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저희의 감사가 땅의 것을 주심에 대한 만족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에 열광하는 자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으로 주일을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창원에서 열리는 복생 캠프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소수의 인원이지만
생명문이 열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상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본문 주해)
22~26절은 요셉에 대한 축복이다.
22~24a : 요셉은 샘 곁에 심긴 무성한 나무가 되어 담을 넘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일생이 여호와의 말씀에 뿌리를 견고하게 내렸기 때문에 그 가지가 담을 넘었어도 건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담장을 넘었다’는 것은 노예로 팔린 세월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 종살이를 할 때도, 감옥에 있을 때도, 그리고 총리가 되어서도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활 쏘는 자’가 요셉을 미워하고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었다.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사용해서, 보디발의 처가 가진 정욕을 사용해서, 술 관원의 무정함을 사용해서 사탄은 요셉에게 활을 쏘아대었으나 요셉은 실망하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도리어 질투와 미움의 화살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유혹 앞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나무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애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그 나무에 그의 아버지와 그를 미워하고 질투했던 형제들이 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4b~26절 : 그런데 요셉이 받은 이 복은 요셉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야곱은 말한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바로 야곱 자신이 경험한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야곱의 전능자’(24절), ‘네 아버지의 하나님’(25절)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심지어 야곱은 자신이 받은 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이는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이것을 나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보다 삶을 통해 더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인생의 역경을 통해서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오래 참으시고 훈련시켜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요셉 네게 축복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야곱은 ‘요셉의 축복’을 말하면서 ‘야곱의 축복’ 즉 자신이 받은 복을 고백하는 것이다.
27절 : 베냐민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을 표현해 주는 말이다. 그러한 기질은 기브아 전투(삿20장)에서 보인 베냐민 용사들의 모습에서 입증이 된다.
28~33절 : 야곱은 열두 아들에 대한 축복 기도(하나님의 하실 일을 예언)를 마치고 자신의 매장지에 대해 말한다.
그곳은 가나안 땅 막벨라 동굴로서, 아브라함이 사 놓은 그곳에 묻히기를 소원한 것이다.
요셉의 권력을 사용하여 호화분묘를 꾸밀 수 있는 애굽 땅이 아니라, 초라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상들, 그 언약의 사람들-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레아-이 묻힌 곳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고 숨을 거둔다.
(나의 묵상)
요셉을 마음껏 축복하는 야곱의 심정은 하나님 찬양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축복하지만 자신이 받은 그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 같다.
요셉을 지키시고 온갖 복을 다 주시는 그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험악한 세월 동안 함께 해 주셨던 그 하나님이신 것을 아들에게 자랑하고 또 자랑하는 것 같다.
심지어 야곱은 자신이 받은 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야곱은 자신이 받은 복이 아브라함보다, 이삭보다 더 낫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b) 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야곱 스스로가 표현한 험악한 세월은 그가 사사건건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살았기 때문에 치르게 된 세월이었다.
야곱은 말 잘 듣는 양이 아니라, 고집도 세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양이었다. 우리를 이탈해서 소견에 옳은 대로 살려고 하는 못된 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커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리고, 남을 속이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왔다.
루스가 벧엘이 되었던 그곳에서 하나님께 한 약속은 잊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벧엘이 아니고 세겜에 정착하려고 했다.
아무리 계산 해봐도 목축을 하기에는 벧엘보다는 세겜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다. 그래도 야곱은 대충 얼버무리고 그냥 정착하려고 했다. 딸이 이방인에게 시집을 가게 되더라도 세겜에 정착할 수만 있다면 눈감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므온과 레위가 주동하여 무참한 학살 사건을 일으킴으로 거기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뒤로 가서는 딴 짓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말씀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셨음을 야곱이 절절히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요셉을 축복하는 말에 다 쏟아내는 것이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야곱에게 남은 마음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렇게 땅에 붙은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아왔던 자신의 일생에서 남은 것은 ‘언약의 하나님’을 깨달은 것이다.
야곱의 일생이 주는 교훈과 감격이 크다.
그것은 내가 야곱보다 더 비열하고, 더 겉과 속이 다르며,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왔던 존재였는데 그런 내게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랍기 때문이다.
그것은 땅에 붙은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자기부인의 삶에 목을 빼게 하시고,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b)
아멘~~!!
매일의 말씀에서 나의 죄성을 늘 밝히 보니 내게 베푸신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또한 밝히 보게 된다.
그 은혜를 자랑하며, ‘나의 하나님이 너희들의 하나님’이심을 내 자녀들에게도 힘 있게 말하고, 그들에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상기시키며, 이 세상의 무대를 떠나길 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못된 양이었던
야곱의 생을 이렇게 멋지게 마감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야곱보다 더 못된 양이었던
저의 생도 주님을 무한 자랑하며 마감되어지길 소원합니다.
남은 세월,
주님을 더 잘 알아가게 하시고
알아지는 만큼 더욱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