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돼지 이야기
“정신을 차려야 해, ‘안돼! 저 차에 실려 가면 끝이야, 안돼~!’ 잡혀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아까부터 그렇게 소리치고 몸부림을 쳐도 맹 그 자리였어요. 점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아, 이젠 정말, 골로 가는구나!’ 했을 때,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떴습니다요.” “그랬었구나! 그건 내가 문에 부딪친 소리였어!“ ”내 덕에 살았구나!“ ”그 소리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온 녀석이 새로 태어난 듯 말했다. ”이제 세상이 달리 보이네요!“ 그럴 만도 했다.
똔이는 꿈을 깨고도 한참을 그 자세로 있었다. 꿈일망정 얼마나 식겁을 먹었으면, 그럴까. 처음 당한 흉몽에 머릿속이 혼란한 모양이다. 좋아하던 배추를 던져 주어도 심상한 듯 입에 대지 않았다. 녀석은 꿈속에서 자기의 미래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똔이는 그럴만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스스로 생각해도 상품 가치가 있어 보이니까, 본능적으로 도살장이 떠올랐고, 그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지금이 돈육감으로 아주 적당한 상태였다. 그것을 자각한 녀석은 언제 끌려갈지 몰라 내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 꿈은 생전 처음일 거다. 녀석은 주로 먹는 꿈을 꾼다. 깰 때 보면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침을 줄줄 흘렸다. 돼지의 소원은 배 터지도록 실컷 먹는 것이다. 먹성 좋게 우적우적 먹어 치우는 것이 돼지의 상표다.
똔이가 악몽을 꾸고 난 뒤 달라졌다. 돼지 철학자가 된 것이다. 가끔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난 왜 사람이 되지 않고 돼지가 되었을까?“ 녀석이 끔찍한 말을 했다. 이 말의 함의는 돈육이 되어 푸줏간에 걸려 있게 되는 참담한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갔다. 그 소리에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는 돼지의 생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삶이 있는데, 그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온당치 못했다. 하지만, 뭐든 의문은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똔이를 불러 앉혀놓고 설교했다. ”저기 있잖아. 따지고 보면, 인간 세상에도 평등한 것은 어디에도 없어. 태생부터 불평등이야. 왕족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나 하면, 다리 밑에 거지 아들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어. 어떤 이는 용모가 수려하고, 어떤 사람은 꼴불견이야. 어떤 이는 천재고, 어떤 이는 둔재지. 어떤 이는 흥부 마음이고, 어떤 이는 놀부다. 세상만사 천차만별이다. 네가 돼지가 된 것이, 네 의지가 아니듯이,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정작 태어나고 보니 김씨가 됐고, 이씨가 됐어. 자기가 골라잡아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그때부터 우린 불평등을 안고 태어나는 거야. 똔이 너는 돼지로나마 이 세상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남을 위해 육신을 공양하는 것이 너의 임무로 생각해야 한댜. 다음 생엔 인간으로 환생할지 누가 알겠나." 머리 좋은 똔이가 수긍하는 눈치였다. 어쩌겠나 무작위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팔자소관으로 치부하는 것이 속 편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