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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선교장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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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선교장은 조선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10대 이내번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런 이후 300년을 이어 온 집으로 99칸을 갖춘 조선후기의 전형적이 사대부의 저택이며 1965년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받았다.선교장은 배다리의 집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내번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많은 족제비가 눈에 띄어 이곳까지 쫓아왔지만 그 많은 족제비가 바로 이곳에서 없어졌단다. 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아 선교장을 짓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선교장 앞에 큰 도로가 나고 논밭이 펼쳐져 있지만 예전에는 경포호수가 집 앞까지 이루러 배를 타야 나들이를 할 수있었기 때문에 배다리 집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런 배다리집 선교장을 지난 주에 찾아가봤다.
그곳은 <물레야 물레야> 등 영화가 촬영한 장소이기도 했다. 넓다란 선교장 입구에 들어섰다.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진 초록의 잔디가 기와집과 잘 어울이면서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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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장입구에 있는 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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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99칸짜리 집 앞에는 커다란 우물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그앞을 지나던 사람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타는 목을 적셨으리라 짐작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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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의 출입 문과 여성의 출입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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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선교장은 남성과 여성이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었다. 왼쪽이 남성들이 출입하던 문, 오른쪽이 여성들이 출입하던 문이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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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장의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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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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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들이 묵던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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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방을 보니 그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란 것을 알 수있었다. 그렇게 많은 손님들의 뒷수발을 들기도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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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는 탐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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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그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곳의 조카뻘 된다는 분이 안내를 자처했다. 그분은 그곳을 속속들이 아주 잘 알고있어 우리들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이었다. 역사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그는 그곳을 역대 대통령들이 찾았던 이야기를 해주어 생동감을 주기도 했다.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감옥에 계실 때 ,이휘호 여사가 선교장 관련 책을 제일 처음으로 보내주어 감옥에서 나가면 선교장을 꼭 찾아 가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외에도 박정희, 김영삼 전직 대통령들께서 그곳을 찾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또한 그곳에는 2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은그릇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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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화당(사랑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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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손님을 대접하는 사랑채이다. 이 건물은 이내번의 손자 이오은에 의해 순조15조(1815년)에 지어졌다.오른쪽 끝에 있는 '누마루'는 마치 여성의 치마폭이 사뿐이 들려있는 기와의 선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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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마당, 부엌, 아궁이,방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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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선교장안에 있는 부엌, 아궁이, 방의 모습이다.그리고 이쪽 건물과 저쪽 건물을 이어주는 마당의 풍경. 커다란 아궁이가 그곳이 얼마나 넓은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돌을 놓아두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겨울이면 그것을 표시로 건너기 편하게 해놓았다. 그런가 하면 앞마당에는 마사를 뿌려놓았다.그런 이유는 혹시 밤손님이 들어오면 마사 밟는 소리로 위험을 알아 차릴 수 있게 했던 거라 전한다.
그 소리를 음미하면서 나도 귀를 기울여 직접 걸어보았다. 마사 밟는소리는 '사각 사각' 하는 소리를 내고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다시 한 번 알게됐다.
그곳은 99칸의 집인지라 마치 미로같은 구조이다. 거기가 거기인 것같이 똑같아 보였다. 안내자가 없었다면 헤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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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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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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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별당 담의 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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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
| 지금 외별당에서는 이내번의 후손이 살면서 그곳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그곳은 우리의 역사를 소리없이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그런 그곳에서도 꽃은 피고 지고, 세월은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앞으로도 그러하겠지. |