보내주려 노력했다.
근데 그게 이상하게 여자한텐 해당이 안됐다. 까맣게 잊은건지, 잊으려고 한건지 잘 모르겠다.
" 집에 가고 싶어요? "
" 네, 저 이제 괜찮아졌거든요. "
" 아직 다 나은건 아니에요. "
" 아니 몸 말구 마음이요. "
아아. 짧게 대답하니 여자가 웃었다.
" 그때 비행기에서 울었던거요. "
" 네. "
" 6년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새내기때 만나서 cc도 했고 군대도 기다렸고 그러다 남자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그만큼 믿고 많이 좋아했거든요. "
" 그렇구나.. "
" 근데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래켜주려고 찾아갔더니 동거녀랑 딱 마주쳤어요.
그래서 뭐. 뉴욕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비행기탔지. "
" 그래서 그렇게 울었어요? "
" 네, 나 진짜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 세상이 다 무너진줄 알았어요. 6년이나 만났으니까.
가까이 있고 멀리 있고를 떠나서 6년동안 내 모든걸 공유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니까.
그래서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괜찮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괜찮아졌어요. "
웃는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이젠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여자는 정말 그 말이 사실인듯 웃었지만 내 마음이 이상했다.
처음 만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여자에게 건넬수 있는 위로와 말은 없을테지만
나로선 상상도 가지 않는 감정을 비행기 안에서 혼자 감당하던 여잘 그대로 두진 않았을텐데.
6년의 세월을 털고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웃으며 말할 때 까지 여자는 얼마나 아프고 울었을까.
*
어느 순간부터 그애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다시 눈을 감을때까지 단 한순간도 그애 생각이 나지 않을때가 없었을 정도로
내 머리는 온통 지난 추억과 사랑하고 사랑받던 내 옛모습으로 꽉 차있었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그애가, 그때가 생각 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아직 몸이 완전히 다 낫지 않은 지금까지
그 순간 구석구석을 훑다보면 곳곳에 이선생이 끼워져있었다
내가 일부러 넣지도 않았고, 그가 억지로 들어오지도 않은 몹시도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 생활 곳곳에 베어있었다.
아침 회진시간에 만나 진찰을 받고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러다 식사를 하고
오후쯤 책을 읽고 있으면 거의 비슷한 시간에 누군가 병실문을 똑똑 두드린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보면 그가 고개만 빼꼼 내밀어 눈인사를 건네며 지나가고 가끔은 점심식사 안부를 물어온다.
병원밥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나는 가끔 식사를 거르고 군것질거리로 배를 채우는 때가 있었는데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그가 병원 근처 맛있다는 식당 여기저기서 음식들을 포장해 건네준다.
그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다 커서 음식 투정을 부리는것 같아 보일까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그는 항상 같은 얼굴로 웃으며 음식을 건넨다. 환자가 밥을 잘 먹는것도 의사에겐 중요하다면서.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질때 나는 옥상에있는 하늘정원으로 밤공기를 맡으러 가는데
그때도 그는 항상 기다렸다는 모양새로 같은 자리에 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 재밌게 읽은 책 이야기, 새로 들어온 환자 이야기..시덥지않은 얘기들을 나누다보면
한시간 정도는 생각보다 쉽게 지나갔고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와 곤한 잠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에게 비행기에서 내가 울었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입 밖으로 그 이야길 하는 순간 울어버릴것 같았던 예전과 달리 나는 많이 초연해졌고
어느순간부터 내 일상에서 그애가 사라졌단걸 깨달았기에 종종 내 마음의 상처를 걱정해주던 그에게
이만큼이나 나았다고 자랑할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다.
" 다행이에요. 낫기 힘든 상처였을텐데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것 같네요.
이젠 정말 퇴원해도 되겠어요. "
그런데 웃긴건 그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았던 내가, 이젠 퇴원해도 되겠단 남자의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는거다. 씩씩해서 보기 좋다며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지나가는 그의 손이 제자리를 찾아갈때
나는 내가 했던 착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제 어른이니까, 6년의 시간도 이젠 웃으며 털어버릴수 있을 만큼 나는 어른이 되었으니
다 잊어가고 있다, 그런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애를 잊을 수 있었던건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일상으로 들어온 그가 6년간 내 전부였던 그애를 몹시 쉽게 밀어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그애를 밀어낼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 1302호 김슬기환자 내일 퇴원해도 될 것 같죠? "
아침 회진을 돌고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받는데 치프가 차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어제 염증검사를 했는데 그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졌고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상태가 되었음이
차트에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그러네. 하고 짧게 대답하는데 괜히 마음이 좋지 않다.
내 환자였고, 유난히 신경이 쓰이고 손이 가는 사람이었기에 얼른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행이다 싶어 뿌듯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제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행기에서 울었던 이유, 이제 그 이유를 말해줄수 있는 이유.
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다 나았다며 웃는 여자를 보고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여자인데. 누군가에겐 새로운 설레임이고 새로운 사람인데
그 여잘 그렇게 놓쳐버린 그 남자가 미웠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놓치지 않았다면 그 누군가에겐 기회가 없었을수도 있으니까.
치프에게 퇴원 오더를 내리고 오후에 잡혀있는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는동안 들었던 생각인데, 아마 오늘 퇴원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일 아침 집으로 돌아갈텐데 오후에 잡힌 수술이 저녁쯤 끝날 예정이라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여자를
만나야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퇴원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해야했고, 집으로 돌아가기전에 내가 해야할, 해주어야 할 말도 있고.
참 웃긴게 몇주간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것이랑, 이제 영영 볼 수 없을수도 있는것이랑 드는 생각이 참 다르다.
어쨌든 나는, 잡아야했고 그 말을 꼭 해야 했다.
*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두시간 전 쯤이었는데, 점심식사를 느즈막히 하고나니 약을 주러 온 간호사 언니가 웃으면서 그랬다.
이제 집으로 가도 되니 좋죠? 라고. 그렇죠. 하고 따라 웃었는데 마음이 꽤 복잡했다.
간호사 언니에게 슬쩍 이선생의 행방을 물으니 수술 들어가서 저녁쯤 되어야 나온다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지금 바로 퇴원할 수 있느냐 물었다.
대답은 상관없다 였고, 그래서 나는 짐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몇주를 지냈으니 짐이 좀 됐지만 불필요한걸 버리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같은 병실을 썼던 다른 분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와 간호사 언니들에게도 그동안 감사했다 인사를 하려는데
" 이 선생님 수술중이셔서 인사도 못하시겠네요. 이 선생님 서운해하시겠다. "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간호사 언니 말에 나도 웃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려다 다시 간호사 데스크로 갔다.
" 이 선생님 방, 어디에요? "
언젠가 그가 좋아한다는 캔커피였다.
원래 단걸 좋아해서 커피는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건 달아서 맛있다고.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던 커피를 사서 비어있는 그의 방으로 갔다. 그러고보니 여긴 또 처음이네.
외모처럼,성격처럼 방도 참 깔끔했다. 포스트잇을 붙인 캔커피를 그의 책상위에 올려놓고 한참 방 안을 구경하다
조심히 문을 닫고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병원 문을 나서는데 괜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병원을 나서며 불필요한건 다 버렸는데, 정작 나는 가장 불필요한 내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나왔다.
*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처음엔 병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몸도,마음도 다 멀쩡해져서 돌아가요.
비행기에서 건네주셨던 손수건부터 병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 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수술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책상위에 캔커피 하나가 놓여있었다.
거기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고 누가 생각나는 정갈한 글씨체로 짧은 글 몇줄이 쓰여있었다.
그 몇줄의 글을 읽는데도 목소리가 생생하다. 언젠가 내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라고 놀렸지.
.
의자에 털썩 앉아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캔커피엔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물방울이 맺혔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며칠이나 있던거 하루 더 있는다고큰일 나는것도 아닐텐데.
" 나한텐 기회도 안주네. "
괜한 원망이 들었다.
정작 내가 원망해야 할 것은 너무 늦게 눈치 채 버린 내 마음이어야 하는데.
*
" 수술부위도 잘 아물었고, 염증반응도 없고 이제 괜찮네요. "
퇴원할때 한달뒤에 내원하라는 말을 듣고도 여태 까먹고 있었다.
새 직장도 알아보고 면접도 보러 다니느라 꽤 바쁜 일상속에서 사느라 그랬던건데
이틀전에 병원에서 내원 예약 문자가 왔다. 그러고보니, 퇴원때 진료 예약을 하고 나왔었지.
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언니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은 이 선생이 아닌 다른 나이가 지긋한
어느 선생님의 방이었다. 내 주치의는 이 선생이었는데.
" 이제 병원 안와도 되는건가요? "
" 네. 다 나았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오려다 괜한 마음이 들었다.
" 저기 근데, 이제훈 선생님은... "
" 아, 이 선생 지금 수술중이에요. "
그렇구나. 안녕히계세요. 하고 방을 나왔다.
여전히 자기 일 하며 열심히 잘 지내고 있겠지. 코 끝을 한번 찡긋하며 웃었다.
나는 한 달뒤에 그를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은근히 기대를 했나보다.
시작도 제대로 못해본 짝사랑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제 나는 짝사랑에 목을 맬 나이가 아닐 뿐더러
일상으로 돌아가 취업 준비도 부지런히 해야 하기 때문에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괜찮아,괜찮아. 잠깐이지만 덕분에 몸도 마음도 다 나았잖아.
말 없이 스스로를 위로했다. 괜찮을리 없겠지만 괜찮을거라고.
" 김슬기씨! "
억지로 괜찮다고하니 정말 괜찮아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불러세웠다.
*
" 어, 이 선생 수고했어. "
" 뭘요. "
" 참 아까 어떤 여자 환자가 이 선생 찾던데? "
꽤 예쁘던데. 이름이 뭐였더라, 슬기씨? 였던것 같은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원로 교수님과 마주쳤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데
교수님께 며칠간 내내 생각했던 이름을 들을 줄 몰랐다.
한달이 지나 외래진료를 왔고 방금 나갔다는 말에 나는 두번 생각 하지 않고 왔던 길을 그대로 뛰어갔다.
여자가 퇴원하고 한동안은 정신을 어디다 빼놓은 사람처럼 생활했다.
꼼꼼하단 소리를 제법 듣는 성격이고 나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며칠간의 나는 참 이상했다.
비슷한 키에, 비슷한 머리길이를 가진 여자를 보면 지나왔던 길도 되돌아가 다시 보았을 정도로
나는 집착 아닌 집착을 해왔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도 있었고.
그 희망을 접고 말도 못해본 짝사랑이 허무하게 끝났구나 싶은 마음이 들때 조금 체념하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체념이란게 쉽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늘 가던 하늘공원에 올라갈때
일상속에서 문득문득 치고 올라오는 생각들이 체념을 어렵게 만들었다.
아직도 어둑한 그 시간이 되면 그곳에 있을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포기를 해.
너무 늦게 깨달은 마음을 원망하며 숨이 차게 뛰어가는데 병원 로비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
" 어..? "
" 또, 나 안보고 가려고 그랬어요? "
남자가 수술복에 가운 하나만 걸친채로 뛰어왔다.
잠깐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됐는데 또 자길 안보고 가려 했냐며 어울리지 않게 다그치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게 꿈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선생님이 안계시길래... "
" 그럼 그때는? 퇴원하면서 캔커피 하나만 딸랑 놓고 가고 왜 그냥 갔어요? "
" 수술중이라고 하시길래요.. "
" 그럼 좀 기다리지, 그거 몇시간 그냥 좀 기다리지. 지금만 봐도 그래. 여기까지 왔으면 나 조금만
기다렸다가 가지. 오늘 안보면, 진짜 영영 못볼건데 왜 그냥 가, 왜. "
멀리서부터 뛰어오더니 숨을 헐떡이면서도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그가 날 다그쳤다.
항상 웃고 상냥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뭐가 단단히 화라도 난것 마냥 다그치는 말에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 아....죄송... "
" 잘 지냈어요? 이제 안아파요? "
" 네...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
" 아니요, 난 잘 못지냈어요. "
" 네? "
" 슬기씨가 말 없이 그냥 가버렸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 잘 못지냈다고.
나 할 말이 있었는데 그거 하려고 혼자 막 연습도 해보고 그랬는데 그냥 갔잖아.
난 시작도 못하고 놓쳤는데 내가 어떻게 잘 지내요. "
답지 않게 흥분한 얼굴로 몰아치던 이선생이 숨을 훅 들이마시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고 나를 내려다봤다.
" 나 또 진료 가봐야해서 길게 말 못해요. 그렇다고 다음에 얘기합시다. 하면 그쪽이 또 도망갈것 같아서.
조바심 나서 그냥 지금 얘기하는거에요. "
" 네? "
" 내가 그쪽 좋아해요. 언제부턴지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당연한것처럼 자연스럽게 좋아졌어요.
난 누구처럼 혼자 두고 어디 가지도 않을거고 당연히 배신도 안할거고 옆에 꼭 붙어있을건데
그니까 그쪽도 나 좋아해주면 안되냐고 부탁도 하고 떼도 쓰려고 했는데... "
" ..... "
" 내가 좋아해요. "
무슨 드라마 같았다. 병원 로비엔 오고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한데 마치 아무도 없이 그와 나
딱 둘만 남겨진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오롯이 내려다보는 눈빛에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웃었다.
" 나도, 좋아해요. 나도 당연한것처럼 자연스럽게. "
나는 힐링로맨스 같은걸 쓰려고 했는데...ㅎㅎ
사실 병원이나 의사분들에 대해서 1도 모름...입원도 해본적도 없어서...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주라주....(찡찡)
금손.......♡
여시금손이야...흡입력쨔응♤♡
와 이건 명작이다 ㅠㅠ단편인게 아쉽다ㅠㅠ
미쳤다 ㅠㅡㅠ 작가님 연재부탁여 ㅠㅜㅠㅜㅠㅡㅠㅜ
댐치ㅣㄴ!!!!!!!!!!!!!!!!!! 대미친 미쳤다 미쳤어 나 진짜 이제훈 제발 의사역할 해줬으면 제발/.///
너무 상상이 잘간다 수술복입은 모습도 이제훈 의사역해라!!!고아광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