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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포항에 오어사라는 절간에 있는 혜공법사와 친한 사이였읍니다.
그런데 悟漁寺(오어사) 의 절간 이름이 된 연유가 있는데
오어사란 물고기를 먹고 법을 거래한 절 이라는 뜻입니다.
오어사 절 앞에 저수지가 있는데
거기서 어부가 낚시한 어공(魚公)을 공양받아 혜공과 원효가 산책차 나갔다가 한 마리씩
얻어서 고기를 드셨는지, 저수지에서 고기를 보고 말 했는지는 모르나
이들 둘이서 법거래를 하기를
원효가 혜공에게 물었읍니다.
고기를 먹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누노?
하고 물었읍니다.
이에 혜공은 나는 똥을 누지! 했읍니다.
이에 원효는
나는 고기를 먹었으니 고기를 눈다네 ... 했읍니다.
이런 일화가 유명해져서 서로가 웃고 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이 오어사 가 되었읍니다.
여러분은 밥을 먹었으면 똥을 눕니까 밥을 눕니까?
원효대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논객이였읍니다.
쉽게 말하자면 논쟁의 대가인데 주먹세계로 말한다면
아주 유명한 논쟁의 싸움꾼이지요.
똥 거래도 할 줄 아는 것이지요.
인도문화의 유식론을 전개한 인도 특유의 썰이 유명합니다만
원효대사도 작난이 아니었읍니다.
원래 조금 뚜껑이 열리게 되면 말이 터져서 자유자재로 논변에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깨쳐서 그렀읍니다. O 의 중도를 깨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상을 몸소 실천하여 깨친자와 그냥 논리로 이치를 깨친자 와는 천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논리로 깨친자 라고 한다면 어디엔가 말이 막히고 걸리게 되어있읍니다.
원효에게는 말에 걸리지 않아 입담도 누구도 당할 수 도 없었으며
깨침의 흉내를 내거나 법을 모르면서 흉내를 내는 작자들에게는
거침없이 공격하고 진리의 체를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일념의 실상경지인 중도를 열어젖혀 보여주고 민중을 늘 주장 한 분이 원효대사였읍니다.
원효대사는 깨친다음 환속하였는데 파계승이라 하여
당시 유명한 고승들은 원효를 상대하지도 않았으며
서로 만나지도 않았읍니다.
하지만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고, 저자거리에 나아가서
무애춤 이라 표주박을 가지고 춤을 추며 민중들에게 나서기 시작했읍니다.
오히려 고승들이 원효와 토론하기를 겁을 낼 정도였으니
사실 당시 귀족불교로서 에헴 불교 였는데 이 격을 원효대사가 깨어버리기 시작한 것이고 보면
고승들은 원효에게 이미 겁을 먹고 있었다는 반증의 내막이 있었음이
가능한 정황이기도 합니다.
원효를 대적할 스님은 동양에는 존재하지도 않을 정도로
아무리 큰 스님이라 하더라도 틀린 이야기를 하면
그냥 논쟁을 벌이고 승부수를 띄 었읍니다. 그러므로 싸움꾼이지요.
싸움도 독구다이 기질로 일대일도 좋고 무리로 덤벼도 거뜬하게
항복을 받곤 했읍니다.
또한 위대한 각자로서 대중들 앞에 서서 독특한 포교 를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파계를 한 후에는 소성거사라는 이름을 별도 로 내 걸었읍니다.
민중들이 서라벌의 저자거리를 누빈 당시의 모습을
삼국유사에 고스란이 실려서 나오므로 이러한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려면 원효대사의 무애해탈 지경에
든 행적에 대하여 잘 이해해야 하기에 소개 해 봅니다.
원효는 이처럼 기질이 원래 남달랐읍니다.
의상조사와 원효대사는 평택의 궁평항 근처의 당은포(唐恩浦) 에서
당나라 유학을 가려 포구에 도착해서 배를 기다리던중
잠은 청해야 하였기에 숙소를 찾던중
어떤 토굴처럼 생긴 둔덕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잤는데
알고 보니 무덤이였읍니다.
이때 의상조사는 나이가 37 이고 원효는 44 살이 였읍니다.
유학의 목적은 당시 당나라에는 삼장이 인도에 가서 신유식(新有識) 이라는
잠아함경의 유식론 인 아비달마 구사론의 경전을 가지고 와서 크게
불법의 소식을 당나라에 펼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삼장법사인 현장스님 휘하에서
공부하려 가는 것이 목적이였읍니다.
그런데 원효가 토굴이라 여기고 잠을 편하게 잤는데
알고 보니 시체가 있는 무덤이였으니 마음이 뒤숭숭하다라고
하면서 토굴이라는 마음과 무덤이라는 마음은 두가지가 아닌것인데
이처럼 모든 법이 마음하나로 결정된다는 사실을깨치고서는 ,
당나라 유학을 갈 필요도 없다고 결심을 한 후
게송하나 남기고 다시 되돌아간 인물입니다.
心生卽 種種法性(심생즉 종종법성)
마음이 생겨난즉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心滅卽 龕墳不二(심즉멸 감분불이)
마음이 멸한즉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니로다
三界唯心 萬法唯識(삼계유심 만법유식)
삼계가 오로지 마음일뿐 만가지 법이 오로지 식일 뿐이니
心外無法 胡用別求(심외무법 호용별구)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턱밑에 살을 별도로 왜 구하는 가?
멋있지요? 대장부 한 사람이 출현하는 순간입니다.
이런고로 원효는 당나라 유명한 스님인 삼장이고 현장이고간에 다 상관없으니
당나라 장안가서 별도로 구할 일이 없다라고 하고
당나라 유학을 해야하는 필요성이 없어짐을 발견하고 포기 한 것입니다.
의상조사는 당시에 이러한 원효의게송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효는 無師自悟(무사자오)를 한 셈인데
스승없이 스스로 깨쳤다 함을 말 하는데 그러므로 원효에게 깨침의
법맥을 이어준 스승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쉽게 말하자면 독고다이 (獨高帶) 였읍니다.
깨침이란 견성은 獨成(독성) 이라 개별적인 깨침이므로
어느누구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니 의상은 당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서로 사찰의 증흥을 전개해나가는 둘도없는 사이로서
법거래는 보다 열려지는 서로의 이심전심이 있었는지라
두분의 위대한 각자가 신라시대때 출현한 것은 증명이 되는 셈입니다.
의상조사의 법성계 계송은 너무나도 유명한 것 아니겠읍니까?
특이한 점은
의상조사는 당나라 유학가서 선요낭자인지 하는 모령의 낭자 하나를
아에 정신까지 싸그리 다 데리고 오는데.
선요낭자와 의상조사 사이에는 파계를 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불법을 호위하는 용으로 승화하는 정신으로 부석사까지 데려 오는데 성공합니다만
원효는 노골적으로 환속하고 왕 의 딸을 취합니다.
도 는 장애를 받을 곳이 없다? 도인이 여성을 취하는 것이 마땅 한 것인가?
하지만 진정한 로맨스라면 인연줄이므로 도 라는 것을 깨친이상
적정한 로맨스 로 어필하는 것도 가 하다? 이렇게 의심을 해 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이 있읍니다.
사마라인 이 예수께 묻읍니다.
여성에게 염분이라도 품으면 이것은 간음이 되는지요?
이에 예수게서 말씀하십니다.
간음이니라...
뭐 ! 아주 간단하고 선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의상과 원효의 로맨스 사건은 단지 처녀이고 과부이므로 간통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간음은 품은 것이지요.
하지만 원효는 한 발자욱 더 나갔읍니다, 무애인으로 아예 취해버렸지요.
스님입장에 이성적인 사유에 빠졌으므로 끼는 다분히 있는 분 들이라 여겨 집니다만
사람이란 것은 육욕이 없을리는 만무하므로 솔직한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요..
어쨌든 끼가 있던 말든지간에 무애의 해탈경지에서 장애를 느끼지 않으면
문디 코구멍 같은 사랑도 러브스토리 가 아니며 법거래량 이 아니겠읍니까.
그런데 원효의 요석공주에 대한 구애 게송을 들으면
이건 보통 소식이 아닌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誰許沒柯釜(수허몰가부)
누가 자루 없는 도끼 를 주겠는가?
我斫支天柱(아작질천주)
내가 하늘을 떠 받출 기둥을 깍으리니..
시경의 빈풍 구설의 벌가 (伐柯) 에서 나오는 한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요석공주를 "아작" 낼 수 있는 사내 대장부라는 의미로서
멋있는 아들 하나 주겠다는 식으로 구애를 보낸 것입니다.
하늘의 소식을 널리 펼 씨를 지닌 이 원효에게 시집오라는 말과 같읍니다.
당시 요석공주가 이 말을 듣고, 또한 과부인지라 같이 살면서리
아들도 하나 낳겠다는 의미의 확실한 평생을 보장하는 명분을 받았던 그
메세지에 요석은 자지러지고 오짐을 안 싸겠읍니까?
과부로 노는 몸인데 이게 웬 떡입니까. 하지 않겠읍니까?
원효대사는 평생 이삭줍기 한번에 큰 횡재를 한 것도 사실이지요.
이를 윈윈 한다라고 요즈음 문명세계에서는 회자 됩니다만...
웬만한 자유부인사상으로도 택도 없는 당시 도덕관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연애론으로 획기적인 사건이 됩니다.
이로서 원효는 요석을 아내로 만들었고 슬하에 자식인 설총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양산의 반룡사 에 (왕이 둘러보는 절)) 요석공주와 설총을
살게하고 원효대사는 저자거리로 나가서 민중을 포교한 것입니다.
이에 장인되는 태종 무열왕은 뻔질나게 이 절에 올라와 귀한 딸 요석과
설총을 보곤 하였읍니다.
이에 해당 절 을 반룡사 라 하였읍니다, 왕이 다니는 절이라는 의미입니다.(伴龍寺: 용인 임금이 동반하는 절)
원효는 이휴 불가사의하게 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법을 전하게 되는
원력을 쌓게 되어 역사상의 거두가 되는 위대한 견성자로서 그 덕을 베푼것입니다.
뒷 백그라운드가 왕아닙니까?
사찰건립하는데 널널한 배경을 둔 것이니 지 마음대로 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서 절을 지어 버린 것입니다.
아예 원효대사와 의상조사는 사찰을 건립하는 경쟁을 벌이는듯 당대에
사찰건립은 그 수를 헤어랄 수가 없을 정도 였읍니다.
29 세때 출가하여 44 세때 견성하고 난 후 요석공주를 아작 낸 후
만민의 대중들에게 법을 펴시고 원력으로 불교의 사찰 건립을
융성하게 전개하여 우리나라 불국의 명칭을 드날리게 했던
자가 원효대사인 것입니다.
어찌했던 만법의 유식이기도 하는 경지에 도달 한 의상과 원효들이니
웃자고 재미있게 농 도 하면서 소개하는 글이니 부담없는 마음으로 양지하시기 바랍니다.-합장-
의상조사는 왕자 출신 아닙니까.
우리나라 왕자와 공주의 집안이 설친 법량이니 사찰의 증흥됨이 창대해지지 않겠읍니까?
백그라운드가 태종 무열왕 인데 과연 누가 간섭할 수 있겠읍니까?
우리나라 불교사상 제일 번창한 시대이기도 한 것입니다.
도를 닦아도 이렇게 여러가지 방편을 구사하여야 만이 도의 증흥을 열고
부처님 법을 만세에 알리지 않겠읍니까?
일심의 정토사상은 언제나 중생제도 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방편종교로서 많은 공헌을 남기게 됩니다.
파계했다고 내 무덤에 침을 뱉지 말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밷던지 간에
내가 가는 이 개혁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는 호국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밷어라 입니다. 이와 같은 개혁정신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원효가 생각하기를 절에서 보시나 받아서야 어찌 사찰이나 법의 증흥을 기대하겠읍니까?
탁구공 하나 굴러가는 것 보다 25 톤 타이어 한번 굴러가는 것이
확실하게 볼일 다 보는 수준 아닙니까?
이 글을 컴퓨터로 써 내려가는 사이 내자가 이 내용을 언제 뒤에 와 있었는지
보더니만
일성! 의 할 소리를 하나 건넸는데, 아래와 같은 법거래를 내게 전달하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읍니다.
쯧! 의상인지 원효인지 뭐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선묘 요석공주 인생
얼마나 불쌍하겠어?
나는 도사 흉내내는 놈들 다 싫어.
자기 부인이나 여자를 사랑해주는 넘이 부처님 아이겠어?
그와 동시 눈매는 초음속 고속미사일 한방을 내게 찌릿하게 광선을 날리고는 퇴장한 것인데
내가 좀 알다시피 도사 흉내좀 내다 보니
싸잡아 도매금으로 1,300년 업장이 쏟아내려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격이 되어버렸읍니다.
시간과 때를 잘 골라야 하는데, 자 내자가 뒤에 있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무신 이런 글만 쓰는가 하는 일갈이기도 한 것 같읍니다.
이때에는 미리 내다보고 마가릿 미첼이 쓴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 의 스칼렛의 사랑이야기를
지면에 옮겼더라면 하는 ... 얼얼한 아쉬움이 깃드는 순간입니다 ㅎㅎ
도를 공부하는 자들과 장가론 은 어떻게 관계 정리가 되어야 하는지 이것도 화두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탈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수행하는 정신으로 독신 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일성의 한소리에 나는 내자 법거량에 벙 찌는 경지에 돌고 말았는데
욕얻어 먹는짓을 많이 했으므로 욕을 눌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도관입니다-관셈보살 아미타불- 합장
어쨌든 원효대사는 당시 태종무열왕의 딸 공주로서 한번 시집가서 과부가 되어진
요석공주를 취하는 로멘스 역시 간단하게 저지르는 플레이 보이 기질도 있었던 것입니다.
합리적이며 최대한의 선택이였읍니다, 도끼 구멍에 자루를 끼어 하늘의 기둥을
만드는 도구를 만든 것이지요.
하지만 목적이 불사의 증흥을 위한 것이니 결국 중생제도의 법거래 였던 것이며
방편이였다는 사실로 윈윈문화를 구가한 최대한의 처세술이였던 것입니다..
원효대사를 파계승으로 볼 까닭만은 아닌 이유고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원효는 독특한것이 學不從師(학불종사) 라 스승을 따라 배우지 아니한
독수성 이라는 사실로서벽지불 의 깨침을 만세에 두드러진 각자로서 드러내고
중도의 정토화엄사상을 널리 진작 시켰읍니다.
원효의 저자거리에서 춤을 춘 해탈댄스 스텝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원효대사는 사실 윗 스승격이신 혜공, 혜덕, 대덕 스님등 많은 선배 스승이 있었읍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어떠한 반증도 없는 것입니다. 늘 자유인이였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아버지 정반왕 말을 안들었기 때문에 성불하셨읍니다.
어느누구나 아버지 말씀을 몰록 전부 다 잘 들어서는 아니됩나다,
아버지 수준밖에는 아니되기 때문입니다. 아닌것은 아닌것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특히 아들은 그러합니다.
아버지 이상가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아버지보다는 더 발전되는 목적을 구가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아버지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겠읍니다.
원효대사를 낳으신 어머니도 홀로 원효대사를 키웠는데
원효대사를 낳은 어머님은 경북 경산의 어느 마음에 사라수 나무가 있는
집에서 원효를 낳았다고 하여 지금도 경산에는 사나사 라는 절이 있읍니다.
양평 신내동 에도 사나사 절이 있지요..
성인이 태어난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일생에 팔성도 가 있는데 원효대사의 일생기에 8 가지 불화가
사나사에 펼쳐 있다 하므로 한번 방문을 해야 할 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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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일심정토 화엄사상은 이렇게 하여 해동불교로서 탄생하는 계기가 되며
의상조사의 화엄종찰의 기반을 지니게 하는 원인으로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논리사상은 용수존자의 삼단논법과 전혀 다르지 않으며
중도의 실상을 본 유일한 각자 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판비량입니다.
판비량은 인명학(因明學) 에 근거를 두는데 연기법을 말 합니다.
특히 유식학과 인명학을 근거로 한 삼단논법의 추론식은 중국의 현장법사의
추론도 지적하고 비판한 사례를 판비량이라 하는 것인데
오히려 현장법사의 논리는 꾸짓는 입장으로 비판에 날을 세운 판비량은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인명학의 인도어는 Hetuvidy 라 하여 집량론(集量論) 이라 하기도 하며 인명정리중론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 인명학은 삼단논법으로 불교의 모든 사상을 삼단논법으로 전개 한 최초의 논술방법입니다.
논리의 세계를 내놓은 최초의 서양학자는 아리스토 텔레스이고
동양으로서는 인도에서는 진나 였읍니다.
이 논리에 대하여 삼단논법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용수보살 이후 현장 인데, 이를 바로잡은 인물로서는
원효대사의 삼단논법을 인정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효대사는 논리의 각자이며, 종교와 불교 를 초월한 대 각자로서 해동불교를 장시한
대 각자 이며 이미 각론에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삼매경 은 논리서 입니다.
다른 편찬한 책은 아미타경소, 유심안락도, 미륵상생경종요, 대승기신론별기 , 대승기승론소 등으로
명칭이 있지만 금강삼매경은 논리 라는 가치로서 책을 엮은 것입니다.
이 금강경에는 비량(比量), 相違過(상위과) 등의 용어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비량의 관점으로
현장스님께서 추론식을 전개하는 삼단논법에 의하여 전개하면서 부정과, 저어상위 결정상위 등 현장의 인명학
의 술어들이 등장하며 用 을 전개함에 있어 이에 대하여 이율배반적으로 통렬하게 지적하며 비판을
가한 것을 판비량이라 하며, 상위과 라하면 서로 논쟁을 벌이는 토론의 입장으로 상대방의 주장이
반대임에도 서로 맞는 이율배반성을 발견하게 하는 논법을 말 합니다.
그냥 그렇게 참고 하시면 됩니다. 용어를 분석하려면 어지간히 공부해야 하므로 여기서 약하므로
그렇게 굴러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전체적인 맥락중 일부를 인용하여 소개 하겠지만, 실제로 실상을 경험으로 증한 원효의 중론과
신유식의 현상이 인도에서 배우고 익히며 깨쳤다 하는 잡아함경의 유식론 의 인명학은
(인명학은 원인을 밝게 밝히는 지식의 요체를 말합니다) 삼단논법의 추론식으로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틀리지는 않지만 맞는 것도 아닌 용수의 중관학과 같음으로 삼단논법을 바로
반대로 구사하여 지적하는 원효대사의 논쟁은 엄청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6,6,6 법은 원효대사가 여기에서 이를 주장하며 O 을 드러내게 됩니다 (空)
이를 다 소개하기에는 너무 막막하므로 윤곽만 소개 한다며는
불교의 논리학의 구성에 대하여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인 김성철 교수의 강설을 보게되면
이러합니다.
안 이 비 설 신 의 의 육식(六識) 에 대하여 안 이 비 삼식(三識) 을 설신의 삼식(三識) 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識體) 를 필요로 한다 입니다.
이를 삼육문의 삼식에 포함되기 때문이라 이유와 근거를 다는데
무슨 의미인가, 안 이 비 는 안식 이식 비식인데 안이비설신의 육식을 안이비 와 설신의 식 두 덩어리로
나누는 것입니다.
안이비는 그냥 육신을 형성하는 관계를 짖지않고 내는 인식이고
설신의는 육의 물질을 먹거나 접촉하는 입장에서 뜻을 지니는 인식이므로
달리 하는 것인데
안이비 3 식의 6 처로서 18 여래장이고
설신의 3 식의 6 처로서 반연하여 18 여래를 거슬러 밟으니
오로지 1)육내처, 2) 육외처, 3) 육식신 4)욱촉신, 5)육수신, 6) 육애신 의 육육법문 즉
세번째 것인 육신신 을 가르키는 것인데 이 추론식의 타당성은 다음과 같이검증됩니다.
다음
주장: 안이비식 은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를 필요로 한다.
이유: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기 때문에
실례: 마치 설신의 식과 같이
이 삼단논법에서 주장과 실례 의 이분법의 中 을 잘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삼육문이니 6,6,6 인 것이 인식의 반경점이고 이를 중이 잡고 나머지 6,6,6 설신의식을 맞잡고
식이되어지느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8 더하기 18 는 36 여래장의
법성운융의 중관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을 증한 원효는 거침이 없읍니다.
중울 보지 못한 현장의 삼단 논법을 이 중관의 확실한 체험의 해탕경지로서 주장하는데 서야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한다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희말라야 에 있는 에베레스트 산 이며 거의 만 메다 됩니다.
바다에서 제일 깊는 호구는 마리아나 호구라 하여 거의 만 메타 저옫 됩니다.
산이 삐죽 삐죽 나와 있지만 그 만큼 반대로 깊이 파인 것도 똑 같이 균형을 잡고 반연하여
형성하는 것이 이 지구의 모습입니다.
나무 줄기가 서쪽으로 치우치며 발달하고 지향 한다며는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뿌리는 그 반대로 그와 같은 힘으로 뻗어 동쪽으로 발전하여 O 을
맞춘다는 사실과 같읍니다.
현장법사의 추론식
주장 승의에 의거할 때 양측 모두 인정하는 색은 안식을 "벗어나 있지 않다"
이유: 우리측에서 인정하는 초삼에 포함되면 '안근"에는 포함되지않기 때문이다
실례: 마치 "안식" 과 같이
위와 같은 삼단논법의 추론의 내용해의에 신경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를 원효가 고안한 추론식으로 논쟁을 겁니다.
주장 : 승의에 의거할때 양측 모두 인정하는 색은 반드시 안식을 "벗어나 있다"
이유: 우리측에서 인정하는 초삼에 포함되면서 "안식"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례: 마치 "안근" 과 같이
완전 비논리적 삼단논법으로 이율배반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유사하게 반연하는 법을 써서
논쟁을 뒤 업는 것입니다.
中 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장은 中 을 실체로 보았다라고 할 수 는 없는 의문이 드는 것이며
논리로서 실체의 한 단면의 편견을 기재 해서도 아니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원효가 지적하는 것입니다.
판비량의 부분에서 하나를 소개 해 봅니다.
화엄경의 일심정토 사상은 이러한 중관을 꿰뚫어 보는 자 가 창시한 화엄종의 해동사상을 연
대 각자 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명확한 증거 인 것입니다.
현량(現量: 현재 드러난 량) : 시각(示覺) 의 현량 법 네가지를 의미하는데
1) 감각지 로서 자기의 대상과 인접한 대상의 공조(供助: 이바지하고 도우는 ) 에 의한
감각지에 의지 하는 것과
2) 등무간연(等無間緣: 등등의 사이에 서로 인연되어지는) 의근식(意根識) 에 의하여 발생하는 등무간연지 외
3) 자증지 (自證知):모든 심법과(心法) 과 심소법(心所法: 마음에 의한 바의 법) 에 의한 것
4) 정관지: 명상의 절정의 극단에서 생기는 바른 통찰의 법을 관하는 경지 등
위 4 가지를 불교인식의 논리학의 구성요건이 되는 것에 대하여 유식의 연기법을
중관학으로 집대성 한 용수에 못지 않는 원효의 실상체험의 해탈지경을 얻은 것을
말 합니다.
대자재천왕의 자리입니다.
화엄경은 석존의 위대한 십지 불안 법안으로서 8 지인 대자재천왕의 순서에서 역순으로
반연하여 O 의 중도 사상으로 균형을 잡고 이 공간의 의지를 단숨에 환중고리로서
묘계 하는 만세의 계약을 펼쳐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득법과 게송의 현 주소를 진행하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를 지니고 한 쪽으로 지향하지만 동시에 지향의 반대쪽이 한꺼번에
맛물고 굴러간다는 윤리지경의 체를 실체로 체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는 최소한 알고 가는 재가 불자는 되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경전은 성인의 말씀이며
선정의 공부는 부처님의 마음자리 를 말 합니다.
화엄경을 읽어나가고 참구하면서 정숙하면 부처님 마음과 성인의 말씀이 귀에 들리게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원효가 당나라 스님 일천여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때
밥상을 차리는 소상을 응용하여 신령을 매개로 하여
海東元曉擲板求衆(해동 원효척판구중)
해동의 원효가 소상을 날려 중생을 구하도다 하고 쓰인 구절을
천명의 당나라 스님이 모여있는 사찰에다 날리는 신통을 보였는데
이 글귀를 싣고 날아가는 판데기를 보자고 우루루 몰려든 스님들이
다 나오는 순간 해당 사찰이 산사태로 무너져 내리는 봉변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읍니다.
이러한 이유로 경남 양산에는 천성사 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서
당나라 스님 천여명이 와서 원효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공부를 한 흔적이
지금도 유행한다고 하였읍니다.
자성 스님이 이끄는 구도 일행은 이 천성산의 양산 의 성지를 항상 순례 하고
있음은 우리들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천성사는 산신각이 위에 있지 않고 일주문 바로 옆 하단에
조성되어 안치 되어있다고 하는 특이한 사찰 구조를 엿보게 한다 하니
우리 들도 한번 해당 사찰을 방문하고 순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발원 해 봅니다.
화엄경은 지루할 수 도 있지만 지루함을 인내하는 과정에서 마음줄이 열리는 것이니
지루함을 오리혀 환영하고 인내 하시면 큰 복록의 신통의 묘연하게 옵니다.
십방의 십덕이 서로 간섭하며 비추어 주기 때문에 우리들의 인식체계로서는
이를 볼 수 도 없는 것입니다, 이를 믿고 항상 공부하시기를 빌겠읍니다.
우리모두에게 사무치게 인내하는 힘을 주시기를 부처님게 발원하며 다음에 계속 소개하겠읍니다 -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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